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오늘의 우리를 만든 시간을 기억하는 것

『기억극장』 편집 후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제목으로도 짐작 가능하겠지만,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책이다. 침대 밑 어두컴컴한 곳에 밀어 넣고 잊어버린 먼지처럼, 눈에는 안 띄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를 발굴해내는 작업이다.

19025256_1364925026895631_295392046856730390_o.jpg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이후 마음에 깊이 새겨진 한마디다. 한편으로는 ‘기억한다’는 것이,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괴로운 일은 잊고 싶기 마련이고,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실상을 뒤틀고 뒤집어 ‘잘못 기억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그만하면 이제 되지 않았느냐’ ‘적당히 좀 하라’며 질책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던 것이 어쩌면 가장 끔찍한 기억이고, 이제 다시 ‘기억하겠다’는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가장 다행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제목으로도 짐작 가능하겠지만,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책이다. 침대 밑 어두컴컴한 곳에 밀어 넣고 잊어버린 먼지처럼, 눈에는 안 띄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를 발굴해내는 작업이다. 그 작업의 시작은 지은이가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했다. 사진은 1979년, 세월호의 아이들이 가려던 바로 그 바다에서 찍힌 것이다. 우비를 입은 네 명의 여성이 바다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고 초점마저 어긋나 흐릿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진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이 사진을 보고 3년 전 그날을, 그리고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평택, 1988.jpg

평택, 1988

 

제주, 1979.jpg

제주, 1979

 

이 사진은 사진가 이갑철의 초기작으로, 우연찮게도 사진가는 이것이 자신을 이 길로 들어서게 한 사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책 속에는 이 사진작가가 1980년대에 찍은 사진들이 이어진다. 처음 사진가와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사진을 본 내 느낌을 궁금해했다. 말을 고르다가 “날카로웠어요”라고 답했다. 흑백 콘트라스트가 강한 사진들은 무심코 보아 넘길 수 없게 잡아채는 발톱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이 과거의 한 순간을 찌르듯 보여주는 사진들 위에 지은이는 자신의 기억을 겹쳐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맥락을 만들어준다. 지은이가 재구성한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니 오래 잊고 있던 내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래전 사진인데, 자꾸 오늘의 우리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사진가의 날카로운 눈과 손이 포착한 장면에 작가의 기억과 나의 기억 그리고 오늘의 현실이 여러 겹의 층을 만들어냈다.

 

지은이와 『대한민국 부모』, 『애완의 시대』를 함께 쓴 이승욱 선생은 이 책을 읽고 “김은산의 사소설(사적인 작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은 이갑철의 사진들 한복판에서 시작되며, 기억이라는 이름의 현재를 말하고 있다”고 썼다. 과거의 사진을 놓고 자신의 기억을 겹쳐 올리는 지은이의 글은 아주 개인적인 글이면서도 우리가 겪어 온, 혹은 우리의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역사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달력을 들춰 보니 이 책의 기획안을 처음 보고 지은이를 처음 만난 것이 작년 10월이었다. 그리고 5월 끄트머리에 책이 나왔다. 이 책을 만들던 시기가 긴 터널과도 같던 탄핵 정국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 것이 운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책은 나에게 앞으로도 오래도록 2016년 겨울과 2017년의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시기를 지나며 책의 내용도 조금 바뀌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마지막 글인 ‘미래라는 낱말’은 처음 기획안에 없던 것인데 나중에 붙었다. 이 글이 덧붙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미래’라는 낱말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 속 사진에는 작은 소녀가 있다. 소녀는 달려 나가려는 자세 그대로 사진 속에 결박당했다. 하지만 소녀를 잡아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팽팽하게 긴장한 다리 근육으로, 소녀는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보인다. ‘미래’라는 이름의 소녀가 성공적으로 탈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P.S. 한 달에 한 권의 책만 판매하는 서점 림에서 이 책에 실린 이갑철 작가의 사진들 일부를 6월 한 달 동안 전시하고 있다. 근처를 지나시는 분들은 한 번쯤 들러보셔도 좋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손희경(아트북스 편집장)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붓을 잡은 적이 없다. 재학 시절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이 편집자로 사는 오늘에 이르게 했다. 미술을 전공한 것이 미술 책을 주로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데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오늘의 책

평등은 거대한 재앙과 함께 온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유의미한 불평등의 축소를 경험한 시기는 전쟁, 혁명, 국가 실패, 유행병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세계사 속 불평등의 모습을 추적하며, 폭력을 동반하는 평등이라는 가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과연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한다.

최고의 전략, 가격에서 시작한다.

고객 가치와 기업 이익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비결, 그 첫 걸음은 상품 가격을 얼마로 매기냐에 달려있다. 세계적인 경영 사상가인 동시에 40년 넘게 경영실무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온 헤르만 지몬이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할만한 가격 설정의 비결을 공개한다.

숲 속에 무시무시한 거미가 살았어요.

파리가 거미줄에 걸린 다음, 개구리를 먹으려던 구렁이, 올빼미, 호랑이까지 거미줄에 걸려 무시무시한 거미를 만난다는 이야기로 욕심과 진실에 대하여 담고 있는 그림책. 노랑, 빨강, 파랑 세 가지 색으로만 표현했는데도 명료하고 화려한 구성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곳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1945년 일제 패망 직전 붉은 땅 만주에서 펼쳐지는 한중일 세 남녀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혀'는 여전히 먹을거리를 찾기 마련. 1945년 전쟁 통의 어느 하루가 지금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