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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베이시스트 황호규 “순수한 음악인의 삶을 택하고 싶다”

데뷔 앨범과 함께 국제무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재즈 베이스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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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즐겁고 재밌고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음악을 해서 대학을 들어가고 음악을 해서 돈을 벌고 유명해 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행복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2017.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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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베이스 연주자 황호규는 지금까지 단 한 장의 앨범도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년 전부터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연주자이다. 그것은 미국의 셀로니어스 멍크 재즈학교(Thelonious Monk Institute of Jazz)가 격년으로 단 한 명 만 선발하는 베이스 장학생으로 그가 뽑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디디 브리지워터(Dee Dee Bridgewater), 테리 린 캐링턴(Terri Lyne Carrington)밴드에서 연주했고 지금도 정상급 재즈 연주자들로부터 지속해서 콜을 받고 있는 한국의 재즈 연주자다. 그럼에도 2011년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던 황호규는 제대 후 현재 호원대학교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자신의 첫 음반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 Straight No Chaser>(블루룸 뮤직)를 발표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한남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일본 투어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누구와 함께 연주했었나?


일본의 트럼펫 주자 토쿠(Toku)의 초청으로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다. 토교를 중심으로 대략 아홉 번의 공연을 한 것 같다. 베이스에는 나, 그리고 드럼에는 상민이 형(이상민)이 참가했다. 공연에 따라 게스트들이 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4중주단이었는데 트럼펫과 피아노가 일본 뮤지션, 베이스, 드럼이 한국 뮤지션으로 짜인 팀이었다.

 

전반적으로 느낌이 어떠했나?


일본 연주자들의 수준이 정말 높았다. 20대의 젊은 연주자들도 정말 잘 하더라. 일단 클럽들도 참 많고 연주자 숫자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연주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연주하는 것 그 자체를 너무도 즐긴다. 토쿠도 그렇고. 모두들 연주하는 것 그 자체를 매우 행복하게 여기고 오로지 그 음악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 태도들이 좋아 보였다.

 

이번 앨범 이야기부터 해보자. 기타에 애덤 로저스(Adam Rogers), 피아노에 데이비드 키코스키(David Kikoski), 드럼에 제프 '테인' 와츠(Jeff 'Tain' Watts), 정말 쟁쟁한 멤버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전에도 해외 유명 연주자를 기용한 국내 연주자들의 음반이 있었는데,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연주의 적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더라. 하지만 이번 음반은 달랐다. 서로 뭔가 만들어 보자는 열의가 느껴졌다. 이 멤버들은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


그 멤버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제프다. 원래 밴드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잘 맞아야하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미국 시절부터 유독 드러머들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켄우드 데나드(Kenwood Dennard), 랠프 피터슨(Ralph Peterson), 테리 린 캐링턴 등 드러머들이 나를 밴드에 기용하더라. 특히 테리는 레코딩에서도 나를 불렀는데 2009년 음반 <나머지 이야기들 More to Say.......>에서 베이스를 몇 곡 쳤다. 물론 그 앨범에는 나 말고도 크리스천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 등 다른 베이스 주자들도 나오지만.

 

어쨌든 버클리 (음대) 유학시절부터 드러머들과 가깝게 지내다가 멍크로 진학한 다음에 제프를 교수로 만나게 되었다. 버클리 시절 자주 연주했던 동료들 가운데는 기타리스트 줄리안 라지(Julian Lage), 피아니스트 로렌스 필즈(Lawrence Fields)와 같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로렌스는 그 시절에 이미 제프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제프를 멍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로렌스로부터 내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먼저 내게 말하더라. 그리고 제프와 듀오로 연주를 하고 있는데 트럼펫 주자 테런스 블랜처드(Terence Blanchard)가 들어오더니 「자이언트 스텝스 Giant Steps」를 셋이서 한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면서 연주했다. 연주 끝나고서 우린 진짜 가까워졌다.

 

멍크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군복무를 하는 중에도 종종 SNS를 통해 연락이 왔다. 군복무를 마쳤을 때 제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이번에는 젊고 새로운 멤버들로 밴드를 교체해서 뉴욕의 빌리지뱅가드에서 일주일 동안 공연하는데 꼭 와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제대 직후 어떤 K-팝 스타 공연에 참가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어서 그 밴드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제프가 계속 내게 연락을 줬다. 태국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데 같이 가자는 거였다. 당연히 그땐 동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피츠버그 재즈 페스티벌 때 제프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간 김에 제프와 함께 앨범을 녹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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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머지 멤버들은 제프가 짜준 것인가?

