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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 판사들의 모자이크”

소설 『미스 함무라비』 펴낸 문유석 판사와 독자들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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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오름’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제가 직접 만났던 많은 젊은 여성 판사님들의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분들의 애환을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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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6일 저녁, 소설 『미스 함무라비』의 출간 기념 북토크가 복합문화공간 레드빅스페이스에서 진행됐다. 이번 작품은 『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를 통해 한국 사회의 풍경을 경쾌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던 문유석 판사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는 당당하고 당돌한 초임 판사 ‘박차오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법정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 그리고 판사들의 솔직한 모습을 그려냈다.

 

법정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법정을 넘어 판사실에서 판사들끼리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판사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그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판사들이란 그저 법대 위에 무표정하게 앉아 ‘망치’를 두드리는 무표정한 존재로만 그려진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의 모습을 그리되, 그것을 재판하는 판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신비의 베일이 불신과 오해만 낳고 있다는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미스 함무라비』 에필로그 중)

 

소설의 주인공 ‘박차오름’ 판사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억울한 이의 사연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다혈질 정의파’다. 서울중앙지법 44부로 발령받은 그녀는 임바른 판사, 한세상 부장판사 등과 함께 다양한 사건을 접하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법정’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고자 고군분투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법원의 판결이 인과응보의 원칙에 따라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작품은 법원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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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오름’, 젊은 여성 판사들의 모자이크


『미스 함무라비』 출간 기념 북토크’는 소설가 백영옥의 사회로 진행됐다. 최근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백영옥 작가는 문유석 저자와의 대담을 통해 『미스 함무라비』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백영옥 : 제목이 『미스 함무라비』예요. 요즘에는 미스, 미스터, 그, 그녀와 같은 호칭들이 성차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중성적인 표현을 쓰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하는데요. 제목에 ‘미스’를 사용하신 건 도발하신 건가요(웃음).


문유석 :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죠. ‘미스 함무라비’는 네티즌들이 박차오름 판사에게 붙인 별명인데요. 그걸 보면서 주인공 본인은 굉장히 불쾌해 하거든요. 성차별적 호칭인 ‘미스’를 자신한테 붙였다고요. 말하자면, 이렇게 당차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전문직 여성이 있다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런 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이 제목에 들어있는 거죠.

 

백영옥 : 박차오름 판사를 비롯해서 임바른 판사, 한세상 부장판사 등이 주요인물인데요. 저는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그렇다 보니까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신 건지 궁금했어요.


문유석 : 만화적이고 웹툰 느낌이 나는 이름, 누가 봐도 픽션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이름만 봐도 캐릭터의 성격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요. 그러려면 한글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것저것 궁리해 보다가 (캐릭터) 본인의 성격과 가까운 것으로 정했어요. 많은 분들이 ‘임바’른 판사의 이름에서 굉장히 바른 이미지를 생각하시는데, 원래의 설정은 입 바른 소리만 잘한다고 해서 ‘임바른’으로 한 거였어요(웃음). 이중적인 이미지가 있는 거죠. 냉소적이고, 팔짱 끼고 서서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캐릭터였어요. ‘한세상’ 부장판사의 이름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거예요. 제일 노골적인 이름을 가진 인물은 ‘정보왕’이죠. 온갖 사내 정보를 옮기고 다니는 오지랖 넓은 캐릭터예요. ‘성공충’이라는 이름의 부장판사도 등장하고요. 그렇게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짓듯이 했어요.

 

백영옥 :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박차오름 판사인데요. 이 소설에는 성추행, 성폭력에 관련된 사건들이 유독 많은데, 박차오름은 그런 것들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읽히기도 해요. 평소에도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문유석 :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일관되게 나오고 있더라고요. 왜 그런지 생각해 봤더니 이유가 있었어요. <한겨레>에 이 소설을 연재할 때 인천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젊은 여성 판사님들과 여러 모임을 같이 하고 있었어요. 특히 바쁘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육아도 부담해야 하는 30대 초중반의 여성 판사님들하고 교류가 많았어요.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판사로 일한다는 건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분들도 살아오면서 다른 여성들 못지않은 여러 힘든 일을 겪어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름대로 안정되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요. 그러니까 박차오름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제가 직접 만났던 많은 젊은 여성 판사님들의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분들의 애환을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쓰게 됐죠.

 

백영옥 : 올해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헌법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놀라운 일도 있었고, 생소한 법률 용어들도 듣게 돼요. 판사님께서는 시대가 이렇게 변화하는 것에서 느끼시는 점이 더 많으실 것 같아요.


문유석 : 맞아요. 이 소설에서도 여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고요!’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원래 민법에는 소멸 시효라는 게 있어요. 권리자라 하더라도 그 권리에 무관심해서 방치를 하면 시간이 지나면 권리가 없어지거든요.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건 서구의 법사상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온 거고요. 우리 시민의 권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헌법에 모든 국민의 권리가 (명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으면 실제로 보장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시민들이 권리 위에 잠자고 있지 않고, 헌법이라는 근본 계약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에 대해서 당당하게 주장하잖아요. ‘다 눈을 뜨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법률적으로 보호 받는 범위를 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자는 이야기가 시민들 내부에서 나오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백영옥 :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실 생각이 있으세요?


