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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내가 시 해설을 시작한 이유”

세계 명시 해설 『시를 읽는 오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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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고통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 아닐까요. 그것이 낭만이고요. 힘들 때 시를 읽으면 힘이 되어요. (2017.09.08)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돼지들에게』 그리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읽으며 최영미 시인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그 단서는 자전적 요소를 포함한 첫 번째 소설 『흉터와 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 하경은 학창 시절에 사흘에 한 권꼴로 책을 읽어내는 문학소녀(262쪽)다. 실제로 최영미 시인도 유년부터 수많은 세계 명시와 고전 소설을 읽으며 자랐다. 이렇게 세계문학을 두루 섭렵한 시간이 아름다운 그녀의 문학 언어로 이어진 것이다.

 

『시를 읽는 오후』는 오늘날 최영미가 있게 한 세계 명시를 소개한 책이다. 시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사포, 브라우닝, 바이런의 작품을 비롯해 총 44편을 수록했다. 시의 원문과 번역은 물론, 작품 및 시인에 관한 최영미 저자의 친절한 해설도 덧붙였다. 번역의 경우, 저자가 직접 새롭게 번역한 시도 많다. 시를 해설할 때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그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책 읽는 재미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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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시를 읽으면 힘이 되어요

 

<채널예스> 인터뷰는 3년만입니다. 그간 근황을 말씀해주시면.

 

『청동정원』 이후 좀 허탈했어요. 소설을 쓰면, 보통 10년 이상이 걸렸어요. 많은 시간 들여 썼지만, 기대한 만큼 성공하지 못했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평단이 싸늘했어요. 그런 데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사람은 책을 내면 반응이 있어야지 거기서 정열을 얻고 다음 책을 준비하거든요. 글쟁이로서 경쟁력이 있나, 작가로 계속 살아도 되나 이런 고민을 계속 했어요. 한 2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했죠. 쉬었어요.

 

그러다가 문학 강의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특강으로 시작했고, 8주 연속으로 하는 시 창작 강의를 생애 최초로 하기도 했죠. 그 전에도 잠깐씩 독자와의 행사, 사인회야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독자를 매주 만나는 건 처음이었어요. 동시대 사람들 마음 속을 들여다 봤다고 할까요. 강의가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그들의 글을 보면서 요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나, 나 주변 사람만 알았지 대중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시를 읽는 오후』는 어떤 계기로 연재하셨나요.

 

<서울신문>에서 연재 제의가 왔을 때 놀던 기간이 길어서 흔쾌히 연재를 시작했죠. 이 책 순서는 거의 연재 순서 그대로인데요. 처음 회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 그래서 내가…… 사포의 뒤틀린 위트와 아이러니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 적당히 편안한 중년을 보냈겠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포에게 세뇌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시인이 되어, 더 폭넓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를 노래하는 모험을 택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심각하게 포장하는 재주를 익혔다면 비평가들의 칭찬과 상도 뒤따랐으련만…… 그러나 나는 ‘나’를 노래하다 안개처럼 사라질 운명인 것을…… (34쪽)

 

이번 글에서 가지 않은 길에 관해 종종 표현하셨는데요. 시인, 작가로서의 삶을 약간 후회한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사실이에요. 후회를 많이 했죠. 연재하면서 옛날 일기장을 다시 봤어요. 사포, 브라우닝, 바이런을 다시 읽으면서 저를 이해하게 됐죠. 아, 오늘날의 내 성격이 이렇게 형성되었구나. 약간 뒤틀린 위트나 풍자, 서구적인 감수성이 내게 일찍부터 침입했다는 걸 깨달았죠.

 

시인의 삶, 당대에 인정받는 건 운명

 

시인이 안 됐다면 편안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듯 책에 등장하는 시인 중 불우한 사람이 많아요. 시인은 불우한 걸까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끌리는 시인이 주로 불우한 편일까요?
 
양쪽 다 있겠죠. 대표적인 사람이 윌리엄 블레이크인데요. 무명 시인이었죠. 심지어 당대 영국 시인 동료들도 그의 존재를 몰랐을 거예요. 블레이크 시가 너무 독창적이라 이해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블레이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을 파괴시키려거든 예술을 파괴시켜라.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주고, 뛰어난 것을 천하게 하라.”고. 이런 문구에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바이런보다 블레이크 시가 좋아서 강의 때도 많이 소개하는데, 사람들도 다 좋아해요.