 

아니다. 실은 내 머리 속의 계획은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기타 트리오 앨범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순위로 생각이 든 것이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였다. 존 역시 멍크 교수였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작년 피츠버그 페스티벌을 포함해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존과는 도무지 일정이 안 맞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기타리스트가 애덤 로저스였다. 애덤은 몇 년 전에 웅산 누나와 워싱턴 DC에 연주를 갔다가 그때 편곡을 맡았던 존 비즐리(John Beasley)로 만났다. 그때 함께 연주하고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런데 기타 트리오로 녹음해야겠다는 내 아이디어는 바뀌고 말았다. 제프 밴드 일원으로 피츠버그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함께 연주한 데이브 키코스키에게 완전히 반한 것이다. 함께 연주하니 정말 좋았다. 데이브와 제프는 버클리 동기로 두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단짝이었다. 둘이 연주할 때 교감은 정말 완벽하다. 내 앨범에서도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노 트리오에 기타가 더해진 4중주 음반이 나온 것이다.

 

그들도 함께 녹음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뜻 밖에도 애덤이 제일 열심히 녹음에 임했다. 그의 입장에서도 제프와 같은 최고 멤버와 녹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녹음 장소는 펜실베니아 주 제프의 집 근처에 있는 옛날 교회인데 그곳을 제프가 매입해 녹음 스튜디오로 개조했다. 연주자들이 따로 부스에 들어가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 한 자리에 모여 라이브 연주하듯이 녹음했다. 악기별로 따로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녹음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이런 스타일의 녹음도 나름 매력이 있다.

 

녹음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멤버들이 모두 와인을 좋아한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고 그래서 두 곡정도 녹음 끝나면 와인 마시고 햇볕도 쬐면서 쉬다가 또 모여서 녹음하고........ 이틀 동안 캠핑하는 기분으로 즐기면서 녹음했다. 그러는 가운데 제프 앨범 녹음도 했다. 제프의 새 앨범에 베이시스트로 참여한 것이다.

 

앨범을 보니 오리지널 작품이 네 곡, 스탠더드 넘버 편곡이 네 곡,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더라. 스탠더드 넘버는 편곡이 신선했고 오리지널 곡들도 스탠더드 넘버 체인지를 기초로 해서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스탠더드 넘버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곡들을 쓴 것은 아니다. 직접 말로 이야기하긴 쑥스럽지만, 1, 2 번 트랙인 「비욘드 Beyond」와 「뷰티풀 마인드 Beautiful Mind」는 세월호의 비극을 마음에 그리며 쓴 곡이다. 첫 곡은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나중에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약간 슬픔이 깃들어 있지만 생동감 있는 분위기로 시작해서 복잡한 코드 진행을 넣어 사고가 잃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나중에 곡이 계속 뱀프(vamp)하면서 드럼이 휘몰아치는 솔로를 연주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사고로 어린 생명들을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써 본 곡이다. 「뷰티풀 마인드」란 제목을 붙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두 곡 모두 2014년에 썼다.

 

「사막의 추억 Memories of the Desert」은 어떤 곡인가?


사실 난 군복무에 관한 남 다른 사연이 있었다. 내가 입대한 것은 2011년 하반기였는데 원래 법에 의하면 2010년 12월 31일까지 무조건 군대에 입대해야 했다. 하지만 멍크에서의 내 수업은 2011년 여름이 되어야 끝나는 과정이었다. 버클리에 입학하고, 다시 멍크 장학생이 되어 군 입대를 연기했지만 이제 그 기한이 더 이상 연장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입대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멍크 재즈학교는 전액 장학금에 학생들에게 월급까지 나오는 학교였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면 그간에 받았던 혜택을 상당부분 금액으로 보상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학교를 마치고 군대 가기로 결심했는데 2010년 12월 31일이 지나면서 나는 군 기피 수배자가 됐다. 학교를 마치지 마자 한국으로 돌아가 군대 입대함으로써 이후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군복무를 무사히 마쳤지만 2011년 상반기에 내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래서 그때 뉴올리언스에서부터 혼자 차를 타고 애리조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사막에서 본 풍경을 음악으로 담은 것이다. 사막에서 토네이도를 만났는데 여행을 끝내니 렌트카가 폐차 직전의 고물이 되었더라. 모래바람으로 한치 앞도 안 보였는데 그게 마치 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내 인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곡의 멜로디를 무거운 베이스 라인으로 끌고 갔다.

 

「저항 The Resistant」은 어떤 내용인가?


