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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대 작가 ①] 정세랑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어요”

『피프티 피플』 평범하게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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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사람들의 얼굴을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쓰고 연재하는 과정에서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 것 같고, 어떤 옷을 입고 걸음걸이는 어떻고, 평소에 뭘 좋아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정세랑 작가는 1984년생 젊은 작가로, 2010년 장르소설 월간지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르소설로 시작했지만 장르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며 문단에서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도 '순문학'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편집자였던 이력이 묻어나오는 단단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뒷받침한다. 2017년이 기대될 만하다.

 

『피프티 피플』은 어느 도시의 대학병원이 무대인 소설이다. 의사와 간호사, 보안요원, 홍보부 직원과 그들의 지인, 동생, 부모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펼쳐지고 이어진다. 개별적인 50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용은 서로가 얽히면서 거대한 그림을 만든다. 각 장에서 조연에 그쳤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주인공으로 나타나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정세랑 작가는 “어느 커뮤니티를 축소해서 50명으로 압축한” 듯한 소설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를 50명으로 압축해 놓는다면, 거기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유가족(한규익)도 있을 것이고,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주민(김시철), 게이와 레즈비언(김성진, 지연지), 씽크홀에 빠지는 사람(배윤나)도 있을 것이다. 미색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세랑 소설가를 만나자 얼굴이 보일 것처럼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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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는 책


제목은 ‘피프티 피플’이지만 각 장 제목에 나온 인물을 세어보면 오십일 명으로 나와요.

 

하다 보니까 오십 명으로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다 읽으신 분이 한 명 더 있다고, 귀신이냐고 물어보신 적도 있어요. (웃음)


제목은 작가님이 붙이셨어요?


다른 제목을 붙이려고 했는데 잘 안 붙더라고요. ‘오십 명’, 이렇게 쓰면 너무 근엄해지고요. 영어 제목은 별로였지만 ‘ㅍ’이 연속으로 들어가는 게 어감이 재밌었어요.


앞에서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로 나왔던 사람이 나중에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러 희미하게 남겨 둔 부분이 있어요. 모든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도 하고요. 서로 만난 계절도 바뀌지 않게 봄에서 시작해서 다시 봄으로 끝나게 하려고 신경 썼어요.


수도권 도시가 배경이에요. 실제로 염두에 두었던 도시가 있나요?


부천과 인천, 김포 사이 어딘가로 생각했어요. 일산에서 오래 살아서 신도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새롭게 지어진 도시는 어디나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어느 누가 읽더라도 자기 동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제일 잘 아는 지역이 수도권이기도 하고요.


배명훈 소설가가 트위터에 『피프티 피플』에 관한 평을 올린 적이 있어요. “수도권 어느 병원을 둘러싼, 작은 삼국지처럼 꽉 찬 소설”이라고요.


늘 정확하게 읽어주시는 분이라 감사해요. 제가 몰랐던 점도 잘 잡아주세요. 사실 작가들은 자기가 쓰면서 자기가 뭘 썼는지 모르거든요. 물론 계획하시는 분도 있지만 전 충동적으로 쓰고 삼 분의 일쯤 와야 뭘 쓰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타입이에요.


“재료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다. 인물도, 소재도, 구조도, 결정적인 표현도, 다른 소설의 몇 배나 집어넣”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특히 관심을 두는 부분이 직업이라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관심이 많아요.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어색하지 않게 느끼려면 조사를 많이 해야 해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자세히 물어보는 편이에요. 특정 소설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아직 뭐가 될지 모르면서 자료 수집부터 해 놔요. 사실 지난 몇 년간 모아놓은 직업에 관련한 자료가 다 들어간 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건 맞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퍼주다시피 이야기를 받으니 즐거웠어요(웃음).

 

밀도가 있는 책이어서 한 번 읽는 책이 아니라 두 번 읽는 책이 되었으면 했어요. 이런 형식의 책은 다 읽고 나서도 아무 데나 펼치면 그 부분만 다시 읽어도 되잖아요. 아무 때나 두 번 이상 펼치는 책이 되었으면 해서 일부러 재료를 많이 넣었어요.


