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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젊음의 행진>의 상남이로 돌아온 언제나 주목받는 배우 전역산

어떤 역할을 맡든 한 번 보면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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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재밌고 즐거워야 일도 재밌는 것 같아요. 지금 슬프다는 얘기는 아닌데, 제 인생에도 좋은 감초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죠. 전역산 자체로도 더 빛나도록!

작품에 상관없이, 어떤 역할을 맡든 한 번 보면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 배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배우는 허우대는 물론이고 이목구비까지 크고 뚜렷해서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데요. 뮤지컬 <난쟁이들>을 봤다면 여자보다 더 예쁜 신데렐라로 변신한 그에게, <알타보이즈>를 봤다면 후안으로 변신해 뛰어난 댄스 실력을 선보인 그에게, 그리고 친정집에 오듯 이제 다시 <젊음의 행진>의 보이시한 여고생 상남이로 돌아온 그에게 시선이 집중됩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 인근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모자를 뒤집어쓴 채 마스크까지 쓴 산만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군요. 눈만 보이지만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오늘 기자가 만날 배우 전역산 씨입니다.

 

“사람들이 ‘여고괴담’의 최강희 씨처럼 포스터 보면 안 죽고 계속 살아 있다고. 다만 상남이가 좀 늙었죠(웃음). 계속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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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젊음의 행진>. 주인공인 영심이와 경태는 바뀌어도 상남이는 변함없이 전역산 씨잖아요. 터줏대감인 만큼 어쩌면 제작진보다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알 것 같은데, <젊음의 행진>의 인기 비결이 뭘까요?


“창작뮤지컬이 오래 가기 힘든데, <젊음의 행진>은 해마다 콘셉트나 드라마를 살짝 바꾸면서 넘버에도 변화를 줘요. 그해 이슈가 된 노래나 연도별 특징을 고려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작년에 R.ef가 있었다면 올해는 김건모로, 지난해에 박진영이 있었다면 올해는 터보로 바꾸는 거죠. 뮤지컬은 음악의 힘이 가장 큰데, <젊음의 행진>은 한 가수의 노래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1980~90년대, 한 시대의 향수를 담아서 더 롱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한창 일하고 계시는 30~40대 관객들이 딱 추억하기 좋은 노래들로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토토가’나 ‘응답하라’ 시리즈 등 몇 년째 복고가 유행이라서 그 흐름에도 잘 맞고요.”

 

상남이도 진화하고 있나요?


“진화했죠. 10년 전 초연 때는 바지를 입었어요. 보이시한 여고생이니까. 그런데 관객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을 못하셔서 다음에는 치마를 입었죠. 제가 워낙 체격이 커서 교복을 줄여보기도 하고, 여성스럽게 화장을 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지금은 나이를 먹다 보니 시크하고 농염한 상남이가 됐고요(웃음). 관객들도 여고에 있을 법한 여학생 역할을 남자배우가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작품의 감초 역할로 재밌게 보이려고 해요.” 

 

지금이야 드래그 퀸 역할 등 여장을 하는 남자 배우들이 많지만, 10년 전에 상남이 역할이 들어왔을 때는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힘들었죠. 이건 드래그 퀸도 아니고 그냥 여자 역할이잖아요. 추민주 연출님이 글을 썼는데, 연출님이 실제 다녔던 화성여고의 같은 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고생이 ‘이상남’이었대요. 실존 인물인 거예요. 보이시한 여학생이니까 여자배우가 하면 관객들도 이해하기 편하실 텐데 그걸 굳이 남자인 저한테 연기하라고 하니까 어려웠어요.”

 

그러니까요, 왜 그랬을까요? 물론 전역산 씨가 너무 건장해서 그렇지 얼굴은 예쁘시죠(웃음).


“사람들이 신데렐라 할 때 럭비 선수 같은 애가 나오는데 얼굴만 예뻤대요(웃음). 모르겠어요, 저는 드래그 퀸 역할을 해본 적은 없는데, 여자 배우가 해야 역할이 저한테 와요. <젊음의 행진>도 <난쟁이들>도 처음에는 다른 배역으로 참여했다 중간에 여자 역할로 바뀐 거예요. 아마도 ‘맨땅에 헤딩하는 역할’에 저를 많이 불러주시지 않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때 디테일을 많이 생각하는데, 그걸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오로라’도 하겠다고 말했어요(웃음).”

