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주 “무슨 책을 그렇게 재밌게 읽으세요?”
언론인 최철주의 서재
주말 오후 석양을 보면서 태양의 소멸을 느낍니다. 그때 누군가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갑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내 시간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책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재미있는 화제가 나를 자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말 오후 석양을 보면서 태양의 소멸을 느낍니다. 그때 누군가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갑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내 시간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책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재미있는 화제가 나를 자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오후 한가로이 교외로 달리는 지하철에서 책을 펼칩니다. 차창 너머 풍경과 책은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낯선 세상이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중년 부인이 옆자리에서 자꾸 곁눈질을 하며 내가 읽는 책에 시선을 던집니다. 그러다 더 이상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선생님, 무슨 책을 그렇게 재미있게 읽으세요?”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그 목소리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독서의 즐거움을 솟구치게 만듭니다.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맙니다. 낯선 그 여인에게 한 권의 책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쓰러지는 남성, 일어서는 여성. 앞으로 내 손자 대 이후의 세상은 모계사회로 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 지배에 대한 반작용이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 같습니다. 도처에서 겪는 갖가지 사회현상에서 나는 그런 변화의 조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도 한국인들의 언행을 관찰하게 됩니다. 남성과 여성에게서 각자의 생태적 본능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장수, 고령화 사회에서 남녀의 성비가 심각하게 불균형을 일으킨다면? 한국적 특이성을 감안한 생명공학과 유전학 또는 인구통계를 쉽게 풀이해주는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읽는 독자들은 지금까지 죽음이라는 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죽음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바로 삶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 내가 이걸 몰랐지, 하고 뒤늦은 반성도 할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교육을 받습니다.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도 있습니다만 그쪽 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자기 나름의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죽음이라는 주제에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인생이라는 동전의 앞 뒷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걸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유독 높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난치병을 앓으면서도 무한정으로 생명을 연장해버리는 연명의료가 일상화 되어버렸습니다. 삶이 그러한 것처럼 죽음에도 존엄이 있다는 것을 알면 더욱 의미 있는 인생계획을 짜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명사의 추천
금강경 강의
무비 스님 저 | 불광출판사
나는 아직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연이은 가족의 죽음을 겪으면서 금강경에 의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와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준 것이 이 책이었습니다. 나는 철학이나 윤리, 종교서적들이 어려운 것을 더욱 어렵게 설명하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삶과 깨달음에 눈을 뜰 수 있도록 가볍게, 그러나 덩어리 채로 자극을 주는 금강경 강의를 자주 읽게 되었습니다. 출렁거리는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현실을 수용하면서 그 너머의 실상을 추구하라는 등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저 | 21세기북스
최 교수와 나는 매월 한차례 책을 놓고 토론하는 광화문북클럽 모임의 회원입니다. 그는 대학 강의와 연구,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의 인재를 기르는 건명원 원장 일을 맡아보면서 생각의 힘을 강조해왔습니다. 사유를 통한 생각법을 체득하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이 책을 내놓은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책에서 한 시대의 패러다임이 깨질 때 절호의 찬스가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이어가는데 왜 외국의 처방전만 수입하고 수출은 없느냐, 언제까지 종속된 상태에서 고착화된 교육이 계속 되어야 하느냐, 지금까지 없는 길을 가기 위해 우리의 꿈을 찾아야 되지 않느냐고 이 책은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한상일 저 | 까치(까치글방)
비뚤어진 한ㆍ일 관계의 시발점은 어디일까. 이 책은 이토 히로부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정치 전공인 한상일 교수는 40여 년 동안 이토에 대해 연구하다가 정년 이후 그의 한일병탄 음모를 총괄 분석했습니다. 이토의 거의 모든 행적을 더듬은 탐사보도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습니다. 이토는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한 후에도 내외신 기자를 불러놓고 '한국의 복지와 권위를 증진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도록 보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선전공작을 일삼았습니다. 이토가 한일병탄을 위해 영국의 이집트 통치정책을 철저히 연구했다는 논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국소설을 통해 본 영국신사도의 명암
서지문 저 | 세창출판사
신사도는 영국의 대표 브랜드입니다. 전 세계에 걸쳐 제국을 건설 운영하면서 신사도를 사회 안정과 국민의식을 높이는 발판으로 삼았던 영국의 국가전략은 여러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서지문 교수는 영국 소설의 필수 소재로 등장한 신사와 그 맞은편에 놓인 숙녀의 가치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수호되고 있는지 소설을 뒤져가며 체크하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신사의 정체와 아울러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납니다.
번역사 오디세이
쓰지 유미 저/이희재 역 | 끌레마
번역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바빌로니아 제국은 속국을 지배하면서 각 민족 집단에게 통치자의 언어를 어떻게 번역해서 전달했을까. 고대 이집트나 이슬람 제국은? 그런 궁금증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4천년 번역사의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유럽의 주요 국가가 번영, 팽창하면서 번역에 정열을 바친 작가들이 있고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문화사 안에서 보면 번역사는 아직 주변적 존재로 여겨지지만 번역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논쟁이 역사 체험을 선사합니다.
영화
천국의 문
마이클 치미노 |마루엔터
1년 반 전에 서울의 한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1980년도에 만들어진 5시간짜리 작품을 3시간으로 다시 편집한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웅장한 화면과 탄탄한 스토리 전개에 빠져들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부유한 백인 지주들이 가난한 동구권 이민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면서 충돌이 이어집니다. 막판에는 이민자들이 백인들의 횡포에 대항하면서 벌판에서 대규모 총격전을 벌입니다. 영화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후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감독은 마니아층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혹평에 시달렸습니다. 중도에 상영을 중단한 지난날의 이야깃거리가 이 영화에 더욱 흥미를 끌게 합니다.
크로닉
감독: 미셸 프랑코 | 출연: 팀 로스, 사라 서덜랜드
2015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죽음을 정확하게 표현하려 노력한 영화입니다. 호스피스 간호사 데이비드는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그에게 인간 이상의 무엇인가를 건네고 싶어 합니다. 영화는 이런 심리를 아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환자와 간호사와의 소통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정적인 롱테이크 화면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 2월부터 시행되는 웰다잉법에 따라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말기환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호스피스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합니다. 선진국이 운영하고 있는 호스피스 제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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