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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그냥 대충 그리면서 온 세월이라고 말하는 화가

『칠성이』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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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아까 말한 길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혼자 플롯을 잡아 보고 하는 거야. 그림책은 그거 잡으면 끝이거든. 플롯이 제일 강력한 게 민담이야. 그러니까 그림책을 하는 사람은 민담을 필수로 공부해야 해.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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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작가는 고향 양구의 작은 폐교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풀이 무성한 운동장과 교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 화구들, 무심하게 걷어 올린 바지, 구겨 신은 신발까지. 작가와 작업 공간이 완벽하게 하나가 된 매력적인 ‘세계’를 만나고 왔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힘이 넘치는, 그날의 대화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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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니까 그 가치를 아는 거지


농사는 작게 텃밭만 하신다고 하셨죠?


텃밭만 하는 것도 일이 많잖아. 우리 마누라가 거의 다하지 뭐. 농사를 내가 가르치는 거지, 낫질을 아주 잘해.

 

와, 낫질 어렵던데요.


뱀도 잡아. 나는 시골뜨기고 거긴 도시내기니까. 혹시 뱀에 물릴까봐 내가 뱀을 보면 잡아야 된다고 가르쳐줬지. 뱀은 기니까 몽둥이 가지고 아무 데고 한번 쳐라. 그럼 못 움직이니까 그럴 때 막 때려서 잡으면 된다고. 한 번은 이 사람이 진짜 뱀을 만난 거야. 내가 말한 대로 눈 딱 감고 치니까 뱀이 못 움직이잖아. 그러니까 막 ‘으아아아악’ 얼마나 소리를 지르면서 뱀을 쳤던지. 옆집 아저씨가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달려 나온 거야. 그 아저씨가 깜짝 놀랐대. 그다음서부터는 용기가 생겨가지고 뱀만 보면 쫓아다니는 거야. 길가다 차 돌려서라도 뱀 잡으러 오는 아줌마야.

 

시골 생활의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작가도 많더라고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글쎄 뭐. 의식적으로 안 하게 되니까. 그냥 농이고 사니까. 아이디어 얻고 그런 건 없고. 마음 상태가 평온해지는 그걸 즐기는 거지. 그 상태가 되면 다른 상상력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그런데 시골서 하도 오래 사니까 이제 무감각해지는 것도 있어.

 

몇 년이나 되셨어요?


한 10여 년. 뭐랄까 오래살면 일상 생활이니까 무감각해지는 게 있어. 오히려 서울 가면 색다르잖아. 이제 그 분위기를 견디질 못해서 그렇지. 우리집 주위에 강을 따라 오래된 길이 있어. 차가 안 다녀. 옛길이 그대로 남았는데. 내가 그 길을 제일 좋아해. 아무도 없으니까 걷다가 길바닥에 누워서 자도 돼. 어떤 때는 소책자를 들고서 뭘 좀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운동삼아 걸으면서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때가 제일 집중이 돼. 마음 가다듬을 때 그 길을 나가지. 그럼 한방에 정리되는 거야. 오늘 아침에도 갔다 왔어. 정신 좀 맑게 해가지고 대화 잘 하려고. 사색을 따로 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 길을 이용해서 해. 그래서 그 길은 내 길이라고. 다른 데 이사를 가려도 못 가.

 

선생님만 아시는 길이네요?


중간 동네 한 집에 개 끌고 다니는 아저씨가 있는데, 요새는 그 아저씨가 개 운동 시키느라고 나와서 가끔가다 적막을 깨. 맨처음엔 좀 싫었는데. 그 아저씨도 해야지. 그래서 익숙해졌지. 서로 얘기는 안 하고 인사만 하지(웃음).

 

권정생 선생님 작품을 빼면 주로 옛이야기 작업을 하셨잖아요. 『칠성이』가 워낙 현실적인 작품이라… 스타일이 확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렇지. 이게 현실적 이미지가 강력하니까. 그전 책하고 차이가 나 보이지. 그런데 원래는 한 작가가 『칠성이』를 그리든 『훨훨 간다』를 그리든 『낮에 나온 반달』을 그리든 패턴이 좀 나와줘야 되는데, 글쎄 나는 그렇게는 안 돼대. 나 스스로도 반성을 하는데…

 

아. 이건 누구 작품이다! 하고 알 수 있게끔요?


응. 나는 이렇게 생각해. 원고마다 독립된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 충실해야 한다고. 이땐 이렇게 그리고 저땐 저렇게 그릴 수 있어야 된다고 보는데, 그게 너무 다르면 한 작가가 그린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일관성을 찾을 수 없잖아. 만약에 옛이야기 식의 그림으로 그린다면 <칠성이>의 긴장감은 내 재주로는 힘들겠더라고. 맨 처음에 칠성이는 선묘로만 하려고 했어. 그러다 보니까 칠성이의 눈빛이라던가 근육의 움직임이라던가 방향, 콘트라스트, 순간미 이런 것들이 안 나올 것 같더라고. 강력하게 직선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소의 미묘한 근육 형태를 어떻게 표현할 거야.

