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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싱글 레이디스여, 버텨주오!

『싱글 레이디스』
인간에게 독보권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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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혹은 결혼과 출산을 배제한 삶에 대한 나의 무지는 통한스럽다.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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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말 뒤에는 으레 ‘어차피 후회할 거면 결혼하는 게 낫다’는 말이 덧붙여진다. 여기엔 함정이 있다. 결혼은 누구의 좋음이고 누구의 후회인가, 주체가 생략됐다. 결혼 생활로 덕을 보는 사람이 지어내고 결혼 제도의 유지를 바라는 이들을 중심으로 확산됐으리라 짐작한다. 저 말씀이 효력을 잃어간다. 결혼해서 후회한 사람들, 아마도 여성들이 작성한 후회의 목록이 널리 공유되며 생긴 변화 같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결혼을 이렇게 정리했다. “현대 여성은 결혼하거나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이거나 결혼하지 않아서 고통 받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여성의 입장을 반영한 정확한 현실 진단이다. 후회할 게 빤하면 안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상식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내게 가끔 고민 상담이 들어온다. 애인이 있고 그 사람이 좋은데, 결혼하고 싶은데 또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며 분열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은 99퍼센트 여성이다. 나는 독립적인 삶을 맛보기도 전인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그러니까 조혼이다. 남의 결혼에 대해 합리적인 조언을 건네기엔 구세대이고, 주관적이고, 회한이 너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현대 여성’의 무용담을 간추려 들려준다. 결혼을 이렇게 대응하기도 하더라며.


그들은 결혼의 ‘예고된 인재’를 막기 위해 채비를 단단히 한다. A는 인턴십형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등 애인의 총체적인 살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6개월간 자취하게 한 후 결혼했다. 인턴십처럼 예비 심사 기간을 두고 판단한 것. B는 단체협약형이다. 일상 업무 분담은 물론 명절 및 양가 부모 생신 때의 역할과 책임까지 치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조인식 후 결혼했다. C는 일상 돌파형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을 좀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남편이 깜짝 놀라서 “나 그런 거 못 해. 한 번도 안 해봤어”라고 말하길래 “이때까지 내가 했던 음식들 나도 결혼 전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다 배워서 하는 거야. 당신도 배워서 만들어줘”라고 요구했다고.


지혜가 샘물처럼 넘치고 용기가 화산처럼 솟구치는 현대 여성들의 처신에 나는 매번 탄복한다. 여성을 가두는 결혼의 울타리 앞에서 주저앉아 눈물짓거나 낙담하기보다 그것을 흔들어대고 뛰어넘기를 시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활달하고 도도한지. 자신에게 맞춤형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수정 보완해서 활용한다면 결혼이 구속복이 아닌 양날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사실 ‘조혼자’인 내가 부러움에 몸이 기우는 쪽은 따로 있다. 결혼을 통째로 거부한 위풍당당 싱글레이디스다. 난 아이 키울 때 육아 동지들과 어울렸고, 너도나도 지지고 볶고 사는 조선 여자의 일생을 흉내 내고 반복했을 따름이다. 아이들이 크고 일을 하고부터는 싱글 여성들과 접촉하는 기회와 빈도가 늘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싱글 현대 여성’의 일상은 같은 시대 다른 세계였다.


결혼은 여성의 무덤이 아니라 ‘여성의 일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찍이 간파한 혜안의 소유자들은 가족 아닌 일에 헌신했다. 일을 통한 성취, 성취에 따른 재력, 그 재력에 따른 쾌락을 누렸다. 가볍게 짐 싸서 마실 가듯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맛있는 요리를 해먹이고, 늦도록 술을 마셔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엄마 언제 오냐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40대 여성의 핸드폰은 정물처럼 고요했다.


그들은 자기 몸에 대해서도 “신체적 자주권”(338쪽)을 행사했다. 수많은 복락 중에서도 싱글 여성의 독보권(獨步權)은 정말이지 훔치고 싶었다. 난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지 왜, 언제부터 좋아하지 않았는지 몰랐는데 그들을 보며 알았다. 감옥에서 면회, 운동, 목욕 등을 위해 이동할 때 반드시 교도관과 동행해야 하는 재소자처럼, 나도 양육 기간 내내 독보권이 없었다. 그런 내게 여행이란 자식과의 동행을 뜻했고 그건 현실의 탈출이 아닌 일상의 연장이었다. 아이 뒤꽁무니 따라다니면서 본 바다는 낭만의 공간이 아니라 위험한 장소일 뿐이다. 여행이 들뜨고 설레긴 하지만 홀가분 하진 않으니 차라리 집에서 책이나 보는 게 속편한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 혹은 결혼과 출산을 배제한 삶에 대한 나의 무지는 통한스럽다.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부족하고 편파적이었다. 그래서 『싱글 레이디스』가 가뭄의 단비처럼 다가왔다. “아무리 절실하게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해도 그들은 끔찍한 결혼이 주는 잠재적 불행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자신만의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408쪽)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100여 명의 싱글 여성 인터뷰와 여성 학자들 이론을 토대로 싱글 여성의 삶을 통합적으로 소개한다.

 

싱글 여성의 역사부터 도시, 자립, 우정, 일, 돈, 섹스, 가난, 사랑과 결혼, 아이 등 세부 항목을 짚어가며 육성과 이론을 근거로 싱글 생활의 대소사를 풀어낸다.


“혼자서 생활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 당신이 직접 해낸 일들이 당신을 지탱해 주기에 나약한 아내가 될 필요가 없다.”(372쪽) 이런 대목은 자유로운 여행과 섹스가 가능한 생활로 정도로 축소되곤 하는 싱글 여성의 진짜 삶과 힘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싱글로 지내면서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어요. 우리는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줄 수 없는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394쪽) 인간에게 독보권이 주어져야 한다면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내가 어디에 맞는 사람인지 (...)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하나씩 직접 생각하고 부딪치면서 알아가”(363쪽)는 게 중요하니까. 자기 인식에 이르고, 자기 배려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말이다.


결혼이 존재의 표지이자 기준이던 때는 저물고 있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자립적인 1인 여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아니라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정도로 여성이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고 버티는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순수한 사랑의 판타지에 눈이 멀어 냉큼 결혼해버린 조혼자인 나는 만국의 싱글 레이디스에게 염치없이 부탁하고 싶어진다. 내 몫까지 버텨주오! 만약 결혼한다면 말해주오. “내가 결국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행복하게 싱글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410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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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은유(작가)

글 쓰는 사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 『폭력과 존엄 사이』 등의 책을 썼다.

싱글 레이디스

<레베카 트레이스터> 저/노지양> 역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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