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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도구실의 믹스커피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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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출근하면 자연스레 청소노동자들은 어딘가로 스르륵 사라진다. 청결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도 안 보여야 할 의무를 지닌다. 깨끗하게. 이는 여성에게 부여한 성 역할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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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빨래하는 여자>, 1733년. 당시에도 가난한 여성들이 선택하는 가장 흔한 저임금 노동이 빨래하기였다.

 

10여 년 전이다. 결혼 시장에서는 전성기였지만 노동시장에서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기껏 내 업무와 관련한 정보를 열심히 준비해서 면접을 보면 “남자친구 있냐”는 질문 앞에서 ‘있는 게 좋은지 없는 게 좋은지’ 머리를 굴려야 했고, 막상 일을 하면 “적당히 일하다가 시집갈 거 아냐?”라는 질문 앞에서 한창 분개하던 시절이다.


나는 새벽에 영어학원을 갔다가 출근하느라 집에서 아침 식사를 못하고 나왔다. 새벽반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올 때,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지만 희미한 어둠 속에서 제일 먼저 불을 켜며 적막을 깨는 쾌감이 나름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이런 기분이 피로를 조금 잊게 해줬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토스트를 먹거나 집에서 간단히 싸온 과일을 먹다 보면 꼭 누군가가 나타났다. 두 명의 중년 여성. 바로 청소하는 분들이다. 한 공간에는 두 종류의 노동자가 다른 시간대에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다. 내 입장에서는 ‘청소하는데 가만히 앉아 먹는’ 상황이 어딘가 불편했고, 청소노동자 입장에서는 ‘먹는데 청소하는’ 상황이 난감했을 것이다. 서로 ‘편히 청소하세요’, ‘편히 식사하세요’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고 차츰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그들은 가급적 내게 먼 자리부터 청소한 뒤 나의 아침식사가 끝날 즈음 내 자리의 휴지통을 비우고 대걸레로 책상 밑을 쓱쓱 밀고 캐비닛 위의 먼지를 걸레로 닦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내게 이런저런 개인적인 질문도 조금씩 했고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병이 나서 새벽에 학원도 못가고 엄마가 차로 나를 직장까지 데려다줬다. 천방지축이던 어린 강아지가 따라 나와 내 무릎에 앉혀 놓았는데 처음 차를 탄 강아지가 이동 중 그만 멀미를 했다. 출근한 뒤 바지에 묻은 강아지의 토사물을 지우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청소도구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말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침에 안 보여서 오늘 출근 안 했는 줄 알았는데 출근했네요?” 바지에 물을 뚝뚝 흘려가며 토사물을 지우느라 엉망이 된 내 모습을 보더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와서 아예 바지를 벗고 제대로 빨래를 하라고 한다.


청소도구실 안으로 따라 들어가니 대걸레를 빨기 위해 만들어진 개수대가 있었다. 꼴이 우습긴 하지만 나는 바지를 벗어 토사물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어떤 튀는 물건. 각종 대걸레와 약품, 플라스틱 용기와 고무장갑, 쓰레기봉투, 화장지 등이 빼곡히 들어선 좁고 어두운 그 공간 안에 종이컵과 보온병, 노란 포장의 믹스커피 무더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 두 명이 그 안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으며 내게도 커피 한잔하라며 타주었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털어 넣고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물을 붓고 노란 믹스커피 껍데기로 휘휘 저었다. 12년 전 그 날, 나는 처음 알았다.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 안에 있는 청소도구실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한다는 사실을.