주변에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직업 때문이라도 관심이 생기시겠어요.


작가나 문학에 관해서만 쓰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이야기보다 바깥으로 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랑 더 멀고 먼 직업을 일부러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죽음에 대해서도 그려져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지점에 대해 작가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흔적이 있잖아요. 지금 이 사회에서는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너무 많이 죽고 있어서 환기를 시키고 싶었어요. 주인공을 죽인 건 조금 미안하지만…. 저도 쓰면서 울기도 해요.


병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영화관에서 끝납니다. 영화관을 마지막 장소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너무 가까운 사이 말고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중요하고, 그게 우리 이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영화를 예매할 정도의 느슨한 인연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특별하잖아요. 같은 날, 같은 시에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선택한다는 인연이요.

 

세대도 다양하게 나와요. 이호와 소씨 아저씨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멋진 어른이었는데요.


평소에 좋아하는 어른의 모습을 두세 명 섞어서 만들었어요. 존경할 수 있는 어른, 윗세대에서 믿고 따라가는 어른이 필요해요. 그래서 너무 이상적일 정도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게이와 레즈비언, 노인, 아동,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남녀 비율도 비슷하게 맞추려고 했어요. 세대 분배도 다양하게 하고 싶었고요. 실재하는 어느 병원 근처의 커뮤니티를 50명으로 축소했을 때 그 커뮤니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목표였어요. 저도 성소수자 친구가 있어서 친구들이 겪는 불편을 들어요. 정말 보통 사람들인데 특이하게 그려지기도 하고요. 사실 보통의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잖아요. 성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이웃 친구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색의 인간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묘사하는데 품이 덜 들어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의 얼굴을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쓰고 연재하는 과정에서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 것 같고, 어떤 옷을 입고 걸음걸이는 어떻고, 평소에 뭘 좋아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미색에서 미색이 아닌 색으로 오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름에 의미도 있나요?

 

동창회 명부에서 성 따로 이름 따로 떼어서 조합한 이름이 많아요.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도 몇 명 들어가 있어요. 가끔 중복해서 쓰긴 하는데 이름도 되도록 중복해서 나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화물 연대의 시위 장면, 예대 통폐합, 부실 공사, 아르바이트생의 복장 규정 문제까지, 실재 사회의 사건/사고가 다양하게 나와요.


주변에 피해자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요. 지인의 지인이 이별 살인을 당하고, 삼촌의 친구분 중에 가습기 살균제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요. 사회적인 폭력이 너무 가까이에서 계속 일어나요. 한국은 여섯 다리까지 갈 것 없이 두 다리만 가도 다 피해자와 닿아 있어요. 지금 단단하다고 믿고 있었던 발밑이 무너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회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그게 제 예민함이 아니라 정말 지금 재편하지 않으면 길게 가지 못할 거라는 걸 모두 동의하는 상황이 됐어요.

 

올해에 이 소설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원래 사회적인 소설을 쓰는 편이 아닌데, 올해는 그러고 싶었어요. 시국 때문에 많이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필요했던 이야기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인물 중 이설아의 대사가 작가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요.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 266쪽, 「이설아」 중


아동 학대 사건 같은 너무 끔찍한 사건을 보면 내가 저 가해자가 같은 사람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선로에 사람을 밀어버리는 사람도 사람인데, 그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사람인 거예요. 우리가 같은 종인데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문학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친절하고 주변에 이로운 사람이요. 대단한 영웅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 말고 옆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친절함이요. 사실 친절한 사람이 없거든요. 열 명 중 한 명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50명의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악인은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정말 악인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요.


그보다 친절한 사람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어요.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더 불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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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베이는 기분


60매쯤 쓰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편집자의 설득으로 완성하게 되셨다고요.


