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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용기 내 사랑을 말하라”

만화가 박광수와 함께한 『LOVE』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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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랑 때문에 비난을 받은 적도 많지만, 죽는 날까지 사랑에 관해서 쓸 거예요.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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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광수생각』에서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던 만화가 박광수가 신간 『LOVE』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지난 12월 8일 합정동 빨간책방에서 이를 기념하는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인사말을 전하는 박광수 저자의 유쾌한 목소리에서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어서 마무리 짓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며 대뜸 청중들로부터 질문부터 받기 시작했다.

 

이대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해 하던 찰나, 나름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항상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시간이 부족해 정작 행사에 참석한 분들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것. 박광수 작가는 먼저 소통의 활로를 여는 것으로 이날 행사를 시작했다. 스스럼없는 진행 덕분에 북콘서트에 참석한 20여 명의 청중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광수 저자와의 Q&A

 

1년 반 만에 신작입니다. 제목은 ‘사랑’이고요. 어떤 마음으로 쓰셨고,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으면 좋을 것 같나요?

 

박광수: 가수 김창완 씨가 이런 말을 하신 적 있죠. ‘삶은 답을 구하는 시간이 아니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간이다.’ 저도 제 삶에 대해 답을 찾기보다 항상 묻는 편이에요. 그건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왜 사랑을 그려내고, 말하는 걸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제가 스스로 던진 질문이 바로 이번 신간에 담겼습니다. 저는 사랑 때문에 비난을 받은 적도 많지만, 죽는 날까지 사랑에 관해서 쓸 거예요. 삶에서 가장 좋은 순간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 시간이니까요. 라면 가게에서 라면을 먹는다거나 아들을 껴안을 때도 좋지만, 되돌아보면 사랑할 때가 제일 좋았어요. 자신의 가지고 있는 사랑의 경험을 가지고 책을 읽으셨으면 해요. 또, 『참 서툰 사람들』 때부터 시도하고 있는 건데 제 책에는 채 쓰지 못한 문장이 감춰져 있어요.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두 분이 찾고 나서 블로그에 글 올린 걸 봤어요. 

 

‘사랑은 진흙밭을 걸으면서 진흙에 빠진 두 발을 보지 않고, 당신과 맞잡은 손을 느끼며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라는 구절을 포함해서 그동안 사랑에 대한 여러 표현을 해주셨어요. 직접 묻고 싶어요. 사랑은 뭘까요?

 

박광수: 조금 있으면 제 나이 50살이에요. 이번 책을 쓰며 느꼈지만, 이쯤 돼서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꼭 사람 만나는 걸 전제로 하지 않더라고요. 나이 들수록 혼자 있을 때가 많아져요. 사랑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방 안에 빛도, 창문도 없는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성냥 한 개비가 있어요. 불을 켜는 순간 주변이 환해지면 어둠 속에선 안 보이던 제 모습이 보여요. 그 모습이 사라져 가는 순간까지 쳐다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나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어쩌면 모두가 사랑의 감정일지도 몰라요. 물론, 저는 지금도 열심히 사랑하고 살고 있어요.

 

식어가는 사랑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박광수: 저는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사귀던 시절 그녀가 보냈던 편지나 메일을 다시 읽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먼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좋아요. 누군가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지만, 사랑은 100% 변합니다. 그렇다고 달 모양이 별 모양으로 변했다는 거로 싸우면 안 되겠죠. 모양은 조금씩 바뀌더라도 질량이 유지되면 괜찮은 거예요. 저는 변치 않는 사랑, 그것에 집착하면 사랑이 깨지기 쉽다는 걸 경험해서 알고 있어요. 예전과 다른 모습이어도 사랑이 식었다거나, 그 사랑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라요.

 

과거의 왕성한 활동에 비해 요즘은 활동이 뜸하셨는데요. 삶에 변화가 있을 때 감정은 어떠셨나요?

