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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아우어바흐, 모자람은 더더욱 없는 근사한 곡

댄 아우어바흐 〈Waiting On A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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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만날 수 없는 레트로 마스터피스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 이 능력 좋은 블루스맨의 손끝에서 다시금 이뤄졌다.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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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아우어바흐가 좋은 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앨범을 여는 포크 컨트리 트랙 「Waiting on a song」의 시작과 함께 나긋하게 찰랑이는 아티스트의 선율은 작품의 전면에 나서 여유롭게 소구력을 일으킨다. 그 소구력은 그리고, 어렵지 않게 러닝 타임 전반에 퍼져나간다. 편곡에 힘이 덜 실린 곡들부터 볼까. 규모가 간편한 트랙들에서 댄 아우어바흐의 작곡 역량과 결과물의 가치가 더욱 잘 드러난다. 인트로의 기타 리프와 보컬 파트에만 주된 멜로디를 심어놓은 「Never in my wildest dreams」의 전반부, 셔플 리듬 외엔 이렇다 할 장치가 보이지 않는 「Livin’ in sin」의 버스, 고전에 입각해 단출하게 사운드를 구성해놓은 「Waiting on a song」의 전반을 보자. 과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아티스트 특유의 멜랑콜리한 선율들이 러닝 타임을 조심스레 주도해 나간다. 이러한 경향은 사운드 섹션을 큼지막하게 가져가는 「Shine on me」, 「Malibu man」과 같은 트랙들에서도 유효하게 이어진다.

 

<Waiting On A Song>에 수록된 곡 전반이 상당히 잘 들린다. 그런 점에 있어 음반은 댄 아우어바흐의 최근 작품들과는 다소 다른 맥락에 서있는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블랙 키스의 프론트맨으로서 데인저 마우스의 프로듀싱과 함께 주조했던 <Turn Blue>에서의 네오 사이키델리아나, 새로운 밴드 디 아크스로 새긴 <Yours, Dreamily,>에서의 빈티지한 사이키델릭 록, 첫 솔로 앨범 <Keep It Hid>에서의 뿌연 로 파이의 블루스처럼 소리를 어지러이 흩뜨려놓지 않는다. 예와 닮은 몽롱한 질감이 작품 곳곳에 껴있기는 하다만, 전작들에서와는 달리 아티스트는 이 장치가 작품을 한 가득 뒤덮게끔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대신, 편곡에서 무게감을 획득하는 쪽은 최근 댄 아우어바흐를 사로잡은 내쉬빌 컨트리 사운드와 포크, 1970년대 풍의 R&B, 소울로 구성한 사운드 외피. 바로 이 위치에 <Waiting On A Song>의 높은 접근성이 기인한다. 한층 부드럽고 풍부해진 사운드는 아티스트의 좋은 선율을 한껏 살려낸다.

 

편곡의 규모를 키운 곡들로 시선을 옮겨보자. 사운드의 구성요소들은 저마다 뚜렷한 컬러를 지니고 있다. 프로듀서 릭 루빈에 대한 찬가 「Malibu man」과 리드미컬한 소울 트랙 「King of one horse town」, 클래식한 R&B 선율로 운을 떼는 「Undertow」에는 모타운 혹은 알 그린 풍의 관현악 편곡이 덧대어져 있고, 가벼운 컨트리 사운드의 「Never in my wildest dreams」, 갤럽 리듬으로 어쿠스틱 기타가 흥겹게 내달리는 「Show me」에는 내쉬빌 사운드의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가 추가돼있다. 그러나 그 어느 독특한 터치도 멜로디를 우악스럽게 잡아먹지 않는다. 옛 레코드에서 포착해낸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활용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지점에서 선율을 뒷받침하는, 그 정도에서만 이루어진다. 캐치한 코러스 라인에 스트링이 풍미를 더하는 「Malibu man」과 곡 말미에 이르기까지 아득하게 울리는 선율을 혼 섹션이 묵묵히 뒷받침하는 「Never in my wildest dreams」를 비롯한 여러 트랙들이 이 맥락에서 좋은 증거를 제시한다. 마크 노플러의 따스한 핑거스타일 기타와 넉넉한 사운드 구성이 활기찬 멜로디를 확실하게 부각하는 루츠 록 「Shine on me」는 최고의 결과물로 꼽히기에 물론 모자람이 없고.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듣기에 좋은 앨범이 탄생하는 과정, 그 기저에는 좋은 배합률이 자리하고 있다. 받아들이기에 편안한 멜로디를 만드는 송라이터로서의 면모, 애정 어린 손길로 루츠 음악을 뒤적이는 복고주의자의 태도, 고전성 깃든 장치들을 신선하게 재배치하는 실험가의 기질, 이 모두가 한 데서 어울리되 가지런히 정돈된 작품으로서 잘 다가올 수 있었던 결과에는 균형감이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준 높은 댄 아우어바흐의 재능과, 작곡과 연주 등 창작의 주요 단계에서 큰 힘을 보탠 존 프라인과 바비 우드, 듀언 에디와 같은 컨트리 포크, 루츠 록 계 거장들의 관록은 그 지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코 과하지는 않지만, 모자람은 더더욱 없는 근사한 곡들이 트랙리스트에서 연속한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레트로 마스터피스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 이 능력 좋은 블루스맨의 손끝에서 다시금 이뤄졌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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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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