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특집] 하루키를 통해 나를 발견한 사람들
<월간 채널예스> 8월호 특집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기꺼이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자취와 취향까지 사랑해 책까지 낸 하루키스트들을 만났다. 그들이 추천하는 하루키를 색다르게 만나는 법. (2017.08.31)
신성현, 하루키의 작품 속으로 떠나는 여행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 (신성현 지음, 낭만판다)
우연히 접한 『해변의 카프카』에 빠져 단숨에 읽은 이후 하루키의 팬이 된 신성현 작가. 그 이후 하루키의 작품을 차근차근 탐독하며 국회도서관 논문자료부터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해외 자료까지 섭렵하며 2008년부터 하루키의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 finding-haruki.com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생활 7년차에 접어들어 찾아온 피로감에 삶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을 찾다가, 불현듯 그냥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뒀어요. 하루키 작품들의 배경과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는 여행을 콘셉트로 잡고 떠났죠.” 그의 여행은 크게 6개 지역을 24일간 돌아보는 코스로 하루키 문학의 근원인 한신칸 지역을 시작으로 교토, 효고현, 『해변의 카프카』의 주 배경지인 시코쿠, 그리고 도쿄, 홋카이도까지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제가 다녀온 곳은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하거나 그의 일상의 향기가 배어있는 곳으로 오랜 하루키 팬인 저에게 부족함이 없는 여행이었어요.”
신성현 작가의 추천, 작품 속 그곳에 가다
『1Q84』의 수도 고속도로 3호선 비상계단
하루키의 생생한 묘사의 힘은 바로 실제 배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Q84』에서 수도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은 매우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죠. 실제로 비상계단을 발견했을 때 마치 『1Q84』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설렘에 벅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서있는 현실과 『1Q84』의 아오마메가 총자루를 쥐고 내려온 세계가 전환되는 놀라운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합니다. 혹시 달이 2개가 떠있을지 모르니 잘 살피세요.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산책 코스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데이트 코스인 요쓰야~고마고메역 산책을 해보세요. 가는 길에는 소설 속 장면이 떠오르는 벤치, 음료수대가 있어 산책 코스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고마고메역에는 소설 속 묘사와 똑같이 모밀소바 집이 있답니다. 소바와 함께 와타나베처럼 시원한 맥주를 마셔보세요. 여기에 코스 하나를 더한다면 29살의 하루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진구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차유진, 하루키 책에서 꺼낸 위로의 요리
『하루키 레시피』 (차유진 지음, 문학동네)
셰프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차유진씨는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처음 읽은 하루키의 작품은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 이후 하루키 문장의 흡인력에 빠져 하루키 동호회 활동을 했고, 그 때 붙여진 닉네임 손녀딸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등장인물) 아직까지도 본명보다 더 자주 불린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 책과 제 인생이 같이 흘러간 것 같아요. 20대의 처절했던 연애도, 우연히 하게 된 재즈 관련 일도, 요리를 공부해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것도요.” 음악을 계속했다면 하루키의 재즈에 관련된 책을 냈을 것 같다는 차유진 셰프. 음식을 먹고 요리를 하는데 대한 묘사는 하루키의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만큼 하루키스트이자 셰프 겸 작가인 그녀가 하루키의 음식에 대해 책을 낸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요리를 배우고 나서 다시 하루키 책을 읽어보니 그가 얼마나 세련되게 음식을 표현하고 본인이 잘 아는 메뉴들만 글로 썼음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더욱 감탄했죠.”
차유진 셰프의 추천, 하루키가 떠오르는 요리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토끼정의 크로켓
『노르웨이의 숲』에도 등장하는 토끼정 크로켓은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서 더욱 자세히 묘사돼요. 하루키는 자신의 단골집을 소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실제 토끼정의 장소와 전화번호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토끼정의 고로케를 예술품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였고 고기와 함께 들어간 잘 자란 감자는 대지에 뺨을 비비고 싶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으니 그 완벽한 크로켓이 궁금할 수 밖에요. 하루키 팬들 이라면 한번쯤 이 토끼정의 크로켓을 찾는 시도를 해봤을 거에요. 저도 도쿄에 갈 때나 지방에 갈 때도 맛있는 크로켓이 있다면 꼭 먹어보는데, 저에게는 고베의 차이나타운 초입에서 파는 고베 크로켓이 제일 맛있고 기억에 남네요.
하루키표 특별 식단, 냉장고 정리용 파스타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에는 마치 우리나라 양푼 비빔밥처럼 하루키기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털어 넣어 자신만의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는 대목이 나와요. 그는 무청과 후리가케, 찰떡까지 넣어 만들어봤다고 합니다. 사실 파스타는 하루키의 책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요리입니다. 『먼북소리』에 나온 시칠리아 정어리 파스타는 실제로 만들어 먹어봤는데 맛있었고, 『패밀리 어페어』에도 바질을 넣은 파스타와 가지와 마늘을 넣은 스파게티 등이 나와요. 저도 여행 가서 끝무렵에는 하루키처럼 넓은 탈리아텔레 면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넣어 파스타를 만들어 먹곤 합니다.
조아라, 하루키의 고향에서 만난 소박한 일상
『당신의 하루키, 나의 고베』 (조아라 지음, 디앤씨북스)
조아라 작가는 첫 직장에서 사람과의 관계에 큰 상처를 받고 힘들었을 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현실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글, 삶을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에세이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짧지만 힘들었던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하루키의 고향 고베로 여행을 떠났다. "『당신의 하루키, 나의 고베』는 하루키의 글을 읽고 스물여섯살에 홀로 그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난 제 일기장 같은 책이에요." 하루키의 단골가게에 들러 그와의 시간과 장소를 공유해 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제대로 만든 비프 커틀릿를 맛보고, 재즈카페 피터캣에서 하루키와 닮은 사장님이 있는 바에서 음악을 들으며 소박한 일상을 즐겼던 여행의 기록을 담았다.
조아라 작가의 추천, 하루키의 일상을 따라가기
하루키의 단골 피자집, 피노키오
하루키가 학생 때 즐겨 찾았다는 피노키오라는 피자집(1962년부터 영업)이 지금도 있어요. 이곳의 특이한 점은 주문한 피자가 가게에서 만든 몇 번째 피자인지 적힌 번호표를 준다는 겁니다. 하루키는 1997년에 958,816이란 숫자를 받았다고 해요. 피노키오에서 피자를 시키며 그와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피자 접시가 쌓였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하루키 여행법』의 니시노미야 산책
고베 인근의 니시노미야를 걷는 코스를 추천해요. 『하루키 여행법』에는 하루키가 고베 일대를 걸은 이야기가 실려있죠. 니시노미야는 고베 근처의 도시인데 고베와 달리 구경할 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주거지일 뿐이에요. 하지만 조용하고 특별할 것 없는 주택가를 걷는 기분이 참 좋아요. 또 주택가 사이에 작은 강변인 ‘오아시스 로드’를 산책해 보세요.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거닐면 탁 트인 바다와 마주치게 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풍경도 지나치지요. 하루키 생각을 하며 걷다가 쉬다가 또 걷는 것, 이게 하루키스러운 여행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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