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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더> 햄버거로 다시 쓴 미국의 역사

햄버거로 다시 쓴 서부극, 즉 ‘햄버거 웨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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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폭력의 형태는 아니지만, 맥도날드 형제가 획기적으로 실현한 브랜드를 자본의 힘으로 약탈했다는 점에서 레이의 행위는 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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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영화 <파운더>의 한 장면

 

‘맥도날드’는 햄버거의 대명사다. 개인적으로 이곳의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편은 아니지만, 주문과 동시에 바로 받아먹을 수 있고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어 시간에 쫓길 때면 종종 찾고는 한다. 맥도날드 특유의 즉석 시스템을 완성한 건 맥 맥도날드와 딕 맥도날드 형제다. 그렇다면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기원을 쫓는 <파운더>는 맥도날드 형제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사연이 흥미롭다.

 

<파운더>의 주인공은 맥도날드 형제가 아니다.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이다. 레이는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팔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52세의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그 전까지 이쑤시개, 종이컵 등 별의별 영업을 다 해본 레이는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삶인데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러던 중 밀크셰이크 믹서기 8대를 한꺼번에 주문한 곳이 있어 의아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간다.

 

바로 맥도날드. ‘황금 아치’ 간판이 인상적인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레이는 뭔가 끓어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종업원이 없어도 주문이 가능하고 주문한 지 30초 만에 햄버거가 나오고 그렇게 빨리 조리했는데도 맛이 아주 기가 막힌데! 맥도날드에 매료된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를 찾아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다. 어렵게 동의를 얻어낸 그는 맥도날드 매장을 미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확장한다.

 

그렇다, 맥도날드 메뉴와 주문 방식과 매장 설계 등 일련의 방식을 도입한 건 맥도날드 형제이지만,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운 건 레이 크록이다. 이는 비유컨대 각각 지역구와 전국구 수준의 꿈을 꾼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의 야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맥도날드 형제는 프랜차이즈를 확장하기 이전 무엇보다 최상의 품질과 가족 개념의 직원 복지가 중요했다. 꿈의 기업을 목표했던 맥도날드 형제에게 미국 전역으로의 진출은 그들의 이상을 포기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레이는 신속함이야말로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레이가 맥도날드에 주목했던 1954년의 미국은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전에 없던 경제 호황을 누리며 무엇이든 빨리 변하는 시기였다. 주문과 조리가 동시에 이뤄지는 맥도날드의 시스템을 고려하면 미국인의 생활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는 것에 걸맞게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에 매장을 ‘프랜차이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레이가 맥도날드 매장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맥도날드 형제를 잘 설득하든가, 아니면 힘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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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미국적인 가치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개척’이다. 할리우드는 일찍이 미국의 개척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서부극’을 만들었다. 황량한 서부의 땅에 문명을 건설한 미국의 역사는 개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서부극과 함께 미식축구, 맥도날드 등이 거론되고는 하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척의 핵심은 시쳇말로 ‘땅따먹기’다.

 

공교롭게도 극 중 레이의 서재에는 ‘역마차’를 담은 사진이 벽에 걸려 있다. 과거 개척시대에 미국인들은 가족 혹은 이웃과 함께 역마차를 타고 서부로 이동하여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1954년의 레이는 동부에서 자동차를 몰고 캘리포니아 ‘서부’에 위치한 맥도날드 샌 버나디노 지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맥도날드를 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레이는 맥도날드 형제를 집요하게 설득하고 끝내 이들에게서 브랜드를 뺏어오는 데 성공한다.

 

계약상, 레이가 매장을 새로 내거나 시스템에 변화를 꾀할 때는 반드시 맥도날드 형제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또한, 신규 매장의 수익 일부 중 발생하는 로열티에 대해서도 맥도날드 형제보다 지분이 적은 레이는 늘 불만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매장 수에 비해 로열티 액수가 적으니 금고에 돈이 쌓이지 않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레이의 묘수는 로열티 대신 매장이 들어설 ‘땅’에 대한 권리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러면 돈도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고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새로운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어 맥도날드를 인수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폭력의 형태는 아니지만, 맥도날드 형제가 획기적으로 실현한 브랜드를 자본의 힘으로 약탈했다는 점에서 레이의 행위는 폭력적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서부극이 미국인의 개척정신을 찬양하면서 원래 미국 서부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학살한 폭력의 역사를 은폐한 것과 맥을 함께 한다. 이게 핵심이다. 햄버거보다 햄버거로 벌어들이게 될 땅따먹기의 가치에 주목한 레이의 <파운더>는 햄버거로 다시 쓴 서부극, 즉 ‘햄버거 웨스턴’이다.

 

미국의 개척은 말이 좋아 확장이지 유무형의 폭력적인 형태로 미국 서부에서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샌 버나디노에서 출발한 맥도날드는 현재 전 세계 3만 5천여 개에 이르는 매장을 통해 맥도날드 왕국을 건설했다. 맥도날드는 오늘도 미국 문화의 최전선에서 미국적 가치를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맥도날드 형제의 햄버거로 전 세계를 집어삼킨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개척사는 곧 미국 폭력의 역사의 재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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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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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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