 

그렇다면 선생님도 블레이크처럼 후대에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안 좋죠. 당대에 인정받아야죠. (웃음) 죽으면 끝이에요. 당대에 독자와 평단에 인정받으면 행복하겠죠. 그런데 그건 제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거예요. 최승자 시인을 생각해봐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고, 스승인데요. 최승자 시인도 탁월함에 비해서 제대로 평가 못 받은 듯해요. 평단이 인색했죠. 그건 자기의 하나의 운명이죠. 어쩔 수 없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번 책은 시 해설인데요. 소설이나 시와는 다른 독자를 염두에 두셨나요?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해요. 그렇지만 연재니까 마감에 쫓기느라 특정 독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독자보다는 나와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썼죠. 『시를 읽는 오후』는 어린 시절 최영미를 형성한 시를 해설한 책인데요. 제가 시인으로 시작해서 소설과 산문을 내고, 다시 시로 왔거든요. 쓰면서 인생이 한 바퀴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손을 많이 탄 책, 공들여 만든 책입니다.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시를 발굴하려고 했고요. 번역도 새롭게 한 시가 많아요. 기존 번역 중에 손댈 게 없는 건 안 했지만, 오역이 있다거나 요즘 우리 말에 어울리지 않는 예스러운 번역은 새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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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오후』는 세계 명시 입문서

 

책마다 역할이 있습니다. 이 책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이 책이 한국 사람들의 교양을 높이는 책이 되면 좋겠어요. 한국은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않죠. 취향도 그렇고요. 영화 한 편 흥행했다고 하면 수백만 명이 몰려가고, 음식도 하나가 유행하면 거기로 몰려요.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한국 사람들의 개성이 더 다양해지고, 자기와 다른 목소리를 이해하는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이 예뻐요. 내지에 색도 들어가 있고요. 소장용, 선물용으로 좋은 구성 같습니다.

 

이전 책인 『내가 사랑하는 시』도 내지에 색을 넣었어요.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에게 어린 시절 만들었던 시화집을 보여줬어요. 지금 세대는 모를 텐데요. 1970년대 서울 여학교에서는 예쁜 색깔 있는 종이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그걸 친구들끼리 나눠 봤어요. 그 시절 시화집 공책이 딱 『시를 읽는 오후』 이런 느낌이에요.

 

직접 선물하고 싶은 사람 3명을 꼽아주신다면요?

 

아픈 환자들이 보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시간이 잘 안 가잖아요. 아무 페이지에서 보다 멈출 수 있는 책이에요. 두 번째는, 젊은 날 첫사랑이었던 독어를 가르치셨던 강양현 선생님. 1978년 선일여고 1학년 독일어를 가르쳤던 분인데, 찾을 수가 없네요.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수업 시간에 독어만이 아니라 독문학을 소개해주셨어요. 제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선생님이죠.

 

마지막은 청소년, 입시에 찌든 학생들. 저희 시절에도 입시는 힘들었는데,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달랬거든요. 학교 공부가 지겨워질 때 군것질 하듯 시를 외우면서 스트레스 해소 많이 했어요. 이 책이 청소년이 읽기 쉬운 세계 명시 입문서이기도 해요. 영어 공부하기도 좋죠. 성문 종합 영어는 죽은 영어 공부고, 세계 명시를 외우면 최고의 영어 공부죠. 바이런, 예이츠의 시 한 편 정도 외우면 유럽 여행할 때 대접이 달라져요.

 

처음과 끝은 보통 다른 장보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마지막 헤밍웨이 편은 최영미 특유의 위트가 빛나는 마무리이면서, 한편으로는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니까요. 특별히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요.

 

전혀 없어요. 원래 연재 마지막 편은 찰스 부코스키 시였는데, 저작권 문제가 걸린 거예요. 최근 사람이라, 그 사람 시를 쓸 대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저작권 때문에 못 다뤘죠.

 

시, 시인에 관한 자료도 많이 하셨을 텐데요. 이번 연재를 하며, 새롭게 발견한 시나 작품, 에피소드가 있다면.

 

도로시 파커요. 이번에 ‘베테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죠. 아주 좋구나. 도로시 파커가 뉴욕시 44번가에 위치한 알곤킨 호텔에서 매일 점심을 함께 먹은 이런 에피소드, 이런 것도 새롭게 알면서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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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소설에 관한 질문을 드려볼게요. 『흉터와 무늬』가 1970년대를, 『청동정원』은 1980년대를 다뤘습니다. 자연스레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올 법한데요.

