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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교양 만화로 읽는 로마 제국 1,000년사

서울-부산 KTX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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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의 ‘시대’ 시리즈를 읽고선 역사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는 펴지도 못했다. 유럽 중심주의에 함몰되어 주로 유럽 근대에 호기심이 많았으나,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을 읽은 뒤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근대에 관심이 생겼다. 『만화 로마사』를 계기로 로마사를 향한 애정도 조금은 솟았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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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 갈 일이 있었다. 서울과 부산 간 소요 시간이 2시간 40분이던 시절 이후로는 오랜만에 타보는 KTX였다. 놀랍게도 그 시간은 2시간 10분 대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올해 6월부터는 서울-부산 무정차 프리미엄 열차를 도입, 1시간 50분대로 운행 시간을 단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차 안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반갑지 않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2시간 내외는 교양 만화 두세 권 정도밖에 읽을 여유가 안 되는 시간이니까.


부산 가는 여정에 『만화 로마사』 1~2권을 가방에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차 안에서 읽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다. 책은 ‘아직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저자 서문으로 시작한다. ‘에이 무슨 소리, KTX는 겨우 서울과 부산을 오갈 뿐이라고, 로마까지 못 가는데?’라는 일차원적인 의문이 들 찰나에 기차와 로마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바로 책에 등장했다.

 

미국 철로의 폭은 4피트 8.5인치(143.5센티미터)다. 5피트도 아니고 4피트 50인치도 아니고 하필 4피트 8.5인치인 이유는 철도의 종주국 영국의 표준에 따랐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영국은 왜 이 어정쩡한 수치를 표준으로 삼았을까?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조지 스티븐슨이 당시 영국 탄광에서 운용하던 마차용 레일 규격을 표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정설인데 탄광뿐만 아니라 영국의 모든 마차 바퀴가 같은 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차 바퀴의 간격이 표준화된 이유가 바로 로마 때문이었다. 오래전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로마군은 영국 각지에 도로를 건설했고 그 위로 전투용 마차들이 달렸다. (1권, 33~34쪽)

 

기차만이 아니라 로마가 인류에 끼친 영향은 광범위하고 강력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을 발판으로 퍼졌고, 로마법은 여전히 전 세계 법률 체계를 이루는 근간이다. 무엇보다 유럽과 미국이라는 세계 역사를 주도한 두 축은 로마제국의 후예다.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EU를 가능하게 한 게 로마제국이라는 통합된 역사적 경험 덕분이고, 미국은 유럽 이민자가 대서양을 건너 만든 나라다.


로마가 한국에 끼친 영향은 어떨까. 직접적인 영향은 그다지 많지 않을 듯하다. 한국은 근대 이전에는 주로 중국의 영향을,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의 영향을, 해방 이후에는 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로마라는 곳은 한국과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멀다. 그럼에도 로마를 주제로 한 책은 꾸준히 나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10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과 데오도르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 등이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책이 소개되었지만 일반 독자가 로마사에 다가가기가 쉽지는 않다. 조선사, 고려사만 해도 벅찬데 로마는 광대한 영토를 1,000년 동안이나 다스렸다. 비잔틴 제국까지 하면 거의 2,000년이다. 황제, 장군, 사상가는 얼마나 많겠으며 전쟁은 얼마나 잦았을까. 수많은 고유명사가 다 한국어가 아니라 라틴어일 텐데, 기를 쓰고 외워도 시원찮을 판이다. 실제로 분량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로마제국의 몰락만을 다룬 『로마제국 쇠망사』가 총 6권ㆍ4,150쪽이다.

 

그래서 『만화 로마사』의 등장은 반갑다. 『밀가루 커넥션』의 저자인 이익선 만화가가 그린 이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로마사를 만화로 표현했다. 처음 그가 로마사를 그리기로 결심한 때는 2005년. 로마사가 워낙 방대하기에 자료 조사에 많은 시간을 썼다. 특히나 로마 시대의 의상, 무기, 탈것 등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고증은 필수. 두 권이 나오는 데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던 이유다.

 

모든 역사 기술에는 서술자의 사관이 들어가는 법, 『만화 로마사』도 마찬가지다. 이 시리즈는 로마제국의 역사를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의 대립으로 파악한다. 귀족 계급이 잘했다, 평민 계급이 잘했다라는 평가는 유보하고 이 둘 사이에 어떤 이해 관계가 있었고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기술하려 했다. 한편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지배자ㆍ영웅 위주의 서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 시리즈를 감수하고 주석을 쓴 임웅 박사 역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리더십을 중시했고, 그러다 보니 민중은 언제나 영웅을 추종하는 존재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1권, 13쪽)”라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만화 로마사』 『로마인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로마사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겠다.

