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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 없이 쏟아지는 제이 지의 스토리

제이 지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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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메시지를 부각시킨 <4:44>는 제이 지의 작품 세계와 2017년의 힙합 신에 무거운 의미로 남을 것이다.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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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낯선 음반엔 「Izzo」의 호바(H.O.V.A.)도, 「Empire state of mind」의 상업 가수도 없다. 한 손엔 마그나카르타, 다른 한 손엔 성배를 들고 요란한 건배 소리를 내는 나르시시스트도 없다. 36분에 10트랙, 짧은 길이의 음반엔 귀를 잡아끄는 강력한 훅도 없고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킬링 트랙도 없다. 비교적 얌전하고 단출한 음반의 첫인상은 그동안의 제이 지가 선보였던 것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4:44>의 이질적인 성질들이 래퍼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풍성한 프로덕션과 귀를 자극하는 랩 스킬이 아닌, 가감 없이 쏟아지는 화자의 스토리다. 그는 화려한 경력의 래퍼이며 스트리밍 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자 시대의 스타, 비욘세의 남편이다. 어머니는 레즈비언이었으며 아버지는 금전적 형편 때문에 일찍이 가정을 떠났다. 그는 친형의 어깨에 총알을 박은 적 있으며, 동료 프로듀서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 이처럼, 제이 지라는 인물과 그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 서사 그리고 근황까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음반의 정확한 해석과 재미를 획득할 수 있다. 개인사로 강점을 구축하는 것은 미디어의 노출이 심했던 그였기에 가능했던 전략으로 보인다.

 

한층 여유로워진 래핑은 솔직한 자기 고백과 성찰 그리고 주변 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실어 나른다. 자잘한 디테일들로 큰 주제를 도출하는 가사와 사이사이에 끼어 넣은 언어유희가 큰 재미를 선사한다. 그의 본질에 위치하는, 인간 숀 카터(Shawn Carter)가 슈퍼스타 제이 지에게 힐난을 퍼붓는 첫 트랙 「Kill Jay-Z」와 뿌리를 망각하고 행동하는 잎사귀들을 비난하는 「The Story of O.J.」의 설정은 음반을 특별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외도에 대한 부끄러운 고해성사를 치르는 「4:44」는 음반에서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다. 부인 비욘세가 내민 고발장, <Lemonade>의 답가처럼 다가오는 곡에선 최고의 랩 스타가 지금껏 하늘까지 추켜올리던 자신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단독으로 콘솔을 잡은 노 아이디(No I.D.)는 자기고백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수의 고전들을 빌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제이 지가 호출한(구입한) 고전들의 옛 향취가 감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니나 시몬(Nina Simon)이 「The Story of O.J」에서 메신저로 등장하고, 스티비 원더의 음성이 「Smile」의 부드러움을 자아내며, 시스터 낸시(Sister Nancy)가 「Bam」을 흥겹게 한다. 이러하듯 음반의 프로덕션은 재즈와 소울의 고전들이 풍기는 특유의 고즈넉함에 대한 의존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다. 최적의 방식이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이 게으른 집중은 높은 효율을 보인다.

 

개성에 경도된 랩뮤직의 현재 흐름 위에 랩 베테랑이 얹어 놓은 <4:44>는 굉장히 특별해 보인다. 단조로운 음반의 구성과 선형적인 진행은 트렌드와 조금은 엇나가있다. 발음을 구겨가며 뱉는 랩, 일명 멈블 랩(Mumble rap)이 유행하고 있는 현재, 특유의 전달력 강한 하이 톤의 래핑은 투박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색다른 돌파법으로 대중과 평단의 시선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스타일의 범람에 희생당한 가사와 메시지를 부각시킨 <4:44>는, 시류가 어떻던, 제이 지의 작품 세계와 2017년의 힙합 신에 무거운 의미로 남을 것이다.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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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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