 

선만으로는 무게감을 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 매스(mass)를 그려야 하는 거야. 그러려면 명암도 들어가고 소의 털, 주름, 빛의 느낌이라든가 모래가 튀는 것. 주변 상황까지 담아야지. 이 분위기를 어떻게 내가 연출하고 색조를 끌고나갈 것이며, 뭐 이런 것들을 화가가 결정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 글 작가가 쓴 묘사를 되새김질 해가지고 이미지까지 끌어와서 살리는 게 내 몫인 거지.

 

저는 약간 누아르 영화 같은 느낌으로 봤어요. 특히 그림만 쫙 모아서 보니까 힘이 굉장한 거예요.


무게감이 상당히 있는 이미지들이잖아. 소가 갖는 육중한 매스가 있고. 소 싸움이라는 액션이 있고. 그 무게나 액션을 뭘로 감당할 거야. 선묘만으로는 안 되는 거야.

 

종이에 색을 한 번 칠하고 그 위에 그리신 거라고 들었어요.


엷게 먹하고 동양화 물감을 깔아 놓은 다음에 했지. 칠성이가 칡소라는 데 주안점을 뒀거든. 칡소가 거무튀튀하고 얼룩덜룩 하잖아. 나도 어릴 때 어렴풋이 본 기억은 나. 검은 색이 많이 가미된 칡소가 있고. 황색 계열에서 진갈색이 호랑이무늬처럼 된 칡소도 있어. 난 후자에 이미지를 둔 거지. 산에서 칡을 캐면 딱 이 색이야. 갈색에 진갈색. 마디마디 지면서 흙과 닿았던 면의 질감이 꼭 칡소처럼 되어 있어. 그래서 그 빛깔과 톤을 기본으로 깔고 거기서 농담을 조절하자, 했지. 하늘이라든가 그런 데는 밝게 놔두고. 종이에다 동양화 물감으로 칠한 거니까 지우개로 지우면 또 부드럽게 색이 날라가.

 

물감이 지워지는군요.


그렇지. 그리고 나머지 묘사는 드로잉으로 한 거지. 검은 연필로 덩어리를 짜 들어가면서. 모래 튀기는 건 백색 물감으로 찍기도 하고. 믹스트미디어라고 그러잖아. 혼합재료. 연필, 먹, 물감… 그런 거지. 물감을 많이 쓰면 텍스쳐에 층이 생겨. 그런데 연필로 하면 거의 평면에서 놀 수 있잖아.

 

저는 마지막 장면이 좋았어요.


마지막 장면이 생각이 안 나가지고. 축사에서 소 울 때까지 기다려도 안 울잖아. 내가 막 툭 치면서. ‘야 울어봐!’ 해도 음메 음메를 딴 데 보고 해. 그래서 사진도 못찍고. 자료 뒤져서 참조하고 그랬지. 이건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한 일이더라고. 내가 사진 찍는 것도 한계가 있고. 출판사에서도 자료를 많이 보내줬지만… 재연출을 해야 되잖아. 어렵더라고.

 

원래 색을 절제해서 쓰시는 것 같아요. 『칠성이』 말고도 다른 책들 보면 채도가 높지 않아요.


젊었을 땐 색을 아주 원색으로 썼어. 다 젊었을 때 얘기야. 그림책, 동화… 이쪽을 하면서 순해졌어 사람이. 그러다보니깐 중간톤 색조를 쓰게 되더라고. 근데 그게 출판사 탓도 있어. 처음 출판일 시작했을 때 원색을 막 써서 그려서 갖다 줬거든. 그랬더니 아 이게 아니라는 거야. 다 퇴짜맞았어. 원고가 가지고 있는 그 세계를 그려야 되는데, 나는 내 작업을 한 거지. 아무튼 다시 순하게 그렸더니 잘 그렸다는 거야(웃음). 내 성향에서는 간지러운 그림을 그리면 잘했다고 하더라고.

 

그림책 말고 개인 작업들도 계속 하시는 거죠?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세계를 그려야 되니까 하는 거지. 출판 쪽은 밥 먹고 살려고 시작은 했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내가 좋아서 해. 참 아름답고 좋잖아. 나이 먹으니까 표현을 다양하게도 해 보고 그러는 거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온 거야. 먹고 사는 문제, 애들 키우고… 그 과정 있잖아. 그걸 하면서 그림 그린다는 게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어? 삶의 과정에서는 되게 곤란을 받았지. 그게 뭐 해결되면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그림을 대충 그리면서 온 세월이란 말이야. 엄배덤배 살다 보면 이렇게 되는 거야(웃음). 젊어서는 가족을 위해서 안정된 돈벌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마는 다시 돌아가도 역시 이 일을 택했을 거야. 지나고 나니까 그 가치를 아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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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것


우리나라 그림책에서 거의 1세대시잖아요.


