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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좋은 문학은 거리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문학과 영화를 보는 시선
산문집 『마음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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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태도인 거죠.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진짜 좋은 문학은 그 거리에 관한 질문을 항상 포함하는 것 같아요.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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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음사에 입사해 국내 출판계의 흥망성쇠를 같이 하고,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평론이 당선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정홍수는 한결같이 영화와 문학 언저리에 있었다. 20여 년 동안 평론집 『소설의 고독』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등을 내며 2016년 대산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정홍수 평론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경탄하면서 읽어낸다. “문학이 얼마나 끈질기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힘들게 인간을 사랑하는지 단순한 단어 배열이나 소설 자체의 이미지만으로 전달”(2016년 대산문학상 심사평 중)되는 문체는 첫 산문집 『마음을 건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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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글


창비 주간논평, <한국일보> 칼럼 등 여러 글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글 양이 적어서 평론보다는 쓰기 쉬우셨을 것도 같아요.

 

<한국일보> 칼럼은 3년째 쓰고 있고, 창비 주간논평은 훨씬 전부터 썼어요. 주로 3년 안쪽의 글이 담겼습니다. <한국일보>에 쓴 칼럼이 9매 정도 되는데, 매수가 적으면 짧은 내용 안에서도 기승전결과 수사를 나름대로 전개해야 합니다. 오히려 짧은 글이 쉽지 않습니다. 매번 쓸 때마다 일단 쓰고 매수에 맞게 줄여갑니다.


여러 책과 영화를 다뤄 주셨는데, 글감의 기준이 있었나요?


소설이든 인문과학이든 제 마음을 움직였던 책과 영화를 썼어요. 사실 원고는 마감 때문에 쓰는 거잖아요. (웃음) 마감이 닥쳐오면 그 시점에서 가장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글을 찾게 됩니다. 또 제가 절실해야 다른 사람도 제 글을 읽었을 때 느끼는 게 있으니까요. 글을 썼던 시기에 큰 영향을 준 책이 김현경 선생의 『사람, 장소, 환대』였어요.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여러 글에 그 책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영화도 허우 샤오셴 감독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 번 언급하죠. 두 번째 평론집 제목(『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도 허우 샤오셴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에서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 나중에 영화를 찍었던 장소도 가게 되어 그 이야기가 책에 나옵니다.


1부부터 3부까지 일상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제가 무슨 권리로 남을, 남의 텍스트를, 남의 세상을 평가할 수 있나, 그런 자문이 들어요. 그래서 일단 제 처지를, 제 입장을 드러내 놓고 비평으로 나아가는 게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문제에서 빠져 있고 아주 객관적으로 제삼자처럼 바라보는 시선의 자리는 저한테 안 맞기도 하고요. 그게 제 문학 평론의 기본 태도예요. 하다 보니 글 패턴이 자꾸 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결론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돌아옵니다. 세상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는 거죠. 원래 그렇게 하려던 건 아닌데 문제를 대하는 태도나 자세가 그렇습니다.


평론인데 평론 같지 않고, 산문인데 산문 같지 않은 글이 나왔어요.


보통 신문 칼럼은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내는 곳이에요. 특히나 시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비판적으로 지적한다든지 하는 칼럼이 많죠. 문화 일반에 대해 편하게 쓰는 지면이라 그랬지만, 스스로 시사에 대한 의견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시사적인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많잖아요. 그럼 제가 할 수 있고 그래도 잘 아는 건 문학이 아닐까 싶었어요. 굳이 문학과 영화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글 쓰는 방식 자체가 세상을 향한 직접적인 언술은 자제하고 좋은 문학작품이나 생각을 빌려서 제 말을 조금 하는 식이었습니다.