사실 이 곡도 「사막의 추억」과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해 청춘을 바쳐 베이스와 재즈를 연마해 왔는데 음악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군대에 가서 내 실력을 모두 잃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다른 친구들은 편하게 계속 음악 하는데 나만 왜 군대를 가야 하나. 그땐 세상에 정말 반항하고 저항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곡을 쓴 것이다. 물론 지금은 군대를 마치니 더욱 음악에 전념하고픈 마음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탠더드 넘버들의 편곡이 정말 참신했다. 편곡에 관심이 많은가?


버클리 시절 전공은 베이스 퍼포먼스였지만 또 다른 전공을 선택해 작/편곡을 공부했다. 빅밴드 편곡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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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 「넷이서 하나로 Four in One」, 「자이언트 스텝스」, 「내 사람이 되어 줄 건가요? Will You Still Be Mone?」 등은 재즈 연주자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들이다. 이 곡들을 통해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는 멍크 시절 테런스 블랜처드와 공부를 하면서 그가 남들이 하는 방식 말고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 보라고 해서 만들어 본 곡이다. 수업 때 칭찬을 많이 들었다. 특히 허비 핸콕(Herbie Hancock)이 칭찬을 많이 해줬다. 편곡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기타가 멜로디를 연주하기 전까지는 사실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였는 지 전혀 몰랐다. 「자이언트 스텝스」도 마찬가지였다.


테렌스나 허비나 모두 독창적인 것, 남들이 하지 않은 방식으로 편곡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 준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블루스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블루스 곡들을 몇 곡 작곡했다. 테렌스, 허비는 모두 그 곡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배리 해리스(Barry Harris)에게 들려주었더니 “쓰레기”라고 한 마디로 평하시더라. (웃음)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의 블루스를 듣고서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이런 쓰레기 같은 블루스는 처음 듣는다고 하셨다. (웃음) 정통 비밥의 대가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확실히 음악에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 사람이 되어 줄 건가요?」는 편곡도 기발했지만 선곡 자체가 뜻밖이다.


그 곡은 버클리 시절에 편곡했던 곡이다. 이 곡은 기타리스트 피터 번스틴(Peter Bernstein)의 연주를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 굉장히 빠른 템포의 연주였다. 그런데 그때 피아니스트 겸 편곡자인 빌리 차일즈(Billy Childs)가 버클리에서 특강을 했고 그 가르침으로 베이스 오스티나토를 쓰는 방식 그리고 오드 미터(odd meter, 변박자)를 사용하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한 편곡을 많이 공부하면서 내 연주곡에도 그 방식을 적용해 본 것이다.

 

전반적으로 베이스 사운드가 굉장히 독특하더라. 옛날 뉴올리언스 베이스 주자들 소리 같기도 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그 점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미국에 들어갈 때 나는 내 개인 악기를 들고 가지 않았다. 친한 일본인 친구가 뉴욕 주에 사는데 그의 베이스를 빌리기로 약속해서 굳이 내 악기를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갔더니 그 친구가 약속을 잊고 일본으로 가 버린 거였다. 차를 두 시간 동안 타고 가서 맨해튼에 가서 악기를 빌려 올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하루를 그냥 버리게 되는 거였다. 고민하다가 제프가 자기 집에 있는 싸구려 베이스로 그냥 녹음하자는 거였다. 그 베이스로 제프 앨범도 그냥 녹음했다. (웃음) 내 첫 앨범인데 우수하지 못한 베이스로 연주해서 사실 많이 아쉽다. G현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면 아예 소리가 나질 않았다. (웃음)

 

어떻게 하다가 재즈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었나?


중학교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일렉트릭 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런데 같이 연주하던 친구가 드러머였는데 실력이 빠르게 느는 거였다. 누구한테 음악을 배우고 있냐고 물었더니 드러머 김희연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선생님 통해서 베이스 선생님도 한 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소개 받은 분이 장응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으로부터 계속 일렉트릭 베이스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가 아마 1999년 즈음이었을 텐데 선생님이 이거 좀 들어 보라고 음반 두 장을 건네셨다. 그 음반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카인드 오브 블루 Kind of Blue>와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의 데뷔 음반이었다. 두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 이런 게 재즈구나. 풀 체임버스(Paul Chambers)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너무 멋졌고 패티투치의 일렉트릭 베이스 소리가 너무 신기했다. 맨 처음에는 기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해 낙원 상가에서 콘트라베이스와 6현 베이스를 사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1년에 장응규 선생님이 서울재즈아카데미에 입학하라고 권하시는 거였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재즈아카데미와 교류하고 있던 버클리 음대에서 장학생 선발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응시했는데 운 좋게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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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수업 받으면서 주변으로부터 소질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좀 듣긴 한 것 같다. 처음에 장응규 선생님을 만나 기 전에 한 기타리스트 분이 내 베이스로 속주 연주를 보여 주셨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치면 좋은 건 줄 알고 나도 일렉트릭 베이스로 속주를 구사했는데 그 나이 그 또래 중에서는 좀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콘트라베이스 연주할 때 당시에는 국내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어린 내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클럽에 나타나면 선생님들이 많이 귀여워 해주셨다. 그때 다른 베이스주자 대타로 가끔씩 연주하곤 했다.