 

박광수: 언젠가 88올림픽 도로를 지나갈 때였어요. 비가 그친 후 떠오른 무지개가 아름다워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무지개를 찍었죠. 근데 제가 느끼는 무지개를 사진이 담아내진 못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지은 사진 책 제목이 『무지개를 좇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치다』예요. ‘세상이 만들어놓은 행복만 좇던 나는 무지개만 바라보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였죠. 노을같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가족, 이런 걸 놓치고 산 것은 아닌가 되돌아봤던 것 같아요. 확실히 이전보다 돈은 못 버는 것 같지만,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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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청중들의 질문이 끝나자 박광수 저자는 비로소 본인이 준비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강연회를 가면 두 가지 이야기는 꼭 전하려고 해요. 하나는 오신 분들께 ‘행복 리스트’를 만들라고 권하는 거예요. 로또에 당첨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로또를 사는 거겠죠. 대통령이 번호를 불러줘도,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와도 안 사면 불가능해요. 행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때 행복한지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어요. 남들이 만들어놓은 행복은 ‘평균적으로 내놓은 양복을 사서 내게 맞는 옷이라 믿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규격화된 행복의 틀에 얽매이지 마세요.

 

행복 노트를 만드세요. 간단합니다. 아무 노트나 사서 행복노트라 적고 행복할 때마다 거기에 적으시면 돼요. 예를 들어, 저는 만화방에서 만화책 읽으면서 라면을 먹거나 어머니와 포옹하면서 화장품 냄새를 맡을 때면 행복하다고 느껴요. 그대로 노트에 씁니다. 저한테 돈의 가치는 그리 중요치 않아요. 이 나이 되어 보니까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 하는 것들, 그 정돈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주변에 공짜는 널렸어요. 봄에 고수부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도 정말 다양해요.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에요. 적게 벌고 더 행복하게 살겠다는 게 지금의 제 마음이에요. 행복노트, 꼭 만드세요.

 

첫 번째 이야기로 행복노트의 중요성을 설명한 박광수 저자는 다음 이야기도 이어갔다.

 

다음으로 얘기 드리고 싶은 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라는 거예요. 먼저,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우리나라 모든 뉴스 매체들이 대구지역을 보도했어요. 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만화 그리기로 마음먹었죠. 만화 그리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칫해서 논조가 흐트러지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첫날에 계속 고민했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다음날까지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차를 몰고 직접 대구로 내려갔어요.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까 그을린 벽면이 곳곳에서 눈에 띄더라고요. 그리고 누군가가 막대기나 손으로 그을음에 ‘힘내, 잘 가’와 같은 말을 써놨어요.

 

역사에 도착하니 영정사진 앞으로 꽃들이 쭉 놓여있었죠.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3일 동안 계속 봐왔더니 의외로 담담하더군요.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온 한 글귀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어요. 한 영정 사진에 고인의 마지막 문자를 써둔 거였죠. 서울에 사시는 남성분이었는데 대구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변을 당하셨대요. 문자 내용에는 ‘자기야, 나 대구 도착했어. 조금 있으면 사랑하는 자기 볼 수 있어’라고 쓰여 있었어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신문기사 통계 정보를 보니까 지하철에서 반 정도 인원이 빠져 나오고 나머지 분들은 질식사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공통으로 한 일이 핸드폰을 꺼내서 소중한 사람들한테 전화를 했다네요.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답니다. 지하철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 중 단 한 분도 본인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제가 두 번째로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이 건물에서 1km 이상 멀어지기 전에 본인이 제 얘기 듣고 떠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전하세요. 물론 사랑한다는 말은 쉽지 않아요. 저도 스스로 많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느 날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께 슬쩍 가서 팔짱 끼니까 놀래시더라고요. 그래도 1. 2년 정도 계속 시도하다 보니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내가 그동안 안 해왔던 것일 뿐, 용기 내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LOVE박광수 저 | 베가북스
지난 100년 간 사랑을 불렀던 시인들의 노래와 명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성을 더한 작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몇 미리 정도의 눈물을 더한다. ‘사랑’이란 단어로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담을 수 없지만, ‘사랑’이란 두 글자도 시가 되는, 잊고 지낸 눈부신 삶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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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상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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