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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마주하는 세 가지 자세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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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우아한 사람이라는 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진주 귀걸이를 매단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숨어 있는 작은 기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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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후들에게 글 잘 쓰기로 소문 난 한수희 작가가 에세이 『온전히 나답게』를 쓴 이후 1년여 만에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로 돌아왔다. ‘담담할 것’ ‘우아할 것’ ‘씩씩할 것’이라는 그녀만의 삶의 자세로 일궈진 이 책은 그 맛이 일품이다.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인생을 대하는 그녀만의 비굴하지도 주제넘지도 않은 담백한 자세에 어느 사이엔가 몰입하게 된다. 


한수희 작가는 매거진 〈AROUND〉에서 영화와 책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고, 학생들에게 영화 만들기를 가르친다. 경기도 안양에서 그 이름도 단순한 ‘책과 빵’이라는 카페의 주인장을 하다가 지금은 동명의 이름으로 작업실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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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자꾸 곱씹게 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로 제목을 정하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책 제목을 생각하고 책을 쓰는 편은 아닙니다. 제목이나 목차나 여타 내용 외적인 부분은 대부분 편집자에게 믿고 맡기는 편입니다. 이 제목도 담당 편집자가 지어준 제목이에요. 처음에는 ‘응? 이게 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로 예쁘지도 잘나지도 않고 밋밋하고 아리송한데다 어쩐지 신경을 좀 긁는 면도 있는 사람이 헤어지고 돌아오면 자꾸 생각나는 것 같은 매력이 있더라고요. 직선으로 걷는 것도 아니고, 빙빙 도는 것도 아니고, 나선으로 걷는다는 것이 좋았어요. 직선으로 가는 것은 멋이 없고 빙빙 도는 건 답답하지만, 나선으로 걷다 보면 둘러 둘러서 어쨌든 처음과는 다른 길로 나오게 되는 거잖아요. 인생은 달리기가 아니니까 사람들은 대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는 것 같아요. 나중에 돌아보면 ‘아이고, 잘못 왔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래도 제대로 온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거예요. 결국 출구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산다는 건 뭐 그런 거 아니겠니’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는 작가님의 첫 책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의 개정증보판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새롭게 출간을 결심하셨나요?


실은 첫 책을 다시 볼 때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책 『온전히 나답게』를 쓰면서야 에세이가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 알았어요. 사실 에세이는 모든 원고마다 결론이 있을 필요도 없고 길을 알려줘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더라고요. 아무런 결론도 없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도 독자가 알아서 그 의미를 찾아주시리라고 믿고, 마치 무대 위의 록스타가 관객 위로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관객이 몇 없어서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전신골절을 입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별 수 없는 거죠. 물론 『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버전이 제가 쓴 글의 색채와 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마음에 들어요.

 

이 책에는 한수희 작가님이 인생을 마주하는 세 가지 자세 ‘담담할 것’, ‘씩씩할 것’, ‘우아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런 삶의 자세를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마흔이 되어 있더군요. 요즘도 제가 마흔이라는 게 가끔씩 믿어지지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마흔이라는 나이는 얼핏 적은 것 같지만 실은 굉장히 많은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인생론을 논할 처지도, 자격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 삶에 있어서만은 저만의 방침 같은 것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흔까지 살면서 이 많은 걸 다 해봤으니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겸손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수밖에요.


사실 전 담담하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조금 씩씩하기는 한 편입니다. 많이는 아니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담담함과 우아함을 갖춰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어요. 그리고 제게 우아한 사람이라는 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진주 귀걸이를 매단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숨어 있는 작은 기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겠지요. 그렇게 우아한 할머니로 늙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해도 별 수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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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면 책과 영화가 자주 소개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도 늘 책과 영화를 끼고 사신다고 들었는데, 그것들은 작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둘 낳고 회사를 그만 둔 후부터였어요. 세상에서 저에게 가장 맞지 않는 일이 있다면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물론 육아는 저처럼 이기적인 인간이 타인을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값진 체험이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아무튼 그 시절 너무 너무 힘들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여행기를 많이 읽었는데요,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거실에 앉아 어떤 여행기를 읽다가 한 구절 때문에 가슴이 벅차 밤을 꼬박 새운 적이 있어요.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동아줄에라도 매달리듯이 살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했지요. 그렇게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이 몇 권이나 되나 봤더니 200권이더라고요. 정말 미친 듯이 읽은 거죠.


