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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으로 혼란의 시대를 견디는 방법

2017 출판도시 인문학당
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전하는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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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파시즘의 광기로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생각’하는 것뿐이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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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과 3월 30일, 2017 출판도시 인문학당의 ‘혼란의 시대,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에서 답을 찾다’ 강연이 있었다. 한나 아렌트가 쓴 여러 저서의 번역을 담당한 김선욱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한나 아렌트와 악의 평범성에 관해 강연하고 오늘날 한국 정치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았다.


유대인 출신의 정치 철학가 한나 아렌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에 큰 기여를 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15년의 아르헨티나 망명 끝에 체포된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 참석해 그의 정신세계에 대해 분석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을 <뉴요커>에 2년간 연재했다. 그의 재판은 8개월간 지속되었고 재판을 지켜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아이히만이 자신들보다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투철한 평범한 국민이라고 언급했다.

 

김선욱 교수는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대통령 탄핵 등 대한민국 역사상 엄청난 사건을 언급하며 여러 정치 평론가가 언급한 현대 사상으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했던 악의 평범성은 쉽게 말해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 학위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이 도무지 윤리나 가치의식 없이 나쁜 일에 앞장서고 열심히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밑에서 600만 유대인 학살 사건에 큰 기여를 했던 행정가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르헨티나로 도망갔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15년간 신분을 숨긴 채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1960년에 소위 나치 추적자들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민간 단체에 잡혀 8개월의 재판 뒤 사형 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서울 인구 절반 가까이 되는 수인 600만의 인구를 학살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광기에 사로 잡힌 사이코패스, 악마의 모습이 그려지죠. 하지만 아돌프 아이히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료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악이란 무엇인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악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김선욱 교수는 성 어거스틴이 바라본 ‘악’을 들며 사람들이 이제까지 악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 설명했다.

 

"악은 철학, 특히 종교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인데요. 성 어거스틴이 빠져 있었던 마니교에 따르면 세계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존재합니다. 두 신의 힘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세상에 길흉이 일어나는데요, 마니교의 원리대로라면 악은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가 존재로 있기 위해서는 그의 기원이 존재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성 어거스틴은 악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안고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게 됩니다. 성 어거스틴이 다시 생각한 선과 악은 빛과 그림자의 관계입니다. 빛이 환해지면 어둠은 물러가죠. 빛과 어둠의 관게는 빛이 절반, 어둠이 절반 같지만 빛은 존재하고 어둠은 빛이 도달하지 않은 영역일 뿐, 어둠 자체가 그 존재로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악이 원래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의지와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악한 일은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의 의지에 따라 발생하는 일이고, 그렇기에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고요."

 

성 어거스틴 이후 임마누엘 칸트는 악이라는 현상을 이성의 한계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마음 속에 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악한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는 radical evil이라는 말을 쓰는데 급진적이라는 말이 아닌, 근본적이라는 뜻에서 근본악을 이야기 합니다. 악은 인간의 왜곡된 의지와 연관돼 있고 인간에게 악의 경향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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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악

 

"다시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는 아이히만을 만나기 전 『전체주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악에 대해 처음 언급합니다. 6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유대인들을 나치는 어떻게 체계적으로 학살시킬 수 있었을까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이 수용소에 남은 뼈들을 남은 뼈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전세계에 퍼트리자 언론은 러시아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 한다, 이 많은 뼈를 어디서 가져와 연출을 했을까 궁금해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나치가 저지른 악을 아렌트는 전체주의 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아렌트가 주목했던 부분은 인간을 잉여적 존재로 만들어버린 사회의 모습입니다. 모든 인간은 나름의 존재 의미가 있고 귀하죠.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는 하나의 질서로 인간들을 줄 세웁니다."

 

전체주의 질서에는 당연한 가치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가치있는가’를 주입하는 게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제거해 결국 이데올로기를 옳은 것으로 만든다.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감옥에 가죠.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수용소에 갑니다. 주변에서 의심을 당한다 싶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거죠. 이런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용소에 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이론 체계고 이 이론 체계에 따라 세상이 돌아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한다. 거짓말의 체계가 드러나면 죽이면 된다. 이 가운데 공포가 작동하고 인간은 잉여적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잉여적 존재’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전체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분명 그런 관점이 존재하긴 하거든요. 다 함께 경계해야 할 요소임이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에서의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는 신문 뉴요커의 기자 자격으로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하게 됩니다. 1960년에 예루살렘에서 심문이 시작되고 재판을 하게 되는데, 이 재판은 그저 재판이 아니란 말이죠. 유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재판은 전 세계 유대인에게 본보기가 되는 빅뉴스이자 교육의 기회입니다. 이런 심문과 재판 과정을 아렌트는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스스로도 기괴하고 사악한 아이히만의 모습을 예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죠."

 

한나 아렌트가 재판 진행과정에서 분석한 아이히만은 오히려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끔찍한 게 어떻게 우스울 수 있었을까? 진짜 악의는 심각하지만, 이상한 것을 목격하면 우습게 느껴진다.

 

"아이히만은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여기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말에 이상이 있는 겁니다. 왜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할까,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역지사지의 태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을 수 없다. 대화를 나눌 때에는 서로 소통이 돼야 하는데 아이히만은 질문과 상관 없이 주입된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자발적으로 단어를 활용해 문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뭔가 정리되고 입력된 것이 나오는 느낌을 받은 겁니다. 다른 사람이 현존하는 것을 무시하고 관계를 맺지 못하게 머릿속에 입력된 무언가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죠. 공감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으로만 얘기하기 때문에 표현 보다는 현실 자체, 무사유, 생각없음입니다. 말은 청산유수처럼 하지만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못하는 것이죠."

 

과학적 분석과 예비적 이해, 인성과 독단

 

그렇다면 ‘악의 평범성’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선욱 교수는 ‘공감’을 이야기했다.

 

"아이히만은 많은 유대인들이 해외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해결해주며 현재의 논스탑 해외 이주시스템 발전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고 탁월한 능력이 있던 사람입니다. 기차로 그 많은 유대인을 수송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도 했으니까요. 생각, 사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문제 해결 능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상대의 머릿속에, 심지어 자신의 머릿속에도 어떤 생각이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타인의 이야기도 듣고 존중하고, 대화하며 그 사람의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내 생각이 상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며 서로 섞이죠. 신문, 방송, 대화 등 모든 언어가 내 말과 섞여서 인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유하지 못하게 되면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난 요구나 정보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해버리고 지워버립니다."

 

사유하지 못하는 상황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돌아가는 일에 대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분석, 그리고 전체주의처럼 사람을 잉여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경계 의식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지식과 예비적 이해라고 말했습니다. 올바른 이해를 갖는다는 것은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없이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나쁜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비적 이해는 달리 인성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네요. 명석함만으로는 괴물이 되기 십상이니 우리는 인성을 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독단이라는 것인데요. 예비적 이해는 자칫 독단으로 변하기 십상입니다. ‘전체주의는 나쁘다’ 라고 독단적 태도를 가져버리면 비슷한 모습만 보여도 바로 악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라는 말이 적절히 사용되고 비판되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다른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누적되어 소위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경직된 태도죠. 독단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 존재하나 잘못된 태도로 적용됩니다. 그게 머릿속에 주입되면 공식 속에서만 보고 거기 들어오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나머지는 없애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독단과 인성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저/김선욱 역/정화열 해제 | 한길사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렌트는 예정되었던 대학의 강의를 취소하고,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이로써 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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