 

버클리로 유학 가서는 어떠했나?


솔직히 난 음악에만 빠져서 살았고 악기만 연주했지 태어나서 영어 공부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연주 실력으로 버클리 장학생이 된 거였다. 그래서 2002년 여름 학기부터 버클리 생활이 시작되었고 가서 얼마 후, 그날도 연습실에서 혼자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일본인 색소폰 친구가 들어오더니, 정확히는 못 알아들었는데 자기랑 어디로 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리얼북>을 들고 그 학생을 따라 갔다. 갔더니 전부 흑인 학생들만 앉아 있는 거였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무슨 곡을 연주하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아무도 <리얼북>을 보지도 않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거였다. 무슨 곡을 연주하지도 몰랐고 설령 알아 들었다고 한들 도무지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클럽에서도 스탠더드 연주할 때면 모두 <리얼북>을 펴놓고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연습실 안에는 <리얼북>은 커녕 보면대도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이곡 몰라? 그러면 이곡 하자. 하고 또 다른 곡을 막 시작하는 거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내가 아는 곡을 하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도무지 실력이 안 됐다. 그러자 일본인 친구가 날 너무 무시하는 거였다. 너 여기 왜 온 거냐. 그렇게 못하는데 이 학교에는 어떻게 들어왔냐며 핀잔을 주는데 기분이 너무 나빴다.

 

그런 경험 때문에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오기가 생기더라. 내가 너희들을 다시 만날 때는 모두를 밟아 주겠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수업 듣고 연습실에 처박혀 연습만 하고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다시 일어나 학교 가고 하는 세월이 시작되었다. 버클리는 토요일, 일요일 수업 없는 날도 새벽 두 시까지 학교 연습실을 개방했다. 그래서 휴일도 무조건 학교 나가 새벽 두시까지 연습했다. 새벽 두시가 되면 경비원 아저씨가 와서 이제 나가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복도로 나오면 그 시간까지 남아서 연습하던 친구들을 늘 만나게 된다. 그러면 집에 가기가 아쉬워 마지막에 복도에 모여 잼을 했다.

 

답답함, 외로움, 회의 같은 건 없었나?


그런 생각 자체도 할 줄 몰랐다. 오로지 음악밖에 몰랐고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 생활을 약 2년 동안 한 거 같은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교수님이 나를 불러 함께 연주하자고 하고 학교에서 제일 연주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연주할 때 내가 거기에 끼어 있었다. 버클리에는 '버클리 앰배서더'라는 팀이 있는데 학교 내에서 가장 연주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 해외에 투어를 다니면서 학교를 홍보하는 밴드였다. 그 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 학교에 건의해 애초에 반액 장학생이었던 조건을 전액 장학생으로 바꿨고 어차피 무료이니 전공을 하나 더 선택해 작곡을 공부했다. 그래서 버클리를 5년 동안 다녔다.

 

요즘도 그렇게 연습을 하나?


그렇지 못하다. 그때보다 생활이 복잡해지니 연습 시간을 쉽게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늘 나에게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대가일수록 연습과 연주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더라. 그것을 못하면 마치 금단현상처럼 신체적인 불안증세가 나타난다. 제프와도 태국에 갔을 때 여러 행사 때문에 며칠 연습을 못하니까 제프가 결국에는 스틱을 꺼내 바에 있는 테이블을 한참 두드리더라.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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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크 재즈 학교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버클리 졸업하기 1년 전인 2006년에 한 번 응시했었다. 1차로 서류와 녹음을 제출하면 그 가운데서 몇 명을 선발해 마지막 라이브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까지 진출했는데 결국 떨어졌다. 2년에 한 명밖에 안 뽑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버클리를 마칠 즈음이 되자 테리 린 캐링턴을 포함해 몇몇 뮤지션들이 나를 불러주기 시작해 기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멍크는 생각에도 없었다. 더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멍크가 다음 학생을 선발하는 2009년이었는데 2008년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밤에 자다가 꿈을 꿨다. 허비 핸콕이 꿈에 나타나 나보고 또다시 응시하면 붙여주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날 멍크 학교에서 혹시 다시 한 번 도전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연락이 왔다. 신기했다. 그래서 2년 전에 냈던 서류, 녹음을 엉겁결에 다시 제출했더니 마지막 오디션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결국 선발되었다.