 

1권이 총론 격인 로마제국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를 다룬다면 2권부터는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평민의 정치 참여 요구, 평민의 군대 소집 거부 등 로마 평민을 기술하는 분량이 많다. 그렇지만 로마사는 본질적으로는 영웅 중심주의 서술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건국에서부터 성장, 몰락까지 로마제국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변방 세력에 불과했던 로마가 마케도니아, 카르타고 등 강자를 누르고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는 이야기를 ‘영웅’이라는 단어 없이 서술하는 게 가능할까? 귀족도, 평민도 영웅인 곳이 로마제국의 실체일 테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한 역사를 지금에 비유하자면, FIFA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가 우승하는 사건 정도다. 즉,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뜻인데 어떻게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로마를 이끈 건 실용이었다. 자민족 타민족 따지지 않고 타 문화도 기꺼이 포용할 줄 알았다. 로마가 받아들인 그리스 문화나 그리스도교가 모두 원래부터 로마인의 문화는 아니었다는 게 그러한 방증이다. 사회 내 계층 이동도 활발했다. 귀족 계급과 평민 계급이 존재했으나, 하층민 출신 황제가 여럿 있을 만큼 계층 이동이 개방적이었다. 사실 이러한 개방성이 로마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이후에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원나라도 비슷한 성향을 보였고, 초강대국 미국도 명분으로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복잡한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다양함이 공존할 수 있는 개방성은 필수다.  

 

로마제국의 이러한 개방성을 다루는 시리즈답게, 『만화 로마사』는 호탕하게 웃긴 대목이 꽤 자주 등장한다. 허무 개그나 비속어, 신조어 등은 혹시 초등학생을 둔 엄마나 아빠가 교육 용도로 샀다면 거북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좀 더 표현 수위를 높여 최대한 재미있는 만화를 기대하는 독자도 있을 테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 시리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준다면 이익선 만화가가 반영해서 톤을 조절하지 않을까 싶다.   

 

끝에 와서 고백하자면, 이 책을 산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두 권이라는 분량 덕분이다. 2권이 완결인 줄 알고 구매했다. 아니었다. 앞으로 몇 권으로 완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점은 500년 역사를 쓰는 데 두 권이 필요했다는 사실. 로마제국 중흥에 관한 이야기는 더 많을 테니 앞으로 최소한 세 권 정도는 더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서울-부산 왕복 기차 안에서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니 이게 어딘가.

 

 

더 읽는다면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김호동 저 | 돌베개

세계사에 존재한 제국을 꼽으라면 흔히 로마제국과 몽골제국이다. 로마에 비해 몽골제국은 군사적인 면에서만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센 힘을 바탕으로 정복 전쟁을 펼쳐서 광범위한 영토를 확보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열등했다는 식의 이해다. 김호동 교수는 이러한 이해가 유목민이 세운 나라를 향한 정주민의 편견이라고 본다. 실제 몽골제국은 개방성을 존중하여 그 시기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다. 몽골제국 시기 유라시아를 꿰뚫는 교통ㆍ통신망이 정비되었다. 언어 간 교류가 활발해 통번역 작업도 이 시기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몽골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쓴 500년 고려사
박종기 저 | 푸른역사

한국사에서 제국의 역사를 찾으라고 한다면, 야사가 아닌 정사에서는 그 존재를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대신 로마제국처럼 개방적인 사회를 찾는다면, 고려 정도가 답이 아닐까 한다. 고려사는 여러모로 로마의 개방적인 면모를 닮았다. 외부 세계와 활발히 교류했고 외국인을 인재로 등용했다. 중앙과 지방 문화가 공존했으며, 유교만이 아니라 불교ㆍ도교 등 다양한 세계관이 경합했다. 물론, 어느 사회나 구린 구석은 있다고 고려 시대에도 부조리는 존재했다. 그건 로마도 마찬가지.

 

 

Paint it Rock
남무성 저 | 북폴리오

교양 만화(?) 중에 참 웃기고 정보도 많이 담은 시리즈다. 부제를 단다면 '아재개그와 함께 읽는 록의 역사'라고 붙여도 될 정도로 곳곳에 유머가 가득하다. 글도, 그림도 재밌다. 그 어떤 역사라고 평범한 이야기가 있을까. 록의 역사도 로마 제국사 만큼이나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2~3시간 이동할 때 읽고 싶다면, 감히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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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금주(서점 직원)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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