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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고객님

감정노동자의 소화불량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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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해 보이는 의사는 박지영 씨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그녀의 업무 역시 결국은 고객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컴플레인을 하던 고객들도 원하는 이야기를 다 쏟아낸 후 감정이 누그러지곤 했다.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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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전화를 끊고 박지영 씨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구입한 지 한 달이 지난 의류에 하자가 있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이었다. 입던 옷을 보내면서 입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경우도 있다. 환불 기한은 공식적으로 일주일이며 환불이 어렵다고 설명하자 고객은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쏟아냈다. 30분쯤, 아니 40분쯤 통화가 이어졌을까.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란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자 상품 배달 문의 고객과 통화 중이던 옆자리 동료가 박지영 씨를 슬쩍 눈짓을 주었다. 잠깐 콜을 중단하라는 의미다. 동료에게 눈인사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헤드셋을 벗었다. 벽에 붙은 전광판의 인입콜 현황과 실시간 처리 건수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할당된 콜을 채우려면 오래 쉬진 못할 것 같았다.

 

박지영 씨가 M쇼핑몰 콜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은 1년 반 전이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고객이 우선이었다. 고객에게 폭언을 들어도 먼저 사과해야 했고, 성희롱을 당해도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내부 지침이 바뀌어 욕설이나 폭언을 들은 뒤에는 잠깐이라도 쉴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감정을 추스를 최소한의 시간을 주기 위한 조치였다. 이전엔 욕설을 듣고 설움이 북받쳐도 눈물 닦을 여유도 없이 다음 콜을 받아야 했다. 정해진 콜 수를 채우려면 1시간의 점심시간도 쪼개 써야 했다.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모아두었다가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에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에 갈 여유가 없어 고객과의 상담이 길어질 때면 요의를 참아야 할 때도 있었다. 덕분에 콜센터 직원들은 치질과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 박지영 씨도 반품을 끈덕지게 요구하는 고객과의 상담 와중에 소변을 참다못해 지릴 뻔한 상황을 겪은 뒤부터는 외출 중에도 화장실이 보이면 소변이 마렵지 않더라도 다녀오는 버릇이 생겼다.

 

변한 것은 버릇뿐만이 아니었다. 점심을 급히 먹거나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을 해서인지 몇 달 전부터는 소화불량 증세가 생겼다. 자주 속이 더부룩하고 배에 가스가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약국에서 소화제와 활명수를 사 먹으면 잠깐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효과를 봤다는 사혈침을 구입해 써보기도 했고 한의원에서 부항을 뜨기도 했다. 속이 더부룩하여 저녁식사를 아예 건너뛰는 일이 잦아지면서 체중이 3킬로나 빠졌다. 겁이 덜컥 나서 큰맘 먹고 연차를 내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을 찾아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받은 것이 한 달 전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검사에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위장 운동을 도와준다는 처방약을 먹은 뒤에 증상이 나아졌었는데 최근에 다시 나빠진 것 같다.

 

마지막 콜 상담이 오래 걸린 데다가 지난 달 실적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니 8시였다. 말이 보고서지 콜수가 낮았던 사유를 적어낸 반성문에 가까웠다. 입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을 건너뛰면 안될 것 같아 편의점에 들렀다. 박지영 씨처럼 혼자 생활하는 직장인에게 오늘 같은 날 편의점 도시락은 맞춤한 식사였다. 오늘은 편의점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꼬치 오뎅 국물도 한 그릇 놓았다.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은 뒤 오뎅 국물을 함께 삼켰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은 명치에 느껴지는 불편함이 더 심했다. 돌덩어리가 몇 개쯤 들어앉은 것 같았다. 이런 괴로운 상태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몸이 더 나빠져서 일을 못하게라도 되면 어떡하나. 결국 도시락은 절반도 못 먹었다. 허름한 건물 3층의 밝게 빛나는 창문이 눈에 들어온 건 박지영 씨가 심란한 마음으로 집을 향할 때였다. 창에 새겨진 ‘반딧불 의원’이란 이름이 고즈넉했다. 

 

다소 까칠해 보이는 의사는 박지영 씨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그녀의 업무 역시 결국은 고객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컴플레인을 하던 고객들도 원하는 이야기를 다 쏟아낸 후 감정이 누그러지곤 했다. 상품 문제가 아니라 애인과 헤어진 이야기나 신세를 한탄하며 울먹이는 고객들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진료실에서 의사가 하는 일도 콜센터의 업무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박지영씨는 생각했다. 의사는 그녀의 직업과 하루 일과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지영 씨가 최근 심해진 소화불량 증상을 설명하면서 의사들도 그녀처럼 같은 증상을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살면서 치른 제일 큰 시험이 뭐였어요?”
“대학 시험이었죠. 수능.”

 

“시험 준비할 때는 소화가 잘 됐었나요?”
“아뇨. 그때는 워낙 스트레스가 많아서… 성적이 좋지 않았거든요. 소화제를 달고 살았어요. 변비도 심했고.”

