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
『지승호, 더 인터뷰』 지승호
내가 배려하면 나도 배려를 받는다. 인터뷰는 말발로 하지 않는다. 글발로도 하지 않는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성실, 태도가 관건이다.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라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나를 존중하고 듣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침묵도 대화라고 하잖아요. 친구랑 대화를 하는 것도 일종의 인터뷰예요. 친구가 울고 있는데, 자꾸만 너 왜 우니?”라고 물으면, 폭력일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친구가 울음을 그쳤을 때, “할 이야기 없어?”라고 묻는 게 낫죠. 상대의 상태에 맞춰 존중하면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해요.”
- 『지승호, 더 인터뷰』 지승호 인터뷰에서
누군가 물었다.
“인터뷰가 왜 좋아?” 3초간 생각하고 답했다. “지금은 마냥 좋진 않은데, 나는 인터뷰하면서 듣는 이야기가 뼈가 되고 살이 돼. 진짜로. 내 삶에 도움이 돼. 그리고 내가 묻지 않으면 못 듣는 이야기가 있잖아. 그런 거 같이 나눌 때가 좋아. 일대일로 나눈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효용 가치가 있으면 기쁘잖아. 또 내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고. 나랑 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어.”
“힘들 때는 없어?” “물론 있지. 생각보다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요즘이야 좀 다르지만, 예전엔 한 사람 만나면 그 사람이 언급된 웬만한 자료는 다 찾아봤어. 책은 여러 권 못 읽어도 근황 같은 건 진짜 꼼꼼히 살폈지. 암튼 만나기까지 은근 시간이 걸려. 그리고 녹취 푸는 게 최악으로 싫어. 타자가 느린 편이 아니지만, 나는 녹취를 푼 다음에 문장을 일일이 다 고치거든. 구어체를 살리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이게 텍스트로, 눈으로 읽는 거잖아. 눈으로도 잘 읽히면서 리듬감을 살리려고 해. 조사 같은 것도 중복하지 않으려고 하고. 대명사, 접속사는 되도록 빼려고 하고. 음.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면서 또 말투는 좀 살려야 하고, 약간의 긴장감도 줘야 하고. 끄응.”
“너 되게 잘하나 보다? 프로처럼 말하네?” “특별히 잘한다는 생각은 없어. 진심. 다만 내가 쓰고 싶은 건 유용한 이야기,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 현실에서도 보탬이 되는 이야기, 한 문장이라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판다면 그게 좋더라.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이야기를 잘하잖아. 막 질문 몇 개 안 했는데도 줄줄 나와. 그런데 말이야. 그 훌륭한 말조차도 묻지 않으면 못 들어.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더라. 인터뷰어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하는 사람, 이거 굉장히 중요하거든? 창작자도 중요하지만 전달자도 정말 중요해. 그런데 참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어. 때때로 화나지. 자기가 해보면 좀 알 텐데. 이거 육체적으로도 꽤 고된 일인 거. 녹취 안 풀고 질문만 하면서 ‘내 인터뷰’라고 말하는 사람 있잖아. 그건 자기 인터뷰 아닌 것 같아.”
“노하우 같은 거 있어?” “글쎄, 상대에 따라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긴 하지만 언제나 필요한 건 오픈 마인드지. 그리고 표정도 중요해. 경청하는 눈빛, 이 사람이 그냥 듣는 게 아니라는 제스처? 약간의 호감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 자기 좋다는 사람 싫을 수 없잖아. 하지만 긴장감도 좀 있어야 하거든? 팬심 같은 거 드러내는 건 별로야. 내가 조금 신경 쓰는 부분은 내가 궁금한 것보다 상대(인터뷰이)가 말하고 싶은 걸 먼저 물어주는 거야. 그러면서 내가 궁금한 질문을 훅, 훅 던지는 거지.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어느 순간 상대가 ‘어, 당신 이런 것도 알아? 어, 내 생각 꽤 잘 이해하네?’싶은 눈빛을 보낼 때가 있어. 그 이후는 대화가 술술 풀리지. 묻지 않은 이야기도 막 해주고. 상대도 이야기 할 맛이 나는 거야. 그럼 인터뷰는 성공.”
멋진 이야기를 쓰고 싶어 좋아하는 단어, 표현 등을 써놓은 수첩이 하나 있다. 10여 년이 된 수첩이다. 기사를 쓰다 이야기가 안 풀리면 종종 그 수첩을 꺼낸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표현들, 인터뷰 기사에 하나 인용해보려다 이내 수첩을 닫았다. 상대가 그렇게 멋지지도 않았는데, 과한 상찬을 늘어놓은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눈살이 찌푸려지기 때문이다. 인터뷰도 정직해야 하지 않은가, 시간 약속 하나도 안 지킨 상대를 두고 온갖 상찬을 늘여놓으면 그건 독자를 속이는 게 아닐까. 그런데 간혹 최대한 건조하게 쓴 인터뷰를 두고 “담백해서 좋았다”는 평을 들으면 나도 내가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한 말이 녹음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기사에 토를 달지 않기를 바란다. 인터뷰를 했으면 이제 그 자료는 인터뷰어의 것이다. 물론 팩트 체크를 해야 하고, 오프 더 레코드라고 밝힌 부분은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인터뷰라는 조건 하에 대화를 나눈 게 아닌가. 자신도 인터뷰로써 얻는 것이 1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인터뷰어에게 맡겨야 한다. 믿어주면? 잘 써준다. 성실하게 답하면? 성실하게 옮긴다.
2년 전, 대한민국 독보적인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대학생 때부터 그의 기사를 열심히 본 바 있었다. 나는 살짝 긴장됐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내겐 너무 선배 아닌가? 속으로 나를 평가하겠지 싶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문을 텄다. 하지만 웬 걸, 선배 자세가 아니라 동료의 제스처였다. 내 질문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없었다. 지적은커녕 고마운 마음만 표했다. 인터뷰를 마쳤으면 이 원고는 인터뷰어의 것임을 존중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면 게임 끝. 그의 말처럼 모든 사람과의 대화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다.
한 작가는 섭외 전화 목소리로 인터뷰를 할지 안 할지를 정한다고 한다. 목소리가 멋지냐 초라하냐가 아니다. 정확한 의사표현,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3분 통화에서도 듣는 사람은 듣는다. 메일 한 줄, 문자 한 줄, 메신저 한 줄에서도 상대가 읽힌다. 내가 배려하면 나도 배려를 받는다. 인터뷰는 말발로 하지 않는다. 글발로도 하지 않는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성실, 태도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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