머리말에는 ‘입장이나 주장으로 내세울 것은 별로 없’다고 써주셨는데, 글은 어쨌든 자기주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다음 문장에서 태도나 자세는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문학적인 것 같다고 썼어요. 입장이 없는 게 아니라 입장을 드러내는 방식 자체가 다른 거겠죠. 문학은 어떤 주장을 직접 하는 게 아니잖아요. 예술이라는 건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얹혀 있는 거죠. 숨어 있기도 하고요. 직접 대상을 추궁하고 비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제가 비판하는 대상한테도 제가 모르는 측면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문학이 내 삶의 자리나 세상의 이면을 복합적으로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그 태도가 저에게는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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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학생이 아니었어요


출판계에서 계속 책을 만드는 일을 해오셨어요. 자기 책과 남의 책을 만지는 기분은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불편하죠. 대학 졸업하는 해에 첫 직장으로 민음사에 들어갔어요. 1987년 10월에 들어갔으니 근 30년을 편집자로 살아왔고, 늘 하는 일이 남의 원고 만지고 제목 달고 교정하는 일이었는데 제 책은 할 때마다 힘들어요. 남의 글은 거리가 있으니 지적도 할 수 있는데, 자기 글은 허점이 너무 많이 보여요. 이걸 쓸 때 어떻게 썼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글의 구멍이 보이는 거죠. 그 구멍을 다시 마주하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편집자들에게 맡기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민음사 다니던 시절을 얘기해주시면서 ‘편집학교’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글에 출판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형도 시인을 실제로 보셨다고요.


등단한 게 1996년이니까 출판사에서 일한 지 10년이 지나고 평론가가 됐어요. 그 전에도 글 쓰고 싶은 욕심은 꽤 있었습니다만 생각만 있었죠. 기형도 시인은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였다가 중앙 경제 신문 기자로 있었는데, 민음사가 종로에 있었고 중앙일보가 서소문에 있었으니 가까워서 자주 들렀습니다. 문화부 기자들에게 출판사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으니 특별한 일이 없어도 와서 신간 나온 이야기, 문단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요. 당시 편집장이었던 이영준 형이 기형도 시인의 연세문학회 선배기도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편집장이 전화를 받더니 넋을 놓고 있더라고요. 그때 기형도 시인이 돌아가신 걸 알았어요.


김수영 문학상 심사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당시 김수영 문학상이 상당히 권위 있는 상이었습니다. 사장실에서 심사를 하는데 저 같은 말단 직원이야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죠.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할 거 아닙니까. 베니어판으로 칸막이 되어 있는 방에 무슨 소리 하나 들으려고 귀를 대고 있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문학상을 심사하는 자리에 계시죠. 격세지감이시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심사하는 자리에 앉아서 의견을 내는 게 지금도 아주 멋쩍습니다. 편하지 않고요. 사실 그때가 더 좋기도 해요.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한 표를 행사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정홍수 많이 컸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아요.


편집 일도 민음사에서 처음 배우셨나요?


많이 배웠죠. 지금은 필름으로 뽑지도 않고 파일을 인쇄소로 보내면 인쇄기에서 바로 인쇄되지만, 취직했을 때는 활판 인쇄가 전산 조판으로 옮겨가는 시절이었어요. 출판 역사가 변화하는 과정을 목격했죠. 말단 편집자로서 지면에서만 보던 대단한 작가, 시인들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가슴 설레고 그랬는데, 문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죠. 그분들이 높게 보였던 시절이 좋았던 것 같아요. 더 많은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문학 작품 앞에 앉았던 것 같고요. 지금은 직업이 되어서 일로서 읽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직장이 ‘출판학교’였다면 ‘그다지 괜찮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평가하셨어요.


