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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적 똥의 차이

나의 단호함은 끝내 치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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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질적인 변비가 서른 살 무렵 저 혼자 사라졌다. 당시 내게 달라진 점은 하나뿐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던 영화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던 것. 그 때부터 나는 똥과 심리상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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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이경아

 

‘내가 칼럼을 하나 시작하는데 니가 일러스트를 그리면 어떨까?’ 라고 동생에게 제안했다가 나의 독단적인 스케줄 결정에 동생은 불만을 토로했고, 나는 좋은 의도밖에 없었는데 얘가 미쳤나. 말다툼이 시작됐다. 시작은 사소했으나 동생은 밤새 울었고 나도 속이 타서 잠을 못 잤다. 어릴 적 트라우마까지 들춰내다 보니 서로의 바닥이 드러났고 말 못할 심정은 묻은 채 ‘성격 차이로 인해 공동 작업 불가능’, ‘앞으로 재결합 절대 없어’ 로 결정 내렸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한테 매일 혼났다. “너는 언니가 돼가지고 왜 이렇게 철이 없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철이 없다고? 와, 진짜 내가 얼마나 똥을 잘 참는데?!’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똥을 참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철이 없다’는 뜻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한 번 참을 때마다 횟수를 셌다. 그렇게 참다 보면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일도 있었고,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변기에 앉아 최고 14번까지 세었던 기억도 있다.

 

당시 ‘누구를 위한 똥을 참기’ 인지 모를 ‘나의 똥을 참기’ 훈련은 이후 청소년 시절, ‘오래 매달리기’와 ‘오래 달리기’ ‘윗몸 일으키기’의 최고기록을 이뤄내는 데에 분명한 기여를 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래서 인가. 변비를 달고 살았다. 20대 초반엔 특히 심각했는데 정기적으로 장 세척을 해야만 했다. 당시 병원에선 ‘장 중첩증’이라고 진단했다. 이것은 대개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배부른 줄 모르고 계속 먹다 보면 장으로 밀려 내려오는 음식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그것이 접혀버리곤 하는데 이럴 땐 뚫어펑 같은 도구를 항문에 흡착시킨 뒤 당겨내어 장을 편다고. 그런데 나는 아기가 아니라서 그것도 곤란하다고 의사가 말했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장 세척을 위해 병원으로 갈 때 마다 나는 내 평생을 비관했다.

 

그런데 이 고질적인 변비가 서른 살 무렵 저 혼자 사라졌다. 당시 내게 달라진 점은 하나뿐이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포기했던 영화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던 것. 그 때부터 나는 똥과 심리 상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잊고 지낸 지 18년 만에 그게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 앞에 앉는다. 지난 영화의 형편없는 스코어는 내 의지가 무색해질 만큼 자격지심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내 행동과 생각에 대한 자가 검증은 더욱 집요해진다. ‘지금 이게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건가, 아니면 설득력이 있나?’ 머릿속으로 따진다. ‘사실은 이게 자격지심에서 나온 건데 그렇다고 인정하면 쪽팔리니까 지금 이건 자격지심이 아니라고 내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변명을 나도 모르게 내 머리가 설득력 있게 만들어 내는 중인 건 아냐, 진짜 쪽팔리게?!’ 라고 생각이 들면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생각한다. ...아... 정말이지 변비는 너무 불편하다.


나는 왜 이럴까... 동생과의 일을 겪은 뒤 며칠 곰곰이 생각했다. 아버지는 설사와 변비가 반복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갖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변의는 이 몸의 주체가 내가 아닌 똥으로 바꿔놓는다. 당사자로선 충분히 짜증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최근 그 단서를 발견했다.

 

우리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새벽마다 외출하는 어머니를 의심한 나머지 어느 날 조용히 그 뒤를 밟았다고 한다. ‘그런데 늬 엄마가 성당으로 들어가더라, 껄껄껄’ 나는 소름 돋았다. 이것은 어머니가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미행했다 해도 무섭고, 그 사실을 모르고 미행했다 해도 무섭다 싶은 동시에 “이왕이면 성당 안까지 들어가 봐야지”라고 나는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의 이 집요하고 집착적인 성격은 아버지를 닮았고 그래서 우리의 대장은 이 모양인 걸까.

 

엄마에게는 좀처럼 변비가 없다.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아버지가 미울 때도 많았을 텐데 ‘이 세상에 늬 아버지만한 사람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우리를 세뇌시키셨다. 가끔 부부싸움이 있어도 아버지 밥상을 한 번 거르신 적 없던 어머니는 10년 전 즈음인가, 일생일대의 대폭발을 하신 뒤 온 짐을 싸가지고 가출하셨다. 굉장히 단호하고 선언적이었다. 이대로 안 돌아오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암담한 기분으로 빈 집을 둘러보았다. 주방 창가에 놓인 유리컵에 반쯤 담긴 물이 빛을 받아 반짝반짝. 그런데 가만 보니 그 안에 작고 하얀 무언가 들어있다. ... 저게 뭐지...? 다가가는데 문득 불 꺼진 욕실 안에 작고 검은 털북숭이.. ...일단 욕실부터. 두루마리 휴지 위에 얌전하게 올라앉은 길고 검은 털북숭이, 미동 없다. 엄마의 부분 가발이다. 본인을 가꾸는 일이 밥 먹는 일보다 중요한 엄마가 뒤통수를 덮어야 할 부분가발을 두고 가셨다. ... 이건 무슨 메시지일까... 어렵다. 이제 주방으로. 창가에서 빛나는 유리컵. 그 안에 잠긴 작고 하얀 그것은 엄마의 부분 틀니. 엄마는 ... 어금니를 비워둔 채 집을 나가셨구나 ... 곧... 돌아오시겠구나 ... 이렇게 치밀하지 못 한 단호함이라니.


이쯤에서 나는 서두에서 밝힌 사건의 결론부터 먼저 쓴다.

 

나의 칼럼에서 일러스트 작가는 결국 내 동생이다. 사건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성격 차이로 인해 공동 작업 불가능’, ‘앞으로 재결합 절대 없어’에 대한 나의 단호함은 끝내 치밀하지 못했다.

 

내 동생은 어떤 일이 있어도 똥 잘 누고 잠 잘 잔다. 특히, 나와 대화만 나누기 시작하면 변의가 찾아오고 쾌변을 이룩해낸다. 이게 의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다만, 똥의 문제로 미루어 봐서는 내가 조금 더 문제가 많은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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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미(영화감독)

1973년생. 영화 <비밀은 없다>, <미쓰 홍당무>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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