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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내밀한 미술사』의 저자 양정윤 네덜란드 황금시대 미술에 얽힌 비화를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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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안에 보물과 같은 천이 있어요. 만약에 세상에 천을 공개하게 되면 이 안에 있는 천의 수명은 짧아지겠죠. 그런데 과연 이 천을 안에 가둬두는 게 좋은 걸까요? 천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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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한울출판사에서 미술 분야 책을 출간한다. 제목은 『내밀한 미술사: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읽기』. 네덜란드 미술사라는 장르가 꽤나 생소한데다가 현재 그것을 다룬 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당히 눈길을 끈다. 게다가 그 미술사의 내밀한 부분까지 알려준다니 금상첨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술애호가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다분한 책이다. 곧 출간될 책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한울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강좌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웠다.

 

지난 8일, 홍대 입구에 위치한 ‘경의선 책거리 공간산책’에서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미술>강좌가 열렸다. 강연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렘브란트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네덜란드 교육진흥원 원장을 겸하고 있다는 양정윤 미술사가는 『내밀한 미술사』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오늘 소개시켜드릴 책, 『내밀한 미술사』는 세계일보에서 칼럼을 의뢰 받아 3년 전부터 한 편 씩 연재하던 것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원래는 조금 더 일찍 연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 어두웠던 터라 몇 달 후에 연재를 하게 됐어요. 책은 10월 달에 출판될 예정인데요. 한울에서는 첫 번째 칼럼이 나왔을 때 바로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칼럼을 쓰면서도 언젠가는 책으로 만들어지겠구나 생각을 하긴 했죠. 띄엄띄엄 쓴 것도 있긴 하지만요(웃음). 기분이 좋네요. 대중들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빈번히 있긴 하지만, 제 이야기만을 가지고 얘기하게 된 건 몇 달 안됐거든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오늘 여러분께서 듣고자 하는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요.”

 

본래 미술사를 공부했던 그녀지만 처음부터 네덜란드 미술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네덜란드 미술사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면모가 있었다.

 

 “일본에서 미술사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일본은 17세기 미술사에 관한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데, 특히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처럼 대표적인 미술관들의 순회 전시가 굉장히 많이 열렸어요. 그런데 한 전시회에서 당첨이 되면 네덜란드나 벨기에, 파리 그 세 곳의 미술관을 돌 수 있는 경품이 걸린 거예요. 제 동생이 거기에 당첨이 됐어요. 그때 같이 전시회를 갔죠.


스승이 네덜란드 미술사를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던 분이셨어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네덜란드 미술에 관심이 있긴 했는데 2000년, 처음 밀레니엄이 시작된 그 해에 정말 네덜란드에 가게 된 거에요. 그땐 인터넷도 없어서 어떤 작품을 보고 싶은지 열심히 도서관에 가서 찾았어요. 당시 제가 관심이 갔던 화가가 헤리트 다우였어요. 헤리트 다우라는 사람은 렘브란트가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처음 제자를 받았을 때 그 첫 번째 제자로 들어왔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화집 같은 것을 뒤지면서 이 사람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을 다 썼어요. 루브르의 몇 번 방을 가면 된다. 암스테르담 미술관의 어디로 가면 된다. 그런 식으로요.


그런데 막상 네덜란드에 가니까 제가 가는 미술관마다 이 사람 작품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이상하다. 나는 이 사람 작품을 보고서 졸업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작품을 못 보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터벅터벅 걸었어요.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체류했던 마지막 날,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호이스라는 유명한 왕립 미술관을 갔어요. 그런데 세상에 거기에 제가 찾던 작품이 다 있는 거예요. 400년 만에 처음으로 이 사람의 첫 전시가 열렸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다른 미술관에 이 사람 작품이 없었던 거고요. 그래서 그때 당첨된 그룹끼리 버스 하나를 빌려서 다녔는데, 저랑 제 동생만 거기서 나와서 하루 종일 이 미술관에 있었어요. 그렇게 네덜란드 미술사를 하게 되었죠.”