 

피아니스트 조윤성 씨에 이어서 한국인으로 두 번째 아닌가?


그렇다.

 

멍크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나?


멍크는 각 악기별로 한 명의 학생을 선발해 하나의 밴드를 꾸린다. 내가 입학한 기수는 트럼펫, 알토 색스, 테너 색스, 피아노, 베이스, 드럼 그렇게 여섯 명이었다. 그러면 대가 한 분이 방문해 함께 그 밴드와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곡 쓰고 연습하고 그리고 무대에 같이 올라가서 연주하고 일주일 내내 함께 생활한다. 그러면서 밴드 안에서 진짜 즉흥적인 대화가 일어나게끔 유도해 주는 것이었다. 좋은 재즈 연주란 그 점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가 선생님들을 통해 진짜 음악인의 삶을 느꼈다. 그곳에서 존 스코필드, 제프 테인 와츠, 존 패티투지, 론 카터(Ron Carter), 잭 드조넷(Jack DeJohnette), 스티브 콜먼(Steve Coleman) 등 여러 대가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그것이 제일 힘들다. 그러니까 우리는 음악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즐겁고 재밌고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음악을 해서 대학을 들어가고 음악을 해서 돈을 벌고 유명해 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행복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열심히 연습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음악에 재미를 못 느끼니 당연하다. 얼마 전 함께 연주했던 일본 음악인들도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재즈를 연주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를 굉장히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돈을 별로 벌지 못하지만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나 혼자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게 안 되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내 자신도 음악으로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그냥 음악이 좋아 열심히 했는데 그게 내게 좋은 약이 된 것 같다. 목표를 대학과 성공에 두었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못했을 것이다.

 

재즈의 대가들을 만나면서 그 점을 확인했나?


얼마 전 주변의 한 뮤지션이 웨인 쇼터(Wayne Shorter)의 집을 방문해 며칠 함께 있었는데 그 대가도 아직도 계속 연습하고 작곡하고 또 연습하는 생활을 계속 하더라는 것이었다. 존 패티투치도 아직도 클래식 연주자로부터 보잉(bowing) 레슨을 받는다. 그렇게 잘 하는데도 더욱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은 것이다. 음악인의 삶은 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서 안정된 직장도 얻은 샘인데 만족하나?


아마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미국에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도 있지만 역시 음악인의 삶이란 계속 연습하고 창작하고 연주하는 게 맞다고 본다. 또 블루룸 뮤직이라는 좋은 회사를 만나서 그러한 삶에 훨씬 수월하게 도전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버클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내 또래의 연주자들이 현재 뉴욕 재즈 동네에서 왕성하게 연주하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좋은 여건인 것 같다. 이번 음반을 내고서 조만간 내 생활의 방향도 결정될 것 같다.

 

사진 : 이한수
인터뷰 : 황덕호
정리 : 황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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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투자하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2020년부터 증시가 호황을 맞으며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이 많아졌다. 몇몇은 성공했으나 개인이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투자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건 상식이다. 이를 알면서도 왜 주식 투자에 나설까? 저자는 전업투자자들을 취재하여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게일 콜드웰, 캐럴라인 냅 우정의 연대기

퓰리처상 수상작가 게일 콜드웰과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두 작가가 나눈 우정과 애도의 연대기. 캐럴라인 냅이 세상을 떠나자 게일은 함께 한 7년의 시간을 기억하며 그녀를 애도한다.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기쁨과 슬픔, 위로를 주고받으며 자라난 둘의 우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떠나고 돌아오고 살아가는 일

삶이, 사랑과 신념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진심을 마주한다.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는 생애를 우리도 그들처럼 살아낼 것이다. 떠나고 또 돌아오면서, 좌절하고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줄 방을 준비하면서.

존 클라센 데뷔 10주년 기념작

칼데콧 상,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수상 존클라센 신작. 기발한 설정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극적인 긴장감과 짜릿한 스릴이 가득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과 교감, 운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의 세계를 한데 모아 놓아 놓은 듯한 뛰어난 작품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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