지금은 그렇게 미친 듯이 읽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은 제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에요. 그건 레이먼드 카버가 말했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관한 세계인 것 같아요. 그런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매번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솔직히 억지로 보는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이 둘을 키우고 일도 하면서 영화 볼 짬을 내기란 거의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요즘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매주 목요일 저녁은 영화 보는 날로 정해놓고 집을 탈출해 작업실 벽에 프로젝터로 쏘아놓고 봅니다. 시간 되는 친구들과 함께 맥주나 와인 홀짝거리면서 보는데 정말 좋아요.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 ‘딱 나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 같다’라는 평이 많습니다. 또한 내신 책마다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셨잖아요. 이렇게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글 또는 글 잘 쓰는 숨은 비결이 있으신가요?


그건 제가 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딱히 작가가 되려는 사람도 아니었고 어떤 문학적 야심도 없이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특별한 문학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회사에 다닐 때 글 쓰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남성잡지사의 기자로 5년 가까이 일했는데요, 그때 매달 마감을 하면서 안 써지는 글이라도 쥐어짜는 것에 단련이 되었습니다. 그 잡지는 기사를 무조건 재미있게 써야 했어요. 어떻게 써야 독자를 한번이라도 더 웃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썼어요. 다른 잡지라면 1~2시간 만에 쓸 수 있을 글을 하루 종일 잡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그래서 저에게는 아직도 술술 잘 읽히는 글이나 재미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별 재능이 없기에 원고 하나 쓰는 시간도 아마 남들의 두세 배는 될 것 같고요. 편하게 쓴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 편하게 쓰지도 못합니다.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저는 늘 대화하는 것처럼 씁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그 사람이 제가 쓴 것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면서 여러 번 고칩니다. 또 제가 잘 모르는 것을 배우는 느낌으로 쓰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쓰는 글의 주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다가 쓰는 과정을 통해 알아가는 거죠. 결론을 정해놓고 쓰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 자신과 대화하듯이 쓰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머리가 별로 좋지 않아서 이 방법으로밖에는 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기만을 하지 않는 것이에요. 글을 쓰는 것은 말을 하는 것과는 달라서, 자신을 포장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데요. 그러고 나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가장 고민합니다. ‘이게 정말 네가 생각하는 그거야?’ 라고 계속해서 물으면서 씁니다. 조금이라도 멋을 부리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은 고치면서 없애고 있어요. 물론 그럼에도 글 속의 한수희가 실제의 한수희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분이 있었나요?


말했다시피 저는 무척 평범한 사람이라서요, 누가 제가 쓴 책을 읽고 있을지 궁금해서 종종 인터넷을 뒤져보곤 합니다. 어떤 남자분이 SNS에 남긴 글이 기억에 나네요. ‘이런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보자마자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제 남편이 읽는다면 혀를 차다가 혀가 빠질 만한 글이었지요. 결론은, 남편 외에 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남자는 이 지구상에 그 분 하나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앞으로 계획하시거나 쓰시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지금 쓰고 있는 여행기의 원고가 예정대로 무사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세이에 묶이기는 하지만 제가 쓴 책들은 세부적으로는 모두 다른 장르인데요, 새 책을 쓸 때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라 너무 괴롭습니다. 이 괴로운 걸 왜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괴롭습니다. 여행기도 처음이라 괴롭습니다. 하지만 괴로운 가운데도 가끔 즐거울 때가 있는데요,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한수희 저 | 웅진지식하우스
『온전히 나답게』에서는 ‘나다운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에서는 그녀가 인생을 마주하는 세 가지 자세를 이야기한다. 불친절한 인생에 ‘담담할 것’, 어떤 불운 앞에서도 ‘씩씩할 것’, ‘우아하게 실패할 것’. 이십대부터 삼십대를 거쳐 마흔을 앞든 그녀가 고하는 담백하고 꿋꿋한 선언은 우리의 마음이 비온 뒤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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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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