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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세한 차이를 사랑한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과 필립 글래스의 ‘Knee Pl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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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여인의 눈으로 봤을 때, 모든 인간의 삶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거의 비슷한 부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때 우리는 미세한 차이를 사랑한다. 이 미세한 차이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인류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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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것도 매일 조금씩 이어가는 문장으로 5년 동안 쓴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1997년 부커상을 수상한 아룬다티 로이의 이야기는 문학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다. 이 원고를 입수해 영국에 보낸 하퍼콜린스의 인도 편집자 판카즈 미쉬라는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이후 최고의 소설이라는, 인도 작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첨부해 영국에 보냈고, 원고를 받은 세 명의 출판인 중 두 명은 당장 계약하자고 연락했으며, 나머지 한 사람, 즉 영국 하퍼콜린스의 데이비드 고드윈은 원고를 읽고 난 즉시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가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 이 신데렐라 이야기는 출간 한 달 뒤 이 소설의 판권이 18개국에 팔렸으며 그해 거의 모든 영미권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는 후일담으로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이 절정의 순간, 아룬다티 로이는 이런 글을 쓴다.

 

책의 판매를 통한 금전적 이익이 몰려들어왔다. 내 은행계좌는 급격히 불어났다. 나는 내가 우연하게도 이미 가진 자들 사이에 세계의 부를 순환시키고 있는 거대한 파이프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파이프에서 어마어마한 속도와 힘으로 돈이 쏟아져 나오면서 내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나는 『작은 것들의 신』 속의 모든 감정, 모든 작은 느낌이 모조리 은화(銀貨)로 교환되어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9월이여, 오라』, 6쪽)

 

이 글은 중부 인도의 나르마다 강에서 반쯤 지어진 상태에서 논란을 빚었던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에 대한 반대운동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씌어졌으나 그녀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자본이 주도하는 개발은 눈에 보이지 않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것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주장은 『작은 것들의 신』을 읽다보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도입부부터 독자를 매혹시키는 이 소설의 멋진 문장들은 개발된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수많은 작은 것들이 활발하게 살아 있던 세계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개발은 훌륭한 소설의 가능성마저도 희생시키는 셈이다.

 

작은 것들을 향해 열린 소설적 감각


이 소설이 말하는 ‘작은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첫 장만 펼쳐도 금방 알 수 있다.

 

아예메넴의 5월은 덥고 음울한 달이다. 낮은 길고 후텁지근하다. 강물은 낮아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고요히 서 있는 초록 나무에서 검은 까마귀들이 샛노란 망고를 먹어댄다. 붉은 바나나가 익어간다. 잭프루트가 여물어 입을 벌린다. 과일향이 진동하는 공기 중을 방종한 청파리들이 공허하게 윙윙댄다. 그러다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져서는 햇볕 속에서 당황한 채 죽어간다.
밤은 맑지만 나태와 음울한 기대가 배어 있다.(11쪽)

 

『작은 것들의 신』은 초록 나무, 검은 까마귀, 샛노란 망고, 붉은 바나나, 청파리 등이 무한히 중첩된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계는 불가촉천민 목수인 벨루타와 짧은 사랑을 나누고 죽은 어머니 암무의 나이, 곧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서른하나의 나이가 된 이란성쌍둥이 라헬이 오빠 에스타를 만나러 고향 아예메넴으로 찾아오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다. 라헬에게는 두 개의 기억이 있다. 하나는 이란성쌍둥이인 자신들의 출생에 대한 기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촌 소피 몰의 장례식에 대한 기억이다. 이로써 시작되는 라헬의 기억의 공간은 온갖 살아 있는 감각대상들이 가득 찬 포충망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 라헬의 장난감 시계가 2시 10분 전에 영원히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이 중첩된 기억의 세계 역시 ‘1969년 12월’이라는, 역사의 한 단면에 머물러 있다. 라헬은 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비의 온도, 강물의 흐름, 불가촉천민의 냄새 등을 떠올린다. 그 탓에 사건은 필립 그래스의 음악처럼 작은 차이만을 보여주며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지만, 라헬의 기억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인간 역시 거대하게 순환하는 생태계의 한 요소이며, 이 세계에서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쌍둥이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그들의 외삼촌인 차코다. 차코는 어린 조카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1. 먼저, ‘역사의 집’에 대해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안으로 들어가 조상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리고 책들을 보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봐야지. 냄새도 맡아야 하고.”
“하지만 우리는 들어갈 수가 없어. 왜냐면 우리는 밖에 있고 문은 잠겨 있거든.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본대도 보이는 것은 그림자뿐이지. 애써 들으려 해도 들리는 것은 속삭임뿐이지.”
“우리는 ‘전쟁 포로’야. 우리의 꿈은 변조되었어.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우리는 닻도 없이 파도가 거센 바다를 항해하고 있어. 우리는 상륙을 허가받지 못할지도 몰라. 우리의 비애는 결코 충분히 슬프지 않을 거야. 우리의 기쁨은 결코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 거야. 우리의 꿈은 결코 충분히 크지 않을 거야. 우리의 삶은 결코 충분히 영향력이 있지 않을 거야. 주목하기에는.”(79~80쪽)

