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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그릇”

정호승 시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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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비롯되기에,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이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어요. 이제는 절망의 가치를 소중 해함으로써 진정한 희망의 가치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망이 있는 희망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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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3월 15일 저녁,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출간 기념 ‘정호승 시인과의 만남’이 있었다. 스튜디오 홀이 독자들로 가득 채워지자, 사회자는 이번 시집에 실린 시 ‘명왕성에 가고 싶다’ 를 낭송하며 ‘정호승 시인과의 만남’ 시작을 알렸다. 자신을 보러 소중한 걸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정호승 시인이 등장했다. 그는 사회자 없이 홀로 긴 시간 동안 시와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가슴에 고인 시를 전부 비워내다


정호승 시인은 이십 대 후반에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하고 60대 후반이 되어 같은 창비 출판사에서 아홉 번째 시집을 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그동안 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던 것도 큰 축복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시집을 엮을 때 ‘내가 이런 시집을 또 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계속 수정했어요. 가능한 나에게 시가 한 편도 남아있지 않게 다 털어버리자는 마음으로 시를 110편이나 게재했죠. 시집을 출간 전 마음과 달리, 앞으로 3년이 지나 70세에 이를 기념해 창비에서 열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어요. 내 가슴에 시가 고이지 않게 이번 시집에 다 털어버리자 해놓고, 시집을 출간하고 나니 다시 열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죠."


시인은 ‘인간은 참 비극적인 존재’라며 시도 인간의 비극성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시인이라면 비극을 시로 꽃 피워야 하고, 꽃은 비극에 뿌리를 내렸어도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수련이에요. 수련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은 물 속인데, 그 물은 더러운 흙탕물이에요. 흙탕물은 우리가 사는 비극적 현실을, 그곳에서 꽃피는 수련은 아름다운 시의 꽃, 인간의 꽃을 의미하겠죠. 틱낫한 스님의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처럼 행복을 위해서는 고통에 뿌리를 내려야 돼요."

 

"우리는 고통의 가치를 폄하하고 회피하려 하지만, 저에게 고통은 시를 쓰게 하는 무엇이에요. 만일 제 인생에 고통이 없었다면 시를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여러분이 존재의 가치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할 때 그 뿌리는 삶의 비극성,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이 시집의 역설적인 제목도 이와 관련 있어요. 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비롯되기에,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이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어요. 이제는 절망의 가치를 소중 해함으로써 진정한 희망의 가치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희망이 있는 희망을 찾을 겁니다."
 
시를 통해 ‘나’를 사랑하다


"어떤 시인이든 ‘왜 나는 시를 쓰는가’에 대해 늘 생각해요. 저도 지금까지 왜 시를 써왔는지, 혹시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요. 제가 시를 쓰는 이유는 ‘스스로 저의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서예요. 저에게 ‘왜 시를 쓰는가’에 관한 문제는 ‘내가 왜 사는가’와 연결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죠."


정호승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존재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시기를 겪지만, 그럴수록 ‘나를 진실로 사랑’하라고 조언했다. 시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시를 쓰면서 인간인 나를 이해하고, 내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방법으로서의 시’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살아오면서 나를 비롯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에요.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모를 거예요. 그래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저에게는 시가 있어요.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그릇이자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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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낭송이 이어진 후 사회를 본 박준 시인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가슴에 고인 시를 다 비워내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시집을 출간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가슴에 시를 고이게 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에요. 인간의 가슴 속에는 다 시의 마음이 들어있죠. 1987년에 백두산에 갔을 때 일행 중에 천지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서 뛰어 올라갔어요. 힘들게 올라가서 천지를 본 순간 ‘아 하느님은 천지라는 시를 쓴 시인이다’라고 느꼈어요. 절대자도 시인인데, 인간 역시 절대자가 쓴 한 편의 시예요.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에는 시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고입니다. 시는 내가 삶고 있는 이 삶, 일상, 현실 속에 가득하니까요.

 

시에 부모님 얘기가 종종 나오던데, 시인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요?


어릴 적 어머니께서 가계부로 쓰시던 공책에서 어머니께서 쓰신 시를 봤어요. 이후 그 얘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다’ 라고 말씀하셨죠. 그때 어머니께서 어떻게 시의 본질을 알고 계시는가 하고 놀랐어요. 시는 슬플 때 쓰는 게 맞거든요. 어머니한테 있던 시의 마음이 저한테 와서 제 가슴속에 시가 고이는 게 아닌가 느끼며, 어머니의 존재를 더욱 소중히 생각합니다.

 

시에서 ‘별’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인마다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어요. 제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별, 별빛, 첫눈, 눈길’이에요. 식상할 수도 있는데 끊임없이 ‘별’을 은유 화하는 이유는 저의 시적 기질, 개인적인 성격과 닿아 있어요. 시의 궁극적인 모습이 있다면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청년기 때부터 가진 생각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문학의 미래, 시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시는 모유 같은 거예요. 어머니가 모유를 주지 않으면 아기가 생명 자체를 얻을 수 없는 거처럼 우리가 이 시대에 가장 얻어야 하는,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것은 시에요. 인간의 영역이 점점 축소되고 과학이 침투해 들어오는 시대가 되면서 인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한 편의 시예요. 인간을 살리는 한 방울의 물과 같이 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생명으로 자리 잡을 거로 생각합니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저 | 창비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으로서 지난 40여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신작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가 출간되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희망의 메시지를 고요한 목소리로 전하는 따스한 사랑의 시편들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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