내가 바지를 빨자 아주머니가 받아서 탁탁 털어 아주머니가 앉아있던 그 얼마 안 되는 자리에 널었다. 나는 잠시 아랫도리가 허전한 상태로 아주머니가 준 시커먼 비닐봉지를 랩스커트처럼 두르고 그 비좁은 공간에 뒤섞여 함께 커피를 마셨다. 내가 청소도구실 안으로 들어간 그 순간은 마치 벽을 뚫고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간 시간 같았다. 이른 아침 그들이 청소하는 동안 나는 아침 식사를 할 때 내 밥상/책상에 먼지 날아들까 봐 조심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우중충한 청소도구 틈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셨다. 벽장 같은 그 작은 공간의 문밖에는 용변을 보러 드나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도구실’에는 사람이 있었으며 누군가의 배설 공간이 그들에게는 먹는 공간이었다.

 

그림2청소.jpg
빌렘 요셉 라키Willem Joseph Laquy, <바닥을 청소하는 젊은 여자>, 1778년

 

청결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청결한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모순된 현실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커피 한 잔 편히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이유는 결코 물리적 공간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대신 직위에 따른 권위주의만 괴물처럼 발달했다. 한국 대학에서 여전히 이질감을 느끼는 공간은 교수식당이다. 프랑스에서도 미국에서도 아직 대학 내에 교수식당이라는 공간을 보지 못했다.


직원들이 출근하면 자연스레 청소노동자들은 어딘가로 스르륵 사라진다. 청결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도 안 보여야 할 의무를 지닌다. 깨끗하게. 이는 여성에게 부여한 성 역할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가 여성이다.) 가정에서도 여자는 계속 쓸고 닦는 노동을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 보이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책을 읽으며 당시 우리 사이를 정의할 수 있는 아주 정확한 언어를 발견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여성들을 종족을 잇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가르는, 아무도 모르는 구분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서 청소부 계급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은 우리 사무실 매니저지만 전에는 우리와 같은 청소부였던 태미가 2센티미터도 넘는 긴 가짜 손톱을 달고 몸이 드러나는 야한 옷을 입는 게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기는 이제 번식녀의 계급으로 신분이 상승했으며 다시는 청소 일에 내몰릴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해서.” - 『노동의 배신』, 120쪽


소위 결혼적령기였던 나와 50대 여성 청소노동자, 우리는 바로 “번식녀 계급과 청소부 계급”이었다. 청소부보다 사정이 나은 ‘번식녀’는 ‘선생님’ 소리 들으며 커피 마실 돈은 있으나 ‘된장녀’가 된다면, 번식의 세계에서 멀어진 청소부는 아예 투명인간이 되어 커피 마실 자리조차 없다. 번식녀인 나는 벌어서 ‘스펙’ 쌓기를 반복하며 젊은 날이 지나갔고 밥값을 절약하기 위해 도시락을 두 개씩 싸 왔지만 사무실에서 먹을 수는 있었다. 청소부는 그 자리조차 없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났다. 나는 영어학원을 새벽반에서 저녁반으로 옮겼고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 청소노동자들과의 조우는 사라졌다. 문득문득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찾을 생각을 하진 않았다. 어느 날 다른 부서에 갔다가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청소노동자 한 분을 만났다. “아이고, 선생님, 여기서 이렇게 보네요. 우리가 당번이 바뀌었어요. 6개월에 한 번씩 구역이 바뀌거든요. 이제 우리 4층 청소 안 해요. 4층 청소할 때가 좋았는데.... 여긴 (매점이 있어서) 일이 많아요. 쉴 틈이 없어. 인사하러 올라갈까....... 생각도 했는데....... 인사 못 해서 늘 걸렸는데, 여기서 이렇게 보네요. 아무개 여사는 3층으로 갔고, 우리도 찢어졌어. 또 봐요~ 아이고, 인사했으니 이제 좋네.” 컵라면 용기가 쌓인 매점 옆의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쑥 꺼내어 들고 그는 다시 사라졌다.


청소노동자 40만 명. 최저임금을 겨우 받는다.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은 정작 여자들의 다양한 노동은 보지 못한다. 배설의 공간이 누군가에게 먹는 공간이고, 무책임하게 던져진 내 배설의 흔적을 누군가가 치운다. 인간답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지극히 최소한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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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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