문유석 : 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국민학생 때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하고 다녔거든요. 걸어 다니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만화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저는 만화적인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재밌는 이야기를 다양한 틀에 넣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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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보다 글 쓰는 게 100배 더 재밌잖아요


대담이 끝난 후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북토크를 지켜본 독자들은 포스트잇 위에 문유석 판사와 백영옥 소설가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갔다. 두 사람은 한 개의 질문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진심을 담아 답했다.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으시나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문유석 : 여행할 때죠. 저는 여행 다니려고 인생을 살아요. 1년 내내 여행 계획을 세워요.

 

백영옥 소설가 님은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나요?


백영옥 : 소설 쓸 때 제일 힘들어요(웃음). 저는 광고 카피부터 시작해서 라디오 대본, 인터뷰 기사, 북 리뷰 등 안 써 본 종류의 글이 없거든요. 단언컨대, 제가 써 본 모든 글들 중에서 가장 힘든 게 소설이에요. 판사님께서도 소설을 쓰셨는데, 어떠셨어요?


문유석 : 진짜 힘들어요. (저한테) 이야기를 만드는 건 버릇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데요. 표현하고 묘사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는 이야기의 구조, 뼈대만 가지고 있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는 부분이나 아름다운 묘사에 대해서는 서툴고 경험이 없는 거예요. 이런 일을 늘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 걸까 하고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백영옥 : 소설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는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써야 되기 때문이에요. 리뷰나 광고를 쓰는 일에는 클라이언트도 있고 레퍼런스가 있어요. 그런데 소설이라는 건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써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굉장히 효용성의 시대에 살잖아요. 그래서 ‘그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돼?’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소설은 정말 효용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작업이에요. 너무너무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많이 고쳐야 되고요. 그 행위를 계속 반복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게 가장 힘들고요. 그렇게 힘들게 작업을 하고 나서 제 소설을 읽으면 너무 싫어요(웃음). 저는 초고를 굉장히 빨리 써요. 그런데 헤밍웨이가 ‘세상의 모든 초고를 쓰레기’라고 말한 것처럼 제 초고가 쓰레기 수준이에요(웃음). 그래서 정말 많이 고쳐야 돼요. 세 번 정도 전체적으로 고치다 보면 제 원고를 보면서 약간 구역질 같은 게 나요, 너무 많이 고쳐서. 그렇다 보니까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 다시 보면 약간 느물거려요.

 

한세상 부장판사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문유석 :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요. 처음 등장할 때 실제로 그런 대사가 나와요(웃음). 한세상이라는 캐릭터는 나이가 제일 많잖아요. 세속적인 면도 있고요.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나 삶의 지혜, 사람들의 속내 같은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판사 같이 외따로 떨어진 집단 중에서 가장 서민들과 가까운 성장과정을 거쳐 온 인물이기도 하죠. 계속 고시에 떨어지다가 남들보다 10살이나 많은 나이에 합격했고, 항상 성적도 꼴찌고, 조직 내에서는 뒤에서 무시당하기도 해요. 대신 이 사람은 세상을 조금 더 아는 거죠. 한세상이라는 이름을 떠올린 데에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부장판사의 대사로써 한 마디가 떠올랐는데요. 음주운전을 엄벌하자는 사람을 향해서 부장판사가 ‘그래도 남의 밥그릇이라는 건 결코 가벼운 게 아니야’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도 그런 분들을 만나봤거든요. 그런 경험에서 한세상 부장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일하기도 바쁘실 텐데 책은 언제 쓰시나요?


문유석 : 놀려고 쓰기 때문에 일하기 싫을 때, 놀 때, 주말 밤, 이럴 때 많이 씁니다.


백영옥 :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한테는 생계인데(웃음).


문유석 : 일이 바쁘고 힘들수록 더 많이 써요.


백영옥 : 스트레스를 글로 푸시나 봐요.


문유석 : 네. 제가 ‘문유석의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게 있어요. 인간에게는 상대적인 쾌락의 우선 순위가 있잖아요. 저는 정말 한가할 때는 한 글자도 안 씁니다. 책 읽고 TV 보면서 노는 게 글 쓰는 것보다 더 재밌잖아요. 그런데 바쁘고 힘들 때는, 그것보다는 글 쓰는 게 100배 재밌으니까, 글을 쓰게 돼요.


 

 

미스 함무라비문유석 저 | 문학동네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풍경에 대한 진솔한 글쓰기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온 판사 문유석. 이 책은 그가 쓴 법정 소설로,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판결하는 법정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판사들은 실제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실적이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알기 쉽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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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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