모르겠어. 그런 건 평론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고. 내가 1세대다, 2세대다 그런 건 말 못하는 거지. 분류를 어떻게 하느냐는 딴 사람들의 몫이야. 초기에 시작한 건 맞는데… 지금 젊은 작가들도 좋은 작품 만들어 내고 서로 같은 시대에 묶여진 동질감이 있잖아. 그들도 내 초기 그림을 봤고 젊은 사람들이 지금 하는 작품들을 나도 보니까. 크게 묶어서 한국 그림책의 시대를 논하는 것뿐이지, 세대 차이는 별 의미가 없는 거 같애.

 

어린이 문학이 부흥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전 같지 않아요. 체감하는 부분이 있으세요?


그럼. 확실하지. 시장에서부터도 출판사하고 우리하고는 연관이 될 수 밖에 없잖아. 맨 처음에 책에 그림 그렸을 때는 먹고살만 하네 그랬지. 먹고살만 하다는 건, 열심히 그리면 이 세상에 내 그림을 돈으로 바꿔주는 데가 있다는 거지. 그땐 아동문학 쪽도 마찬가지고, 출판시장 전체가 괜찮았던 거야. 열심히들 연구하고 공부했지. 서양 이론가들의 책도 보면서. 유럽의 민담도 너무 좋더라고. 그림책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리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나는 지금도 고민을 해. 작가가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건 두 세계가 만나는 거란 말이야. 문학의 세계와 비주얼의 세계. 세대 차이 없이 그런 고민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화가가 글 그림을 다 하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개입을 받게 되죠.


운명이 주어진 거야. 옛날에 권정생 선생님 살아 계실 때 한번 뵈었는데, 선생님이 ‘화가들이 자기 문학 세계를 펼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동화작가들이 쓴 글에다가 그림을 그린다는 게 좀… 권 선생님 입장에서는 좋지만, 그건 화가가 만든 세계가 아니지 않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자기 글에 자기가 그림 그린 게 자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그런데 이제는 정말 좋은 글을 만나면 남이 했든 내가 했든 그림책으로 만들면 좋겠어. 그림책이라는 한 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꼭 내가 글을 써야 되는 건 아니잖아. 상관없어. 좋은 글만 있으면. 어 비가 오는 거야? 나 차에 창문 닫고 올게.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럴 땐 아까 말한 길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혼자 플롯을 잡아 보고 하는 거야. 그림책은 그거 잡으면 끝이거든. 플롯이 제일 강력한 게 민담이야. 그러니까 그림책을 하는 사람은 민담을 필수로 공부해야 해. 구조적인 문제를. 근데 물어보는 본질에서 내가 계속 딴 얘기를 하네. 그래도 뭐 간추려 쓰면 내용거리가 될래나? (웃음)

 

민담의 어떤 면에 그렇게 끌리시는 걸까요? 단순히 플롯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세계를 어릴 때부터 내가 많이 들락날락 한 거야. 옛이야기의 핵심은 살아 움직이는 얘기라는 거야. 과거의 얘기가 아니거든. 원형을 간직했기 때문에 살아 남는 거지. 시대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란 말야. 민담의 세계를 현대로 옮기는 작업을 해 보고 싶어.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원형을 간직한 얘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설득력 있는 비주얼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했을 때 정말 가치가 있을 텐데.

 

큰 작업이네요.


판소리 열두마당처럼 굿거리 열두마당이 있어. 굿할 때 부르는 서사무가란 말이야.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부터 가족, 형제, 농업, 의료, 인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신화화되는 지점이 열두 마당 안에 짜임새 있게 다 들어가 있어. 서사무가는 판타지 세계야. 이승과 저승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림책에서만 가능한 세계. 난 그게 마음에 들어. 일반 문학에서는 리얼리티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자유롭지가 못해. 딱딱한 세상을 못 넘는다고. 그런데 서사무가를 그림책으로 한다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옮기는 건 뭐 일도 아니야. 이런 매력, 차원의 차이, 아동문학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들어. 초월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것. 그 세계를 해놓으면 내가 할 일은 어느 정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거 뭐 안 해도 까짓 거 아쉬울 거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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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이황선미 저 / 김용철 그림 | 사계절
생이 끊어지는 도축장과 싸움소라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단단하게 발 딛고 선 수소 칠성이. 그리고 그 수소의 옆에 선 황 영감의 진한 인간애는 삶을 바라보는 겹겹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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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현주

10년 동안 어린이책 편집자였다. 지금은 작가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영상 편집도 하고, 꽃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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