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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대해 말하지 말고, 그냥 보여주길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과 Jukebox The Ghost의 ‘Show Me Where It Hu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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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장면을 만들면 된다. 이창래가 만들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문장에 줄을 그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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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Jukebox The Ghost의 ‘Show Me Where It Hurts’의 솔로피아노 버전을 들으며 아래의 목록을 읽어보자.

 

당신은 숨기는 게 많아
인생에서는 B 짜리 학생
무엇보다도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흥얼거리는 사람
불법 외인(外人)
정서적 외인
장르광(狂)
황화(黃禍) : 신미국인
침대에서는 훌륭하지
……(20쪽)

 

이것은 이탈리아로 긴 여행을 떠나기 직전, 아내인 릴리아가 케네디 공항의 알이탈리아항공 창구에서 헨리에게 건넨 목록이다. 그녀가 숨기는 게 많은 사람이라고 제일 먼저 꼽은 헨리 파크에게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박병호다. 그는 이창래의 첫 소설 영원한 이방인』의 주인공인데, 소설가와 등장인물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그 남자에 대한 릴리아의 마지막 정의는 그녀가 이탈리아의 섬으로 떠난 뒤 침대 밑에서 발견된다.

 

‘언어를 엉터리로 말하는 사람.’

 

이 정의는 재미있다. 왜냐하면 릴리아는 어린이 대상의 언어치료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리적 결함으로,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발음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혀와 입술과 날숨을 조작하는 것을 돕는다. 그런 점에서 위의 정의는 헨리 파크 역시 그녀의 관점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생리적 결함이 없는데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그녀가 작성한 목록 속에 숨어 있다.

 

정서적 불법체류자


‘불법 외인’으로 번역된 ‘illegal alien’은 합법적 비자 없이 미국에 들어오거나 체류하는 외국인을 뜻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반은 미국에 있고, 다른 반은 미국 바깥에 있을 때 그는 ‘illegal alien’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박병호는 분명히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불법체류자가 아니다. 릴리아는 그다음 정의, ‘emotional alien’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이 말을 끌어왔다. ‘illegal alien’ 없이 ‘emotional alien’을 바로 쓰면, 감정을 지닌 외계인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정서적 외인’이라는 말의 뜻은 이런 것이다. 그에게도 감정은 있겠지만 그 감정은 미국 사회에서 유효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마치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처럼, 그가 느끼는 감정들은 일반적인 미국인들에게는 감지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정서적 불법체류자다. 그가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정서적 불법체류자인 한에는 문법적으로 엉망진창인 불법체류자들의 언어와 비슷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바로 릴리아의 진단이다.

 

법률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반쯤 가려진, 혹은 지워진 흐릿한 존재라는 이민자 2세의 정체성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소설에서 헨리 파크는 사설탐정사무소에서 일하며 수시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사람, 즉 스파이로 설정된다. 그가 일하는 글리머 앤드 컴퍼니는 주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캐내는데, 대개 출신지의 이민자를 담당하므로 헨리 파크는 한국인을 맡는다.


헨리 파크를 비롯한 직원들은 고국의 반란세력을 후원하거나 갓 태어난 노동조합이나 급진적 학생 조직에 자금을 대는 부유한 이민자, 혹은 단순한 선동가, 혹은 양심적 작가나 국적을 버린 예술가를 뒷조사해 배경조사서, 심리 평가, 일일 활동점검표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를 두고 헨리 파크는 “그들의 삶에 대한 소책자, 멀찌감치 거리를 둔 공인되지 않은 전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들은 ‘전설’을 만든다. ‘전설’이란 대상인물에게 접근하기 위해 만드는 가짜 정체성을 뜻한다.

 

전설은 우리가 어떤 임무를 맡았을 때 써 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 주는 아주 광범위한 ‘이야기’였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전기로서 종종 아주 세세한 삶의 경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과 인물을 만들어 낼 정도로 발전해 나가기도 했다.(45쪽)

 

하지만 헨리 파크는 아직 이 업계의 신참이다. 그는 언젠가 회사를 만든 데니스 호글랜드에게서 직장동료인 잭 칼란카코스의 무용담을 들은 적이 있다. CIA와 연루되어 키프로스에서 공산주의 폭도들에게 납치돼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는데 그 일은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사무실에서 가장 노련한 사람인 잭에게는 시칠리아 출신의, 소피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는데, 5년 전 자궁경부암으로 죽었다. 그 뒤에도 잭은 가짜 정체성을 만들어가며 여자를 유혹하는 등의 작업을 계속했다. 헨리 파크는 그런 잭을 보며 의문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질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각각은 전문 범죄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 범죄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줄줄이 이어지는 사람들이었다. 하나의 잭이 키프로스에서 자기를 감시하던 사람을 살해하고, 다른 잭이 오초아-페레스 부인을 유혹하는 식이었다. 우리의 일은 일련의 연쇄 정체성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소피를 사랑하고 땅에 묻은 잭은 누구인가. 이 잭은 이 구도 속의 또 하나의 변형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영혼인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을까?(61쪽)

 

질문에 답하는 세 가지 이야기


가끔 소설을 오독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들은 작가가 소설 속에서 질문을 던졌다면, 반드시 그 해답도 제시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소설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공들여 쓴 소설일수록 더욱 그렇다. 소설가는 어떤 경우에도 이야기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왜 서로를 오해하는가? 이에 대한 소설가의 해답은 어떤 이야기다.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는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며 해답이 담긴 문장을 찾아 밑줄을 그을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

 

이창래는 앞에서 말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세 가지 이야기(이창래 식의 ‘전설’이라고나 할까?)를 들려준다. 첫번째는 이민자 1세인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공대 석사학위까지 받았건만 뉴욕에서는 청과물상회 주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유의,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민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은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전형적인 이민 1세들처럼 돈을 벌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박병호의 성장담이다.

