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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춤뿐만 아니라 삶까지 지켜주고 싶다”

무용가탐구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 무용예술학과 교수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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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춤꾼들에 비해 가진 게 많지 않은 내 자신을 보며 좌절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도전을 했죠. 그게 김주원의 인생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에게 어울리는 춤, 몸의 선을 찾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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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뮤지컬 팬텀_벨라도바(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전 국립발레단의 주역무용수였던 김주원이 2016년 광주시립발레단의 이정윤 안무 <봄의제전>에 윤전일과 함께 무대에 서 ‘전석 매진’을 이뤄내 광주의 발레토망(Balletomane)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인도했다. 이달에는 재독무용가 허용순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으로 분하는 그를 탐구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습 중이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성신여자대학교 수업과 광주시립발레단 연습 그리고 개인일정 등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광주시립발레단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했던 신순주 감독과는 친분이 있나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지도위원을 역임한 플로린 브린두사(루마니아)의 소개로 신 감독을 알게 되었죠. 신 감독과의 대화에서 한국창작발레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어요. 사실 국립발레단에서 <왕자호동>류의 한국창작발레가 전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신 감독에게 이정윤(전, 국립무용단원) 안무자를 소개 했고, 그렇게 <봄의 제전 G>가 만들어졌어요. 

 

허용순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김주원 선생이 추천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한국 창작발레 <봄의 제전 G>이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난 후 신감독이 무용수들의 기량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작품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제가 허용순 안무의 <콘트라스트>와 <엣지 오브 써클>에 출연을 하면서 신감독이 허 안무자의 작품을 봤고 허용순 선생의 작품을 올리고 싶어 해 제가 중간 역을 했을 뿐입니다. 소품만 올리던 허용순 대작을 올릴 기회가 된 것이지요. 

 

로미오와줄리엣.jpg

로미오와줄리엣

 

14년간 국립발레단원으로 활동했는데, 프로와 프리랜서, 어떤 장단점을 느끼나요?


직업무용수로의 가장 큰 장점은 몸을 규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죠. 컨디션에 따라 춤을 추고 싶지 않은 날도 있지만 직장이다 보니 스튜디오를 갈 수 밖에 없고 그곳에 가면 춤을 출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이게 되죠. 프리랜스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져야 해요. 지금도 저는 매일 4시간 연습과 중간 개인레슨 그리고 재활치료를 겸하면서 몸 관리를 해요. 쉬지 않고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몸을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함이죠. 몸은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도태됩니다.

 

발레리나의 수명은 짧죠. 그래도 나이 들어감에 있어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발레단을 나온 후 뮤지컬, 방송,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하며 얻는 것들, 세월에서 묻어나는 연륜과 감정 등 표현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이 느껴요. 나만의 경험이 나만의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어려서는 작품을 관람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에만 집착했었는데 이제는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을 볼 눈이 생겼어요. 동작에 있어서도 디테일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하며 움직임을 하게 되니 작은 에너지에서도 큰 힘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 몸 사용법을 알게 되니 나이 들어감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스스로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발레리나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배역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테크니컬한 작품보다는 무대의 저와 객석의 관객들이 서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무용작품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지금 김주원에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춤에 열정,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무용 외의 일상에 정말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제가 특별히 쇼핑이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요. 혼자 뒹굴뒹굴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심하게 열정이 치솟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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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호수

 

프리랜서로 문병남, 이원국, 이정윤, 허용순,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 등에 출연했는데요. 그 외 작업하고 싶은 안무자가 있나요?  


전 안무가를 존경합니다. 그 누구와도 작업을 하고 싶고요. 또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협업도 꿈꾸고 있습니다. 

 

뮤지컬, 라디오 DJ등의 활동을 하면서도 춤 무대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요? 


타 장르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내 표현의 도구를 넓히기 위함입니다. 살아가며 얻는 경험이 무대 위에 춤으로 그대로 표현 되거든요. 뮤지컬을 통해 동작보다는 내면의 미세한 감각들이 더 호소력을 갖게 됨을 알게 되었어요. 춤을 추다보면 몸 도구에만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감정 표현에 소원해질 수 있어요. 

 

볼쇼이 아카데미에서 ‘캐릭터 수업’을 받지 않았나요? 


