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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번아웃 극복에 대하여

뭔가를 할 에너지가 없다면 억지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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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나아지면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즐겨찾기를 세 바퀴쯤 뱅뱅 돌기도 한다. 슬슬 밖에 나갈 마음이 들면 산책을 한다. 내 마음에 1일 1팩을 하는 것이다. (2017.07.25)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_6회 그림.jpg

 

집이 곧 일터인 재택근무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퇴근을 잊는 것이다. 한 공간에서 자고 일어나, 일하다 뻗어서,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 처음엔 뭐가 문제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출퇴근이 필요 없으니 편하다는 생각이 먼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밀려든다. 나갈 일도 없는데 이는 닦아서 뭐하고 눈썹은 다듬어서 뭐하겠냐며 자신을 방치하기 시작한다. 번아웃의 전조다.

 

슬슬 퇴근 의식을 거행할 때다. 퇴근이란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일터를 떠나는 것이다. 가까운 스타벅스든 어디든 가야 한다. 하지만 일을 챙겨갖고 나가는 건 외근이지 퇴근이 아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며 켜지도 않을 노트북을 꾸역꾸역 가방에 집어넣는 건 절대 잘하는 짓이 아니다. 퇴근하는 것에, 노는 것에 대체 무슨 죄책감이 있길래?

 

세상에는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지만, 내가 바로 그거요, 소리를 하는 건 좀 민망하고 쑥스럽다. 번아웃(burnout)은 소진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 한 몸 다 바쳐 하얗게 불태웠다는 얘기일 텐데... 에이, 난 뭐 그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한 건 아니잖냐며 한걸음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온몸이 부서질 듯 삭신이 아려오는 것도 아니고, 숟가락 들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뭘. 적어도 나보단 훨씬 더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표현 아닐까?

 

하지만 실은 이미 번아웃에 성큼 가까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내가 즐겁지 않다는데 누가 뭐랄 거야! 각자의 용량은 다 다르고,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다. 당장 그것부터 빼야 그다음 일도 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마음과 몸이 모두 축났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추스를 시간이다.

 

이럴 때 요런조런 취미생활을 해보는 게 좋다지만 그 역시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야, 요거 재밌네 하며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빌 열정, 그리고 죽을 쑤더라도 기죽지 않고 아하하하 웃을 수 있는 굳은 멘탈이 필요하다. 춤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운동이든 즐거워야 취미가 된다.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그 후의 문제다.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게 무척 어렵다. 어릴 적부터 잘해야 한다고, 1등 해야 한다고 귓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부모님 친구분 댁의 착하고(그렇다고 한다) 똑똑한(그렇다고 한다) 경쟁자와 비교당했다. 그렇게 공부했고 그렇게 일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우선이니까.

 

하지만 취미를 갖는다는 건 과정을 즐긴다는 것이다. 과정을 겪으며 배우고, 과정을 통해 즐긴다. 요가 센터에서 내가 제일 뚱뚱한 것 같고 내가 제일 뻣뻣한 것 같아서 쪽팔린다고? 누구를 위해서 요가를 하는데요?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지만 써먹을 일 없을 것 같아 헛짓하는 것 같다고? 누구를 위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데요? 지겹다, 그놈의 누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누구의 시선과 평가에 마음이 괴로워진다. 재밌자고 시작한 취미로 인해 상처받는다.

 

나는 한때 땅고를 추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신기할 정도로 엄청나게 집중했다. 한 번의 춤에 영혼을 아낌없이 실었다. 영원히 춤을 추고 싶었다. 그런데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서 집중력이 훅훅 떨어졌다. 춤을 추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배 나와 보이면 안 되는데, 등 굽어 보이면 안 되는데... 방금 스텝이 꼬인 걸 다들 눈치 챘을까? 눈치 챘겠지? 아 쪽팔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춤을 추는 동안 마음을 주어야 할 사람은 파트너 한 명뿐인데 실제론 그를 쏙 뺀 채 다른 모든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이다. 열정은 짜게 식었다. 취미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아프게 배웠다.

 

번아웃 이야기로 돌아가자. 뭔가를 할 에너지가 없다면 억지로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 멍 때리며 노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모두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며 달리는 사이에서 혼자 뺀뺀 놀자니 왠지 송구하다.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것에도 정체불명의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창작자는 더 못 놀겠다, 소리가 나올 때까지 뺀뺀 놀 필요가 있다. 속에 고여 있는 것을 열심히 퍼다 썼으니 잠시 쉬면서 빈 곳에 뭔가 다시 채워지길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라고 끝없이 나와줄 리 없지. 속이 비니 마음이 점점 건조해져 퍼석퍼석해진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뭐였는지,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이 뭐였는지 서서히 잊어버린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바닥에 드러누워 뒹굴거린다. 조금 나아지면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즐겨찾기를 세 바퀴쯤 뱅뱅 돌기도 한다. 슬슬 밖에 나갈 마음이 들면 산책을 한다. 내 마음에 1일 1팩을 하는 것이다. 게을러빠져 보이겠지만 창작자라는 간지러운 타이틀이 요럴 때 은근히 방패가 되어준다.

 

창작자가 아니라면? 무슨 상관입니까. 뺀뺀 노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놀아도 놀아도 더 놀고 싶다. 청소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좀 떨어져 있다 한들, 출처 불명의(사실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만) 꼬불거리는 짧은 털이 좀 굴러다닌다 한들 뭐 어쩌라고. 씻기 싫으면 씻지 않는다. 냄새 좀 난다고 죽지 않는다. 음식은 시켜 먹으면 되고 치우는 건 나중으로 미룬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가 쌓이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쓰레기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다 보면 어느 순간 때가 온다. 자, 슬슬 인간의 형상을 갖춰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때 응차 하고 엉덩이를 일으켜 세워 몸을 씻든 집을 치우든 하면 된다. 아직 일어나기 싫다면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니 다시 편히 누워도 된다.

 

우리는 더 놀아야 한다.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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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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