90년대 이후로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출판계가 양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영화도 그렇고, 문화면으로 그러한 고도성장이 앞으로는 잘 없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갔던 편집자 중 출판사 차리고 성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죠. 지금도 제가 강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비즈니스 감각은 빵점인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 마케팅 감각도 중요한 덕목이고 자질인데, 그런 면에서 부족한 면이 상당히 많았고 좋은 학생이 아니었죠. 편집도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한테는 글 쓰고 싶었던 욕망이 하나 더 있었던 거예요. 물론 그게 있었다 하더라도 편집 일과 같이하면 될 텐데, 굳이 합리화하자면 생각이 그쪽으로 더 많이 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그 후>에서 강 출판사가 배경으로 나왔습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예요. 출판사를 무대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 나오는 아파트도 우리 집입니다. 주인공 보면 영화 평론하면서 출판사 일도 병행하고, 제 캐릭터 일부가 설정에 조금 들어갔죠. 제 캐릭터를 들고 와서 홍상수 감독이 자기 상상력을 펼쳐서 이야기를 만든 거죠.


출판사 홍보가 좀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관객이 많진 않아서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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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


1부 첫 글이 ‘어른 되기의 힘겨움’입니다. 황현산 선생의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으셨다고요.


전체적인 어른 되기의 어려움이죠.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들의 나이를 보면 대단하고, 세상에 대해서 웬만큼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어, 어, 하다 보면 밀려가듯이 어른이 되는 거잖아요. 어른 자리에 맞는 책임이라든지 태도, 자세를 누가 가지고 있나 물어보면 회의적이에요. 따져보면 그런 어른의 자리에 누가 도달했겠습니까. 그때그때 시대에 맞게 어른 역할을 하는데, 지금 우리 시대에서 어른 역할이 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른의 영역까지는 아니겠지만, 문학계에서 계속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감회가 있으실 것 같아요.


문학계에서도 어른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제 위치에서 아직은 위층이 두껍습니다. 따지면 중간 정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 유명한 386세대인데 비판을 많이 받잖아요. 사실 대학 시절에는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고 부정의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불운한 세대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해도 밥도 벌어먹었고 직장도 얻고 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그게 없으니까. 그런 거에 대해 해줄 말이 없는 미안함이 있죠.


요새 문학을 콘텐츠로 다루는 걸 보면서 삶에 대한 존중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현 세태를 우려하는 부분이 있나요?


문학을 콘텐츠란 범주에 포섭시키려는 세태는 꽤 오래됐습니다. 실제로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이름을 콘텐츠학과로 바꾸기도 하고요. 거기에는 충분한 시대적인 요청과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문학이 쓰임새를 갖출 수도 있겠지만, 문학에는 그렇게 당장 소비재로 환원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저희 세대가 정치와 문학을 상당히 긴밀하게 붙여 보려고 했던 세대에요. 시대가 실제로 운동으로서 문학을 요구하기도 했고요. 이처럼 문학을 콘텐츠나 정치로 환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복잡한 측면에 대해 문학이 열려 있는 자세나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런 질문을 어느 단계에서 멈추게 하는 건 문학의 틀을 오히려 가두는 행위라고 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문학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게 중요한 거죠. 화급한 요구에 문학을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거보다 조금 더 긴 지평 안에서도 문학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쇄신의 일환으로 문예지도 여러 시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단편보다 더 짧은 길이의 소설을 실험하기도 하고요.


소설 작품이 짧아지는 건 제 감각으로는 이상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 일이고, 단편 소설의 길이가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행으로 이어져 내려온 겁니다. 그럼 관행을 한 번 변화해 볼 수도 있는 거죠. 당연하게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이전 평론집을 평하면서 ‘내면이 있는 문장’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정홍수 평론가 문장의 특징을 스스로 꼽는다면요?