 

뒤이어 양정윤 미술사가는 오늘 강연에서는 17세기만을 다루려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작품의 명성은 당대 사람들의 평가를 뛰어넘어서 화가가 죽은 이후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 터.  그녀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3대 거장인 렘브란트, 베르메르, 프란스 할스가 왜 오늘날에 와서 3대 거장이 되었는지 그 답을 본인의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장 첫 번째로 다룬 작품은 렘브란트의 <야경>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야경>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정체성, 자부심, 과감함, 시민사회의 미덕 같은 것이 전부 응축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걸작을 완성했음에도 그 이후 렘브란트는 인생의 내리막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리고 나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렘브란트의 거만함이 극치에 달했거든요. 렘브란트가 점점 예술적 자아에 눈을 뜨면서 그림을 의뢰한 사람들의 말을 다 무시하기 시작한 거예요.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위해서. 저희처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거금을 들여 그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너무 화가 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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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렘브란트의 <야경>과 관련해 암스테르담 박물관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올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서 <야경>과 관련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이곳이 10년이 넘도록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4년 전 쯤 재개관을 했는데 천만 명 입장객을 기념해 이벤트를 연 거예요. 천만 번째 입장객에게 렘브란트의 <야경> 앞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는 권한을 준거죠. 입장객이 하룻밤을 잘 수 있게 <야경> 앞에 침대를 두고, 그에게 미슐랭 3스타 음식과 샴페인을 제공했어요. 당첨되신 분은 시골에 있는 어느 학교의 선생님인데 미술관에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가 천만번 째 방문객이 되었죠. 이게 6월 달에 있었던 일이에요. 굉장히 특이한 사건이었죠.”

 

그러나 널리 알려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의 <야경>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야경>은 열여섯 명 정도의 시민 경비단 멤버들이 함께 돈을 모아 단체 초상화를 의뢰해서 그리게 된 작품이에요. 여기 앞에 보면 대장님도 계시고, 부대장님도 계시죠. 여기 눈 아래까지만 나온 사람들도 시민 경비단의 한 멤버였어요. 시민 경비단은 ‘우리가 사는 고장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향토예비군 같은 거였어요. 또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죠. 그러니까 시민 경비단은 남자들이 모여서 대포도 한잔 하고, 총기 같은 것도 연습해보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얘기도 하는 그런 단체였어요. 얼마 전에 나왔던 논문에 의하면 일단 그림 속 인물들의 이름은 다 알고요. 그런데 한 가지, 그림 속 인물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가 밝혀지지 않았어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장면인지. 다른 단체 초상화 같은 경우엔 실내에서 연회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건 분명히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그래서 이전엔 사람들이 무대인가. 연극 같은 것을 하는 것인가 추측했어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그 추측이 달라졌어요. 옛날엔 이런 단체들이 퍼레이드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 중에서 그냥 행진이 아니라 알레고리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다 멈추거나 과장된 포즈를 취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퍼포먼스 비슷한 것을 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하는 거죠.”

 

그렇다면 <야경>이라는 걸작을 그려낸 렘브란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렘브란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성격이 좋았을 것 같지는 않고, 결단이 빨랐던 거 같아요. 좀 마이웨이 스타일이었고요. 남들이 가야한다는 코스 있잖아요. 유명한 화가가 되려면 이탈리아를 가야 한다고 할 때도 이 사람은 그 코스를 가지 않아요. 렘브란트는 이미 20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어요. 자기 고향 친구랑 일찌감치 미술 수업을 받아요. 수업을 받다가 암스테르담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죠. 그래서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던 피터 라스트만이 자신의 아틀리에를 오픈했을 때 렘브란트는 그곳으로 갔어요. 가서 제자로 지내면서 한 1년 반 안에 과정을 끝내요.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와서 친구랑 화방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렘브란트는 그것도 곧 접었어요. 돈이 모이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당시에 돈과 지식과 정보와 새로운 시스템들이 짧은 시간 안에 모이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루벤스 같은 화가가 되기 위해선 이탈리아로 가야한다고 자극을 했지만 렘브란트는 끝까지 안 갔어요. 그까짓 이탈리아의 유명한 페인팅들은 판화로도 다 볼 수 있고, 나는 그런 거 안가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했죠. 대신 암스테르담에서 새롭게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치고자 했어요.”

 

렘브란트의 자신감은 그가 사용한 서명에서도 드러난다. 렘브란트의 본명은 렘브란트 하멜스 존 판 레인. 그는 왜 서명에 성이 아닌 이름을 사용했을까.

