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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나도 모르는 사춘기 중딩을 위해

『틀려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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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모두가 바보스러운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훨씬 편해진다. 모두가 마음 안에 바보스러움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면 나도 편해지고, 내가 타인을 볼 때에도 관대해 질 수 있다. 그런 공유의 마음이 친절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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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unsplash

 

전문적인 대화를 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아들이 중학생이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서 아빠랑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전에는 시시한 농담도 즐겼는데, 요새는 자기 생각이 많아져 조금 긴 대화를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본 얘기라며 조금 의아한 뉴스를 말하길래 팩트 체크 삼아 추가로 물어보며 소스를 물어보니 느닷없이 “난 바보니까 다시는 그런 얘기 하지 않을게요”라고 말을 해버렸다. 나는 울컥해서 “그러면 아빠는 너랑 대화도 하지 못하니? 그리고 그런 식으로 바로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며 자폭적 결론을 내리는 버릇 나빠”라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아이는 나름 흥미로운 뉴스라고 얘기 한 것이지만 나는 신빙성이 떨어져 보여서 물었고, 인터넷 뉴스의 정보의 신뢰도를 가리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받아들인 것이다. 기분 좋게 외식을 하러 가는 차 안은 어색한 공기만 흐르게 되었다.

 

솔직히 나름 알려진 정신과의사를 아버지로 두고 사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닐 거 같기는 하다. 어릴 때야 가끔 아빠를 통해 듣는 얘기들이 재미있고, 어떨 때에는 자랑스럽기도 했겠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나니 부담스러운 점이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 공부도 주변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자존감은 더 떨어지고, 위축되어 있을 만하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나름 재미있다고 본 이야기에 대해서 팩트 체크를 하니 저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를 두고 전문적인 대화를 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나도 아들과 전문가로 각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정체성 확립을 위한 세칭 ‘2차 분리개별화 과정’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근본적으로 부정부터 하고 봐야 할 부모의 교훈을 담은 메시지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 고민이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이 시기에 생각하고 느껴야 할 것들을 넌지시 제시할 수 있을까?

 

그는 먼저 “바보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이럴 때 책이 도움이 된다. 직접 말로 하기 보다 부모가 아닌 제3자가 책으로 객관적으로 말을 해주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딱 좋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모리 츠요시의 『틀려도 좋지 않은가』이다. 저자 모리 츠요시는 1928년생의 수학자로 2010년 82세로 사망을 했다. 그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교토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노학자로 민간 수학교육 운동에도 참여하고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1988년, 즉 60세가 되던 해에 중학생 정도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듯 풀어 쓴 글들을 책으로 낸 것이다.

 

자신의 중학생 시절의 일화도 적절히 제시하면서 인생과 공부, 앞으로의 삶, 대인관계 등에 대한 노학자의 경험과 통찰을 전해준다. 그는 먼저 “바보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모두가 똑똑해지고 싶지만 바보 같은 구석이야말로 한 사람의 본질이나 근원과 맞닿아있다. 바보가 되는 걸 부끄러워하면 자꾸 숨기려 하고 억지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 모두가 바보스러운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훨씬 편해진다. 모두가 마음 안에 바보스러움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면 나도 편해지고, 내가 타인을 볼 때에도 관대해 질 수 있다. 그런 공유의 마음이 친절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내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완벽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기애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10대 시절에 자존감이 낮아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완벽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한 자기애의 상처들이다. 이때 차라리 ‘바보도 괜찮아’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이런 완벽의 강박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10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보가 되어라”는 역설적이면서 쉬운 말로 풀어낸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단계다. 10대에는 유독 원칙을 따르지 않은 사람에 예민하고 싫다. 학급의 방침,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불이익을 받는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이때 저자는 학급의 대다수 학생이 어느 한 방향으로 갈 때 등을 돌린 사람 한 명이 중요하고, 절대 ‘괘씸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싶은 10대에게는 더욱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끼리’만 집착하면 우리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잔인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결코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친절이어야 한다. 이런 태도는 10대부터 갖추려 노력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더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인식한다고 해도 그를 온전히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친구가 생기면 너무 좋아서 그를 완전히 알고 느끼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소망일뿐 실현될 수 없다. 다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마음의 교류를 단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걸 저자는 ‘친절’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일사분란하기 보다 서로의 개성과 다름이 인정되는 곳이 중요하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점, 다름의 인정과 공감의 이유, 완벽한 이해는 원래 불가능하다는 것을 참으로 쉽게 설명한다. 이런 차이를 모른체 남을 욕하기 바쁘고, 편가르기만 하는 어른들도 많은데 말이다.

 

선생님과 부모와 같은 어른들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어른과 관계에서 ‘자립’은 중요한 과제다. 자립을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라 믿는 게 아니다. 진정한 자립은 혼자 처리할지, 어른이나 타인에게 의지해서 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일이라고 한 발 더 들어가서 말한다. 청소년기에는 어쩔 수 없이 부모나 선생과 같은 이미 정해져 있는 어른들의 기준을 부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나만의 독자적 기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자립을 모든 걸 혼자 결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걸 따르다가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기 쉽다. 또 너무 힘들어지는 일을 자초하기도 한다. 모리 츠요시는 어른을 완전히 불신하는 것도, 모든 면을 신뢰하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고 조언한다. 관계를 맺을 때에는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양쪽 모두가 필요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그 안에서 진정한 자립의 문이 열릴 수 있다.

 

결국 인생은 자로 좍 한 줄로 그어서 그대로 가면 되는 계획한대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만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 줄 한 줄 전문가인 내 입장에서 보면 꽤 어려운 심리 메커니즘을 모리 츠요시는 아주 이해하기 쉽게 구어체로 전달하고 있다. 책은 그밖에 공부를 하는 방법, 틀려도 좋은 이유, 빠르게 푸는 것보다 천천히 미련하게 문제를 풀어보는 것의 중요성과 같은 10대 나이에 고민일 수 밖에 없는 학습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을 섞어서 들려준다.

 

이렇게 적절하고 좋은 책을 아이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던져 주었다. 몇 주가 지나 아이의 책상위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집어 들고 나왔는데, 분위기가 감명 깊게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요 며칠 존 그리샴의 새 소설 『불량 변호사』에 흠뻑 빠져있는 중이다. 이렇게 쉽게 썼고, 내가 해주고 싶은 말들만 딱딱 들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나 보다. 좌절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지그재그,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는 모리 츠요시의 조언이 아이보다 내게 더 강한 울림으로 전해지는 아침이었다.


 


 

 

틀려도 좋지 않은가 모리 츠요시(森毅) 저 / 박재현 역 | 샘터
『일본의 괴짜 수학자, 이 시대 마지막 명물 교수로 통했던 모리 츠요시 교수가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엉뚱하고도 애정 어린 충고를 담고 있다. 인간, 바보라도 상관없다. 둔한 것도 재능이다. 잘못을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에게 폐를 끼치면서 지그재그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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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틀려도 좋지 않은가

<모리 츠요시(森毅)> 저/<박재현> 역9,000원(10% + 5%)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가 묻다 “어떻게 하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계획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모리 츠요시가 답하다 “쓸데없는 일에 더 많이 한눈팔고 불편한 길로 돌아서 가면 삶이 한층 다채로워집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인생 같은 건 있을 리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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