 

글쎄요. 그렇게 3부작을 쓸까 했는데, 『청동정원』을 쓰고 진이 빠졌다고 할까요. 아직 에너지가 안 생긴 거 같아요. 『시를 읽는 오후』가 반응이 좋으면 혹시 새로운 소설에 도전할 마음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1990년대를 쓴다면 연애에 관해 써야겠죠.

 

선생님을 둘러싼, 혹은 작품을 둘러싼 의도하지 않은 잡음이 많았습니다.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두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 그리고 작년에는 페이스북 글도 한창 화제였는데요. 유쾌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골치 아프죠. 지금도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관한 감상을 페북 메시지로 보내주세요. 그냥 그만 쓸까, 왜 난 오해의 한가운데 있을까, 한국 사회와 안 맞나? 갈등, 회의 많이 느끼죠.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제가 책을 냈잖아요. 앞으로 글을 더 쓸지 말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시를 읽는 오후』를 제 글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이라는 심정으로 냈어요. 지금 심정이 이렇다는 거지, 붓을 아예 꺾겠다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 집필 계획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시대의 우울』을 인상적으로 읽어서, 예술과 여행을 결합한 에세이도 기대합니다.

 

반복을 못 참아요. 기행문은 써 봤으니 같은 종류의 책을 쓰진 않으려고요.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냈기 때문에 스포츠 관련한 글도 쓸 계획이 없어요. 주변에서 제 유머와 위트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콩트집을 쓰면 괜찮겠다는 생각은 해요.

 

며칠 전에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했는데요. 뮤지컬에는 시대, 사람 등 모든 게 들어가잖아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청동정원』을 뮤지컬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혼자 하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의가 와야겠죠. 1980년대에 관한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는데, 뮤지컬은 별로 없잖아요.

 

이번 책에서 에밀리 디킨슨을 다루며 집을 떠나기 싫다고 쓰셨잖아요. 예전에는 춘천에서 집필하신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마포구에 사는데, 서울이 좋아요. 서울역도 가깝고, 공항도 가까우니 지방 강연할 때 편해요.

 

시, 소설, 미술이 선생님의 관심사이잖아요. 예술이란 무엇인가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붙잡고 있는 화두일 거 같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시를 읽는 오후』에도 썼듯, 고통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 아닐까요. 그것이 낭만이고요. 힘들 때 시를 읽으면 힘이 되어요.

 

현재 선생님의 고통과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여름이라 공기가 좋은데요. 가을이 되면 미세먼지가 심해질 거잖아요. 그게 고통일 테고, 고민은 글쎄요. 어머니 상태가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고, 내 삶이 좀 좀 안정되면 좋겠다, 이런 정도? 아, 지난 20년간 다녔던 홍대 수영장이 문을 닫은 게 큰 고통이네요. 홍대 대학원 갔을 때 가장 좋은 게 수영장이었는데요. 거기가 크고 넓고, 사람도 많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곳이 시설 점검 때문에 문을 닫아서 언제 다시 열지, 아예 폐쇄할지도 몰라요. 제 인생의 가장 큰 낙이 수영인데 수영 못 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네요. 새로 다닐 수영장을 알아보고 있어요.

 

수영을 향한 사랑이 큰 듯합니다. 『청동정원』 출간 이후 하고 싶은 것으로 바다 수영을 꼽으셨는데요.
 
그 뒤로도 바다 수영은 못 했어요. 겁이 많기도 하고, 바다 수영이 복잡하잖아요. 해변을 찾아 가야 하고, 춥고요. 또 해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올해 지방 강의가 다섯 번이었는데 그 중 세 번이 제주였어요.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하긴 했어요.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데요. (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지난 세월 동안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 왔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도 그래요. 친구가 늘어났어요. 글 쓴다고 친구와 자주 못 만났다가 요즘은 강의하면서 많이 만나거든요. 제 강의를 들으러 오기도 하고요. 그들과 여행도 가고. 점점 더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시를 읽는 오후최영미 저 | 해냄
3부 3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서고금의 명시들 중 시인이 특히 아껴 읽었던 작품들을 골라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개성 있는 목소리로 번역해 옮기고 해설해 작품 원문을 함께 실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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