러시아 유학에서 액팅 수업을 받긴 했지만 당시에는 저의 마인드가 테크닉에 대해서만 더 집착을 했었죠. 아카데미는 프로 발레리나를 양성하는 곳이기에 테크닉 수업에 더 집중을 했고요.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무용수들의 추세가 이제는 크로스오버로 한가지만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안무가 또한 영역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고요. 사실 전 ‘융합’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현시대에 좌표를 찍을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크로스오버를 넘어서 이제는 융합의 시대가 왔다고 봐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의 흐름을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춤을 잘 춘다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가르치는 직업, 어떤가요? 


지금까지 전 누구를 가르쳐 보질 않았어요. 항상 저를 트레이닝 하는 데에만 집중을 해 왔기 때문에 지도자의 역할이 참 힘듭니다. 지금 이 일이 나에게 맞나? 내가 잘 하고 있나? 제가 성장해 오면서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나의 춤 철학을 심어주었고 삶의 가치관등 무용외적인 부분들을 가르쳐 주셨어요. 볼쇼이 아카데미의 마리나 레오노바 교장선생님께는 지금도 안부 전화를 드리고요. 플로린이나, 최태지 단장 그리고 선화예중 시절의 주디 선생님과도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전 제가 배웠던 것처럼 누군가를 가르칠 때 춤뿐만 아니라 삶까지 지켜주고 싶습니다. 또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성격상 대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은 집요하게 파고들죠. 학생들도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행복합니다.

 

자신에게는 혹독한데요. 학생들에게도 엄격한가요?


그렇진 않아요. 언니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요. 그리고 노는 것도 연애도 공부도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경험들이 춤을 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모습은 굉장히 싫어합니다. 

 

러시아 선생님들은 티칭에서 굉장히 엄격하다지요.


전 마리나 레오노바 선생에게서 춤을 배웠는데요. 그분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굉장히 우아한 선생님이었어요. 그분의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주역무용수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우린 그분을 ‘조용한 카리스마’라고 할 정도로 화를 내시진 않았지만 눈빛으로 제압을 하셨죠. 

 

무용수였던 김주원이 새로운 장르로의 도전을 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요? 


성격자체가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습니다. 스스로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착각을 하는지 호기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목마름이 많은 걸 보면 전 분명 심장이 뜨거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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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르의여인

 

자신에 대한 악평도 그 장르로의 도전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시겠죠? 


전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를 중요시 여기지 않습니다. 만들어가는 과정에 내가 얼마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쏟았는지에 초점을 맞추죠. 그런 과정을 거친 후 결과물이 좋다면 좋은 거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러 일을 해보면서 과정이 훌륭하면 결과도 훌륭하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좌우명이라고 하면 “최선을 다하며 살자”라는 생각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지금까지 누가 김주원의 가장 질투의 대상(라이벌) 이었나요? 


제 주변의 모든 이들입니다. 특정인을 지칭할 수가 없습니다. 선후배, 동기 할 것 없이 모두가 저의 경쟁상대였으니까요. 부족한 표현력, 짧은 다리, 유난히 길기만 한 목, 긴 팔 등 스스로 못난 무용수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이 가장 무서운 경쟁자였던 거죠. 그걸로 마음의 상처도 많았고 무용을 포기 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죠. 하지만 점점 제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남의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만의 빛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저는 똑같은 테크닉을 구사해야만 하는 콩쿠르를 싫어합니다. 각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이 있고 그걸 표현해내는 해석법 또한 생각의 차이만큼 달라지는 법이거든요. 인생을 살아가는데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데요. 내 스스로의 틀 안에 갇혀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 같아요.

 

춤 연습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전 거울을 보는 게 싫어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족해 보이고 그런 못난 모습을 보는 게 싫어 춤추러 가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연습실로 향하고 어느 새 무대에 서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요. 어릴 때 발레를 증오했던 괴로운 경험도 있어요.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연습했고요. 제가 언제 무대에서 내려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춤 때문에 행복하고 춤을 출 수 있어 행복하고, 위로 받고 있습니다. 춤과 내가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어요. 

