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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1964년 겨울

<월간 채널예스> 12월호 김승옥의 『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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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학 작품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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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쇠락한 이미지만 남아 있지만, 다방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와 그만큼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1910년대 일본인에 의해 생기기 시작한 다방은 192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1938년 발표된 이상의 단편 소설 『환시기』에는 삼각관계로 실의에 빠진 주인공 이상이 ‘멕시코 다방’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멕시코는 배우 김용규와 심영이 1929년부터 종로 2가 YMCA 근처에서 운영했던 곳으로, 당시 지식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공간이라고 한다. 이상 또한 미술학도와 건축기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3년 ‘제비 다방’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1930년대 지식인들의 사교 공간으로 출발한 다방은 전쟁 이후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서면 ‘한 집 건너 다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속히 늘어나는데, 이는 딱히 갈 곳이 없던 사람들과 인스턴트커피 덕분이다. 특히 1938년 네슬레 브라질 연구소에서 분유 제조 기술을 응용해 탄생한 인스턴트커피는 그 편리함과 대량 생산 기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을 통해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지금과 달리 커피를 마시려면 다방에 갈 수밖에 없었고, 또 지친 걸음을 쉬어가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공간 또한 다방과 술집뿐이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런 1960년대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문학 작품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전쟁 이후 빠르게 도시화 하는 서울에서, 어떤 이들은 현기증 때문에 쓰러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서투르지만 영악하게 적응해 가고 있었다. 작가는 소설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던 조이스처럼, 김승옥 또한 당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냉정한 거울로 담아내고 있다.

 

『무진기행』에는 1964년 발표된 「차나 한잔」이라는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신문에 네 컷짜리 시사만화를 연재하는 주인공은 요즘 들어 속이 편치 않다. 주로 검정 안경을 쓴 대통령과 ‘아톰 X군’이 등장하는 그의 만화가 지면에 실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연재 중단을 통보받는 자리에서 신문사 문화부장은 그에게 ‘차나 한잔 하러 가실까요’라고 말한다. 해고당하는 자리를 비롯해 화장실과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 부탁을 위해 들린 다른 신문사의 문화부장과 함께 그날 그는 세 번이나 다방을 찾는다. 저녁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그는 ‘차나 한잔’이라는 말이 ‘회색빛 도시의 따뜻한 비극’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말한다. 해고하면서 차라도 한 잔 나누는 한국적인 인정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듯 매끼 식사처럼 도시인들의 일상 그 자체였던 다방 문화는 1970년대 들어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1970년 동서식품에서 국산 인스턴트커피와 프리마가 출시되어 가정과 사무실에서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1976년에는 역시 같은 회사에서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가 출시되었다. 게다가 1977년 등장한 커피 자판기는 다방 문화의 확산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소수의 다방은 맞선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 고급화하거나 전문 음악감상실로 탈바꿈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생존을 위해 퇴폐적인 서비스에 집중하며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흔히 다방 커피 하면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하는 식으로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해보면 맛을 내기 꽤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또한 경험과 일종의 손맛이 필요하니 가끔 달곰한 다방 커피가 생각난다면 주저 말고 ‘맥심’ 커피 믹스를 선택하면 된다. 1982년 출시된 맥심은 인스턴트 커피 15%, 커피 프림 30%, 백설탕 55%의 비율로 미국 맥스웰 하우스 본사에 세계 5대 커피 중 하나로 전시되어 있는, 그야말로 다방 커피계의 명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방 커피를 맛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30년째 다방 커피를 대표 메뉴로 하고 있는 인사동 근처 안국동 ‘브람스’ 카페에서 잔잔한 클래식과 함께 오래된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다방 커피



인스턴트 커피 2스푼, 커피 프림 2스푼, 설탕 2스푼


만드는 법
1. 찻잔에 티스푼으로 인스턴트커피, 커피 프림, 설탕 각각 두 스푼씩 넣고 뜨거운 물과 함께 잘 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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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피터(북카페 피터캣 대표)

책과 커피, 그리고 하루키와 음악을 좋아해 홍대와 신촌 사이 기찻길 땡땡거리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와 커피 한잔을 마주하고 정겨운 시간을 보내듯 책과 커피 이야기를 나누어보려 합니다. 인스타그램@petercat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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