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싫어서 만든 책
『회사가 싫어서』 저자 너구리 인터뷰
회사에서 화가 날 때마다 메모장을 켜놓고 글을 썼어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메모장을 켜놓고 글을 썼어요. 급한 업무를 처리하는 척하면서요. 그런데 지금 내 상황과 기분을 글로 적다 보니 격한 감정들이 점점 누그러지더라고요.
“가슴에 사표 한 장 품지 않은 직장인이 어디 있냐? 나도 항상 품고 있다.”
부장님도, 팀장님도, 과장님도, 대리님도, 하다못해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신입사원과 인턴도 모두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이 시대, 과연 대한민국에 좋아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야근?주말 수당이 당연하지 않은 곳, 오전의 네 일이 오후에는 내 일이 되는 곳, 어제는 다닐 만하다가도 오늘은 당장 그만두고 싶어지는 곳, 바로 회사. 『회사가 싫어서』는 28살의 나이에 두 번의 입사와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한 너구리 작가가 단물 쪽 빠질 때까지 굴렀던 회사 생활의 단상을 유머러스하고 뼈 있는 짧은 글로 정리한 에세이다.
2016년 3월, 독립 출판물로 처음 간행된 이 서적은 작가가 지인들과만 나누어 가지려는 계획하에 소량만 제작되었다. 하지만 ‘오래 보면 진짜 싫다. 자세히 보면 미치겠다. 팀장님 또한 그러하다’, ‘주말에 일 시키면 돈 줘야 하고 보쌈집에서는 보쌈 사주는 거다’, ‘아픈 것도 골라서 아파요?’ 등 식도염마저 가라앉힐 사이다 같은 글발로 철든책방 등 작은 서점에서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독자들의 입소문을 탔고, 독립 서점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이 작품을 지난 4월?8월?10월 베스트셀러로 선정했다. 그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회사가 싫어서』는 2017년 1월 정식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전 회사 상사에게 “언제든 돌아와라”라는 전화를 받을 만큼 성실한 노예 DNA를 탑재하고 있다는 그녀, 이를 본인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뻔뻔함이 매력이라는 그녀. 과연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너구리 작가에게 『회사가 싫어서』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퇴사 후 독립 출판물로 작가 데뷔’라는 이력이 특이하시네요. 퇴사를 하게 된 배경과 독립 출판물을 내게 된 과정을 좀 소개해주세요.
이전 회사에서는 취업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그러다 보니 회사와 일, 나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생, 구직자, 기업 인사담당자 분들과 함께 일했으니까요. 퇴사 이유는 뻔하죠 뭐.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겪으며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어지는 반면 회사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커지고, 대한민국의 보통 직장인들이 그렇듯 저도 비슷한 이유였어요. 결국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저 혼자 회사와 밀당을 했는데 밀당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회사가 자꾸 저를 밀어내더라고요. 결국 제가 헤어지자고 했죠. 하하.
퇴사 후부터 책을 쓴 건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퇴사 후 그간 미뤄뒀던 독립 출판물 작업을 마무리한 거예요. 워낙 심심한 사람이라 평소에도 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은 ‘나와는 먼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독립 출판물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이걸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메모장을 열어 글을 쓰고, 에피소드가 생길 때마다 휴대전화에 적어두고, 주말에도 틈틈이 글을 썼어요. 그런 식으로 해서 어느 정도 원고를 쌓아뒀는데 퇴사하고 시간이 많아져서 드디어 그걸 마무리하게 된 거죠. 하지만 원고만 다 작성했다고 끝이 아니라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내야 했기에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우고 편집하느라 한 달 동안 애를 먹었어요.
사실 많은 사람이 퇴사를 꿈꾸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잖아요. 퇴사를 감행하면서 따라오는 이런저런 고민들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저도 퇴사를 생각하면서 금전적인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퇴사를 꿈꾸지만 퇴사 후의 삶이 마냥 달콤하지 않을 것은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뻔했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적금을 열심히 부었죠. 사실 저는 저 하나만 생각해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퇴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했고 아이도 없었으니까요. 혼자여서 다행이었던 웃픈 현실이었죠. ‘결혼은 더 나중에 하자’,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대신 조금 덜 쓰면서 내 시간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결심하니까 그 이후에는 크게 고민할 거리가 없더라고요.