 

무용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했어요. 부모님이 음악과 미술을 하셨고 고모님은 임성남선생의 제자로 발레를 전공하셨어요. 저희집 4남매는 모두 발레를 배웠고 저만 끝까지 전공을 했죠. 선화예중 시절 한양대학교에서 러시아 볼쇼이 아카데미 선생이 열흘간 워크샵을 하는데 그때 쿠즈예초바 선생이 저에게 제대로 된 발레를 배우러 러시아에 가자고 권유를 했어요. 90년대 초반의 구소련은 정말 무서운 곳이기에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죠. 지금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참 당돌하게 자퇴서를 학교에 제출하고 유학을 강행했습니다. 볼쇼이 아카데미라도 보고 오자는 취지로 부모님과 함께 소련으로 갔고 너무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학교에 반해 부모님은 저를 두고 한국으로 귀국하셨죠. 

 

유학생활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힘들죠. 중학교 2학년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의 외로움도 컸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선생님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낸 것 같아요. 

 

‘김주원’ 하면 ‘지젤’ 라인이 예쁜 무용수라는 말을 많이들 하죠. 


기본적으로 전 발레리나를 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동작 하나하나에 굉장히 정성을 들여서 해요. 저와 같이 춤을 추는 무용수들은 정말 예쁘고 타고난 춤꾼들이 많기에 좌절을 많이 했죠. 그들은 나의 스승이며 동료이고 라이벌이에요. 러시아에서도 항상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질책했고 19세에 한국의 발레단에 입단을 하면서도 다른 춤꾼들에 비해 가진 게 많지 않은 내 자신을 보며 좌절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도전을 했죠. 그게 김주원의 인생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에게 어울리는 춤, 몸의 선을 찾게 된 것이죠. 그 움직임을 찾기 위해 국립극장(옛,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연습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현재 몸 상태도 좋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족저근막염은 1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앓고 있습니다. 2015년 폐기능과 호흡곤란으로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힘든 시기를 지냈고요. 허리와 목 디스크는 지금도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몸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근육 사용으로 인한 결과물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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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와 아르망

 

국립발레단의 레파토리 중 좋아하는 작품은요?


일단 전 드라마가 있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마이요의 <신데렐라>와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애쉬튼의 <마그리트와 아르망>, 롤랑 쁘티의 <카르멘>등은 제 스스로가 캐릭터 분석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한 작품입니다.

 

발레단 퇴단 이후 애쉬톤의 작품을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하셨죠?

 

<마그리트 아르망>은 애쉬톤 재단에서 아무에게나 판권을 주지 않는 작품입니다. 2000년 로얄발레단에 한 달간 머무르면서 로얄발레단으로의 이적을 꿈꾸었습니다. 머무는 동안 실비 길렘이 출연한  <마그리트 아르망>을 보고 커튼콜이 끝났는데도 객석에 멍하게 앉아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유튜브가 발달해 있지 않았기에 그 작품을 실황으로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거죠. 이후 10년 넘게 그 작품을 한국에서 발표하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2013년에 이루어진 것이죠.

 

또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관심 있는 작품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네요.

 

안무를 하실 생각은요? 


전 안무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단 안무가들의 뮤즈가 되고 싶은 생각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언어를 내 생각과 신체로 구현해 내는 것도 저에게는 특별한 일이거든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창조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내가 안무에 관심이 있었다면 벌써 도전을 했을 거예요. 국립발레단의 한국적 레파토리 중 하나인 <왕자호동>도 참 좋았었는데 더 이상은 올리지 않더라고요. 5월 국립발레단의 강효형 단원의 안무작 <허난설헌> 굉장히 기대됩니다. 한국적 소재를 안무자가 젊은 감성으로 어떻게 표현해 낼지.... 응원합니다. 

 

2017년 계획을 들려주세요.


2010년 뮤지컬 <컨택트>로 ‘뮤지컬 어워드’ 여우신인상을 받았는데요. 그 작품을 올 6월에 다시 공연하구요. 그 외에 <팬텀>과 광주시립발레단 허용순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 대한민국발레축제에 초청된 발레리나 김세연의 작품 출연, 문병남 안무의 <안중근> 그 외에도 고민중인 작품들이 있습니다.

글 이수연(월간 <춤과사람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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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춤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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