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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중국사는 반쪽 짜리 중국사다?

『절반의 중국사』 번역자 김선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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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으시는 순간,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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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거주하는 민족은 56개. 한족을 제외하면 55개 소수민족이 중국 땅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원 왕조를 위협하고 초원을 누비며 서방까지 진출했던 수많은 민족이 있다. 소위 오랑캐라 불리웠던 흉노와 거란, 말갈, 몽골 등이다. 『절반의 중국사』는 이들을 소수민족이라 칭하며, 그들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운다. 바로 그들의 역사가 한족과 중원 중심 역사가 놓친, ‘나머지 절반의 중국사’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셨던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책을 번역하게 되셨는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요?

 

예전에 제가 쓴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에서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소위 ‘역사공정’들을 비판적 시각에서 다뤘어요. 이후 중국 학계에서 신화와 관련지어 진행하고 있는 역사공정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공정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중교양서가 국내에 흔치 않는다는 점에서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민족들의 역사가 워낙 재미있어서 분량이 많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고유명사들을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힘들었어요. 책이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역사를 다루거든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모든 고유명사들을 중국어로만 표기하고 있어 정확하게 옮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역주 작업에도 신경을 썼는데, 끝내고 보니 역주만 163쪽이나 되더군요.

 

중국 신화 연구자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의 소수민족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인데, 소수민족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경향신문>에 「소수민족 신화기행」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신화와 역사를 연관시켜서 오래된 문명을 강조하며 기원(起源)의 신화를 강한 국가로 나아가는 도구로 사용하는 현상에 매우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신화를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시각에서 이용한다면 독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화가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마침내 소수민족 신화들이 품고 있는 ‘오래된 지혜’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중국의 역사적 '공식 입장'을 잘 정리한 책이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관과 차이가 나는 지점이 어디인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릴게요.


저자의 말대로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는 단지 한족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과거 그 땅에 명멸했던 수많은 민족들이 얽히고 설켜 이루어진 나라죠. 그런데 이를 달리 말하면 ‘중국 땅에서 일어났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중국의 역사’라는 해석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 학계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래서 당나라의 동북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나 송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성했던 서하를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에요. 당시 그들은 결코 ‘소수민족’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중원의 왕조를 위협할 정도의 강한 왕조들이었음에도 말이죠. 그러한 시각은 특히 현재의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에 대한 서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다루는 민족이 많고 분량도 많다 보니 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합니다. 대선이 끝난 우리 사회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역사서를 읽다 보면 늘 드는 생각이, 문을 닫아걸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양성을 잃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언어들이 사라지면서 문화적 다양성도 사라지지요. 지금 중국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라고 꼽는 ‘한당성세(漢唐盛世)’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까지 나아갔던 거란이나 몽골도 결국은 그들이 ‘열려있는 길’ 위에서 외부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했기 때문에 흥성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호(胡)’, ‘한(漢)’을 막론하고 열려있는 마인드로 인재를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던 지혜로운 지도자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한자를 알았고 서예도 할 줄 알았어요. 대립하는 부족들을 성씨를 합치는 방법으로 통합하기도 했지요. 소작(소태후) 역시 탁월한 관리능력으로 거란인과 한인 모두의 지지를 얻어냈어요. 물론 개혁은 날카로웠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함이 있었지요. 서하의 이원호도 탕구트족의 정체성은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외쳤지만 동시에 한족의 좋은 점은 받아들여 문물을 정비했어요. 또한 그들은 모두 문자를 만들었지요. 그것은 문화적으로 강력한 힘이 되었어요. 우리가 그동안 ‘오랑캐’라고 외면했던 민족의 지도자들을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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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한 소수의 이야기가 많을 듯합니다. 독자들에게 더 소개하고 싶은, 혹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역사가 있을까요?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남성 영웅들이 이루어내는 서사 속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드물지만 곳곳에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여성들은 대부분 나라의 멸망과 관련되어 정형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포사, 달기, 양귀비, 진원원 등이 그러하지요.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러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지혜로운 여성 지도자들이 등장해요. 오손의 해우와 풍료, 거란의 술률씨와 소작(소태후), 영남의 세부인 등의 이야기가 그러한 것들이지요. 역사 속의 뛰어난 여성 지도자 이야기를 읽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고대 역사나 신화를 연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신화나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주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주요 쟁점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역사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증거가 가장 필요한 분야이지요. 그런데 고대사 연구는 문헌사료가 없는 경우가 많아 늘 ‘관점’의 문제가 개입합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문헌자료나 지하에서 출토된 자료뿐 아니라 인류학, 민속학 자료들, 심지어는 도상(圖像) 자료들까지 모두 고대사의 증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신화학연구(中華文明探源工程的神話學硏究)>라는 프로젝트에요. 단순한 ‘신화학연구’인 것 같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상고사 연대를 확정짓고자 하는 거대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종의 ‘역사공정’이지요. 문헌자료와 출토자료만으로 확정짓기 어려운 상고사 연대 확립에 신화를 비롯한 구전 서사 자료, 도상학과 민속학 자료까지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신화역사(Mythistory)’라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를 현재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비판적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어요. 저자가 고전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민족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책을 써 나갔기 때문이에요. 단, 앞서 말했듯 그 관점이 중국 정부와 학계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마다 역주를 달아 놓았어요. 글씨가 좀 작긴 하지만 역주를 참고하셔서 서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지막 책장을 덮으시는 순간,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절반의 중국사 가오홍레이 저 | 메디치미디어
이 책은 중국의 고전을 비롯해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소수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 그 의의를 두었다. 저자는 "소수민족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중국 내 '정통' 역사학자들과 힘을 겨루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며 지금의 중국 땅에 존재하는, 그러나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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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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