많은 젊은이의 꿈인 ‘퇴사’와 ‘작가 데뷔’를 모두 이루셨어요. 퇴사와 작가 데뷔 이후 작가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회사에 다닐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가족 등 가까운 이들에게 굉장히 예민하게 굴었는데 퇴사 이후에는 여유가 생겨서인지 사람들에게 굉장히 너그러워졌어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참 미안하죠. 아마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예요. 회사에서 생긴 짜증 회사에서 풀어야 하는데 아무 잘못 없는 엄마한테 푼 기억. 소중한 사람에게 애먼 일로 화를 내지 않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내 손으로 만든 것에 의의를 두려 했는데, 출간 후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강연도 하고, 잡지에 기고도 하고, 인터뷰도 했거든요. 그중 가장 좋았던 건 회사 밖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난 거였어요. 독립 서점에 책을 입고하러 다니면서 사장님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거든요. 퇴사 후에도 가끔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면서 불안했는데 좋아하는 일을 찾아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저도 막 용기가 나더라고요. 저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야겠다는 걸 느꼈죠. 대신 퇴사 이후에는 뭘 하든 1부터 10까지 혼자 해결해야 하니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회사가 싫어서』를 보면 공감 가는 글이 정말 많아요. 캡처해서 친구들과 돌려볼 만한 글이 많은데 그중 특별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글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주세요.
주로 피식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글이 많은데 저도, 독자분들도 눈물로 읽었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꽃보다 청춘’이라는 글인데, tvN ‘동네의 사생활’에서 김풍 작가님이 직접 낭독해줬지요. 그 글을 쓸 때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해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사회가 만든 트랙을 따라 열심히 달렸을 거예요.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일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리잖아요. 그러다 보니 공휴일과 월급날이 유일한 꿈이 되어버리는 거고요.
금요일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을 보는데, 꿈이 뭐냐는 질문에 배우 정상훈 씨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는 거”라고 답하더라고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저도 그 질문에 대답해보려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답이 안 나왔거든요. 나는 이렇게 꿈은커녕 하루하루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데 누군가는 일을 꿈꾸며 살고 있다니,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니. 되게 공허하고 쓸쓸하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 많은 독자분이 이 에피소드에 많이 공감해주셨어요.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화가 날 때 그것을 해소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회사에서 화가 날 때마다 메모장을 켜놓고 글을 썼어요. 예를 들면 믿었던 팀장님이 회의 중에 대놓고 저한테 책임을 전가한 적이 있거든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메모장을 켜놓고 글을 썼어요. 급한 업무를 처리하는 척하면서요. 그런데 지금 내 상황과 기분을 글로 적다 보니 격한 감정들이 점점 누그러지더라고요. 사실 그게 『회사가 싫어서』의 시작이었어요.
메모장에 적는 정도로 화가 풀리지 않으면 그 글을 블로그에 올렸어요. 직장 생활이라는 게 다 비슷비슷하니까 방문자 분들이 공감해주고 그분들과 댓글로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풀려 있더라고요. 주변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화가 날 때는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글로든 말로든 사람들과 많이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퇴사 후 지금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등 근황을 좀 알려주세요.
회사에 다니면서 모아둔 돈과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며 얻은 수익, 잡지 등에 기고한 각종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고 있어요. 아, 사업자를 내고 온라인 마켓도 운영 중이라 거기서 나온 수익도 있네요. 처음에는 지인들과만 나누어 가지려고 책을 낸 건데 이것을 계기로 잡지에 기고도 하다 보니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지금은 전보다 더 부지런히 읽고 쓰며 살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제 적성을 찾아볼 생각이라 다음 달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현실적인 밥벌이와 제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해볼 것 같아요.
회사가 싫어서 퇴사를 꿈꾸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인생의 판을 바꿔보는 일인 것 같아요. 충동적인 퇴사는 절대 권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충분히 질문을 던져봤고, 퇴사 후의 삶을 위해 넉넉한 통장 잔고를 만들어놨다면 한 번쯤 새로운 꿈을 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퇴사 이후의 삶은 결코 장밋빛이기 아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잊지 마시고요. 도저히 혼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혼자보다는 둘이서 함께 고민해보는 게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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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싫어서너구리 저/김혜령 그림 | 시공사
어제는 다닐 만하다가도 오늘은 당장 그만두고 싶어지는 곳, 바로 회사. 『회사가 싫어서』는 28살의 나이에 두 번의 입사와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한 너구리 작가가 단물 쪽 빠질 때까지 굴렀던 회사 생활의 단상을 유머러스하고 뼈 있는 짧은 글로 정리한 에세이다.
<너구리> 저/<김혜령> 그림11,700원(10% + 5%)
부장님도, 팀장님도, 과장님도, 대리님도, 하다못해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신입사원과 인턴도 모두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이 시대, 과연 대한민국에 좋아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야근·주말 수당이 당연하지 않은 곳, 오전의 네 일이 오후에는 내 일이 되는 곳, 어제는 다닐 만하다가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