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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대해서 (1)

『밤의 문화사』나 『새벽의 인문학』 같은 책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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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현대인)의 수면 관습이 ‘생물학적인 본질’이기보다는 ‘역사적인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아리아나 허핑턴의 『수면혁명』에도 등장한다.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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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splash

 

여자들에게는 헌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수면이 우선순위에서 점점 뒤로 밀리게 된다. 그들 또한 잠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해야 할 일로 인해 잠을 마지막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시작이다.

 

이러한 과로의 시대에 여성들은 특히 불리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승진 사다리를 열심히 올라가 유리천장을 깨뜨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면서 흔히 잠을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된다.

 

나는 아이를 낳고 ‘잠’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잠’에 대해 격렬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잠’과 복잡하고 짙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명료하게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분산력을 발휘해보도록 노력하겠다.

 

원래 나는 ‘믿을 것이 체력밖에 없다.’는 모토로 살아온 사람이다. 집중력이나 지구력이 떨어지니, 남들 잘 시간에 놀이든 공부든 일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실제로 20대에는 이틀 밤을 꼬박 새고도 셋째 날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진기한 재주를 보이기도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낮에 못한 일을 밤에 보충하는 나쁜 습관에 젖기도 했다.

 

그러다 임신기에 변화를 겪었다. 카페인을 끊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쓰고 많이 걸으면서 잠이 늘었다. 잠자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게 되었고 할 일이 있는데도 미뤄두고 자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휴일에는 낮잠도 많이 잤다.

 

출산 이후에는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는데, 우선 아이가 신생아이던 시절에는 극심한 수면 부족으로 괴로웠다. 아이가 낮이고 밤이고 잠들기 어려워할 뿐 아니라 길게 잠을 못 자서 그 패턴을 공유하느라 그런 것도 있고, 예민한 신생아 육아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 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잠을 못 이룬 면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유를 하려면 산모가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해서 5분, 10분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밤샘 촬영 중에 좋은 신체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쪽잠을 사수하는 배우들의 심경이 이런 상황과 비슷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또 “통잠을 딱 세 시간만 자면 좋겠다.” 같은 문장이 육아일지에 주문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유를 하는 2년 동안 역시 카페인을 제한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이 졸렸고, 더 힘들었다.

 

처음 수면 부족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나는 ‘이렇게 부당할 정도로 황당한 환경이라니, 아예 안 자버리고 말겠어!’라는 반항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곧 상황에 겸손히 굴복하고 적응할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육아서에서 ‘아기가 잘 때 해야 할(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떠오르겠지만 밤에도 계속되는 육아에 적응하려면 일을 포기하고 아기와 같이 자라.’고 조언했다. 수유나 초기 양육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해주던 통곡마사지 선생님은 짬이 날 때마다 5분이라도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것이 피로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알려주셨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그냥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자야 돼, 자야 돼, 자야 돼!’ 하면서 잠이 안 와 불안한 마음에 더더욱 잠을 못 자던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처음엔 절망적이고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연습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두 돌이 될 때까지 밤에도 5번 이상 깨는 수면 패턴을 유지했지만, 나는 아이랑 잠들었다 깼다 생각에 잠겼다 다시 잠들었다를 반복하면서도 어느 정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들은 아이가 잠든 시간에 정말로 할 일이 많고, 그래서 아이가 잠들고 나면 다시 일어나서 회사 업무나 가사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아이가 크면서 나도 점점 더 그렇게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초기 육아에서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고, 나는 꽤 기특하게 그 과제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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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splash


아마 팔리 모왓 아저씨가 <울지 않는 늑대>에 기록한 통찰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의 자연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모왓은 어쩌다 오지에서 북극 늑대와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밤낮으로 늑대를 관찰하고 감시하는 데 지칠 무렵 늑대들의 잠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수컷 한 마리가 굴 가까이 낮은 언덕에서 편안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했다. 늑대처럼 토막잠을 자는 법을 배우면 되는 일이었다. 요령을 깨우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눈을 감았다가 5분 후에 다시 깨어나는 실험을 해보았는데, 되지가 않았다. 처음 두세 번 선잠을 자다가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내리 몇 시간을 자버렸던 것이다.