 

“렘브란트는 퍼스트 네임이에요. 여러분들 퍼스트 네임으로 불린 사람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아요. 교황들이 그렇게 불려요. 그리고 라파엘로가 자기 자신을 그렇게 불렀고요. 그리고 나폴레옹 정도. 이 사람의 본명은 렘브란트 하멜스 존 판 레인이에요. 패밀리 네임이 레인에요. 그런데 본인이 렘브란트라는 이름으로 사인을 했어요. 자기 브랜드화를 너무 잘한 거예요. 다른 사람 같은 경우는 보통 RVR처럼 이니셜으로 썼을텐데, 이 사람은 초기부터 렘브란트라고 서명했어요. 아마도 라파엘로가 자신을 퍼스트 네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고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에는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고 했다. 그리고 렘브란트의 그림에도 그런 부분이 분명 존재했다. 그의 자신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야경> 을 보면 대장이 손을 내놓고 있죠? 옆에서 보면 이 손 길이가 그대로 나타나지만 정면에서 볼 때는 이렇게 짧아져야 해요. 쇼트닝이라고 하죠. 당시엔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적용하기 힘들었던 기법이었어요. 또 렘브란트는 이미 1640년대 이후에 촘촘히 세밀하게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확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했거든요. 한 두 번의 붓질만 가지고 그런 느낌을 나게 한 거죠. 렘브란트는 빛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삼손과 데릴라> 같은 경우 그림이 장막 안쪽의 어둠의 세계와 장막 바깥쪽의 빛의 세계로 나뉘어요. 바깥쪽은 마치 적군을 어두움에 처하게 하고서 광명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죠. 데릴라의 심리나 그림 내의 스토리를 색 대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렘브란트의 예술적 감각이 타고난 재능 덕이라고 얘기하긴 이르다. 그는 상당한 노력파였다.

 

“이건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이에요. 렘브란트는 정물을 그린다거나 풍경을 그리기도 했지만 역사화로 유명해요. 초기에 렘브란트는 초상화로 인기를 얻었어요. 그렇지만 뛰어난 역사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죠. 여기 있는 이 자화상들도 실은 자화상 그 자체라기보다는 역사화 속 인물들의 표정을 그리기 위한 연습의 일환이었어요. 인물의 표정이나 제스처를 연구하기 위해 제자들을 성경 속 인물로 변장시키고 그 모습을 그리는 것도 자주 했죠.”

 

세계대전 당시에도 렘브란트의 그림은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20세기 초반 독일 연구자들이 렘브란트를 연구하면서 렘브란트의 화풍이 찬사를 받았다.

 

“세계대전 당시에도 렘브란트의 페인팅은 중요했어요. 20세기 초반에는 독일연구자들이 렘브란트를 많이 연구했어요. 게르만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렘브란트는 그 전에는 인기가 없었어요. 19세기 말부터 민족주의가 부흥을 하면서 갑자기 투박한 렘브란트의 화풍이 찬사를 받게 됐죠. 그런데 그 이후에 네덜란드 학자들도 그 가치를 조명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후 렘브란트의 <야경>은 아주 중요한 그림이 되었죠. 그런데 세계대전이 일어났어요. 미술관에 그림을 그대로 두면 폭격을 맞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그림을 대피시키려고 했죠.”
 
렘브란트의 <야경>은 전쟁 이외에도 두 번이나 테러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림이었다.

 

“물론 지금은 수복이 되었지만, 전에 염산으로 테러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들을 보면 이 그림이 싫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너무 좋아서 미쳐서 그러는 거예요. 작품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너무 감정적으로 되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작품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거예요.”

 

뒤이어 <얀 식스의 초상>이라는 그림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얀 식스 11대가 얀 식스 1대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채 살고 있다고 했다. 렘브란트의 그림, 그것도 자신과 매우 닮은 초상화를 매번 마주하며 사는 건 무슨 느낌일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작품이 전 세계의 초상화 중에 가장 멋있는 초상화인 것 같아요. 얀 식스는 렘브란트보다는 훨씬 어린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암스테르담의 시장이 되기도 해요. 렘브란트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도 이 사람이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그림 속 얀 식스가 1대에요. 아직까지 얀 식스 11대가 살고 있어요. 이 집안에 모든 남자는 얀 식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계승해요. 11대 얀 식스는 저보다 조금 젊은데 이 사람은 아티스트 관련 일을 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렘브란트가 그린 자기 1대 할아버지 그림을 아직까지 집에 걸고 사는 사람이에요. 너무 신기하죠. 저는 이 사람이 정말 궁금했어요. 이 사람 아버지는 상당히 무뚝뚝하고 절대 그림 안 빌려주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한 인터뷰도 책에 실었어요. 같은 이름의 얀 식스가 사는 곳은 어떨까라는 내용인데. 이 사람이 되게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상자 안에 보물과 같은 천이 있어요. 만약에 세상에 천을 공개하게 되면 이 안에 있는 천의 수명은 짧아지겠죠. 그런데 과연 이 천을 안에 가둬두는 게 좋은 걸까요? 천을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 얘기가 참 인상 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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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나영서(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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