평론이 이론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어요. 이론이 세계를 해석하는 큰 틀이니까 그 틀의 도움을 받아 문학 작품을 읽어나가는 건데, 1990년대 이후로 그 측면이 더 강화됐습니다. 저는 사실 공부를 많이 못 했어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게으르기도 하고요. 이론이 없으니까 작품 읽을 때도 작품 줄거리를 제 문장으로 요약하는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평론가는 대부분 학위를 받고 강단에 나가면서 평론 활동을 병행하는 게 관행이 된 지 오래인데, 저는 대학원도 안 갔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내면하고 문장밖에 없는 거죠. (웃음) 문장은 편집자로서 한 30년 살아왔으니 그래도 주어와 동사가 호응되게는 쓸 수 있는 터라, 그걸 좋게 써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간에서는 평론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론에 치중했기 때문에 평론이 자기 분야가 좁아졌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여러 사람이 동의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이론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이론 자체가 작품보다 앞서는 건 문제가 있겠죠. 물론 이론 비평을 쓰는 사람들은 분명히 할 말이 있을 겁니다만, 일반적으로 볼 때 이론이 작품보다 너무 커 보이고 이론을 전기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넣는 비평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 비평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비평가들 안에서도 반성이 일어났죠. 말씀하신 신형철 세대는 비평을 쓸 때부터 그런 자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독자들과 호흡할 수 있는 평론가의 생각을 정리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예전 김현 선생 글은 지금 봐도 너무 아름다워요. 거기 왜 이론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잘 읽히잖아요. 그런 점에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죠.

 

정홍수 평론가에게 ‘‘거리’는 문학성과 예술성의 핵심’이라는 평도 있었습니다.


허우 샤오셴 감독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나온 대목이었을 겁니다. 롱테이크는 시간이나 거리를 길게, 또 멀리 두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장면을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그 확보해 놓은 거리 안에 감독의 세상에 대한 태도나 자세가 들어있는 거죠. 그걸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느껴지잖아요. 그 거리라는 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제가 보기에 거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인류사가 진행된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 사건이나 사고도 바로 옆에서 일어난 것처럼 느끼고, SNS는 남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잖아요. 가깝게 붙어서 어떨 때는 일부러 그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침범하기도 하고요. 

 
문학에서의 ‘거리’란 무엇일까요?


문학은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타인 속으로 들어가는 형식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상상력을 통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감정에 참여해보려고 하는 건 굉장히 윤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경우에도 문학은 무슨 권리로 당신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어요. 우리가 타인에 관한 공감이나 유대를 촉구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타인을 알 수 없다고 느끼는 거리가 우리 공동체를 조금 더 윤리적으로 만들지 않을까요. 우리가 남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태도인 거죠.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진짜 좋은 문학은 그 거리에 관한 질문을 항상 포함하는 것 같아요.


문학을 오래 하게 된 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다 보니 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런 욕망이나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올 수 있었겠죠. 평론가인 매쉬 아놀드가 ‘세상에서 생각되고 알려진 최상의 것’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에 상당히 동의하는 편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생각하고 말해지는 것들 중 최선의 것들이 문학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매체는 종이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겠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어도 문학으로 존재하는 이 자리는 많이 안 바뀔 것 같아요. 어쨌든 인간이 살아 있고 반성하는 능력관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우리 삶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한 최선의 생각은 문학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정말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요.


매번 드러내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정말 시간이 나면 좋은 문학작품을 읽고 싶어요. 대학 입학할 무렵에 도스토옙스키 장편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문학에 입문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최근에 『까르마조프의 형제들』을 다시 읽으니 지금도 너무 생생하고 재밌더라고요. 물론 이런 자산이 문학 말고도 영화나 미술 등으로 남아 있죠. 하지만 언어로 정렬된 오래된 문화유산이 문학으로 남아있다는 게 고마워요.


다른 출판 계획이 있나요?


당분간 출판사 편집 일을 하면서 지내겠죠? 어릴 때 고향 이야기 등 제 주변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이야기가 들어가서 앞으로 이런 산문집을 또다시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마음을 건다 정홍수 저 | 창비
좋은 텍스트는 “언제든 무언가를 물어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거니와 “세월로부터 세상을 버텨나갈 말과 걸음”이 되어주기도 한다. 좋은 텍스트를 만나 멈춰 선 순간만큼은 가장 고양된 상태이면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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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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