처음에 너무 쓰기 어려운 이야기라 제 기량으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몇 년 지나고 제가 기량이 쌓이면 그때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죠. 책이 여러 사람의 공동작업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책이에요.

 

작가님도 편집자로 일하신 적이 있어요. 편집자로 일하다가 작가가 되어서 편집자랑 같이 일하는 기분은 어때요?


그래서 편집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더 눈에 들어와요. 고맙고 특별하죠. 자기 책을 자기가 편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꼭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출판계가 계속 좋아져야 편집자분들이 더 많이 활동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문화계도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새롭긴 하지만 편집자와 작가가 같이 일하는 지금의 시스템도 풍부하게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자신을 ‘순문학하고 장르 사이에 박쥐 같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장르 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더 허물어지고 더 친해지면 좋겠어요. 서로의 멋진 부분이 달라요. 호흡도 다르고 특징도 다른데 서로 더 만나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도 단서들을 꿰맞추는 부분에서는 스릴러 장르에서 갖고 온 부분이 있거든요. 이 인물이 여기서도 조금 나오고 저기서도 나오는 건 추리소설적 기법이고요. 문단 문학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그런 기법을 빌려올 때가 있고, 문단 지면에 발표하고 문단 출판사에서 냈지만 굉장히 장르적인 작품을 쓰기도 하고요. 항상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사실 별 차이 없어요. 그냥 어느 지면으로 데뷔했느냐 차이인데, 그런 걸로 작가를 구획 짓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이 많아요.


판타지가 현실을 쓰는 건 동일하지만, 다른 문학 장르보다 조금 더 넓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판타지는 세계의 조건을 하나 바꾸는 거잖아요. 해리포터는 기존의 세계에서 마법 학교가 있다는 조건이었고, 전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양호 선생님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씩 바꾸는 거죠. 사실 그게 지금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 작업이 중요하고 이미 오래된 작업인데 가치를 인정받아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계속 폭력에 대해 쓴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폭력에 민감한 편인가요?


저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이 너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서 공기 중에 폭력이 떠다니는 사회 같아요. 너무 많아서 아무도 서로에게 친절해질 수 없는 사회요. 그래서 더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고요.


소설로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소설은 그냥 두세 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유행이 지난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면서도 이게 효용이 있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강연회에서 어떤 분이 너무 힘든 와중에 제 책을 읽고 큰 힘을 얻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소설은 사람의 인생에 아주 작은, 희미한 지문 정도의 흔적을 남기겠지만, 다른 사람의 생에 그 정도라도 남긴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쓸 때는 잘 모르겠는데, 읽히면서 소설에 힘이 부여되는 것 같아요.


아무도 해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고도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모두가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제 목표는 그래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작가들이 쓴 책을 보면 저 스스로가 페이지마다 베이는 기분이거든요. 여성 캐릭터를 끝없이 비하하거나, 외국인 비하 발언이 끊임없이 나오는 책은 끝까지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리 이야기가 매력적이어도 애정을 가지기가 힘들어요. 독자로서 제 경험이 그러니까 제가 쓸 때는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고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물론 그래도 실수를 하겠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이제는 복수하는 소설 말고 연대하는 소설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20대 여성으로, 편집자로 겪었던 일들 때문에 글을 잘 써서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걸 내려놓고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예전에는 저한테 나쁘게 굴었던 사람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서 죽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제는 충분히 죽인 것 같아요. (웃음)


특히 연대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제 세대의 목소리를 일단 대변하고 싶어요. 너무 나눠 받은 건 없으면서 착취만 당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제 세대와, 저보다 또 뒤에 오는 세대에 대한 게 일단 최우선이에요. 우리는 그래도 멋진 세대고, 다른 걸 해낼 수 있으니까요.

 

 

사그라지지 않게 하는 것


배윤나가 한규익에게 “너는 달라. 너는 필요해.” 라고 말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젊은 예술가들, 꼭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 전반에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요. 사회가 예술가를 대우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고, 육성하지 않아요. 점점 정책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지난 10년간 모든 게 축소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확신을 가졌으면 했어요. 그래도 예술가는 필요하고, 바깥에서 아무리 가치가 없다고 해도 자신의 가치를 더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요. 더 넓게 해석한다면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겠죠.