 

“시험이 끝나고 좋아졌나요?”
“그랬죠. 생각해보면 신경 쓰는 일들이 많을 때면 비슷한 증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번처럼 오래간 적은 없었어요.”

 

“중요한 시험 준비와 같이 스트레스가 많을 때 일시적으로 소화가 안 되는 경험은 누구나 있어요.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지죠. 증상이 생긴 건 위장에 갑자기 병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에요. 내시경을 해봐도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의사는 잠시 말을 끊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위장에 음식이 들어가면 주문이 접수됩니다. 위장으로부터 받은 주문에 따라 여기, 뇌에서부터 출고가 시작되고 상품이 나가게 돼요. 그걸 받아서 위장은 열심히 일을 하구요. 이 과정이 ‘총알배송’보다 빠르죠. 그런데 뇌가 신경을 쓸 게 많아 바빠지면 주문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배송도 늦어져요. 어떤 때는 엉뚱한 상품을 발송하기도 하고. 그걸 받아 일을 해야 하는 위장 입장에선 답답한 거죠. 그러니 명치가 뒤틀리고 가스가 차고… 컴플레인을 하게 됩니다."

 

그럼 내 위장은 문제가 없다는 건가. 의사는 손가락으로 다시 타이핑을 하듯 책상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이내 나아질 수 있어요. 하지만 박지영 씨처럼 직장에서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계속되면 배송 오류가 반복되고, 그렇게 되면 위장이 나 몰라라 하고 드러눕게 됩니다. 겉으론 말짱하고 교양 있게 생겼지만 매번 민원을 내는 진상고객이 되고 마는 거죠.”

 

박지영 씨는 의사가 그녀의 증상을 그녀의 업무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도 스트레스 때문에 증상이 나빠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일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진상고객을 들먹이는 의사의 익살스런 표정에 박지영 씨는 순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불러요. 사실 원인은 하나로 꼬집어 말하기 힘듭니다. 선천적으로 위장 기능이 약해서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증상이 잘 생기는 분들도 있어요. 진상고객이 되어버린 위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지금 박지영 씨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약이 위장 운동을 도와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생활습관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해요. 위장에서 뇌로 가는 주문이 너무 많거나 제멋대로여도 문젭니다. 과식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제시간에 식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운동도 꼭 필요하니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진료실을 나오면서 박지영 씨는 민원 상담을 받은 고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늘상 불평을 듣고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곳은 어딘가에 있는 법이었다. 그녀의 명치엔 여전히 더부룩함이 남아 있었지만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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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imagetoday

 

‘기능성 위장장애’는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1명이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문제다. 복부가 더부룩하고 팽만감, 구토, 트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대장 쪽의 증상은 ‘과민성 장증후군’으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식사나 스트레스로 복통이 심해지고 배변으로 증상이 나아지며 설사나 변비를 동반하기도 한다. 위, 대장내시경으로 발견할 수 있는 염증, 궤양, 암 등의 문제가 없는데도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큰 합병증을 일으키는 문제가 아니지만 쉽게 낫지 않고 지속되므로 환자 입장에선 겉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수 있다.

 

증상에 따라 위, 대장 내시경 등의 적절한 검사를 했음에도 원인이 될 만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 기능성 위장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기능성 위장장애의 원인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약물 치료 외에 식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위장에 자극이 될 수 있는 과음, 과식과 불규칙한 식사를 피하고, 자극적이거나 짜고 기름진 음식 등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식습관만큼 중요한 것이 스트레스인데, 스트레스가 기능성 위장장애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음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감정노동이란 적절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일터에서의 업무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 발생한다. 즉 노동을 할 때 실제 자신의 감정이 아닌 조직이 원하는 감정을 발화하는 것이다. 감정노동의 개념을 처음 알린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자신의 책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에서 사적 차원의 감정 관리가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감정노동으로 변형될 때 소진, 스트레스, 신체적 쇠약이 발생한다고 했다. 콜센터 직원은 감정노동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콜센터 관련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업 종사자 수 역시 2007년 3만 7,824명에서 2011년 6만 3,522명으로 늘었다. 콜센터 직원들에 대한 조사* 결과 고객으로부터 인격무시성 발언을 들은 비율은 72%, 고객으로부터 폭언과 욕설을 들은 비율은 65%이고,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32%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자의 44%는 소화장애, 우울증, 하지정맥류, 근골격계 질환, 생리불순, 성대결절 등 여섯 개 질환 중 하나 이상의 질병을 진단받은 적이 있었으며, 그 중 소화장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다.

 

*박찬임 등, <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 연구 - 판매원과 전화상담원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연구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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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감정 노동

<앨리 러셀 혹실드> 저/<이가람> 역15,300원(10% + 5%)

고객센터 상담원부터 마트의 판매사원까지, 친절과 미소를 강요당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델타항공의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개인의 특성으로 여겨지던 감정이 상품화되고 있음에 주목했다.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회학 분야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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