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詩의 온도, 만화의 소리를 상상하다

『구체적 소년』 편집 후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결과는? 그렇다. 바로 훨씬 더 좋은 『구체적 소년』이다. 그리고 이로써, 앞으로 이어질 만화시편 시리즈의 기본 구성이 완성되었다. 편집자로서 두 저자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18491660_1339391909448943_4802004748152062602_o.jpg

 

과연 될까? ……싶었다. 막연하게 ‘합체! 크로스!’ 같은 분위기로 시인과 만화가를 의기투합시키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그러다가도 더더욱 ‘아, 이건 안 될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칫 오락가락하는 예감에 휩쓸려 의욕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윤후 시인과의 만남은 나를 호기롭게 만들었다. 이 좋은 글노래꾼은 아직 뭐가 될지 모를 그것을 조심스럽게 ‘같이’ 상상해주었다. 태초에, 그의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키로 삼아 시작된 상상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펼쳐졌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한 소년이 우주 공간에서 유영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윽고 소년은 헬멧을 벗고 진공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상쾌한 듯.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없어 전혀 들릴 리 없는 음악과 말소리도 들린다. 이제 소년은 우주복을 모두 벗는다.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차림이다. 소년은 자기 얼굴이 흐릿하게 비치는 황금빛 헬멧 유리에 무언가 글을 적는다. 어쩌면 시를. 다 적은 소년은 헬멧을 쓰고서 다시 우주복을 입으려 하지만 어느새 자란 탓에, 통으로 된 우주복에는 한쪽 다리만 겨우 들어갈 뿐이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상쾌한 진공도 헬멧 선바이저의 부끄러운 낙서도 조잡한 무중력도 모두 사라지기 전에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진짜 막연했다.

 

이즈음 나타난 구원의 사람이 바로 노키드 만화가였다. 이 좋은 그림이야기꾼은 저 괴이쩍고 의뭉스러운 편집자의 상상에 별가루를 뿌려줄 수 있는 우주의 절대 ‘무언가’였다. 평소 시를 읽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편집자의 머릿속을 넘어 시인의 머릿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감/표현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그린 소년은 그냥 남자아이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시어 ‘소년’이 변한 모습이어서 무척 좋았다. 누구라도 그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시인은 만화가의 그림을 좋아했고, 만화가는 시인의 글을 좋아했다. 얼마 전에 진행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구체적 소년』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만화가의 것이라 여긴다고 말했고, 만화가는 『구체적 소년』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시인의 것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작업하면서 사실 긴 시간 같이 보낸 적이 없는 두 사람인데 왜 이렇게 사이가 좋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책에 실린 시인의 코멘터리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 구상으로는 이 책에 만화만 실릴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만화가에게 모든 짐을 떠안겨버릴 수는 없기에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작업을 맡게 된) 만화가에게 시인은 상냥한 편지를 보내고 말았다. 그 글은 내가 볼 때 ‘좋아요’와 ‘하트’를 수조 개는 받을 만큼 좋았다. 덜컥, 책에 싣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어쩌면 사적인 영역이 담긴 섬세한 글이기도 해서 서윤후 시인이 책에 싣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혼자 끙끙거렸다. 다행히 노키드 만화가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표지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시인에게 책에 코멘터리를 넣자고 말했다.

 

결과는? 그렇다. 바로 훨씬 더 좋은 『구체적 소년』이다. 그리고 이로써, 앞으로 이어질 만화시편 시리즈의 기본 구성이 완성되었다. 편집자로서 두 저자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서윤후 시인의 시구를 변용한 이 말을 또 남기고 글을 마칠까 한다.


“만화시편은 내일도 독자를 구직하겠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책(네오카툰 편집자)

네오카툰 팀장

오늘의 책

평등은 거대한 재앙과 함께 온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유의미한 불평등의 축소를 경험한 시기는 전쟁, 혁명, 국가 실패, 유행병과 맞닿아 있다. 저자는 세계사 속 불평등의 모습을 추적하며, 폭력을 동반하는 평등이라는 가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과연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을지 자문하게 한다.

가격 결정이 전부다

당신이 알고 있는 시장의 모든 것, 가격에서 시작해 가격으로 끝난다! 세계 최고의 가격결정 권위자, <히든 챔피언>의 헤르만 시몬이 밝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결정 전략. 고객 가치 및 기업 이익과 경쟁력을 극대화하하는 가격·마케팅 전략의 모든 것을 담았다.

숲 속에 무시무시한 거미가 살았어요.

파리가 거미줄에, 개구리도 거미줄에, 구렁이, 올빼미, 호랑이까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거미일까요? 노랑, 빨강, 파랑 세 가지 색으로만 표현했는데도 명료하고 화려한 구성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습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곳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1945년 일제 패망 직전 붉은 땅 만주에서 펼쳐지는 한중일 세 남녀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칼'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혀'는 여전히 먹을거리를 찾기 마련. 1945년 전쟁 통의 어느 하루가 지금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