 

다른 이야기는 헨리 파크가 자신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헨리 파크는 백인인 릴리아와 결혼해 아들 미트를 낳는다. 이 사랑 이야기는 두 부부가 헨리 파크, 아니 박병호의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않는 한, 특별할 것 없이 행복하게만 보인다. 헨리 파크는 성공적으로 미국 사회에 소속된 것 같았다. 적어도 그들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포기하는 한국 부모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부부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다. 이건 마치 “과연 아이가 잘못되는데도 너희끼리 행복할 수 있을까?”는, 한국인 아버지의 냉소적인 질문에 맞닥뜨린 것과 비슷하다. 과연 어떨까? 말했다시피 소설의 답은 이야기다. 그 명확한 해답 대신에 그냥 두 부부의 이야기에 빠져보기를.

 

세번째는 다음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현 시장에 맞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한, 존 강이라는 한국계 시의원에게 헨리 파크가 신분을 속이고 접근해서 신임을 얻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인데, 이것이 이 소설의 메인 플롯이다. 미국 출판계가 주목한 부분도 바로 이 이야기다. 미국 주류 사회에 진입하려는 이민자 1세들의 분투, 그 과정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정체성 위기와 인종간의 갈등, 이런 문제를 오래전부터 다뤄온 용광로 국가 미국의 정치적 해법 등등이 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히겠지만, 국내 독자들에게는 피부에 와닿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우 공들여 씌어진 우아한 사유의 문장을 읽는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그냥 보여주면 되잖아


다시, 처음에 들었던 Jukebox The Ghost의 노래로 돌아가보자. 원래 노래에는 가사가 있다. 이번에는 가사가 있는 버전의 ‘Show Me Where It Hurts’를 들어보자. 한 여자가 동쪽을 향해 방향지시등을 켠다. 해변 쪽으로 나무 잔교가 나 있는 곳이다. 거기에 이르러 그녀는 드레스를 벗고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때 한 남자가 시동을 끄고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소리친다.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잊고 사는 게 뭔지 말해줘.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운다. 그리고 말한다. 어디를 가든 그 일이 나를 따라다녀. 아침에 일어나면 눈앞에 어둠이 펼쳐져. 아무리 아닌 것처럼 해도 안 돼. 하루하루가 지겹고 사는 게 힘들어. 그러자 남자가 말한다. 아픈 곳을 내게도 보여주면 되잖아.

 

나는 앞의 세 이야기 중 두번째 이야기에 마음이 갔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난 뒤, 각자의 방식으로 아파하는 두 부부 헨리와 릴리아의 이야기. 여기에 인종적 차이가, 문화적 차이가 있을 리 없다. ‘그 일’이 벌어진 직후, 두 부부는 “자신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 땅에 남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좁고 부서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길고 넓은 군도(群島)에 흩어져 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부를 수도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입술과 눈이 부풀어오르도록 서로를 거의 죽을 때까지 압박하면서, 눈물이 떨어지기를, 그 위대하고 자유로운 분노가, 그 크고 무겁고 살찐 우울이 떨어져내리기를 자기 자신에게 빌” 뿐이었다.

 

여기에 이르면 언어란 일상적 소통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언어는 무용해진다. 광야의 리어왕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절규했지만,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을 시작하며 헨리를 몇 십 개의 단어들로 규정했던 릴리아도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게 언어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정서적인 불법체류자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잘못 사용된 언어, 엉터리 언어가 된다. 그렇게 규정된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치자. 그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의 정체성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게 바로 이야기의 힘이자 스파이로서 헨리 파크가 파국에 이른 이유다. 소설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이야기를 만들 뿐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는 건 소설 창작의 고전적인 조언이다. 이 소설은 학술서에서나 다룰 만한, 미국 이민자 2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출신 배경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당신이 소설가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맞다.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장면을 만들면 된다. 이창래가 만들어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런 문장에 줄을 그어야만 한다.

 

우리는 함께 누워 있었지만 몸은 닿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다. 가까스로. 부서질 것 같은 눈꺼풀은 침침한 빛 속에서 유백색이었고 거의 투명했다. 그녀의 얼굴, 목의 열기가 나를 그녀에게로 가까이 이끌었다. 그 가까움으로 인해 나의 두 뺨과 이마의 솜털들이 떨렸다. 늘 나를 사로잡는 것은 접촉이 아니라 가까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은 가까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미끄러져 갔다. 나의 얼굴의 온기가 그녀의 얼굴에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그녀에게서 반사되어 나타난 것은 순간적인 열지도와 같았다. 나는 그녀의 살갗과 뼈의 모든 윤곽, 그녀의 살의 모든 도드라짐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말하는 모든 것을.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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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저/<정영목> 역19,800원(10% + 5%)

★ 1996년 펜/헤밍웨이 문학상 수상 ★ ★ 1996년 반스앤드노블 신인작가상 수상 ★ ★ 1996년 아메리칸 북어워드 수상 ★ ★ 1996년 QPB 뉴비전 문학상 수상 ★ ★ 1996년 오리건 북어워드 수상 ★ ★ 1996년 미국도서관협회 주목할 만한 책 선정 ★ “Who Am I? 나는 누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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