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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책방

어째서 서점 창업 붐이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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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좋은 책은 독자들이 알아서 읽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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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최근 몇 달 사이에 “소규모 독립서점이 왜 이렇게 많이 생기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어째서 난데없이 서점 창업 붐이 일어난 걸까. 나도 모른다. 다만 이것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적어도 삼사 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될 조짐을 보였고, 단순히 책을 쌓아놓거나 도매상에서 공급해 주는 대로 진열하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제 멋대로의 큐레이션을 통해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책이라는 올드 매체에 불어 닥친 위기와 그에 대한 출판인들의 어떤 인식에 작은 변화를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인 유어마인드가 2009년부터 꾸준히 가꿔 온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폭발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도 대략 삼 년쯤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작년여름에 나는 ‘김탁환의 전국제패’라는 이름으로 신간을 들고 전국의 소규모 서점을 돌며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때 느꼈던 건, 각 도에서 가 볼만한 작은 서점이 겨우 한 군데이거나 아예 없었던 과거와 달리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혹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가능하다면 일주일이 아니라 보름 정도 계속 진행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비슷한 시기에 각자 서점을 꾸리자고 마음먹은 이들이 한결같이 지역 공동체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과 시간이 나는 대로 자주 방문하는 일이 지역 서점을 응원하는 길임을 깨달은 동네주민들의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는 것도 새롭게 인식했다.

 

‘만약 서점을 차린다면 어떤 형태일 것인가’에 대해 내가 진지하게 고민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출판사를 운영하는 데도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서점을 차릴 여력이 없다. 하지만 상상 내지 공상을 할 수는 있는 거잖나.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떼거리 서점 유랑단’에 가입하여 이런저런 서점을 기웃거렸다. 서점과 관련된 책이라면 덮어놓고 찾아 읽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앞으로의 책방』과 마주하게 되었다. 도서 유통업으로 잔뼈가 굵은 저자가 ‘책방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고자 했던 과정에서 파생된 고민을 담은 결과물인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해서 오늘은, 서점을 차리고자 하는 형제자매님들이 한 번쯤 들여다봐도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저자가 눈여겨봤거나 머릿속에 그린 서점 몇 군데를 소개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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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인 책방을 빌려서 진행하는 이카분코 페어 (여름의 숲 출판사 제공)

 

1. 이카분코
동네책방 이카분코(오징어 문고)가 문을 연 것은 2012년 6월의 일이다. 하지만 ‘문을 열었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수사일 뿐 애당초 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책방 주인이 되고 싶은데 장소를 마련하기도 어렵고 책을 장만할 비용도 없었던 유키 씨는 오프라인 책방이 겪는 제약을 피해 장소와 책이 없어도 가게를 열 수 있는 공기 책방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하여 매일 트위터에서 ‘안녕하세요, 책방 문을 열었습니다’라고 떠들고, 서점 소식지 ‘이카분코 신문’을 발행하고, 오프라인 책방의 책장을 빌려서 ‘이카분코 페어’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운영은 점주인 유키 씨와 ‘아르바이트 짱’ 두 사람이 맡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이카분코 사원’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주제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날 한정으로 정사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런 발상으로 이카분코는 달(Moon)에도 지점을 열었다. 이카분코의 이벤트는 “상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서” 늘 많은 독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2. HONxMONO BOOKS
하야카와 부부가 ‘혼(책) 모노(물건) 북스’를 오픈한 계기는 마르케스의 소설 때문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를 읽고 ‘바다에서 장미향이 나는 장면’을 내내 머릿속에 떠올리던 남편이 향수 회사에 다니던 아내에게 부탁하여 그 향기를 향수로 만든 것이다. 이때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처럼 이 향수를 가지고 싶어 할 수 있겠다는 것,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향수로 인해 읽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그렇다면’으로 발전하여 책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책과 함께 판매하는 서점을 차리게 되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품을 완전히 상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제법 걸리고 대량 판매는 어렵지만, 새로운 상품을 전시하는 매주 월요일에는 독자들의 시선이 쏠린다. 상품이 전시되는 일주일 동안 구매 희망자가 입찰하고 일요일에 낙찰자가 결정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3. 책방 기스이이키
1956년에 창업한 동화 전문 서점 ‘기스이이키(란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서 염분이 적은 물이 모인 지역이라는 뜻)’에는 특별한 방이 하나 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 비밀의 방이다. 단, 열 살 미만의 어린이라도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점에 비치된 특정 동화의 뒤표지에 감춰진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동화의 뒤표지에 숨겨진 비밀의 암호를 풀어 그 암호를 점원에게 전달하면 비밀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비밀의 방에서 본 것은 어른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개업한 지 6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방의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공개된 적이 없다고 한다.

 

중간에 보이는 낡은 목재 문이 비밀의 작은 방이다.jpg

 중간에 보이는 낡은 목재 문이 비밀의 작은 방이다 (여름의 숲 출판사 제공)

 

4. BIRTHDAY BUNKO
‘생일 문고’라는 것은 서점 이름이 아니라 기획의 제목이지만 얼마든지 특화된 서점으로 만들어도 무방할 듯하다. 이를테면 잡화는 한 번 산 사람이 또 사거나 가족이라도 구성원마다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은 한 번 산 사람이 다시 사는 경우가 드물고 가족끼리는 돌려보니까 책을 잡화처럼 포장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생일 문고의 탄생 배경이다. 즉,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생일을 조사하여 그날 태어난 유명작가의 문고본을 오리지널 커버로 싸서 판매한 것이다. 커버의 표면에는 작가의 이름과 생일, 약력이 적혀 있어서 독자로서는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작가가 어떤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생일 기념으로 구입하거나 친구의 생일에 기념 삼아 선물하기도 좋다. 이 기획은 크게 히트하여 개시한 첫 달에 한 군데 서점에서만 2,500권이 팔렸으며 그중에는 365권이나 구입한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몇 번이나 같은 책을 살 가능성이 있는 선물용 책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 기획이다.jpg

몇 번이나 같은 책을 살 가능성이 있는 선물용 책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 기획이다 (여름의 숲 출판사 제공)

 

이 외에도 다양한 서점과 그에 관한 아이디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이 정도로 마무리해야겠다. 읽으면서 ‘이런 서점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만약 이런 서점이 한국에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응원하고 좋아해 주는 독자들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쯧쯧, 책 팔아먹으려고 별짓을 다 하는구만’이라거나 ‘서점이 너무 돈만 밝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거 단순히 장삿속이잖아’라며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꽤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일 문고라니 재고처리하기 좋겠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저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듯 적어놓은 문장이 있다.

 

“제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책에 흥미를 갖게 할까 하는 점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책 같은 건 읽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습니다. 보통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의 매력을 아무리 설명해도 책에 흥미를 갖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책이 있어 읽어보니 재미있더라’는 체험을 한 적이 없다면 책의 세계에 깊게 발을 들일 수 없겠죠. 때문에 책방의 역할은 그 ‘최초의 한 권’과의 만남을 좀 더 매력적으로 연출하는 것입니다. 보통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알리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작은 수법이 필요합니다.” (141~142쪽)

 

확실히 책이라는 것은 사는 사람은 사지만 사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사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사지 않는 사람은 사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다른 모든 업종과 마찬가지로 서점도 계속해서 새로운 독자를 늘리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좋은 책은 독자들이 알아서 읽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과 ‘책을 알리기 위한 작은 수법’을 ‘단순히 장삿속’으로 보는 분들에게는 별 쓸데없는 내용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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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앞으로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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