 

2. 그리고, ‘지구 여인’에 대해서

 

그는 아이들에게 지구-46억 년이나 됐지만-를 마흔여섯 살의 여인, 그러니까 그들에게 말라얄람어를 가르쳤던 앨리야마 선생님 연배의 여인으로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지구가 현재의 모습처럼 되기까지는 ‘지구 여인’의 평생이 걸렸다. 바다가 갈라지기까지. 산이 융기하기까지. 처음으로 단세포생물이 나타났을 때 ‘지구 여인’은 열한 살이었다고 차코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얘들아, 우리가 무엇이든 뭐가 되든 모든 것은 그저 그녀의 눈이 한순간 반짝인 것일 뿐이야.”(81쪽)

 

서로 충돌하는 목소리들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대학 시절 심야 FM방송을 통해서였다. 앨범 <해변의 아인슈타인>에 실린 ‘Knee Play 1’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앨범 제목과 작곡가 이름은 바로 외워버렸으나 그 시절에는 그 앨범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후 오랫동안 노래를 다시 듣지 못했지만, 선율은 입에서 계속 맴돌았다. 거기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시인의 집에 갔다가 클래식 시디들 사이에 그 앨범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그 시인에게 그 음반을 빌려와 테이프에 녹음한 뒤 듣고 또 들었다. 검색창에 앨범 제목만 입력하면 바로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선사시대 이야기인 것 같다.

 

앨범에는 모두 5개의 ‘Knee Play’가 수록돼 있다. 설명에 따르면 이 ‘Knee’라는 것은 무릎, 즉 막과 막을 이어주는 관절을 의미한다. 로버트 윌슨이 감독한 이 오페라에는 이렇다 할 플롯이 없다.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4막 사이를 이어주는 ‘Knee Play’도 마찬가지다. 내가 빠져들었던 ‘Knee Play 1’은 일렉트릭 오르간의 반주에 맞춰 영문으로 숫자를 되뇌는 목소리가 반복되는데, 이는 악보 읽는 기초 연습을 뜻하는 솔페지오를 응용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숫자를 통해 우주의 움직임을 계산한 아인슈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들어보면 필립 그래스의 이 음악은 이런 식의 해석을 거부한다. 그것은 그저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의 무한반복인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마치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서 죽는 일을 노래하는 것 같다. 그 일은 미세한 차이만을 보이며 반복된다. 지구 여인의 눈으로 봤을 때, 모든 인간의 삶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거의 비슷한 부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때 우리는 미세한 차이를 사랑한다. 이 미세한 차이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인류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본다. 그런 점에서 고향 케랄라에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작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아룬다티 로이가 일찌감치 대지에 대한 사랑에 눈뜬 건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작은 것들을 알아본다면 그는 사랑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랑의 법칙이 가능해진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그들은 서로의 엉덩이에 난 개미 물린 자국을 보고 웃었다. 잎사귀 끝에서 미끄러지는 어설픈 애벌레에, 혼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뒤집어진 딱정벌레에. 강에서 늘 벨루타를 찾아내어 물곤 하는 작은 물고기 한 쌍에. 유난히 더 경건하게 기도하는 자세를 한 사마귀 한 마리에. ‘역사의 집’의 뒷베란다 벽의 갈라진 틈에서 살며, 쓰레기들-말벌 날개 한 조각. 거미줄 일부. 먼지. 썩은 잎. 죽은 벌의 빈 흉갑-로 몸을 가려 위장하는 작은 거미 한 마리에.(461~462쪽)

 

이 소설에서 눈여겨볼 것은 묘사만이 아니다. 건축과 학생이었던 그녀의 경험이 그 독특한 구조 속에서 발현됐다. 5년 동안 집필하면서 그녀는 한 번도 고쳐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생각과 글쓰기는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한 번 내쉰 숨을 다시 쉴 수는 없습니다.”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 소설은 라헬의 귀향에서 시작해 이야기의 중간인, 암무와 벨루타의 정사 장면에서 끝난다. 마지막 단어는 ‘내일’이다. 평면도에 설계하듯이 어느 한 부분에서 시작해 다른 부분에서 끝나는 것처럼 거기에는 시간적인 순서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그건 영원한 반복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이는 이분법적으로, 혹은 선형적으로 이야기를 바라보지 않는다. 기억이 중첩되듯이, 비극과 희극은 서로 충돌한다. 서로 겹쳐지는 목소리들이 빚어내는 입체적인 사운드스케이프처럼 필립 글래스의 ‘Knee Play 1’과 마찬가지로, 이 충돌 속에서 더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더없이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이 모순 속에서 서로 뒤엉키며 생생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저/박찬원 역 | 문학동네
1997년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수상한 걸작,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번으로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과거 한 차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번 문학동네판 새로운 번역은 작가가 구사하고 있는 정교한 구성과 치밀한 묘사, 시적인 문체, 언어유희까지 최대한 살려 원작이 지닌 비극적 아름다움을 오롯이 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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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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