 

내가 실패한 것은 내가 늑대의 행동을 모두 흉내 내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알아낸 사실은, 먼저 몸을 동그랗게 만 다음 토막잠을 깰 때마다 빙글빙글 도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몸의 위치를 바꾸어서 순환촉진에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잘 조절한 일련의 늑대 잠이 휴식 문제에 대한 인간의 해답인 7~8시간짜리 무의식 상태의 코마보다는 훨씬 더 상쾌하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늑대 잠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쉽게 잘 적용이 되지 않는다. 내가 문명으로 되돌아간 당시에 만나던 여성이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치를 떨면서 나와 함께 하룻밤을 더 지내느니 구루병을 앓아서 허리가 굽은 메뚜기와 사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91~92쪽)

 

인간(현대인)의 수면 관습이 ‘생물학적인 본질’이기보다는 ‘역사적인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아리아나 허핑턴의 『수면혁명』에도 등장한다.

 

산업화 이전에는 수면을 숭배하는 마음뿐 아니라 수면 그 자체도 지금과 달랐다. 산업화 이전에는 대부분의 문화에서 수면이 지금처럼 한 차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사 이래 대체로 밤은 두 차례의 수면기로 나누어져 있었다. 일명 ‘분할 수면’이다. [...] 수면과 수면 사이에 잠시 깨어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몇 시간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면과 수면 사이에 깨어 있는 이 시간은 낮에 깨어 있는 시간과는 달랐다. 그것은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메사추세츠대학교의 불면증 전문가 그레그 제이컵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비연속적인 수면 패턴은 거의 모든 포유류의 특징이자 우리가 인생 초반에, 그리고 말년에 경험하는 패턴이다.’

 

『밤의 문화사』라는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이 두 잠 사이의 고독한 시간에 더 많이 한 일은 명상이었다. 전날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면서 다가오는 새벽을 맞았던 것이다. 특히 번잡한 집에서는 낮이건 밤이건 이때보다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사생활이 보장되는 시간도 없었다. 이탈리아의 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침대에서 자지 않고 누워 있을 때 나는 항상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잠들기 전에 습관적으로 윤리학 서적을 읽고, ‘두 잠 사이에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윤리학자 프랜시스 퀄스에게 어둠은 고요함 못지않게 내적 성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특히 상상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문제에 있어서) 자신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권했다. ‘첫잠이 끝나면 휴식에서 일어나라. 그때 당신의 몸이 가장 상태가 좋을 것이다. 그때 당신의 영혼에 장애물들이 가장 적을 것이다. 그때 당신의 귀를 괴롭힐 소음도 하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당신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을 것이다.’(구판, 402~403쪽)

 

나에게도 임신, 출산, 육아 이후 그런 시간이 찾아왔다. 수면과 수면 사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시간,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반 100페이지를 가득 채워 넣은 그 지루하고도 막막한 시간. 처음엔 이 시간을 불안과 분노, 혹은 외로움으로 채웠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고도 남는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그래도 남는 시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드물게 성공한 적도 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중요한 시간이다.

 

『밤의 문화사』『새벽의 인문학』 같은 책들은 현대의 7시간 통잠 수면 패턴을 ‘인공 조명’과 연관해서 설명한다.(더 깊은 사회문화적 분석으로 나아가는 <24/7 잠의 종말> 같은 책도 있다.) 어쨌든 현대의 수면 패턴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은, 극심한 수면 패턴 변화를 겪은 내게 뭔가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또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의 삶 안에도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층위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이끌어주어서 고맙다. (평범한 한국 직장인이라는) 노멀한 패턴으로 살던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지배적인 수면 패턴과 다른 패턴을 가진 삶들에 동지애가 느껴지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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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수면 혁명

<아리아나 허핑턴> 저/<정준희> 역15,120원(10% + 5%)

수면 박탈의 시대, 일에 매몰돼 소진되어 가는 현대인에게 ‘잠’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책 『수면 혁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허핑턴 포스트》를 창립해 언론계에 돌풍을 일으킨 아리아나 허핑턴의 신작이다. 전작 『제3의 성공』에서 돈과 권력이라는 전통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웰빙과 지혜, 내면의 여유로 성공의 패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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