작가님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자리를 잡은 편이라고 느끼시나요?


15년 하면 어느 분야든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7년 했으니까, 8년 후에 말씀드릴게요. (웃음)


SNS를 통해서 ‘문단 내 성폭력’ 이슈 관련해서도 발언을 꾸준히 내고 계세요. 그나마 문학계의 ‘인사이더’로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나요?


그런 면에서 한 건데, 변호사님에게 상담했더니 SNS에 올리는 것보다 되도록 공식 지면으로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채널예스>에도 특별기고를 해주셨어요.


문학동네 좌담에도 참여했고, 앞으로도 관련 이슈가 나오면 무언가 쓸 거예요. 이 문제가 사그라지지 않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이것도 지금 바꾸지 않으면 문학계에 미래가 없어요. 이 엉망인 상황에 누가 어떻게 믿고 문학을 하겠어요. 다음 세대의 문학을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과정이 막 빠르게 전개되지는 않을 거예요. 지켜보시는 분들 눈에는 너무 느릴지 모르지만 섬세하게 더 다치는 일 없이 천천히 해나가려고 해요.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오래 걸리고 여러모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권력을 허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먼저 권력을 잡자는 의견도 있을 거고요.


저는 천천히 체질 개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의견이 그럴 필요는 없고, 즉각적인 처분을 원하는 사람도 있죠. 의견이 다양한 것 자체가 좋다고 생각해요. 잡지 만드는 사람, 학생, 여성단체 사람들 등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고민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을 더 공정하게 선택한다든지 벌써 변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중간에 이상한 사건들이 있겠죠. 도리어 반격당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 봐서는 좋아질 거라 생각해요.


지현이 오빠들에게 일갈하는 장면이 회자가 되더라고요. 속시원하다고요.


“이야, 나이 드니까 뷔페 뜨러 가기도 귀찮다, 그치?”
“응, 누가 가져다주는 밥이나 먹고 싶지.”
“그래서, 지금 나보고 떠오라고?”
현이 일갈하자 오빠들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났다.
- 230쪽, 「지현」 중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에요. 오빠들이 앉아서 뷔페 떠오기 귀찮다고 하길래 지금 나보고 떠오라는 거냐고 그랬더니 바로 일어나더라고요. (웃음) 재밌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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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작가로 살고 싶어요


엔딩을 두고 착잡하다는 반응이 있어요. 저는 아무도 안 죽어서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둘 다인 것 같아요. 아무도 안 죽은 건 분명 해피엔딩이지만, 이 일이 반복될 게 뻔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 또 일어나면 과연 괜찮겠냐는 물음에는,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세계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확신하기 어려운 거죠.


제일 안타까웠던 캐릭터가 있나요?


오정빈과 정다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유년기에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 뉴스를 계속 접했는데, 아이들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아주지 못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나중에 그 이름으로 좋은 거 시켜주려고요.


앞으로도 사회적인 내용이 계속 작가님 소설에 나올까요?


전에는 사랑스러운 연애 소설 쓰면서 평생 살다가 죽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한동안은 인권과 폭력에 관해서 쓸 것 같고, 또 다른 주제가 찾아올 수도 있고요. 오랫동안 작가로 살고 싶어요.


『피프티 피플』로 모아놓은 자료는 거의 다 쓰셨어요. 이제 다시 자료를 쌓아야겠네요.


내년은 조금 쉬면서 천천히 장기적으로 긴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동안 뭘 먹고 사느냐가 문제죠. (웃음)


 

 

피프티 피플정세랑 저 | 창비
2016년 1월~5월 창비 블로그 연재 당시 50명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정세랑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이 단행본으로 묶였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또는 단단하게 연결된 병원 안팎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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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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