 

단연 돋보이기는 합니다. 전역산 씨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고민을 무척 많이 해요. 잘못하면 드래그 퀸 흉내 내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여장 남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 역할이잖아요. 신데렐라는 여자 흉내를 내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실존 인물 두 명을 계속 관찰해서 목소리나 말투, 행동을 그대로 카피했어요. 사람들이 성대모사 할 때처럼 녹음까지 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상남이는 대사가 많지 않지만, 몇 년 전부터는 한 여배우의 말투를 집중적으로 파서 따라 했고요. 그래서 관객들도 정말 여자 같다고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여자보다 더 여자처럼 연기하는 남자배우로 확실히 주목은 받았지만, 혹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될 법한데요.


“힘들 때도 있었는데, 생각이라는 게 한 끗 차이더라고요. 누군가 ‘너는 여자가 해야 할 역할을 남자가 하는 건데 그게 얼마나 특이하고 독보적이냐, 그런 배우가 어디 있느냐’며 멋있게 생각하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더라고요. <젊음의 행진>을 10년간 할 수 있는 이유도 저 아니면 누가 상남이를 하겠어요. 제가 군대 갈 때 어떤 여배우에게 상남이를 제안했는데 절대로 못하겠다고 했대요. 신데렐라도 2차 때는 제가 스케줄이 있어서 원캐스트를 못했는데 프라이빗 오디션 때 아무도 안 왔다고 해요. 지금은 그런 부분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요.”

 

서구적인 마스크에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해서 아무래도 배우로서 다양한 인물을 만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주인공은 애초에 들어온 적이 없었고, 이미지가 개구쟁이에 까불까불해서 항상 감초, 재미를 위한 역할이 많이 들어왔죠. 여자 역할을 해서 배역이 안 들어온 건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배우가 장르나 역할을 가려서 뭐해요.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잖아요. 그리고 한 가지 이미지로 굳히면 어때요, 제가 뭐라고(웃음). 다행히 <난쟁이들> 이후에 <알타보이즈>에서 남성미 넘치는 역할로 많은 박수를 받았고, <젊음의 행진> 끝나고는 처음으로 정극에 참여하게 돼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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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산 씨의 강점 중 하나는 ‘춤’이잖아요. 자라섬뮤지컬페스티벌 때도 전역산 씨 춤을 보느라 서울 가는 기차를 놓칠 뻔 했습니다(웃음).


“이제 힘들어요(웃음). <젊음의 행진>도 어찌나 힘든지. <젊음의 행진>에서는 영심이랑 경태 빼고는 다 멀티거든요. 객석에서 보면 앙상블 친구들이 노래 끝나면 다음 장면에 또 나오고, 그 다음 장면에도 있어요. 초연 때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연장자 우대인지 안무 감독님이 몇 개를 빼주셨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노래꾼보다는 연기나 춤꾼이다 보니까 관련 작품이 많이 들어오기는 하죠. 그런데 뮤지컬 관계자님들, 저 노래 엄청 늘었습니다! 감성적인 멜로디를 표현해야 하는 역할도 잘 할 수 있고요. 특히 제가 라이선스에 걸맞은 얼굴을 갖고 있잖아요. <헤드윅>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저를 눈여겨 봐주세요(웃음)!”

 

흔히 남자배우들은 30대에 훨씬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네, 아역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돼서 뮤지컬 한 지도 13년 됐거든요. 중간에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후기에 저를 두고 ‘믿보배’라고 하셨더라고요. 한 분이지만 정말 뿌듯했어요. 마치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처럼. 어떤 역할이든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충실히 준비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서고 싶어요.”

 

2017년 바람이 있다면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작품마다 캐릭터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더라고요. 올해는 전역산으로도 잘 살고 싶었는데, 전역산이 상남이만큼 빛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연말이 되니까 ‘전역산 캐릭터는 실패했구나!’ 생각돼요(웃음). 제가 재밌고 즐거워야 일도 재밌는 것 같아요. 지금 슬프다는 얘기는 아닌데, 제 인생에도 좋은 감초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죠. 전역산 자체로도 더 빛나도록!”

 

무대에서 과감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전역산 씨 역시 내내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이어 나갔습니다. 이러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니 더욱 매력적인 것이겠죠. 아니, 그래서 배우인가 봅니다. 생각해 보니, 전역산 씨를 인터뷰로 만난 지 꼭 10년 만이네요. 10년 전보다 패기 넘치는 모습은 줄었지만, 훨씬 사람 냄새가 짙어진 게 배우로서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역산의 상남이도, 정극에서의 새로운 변신도, 그리고 언젠가 맡을 오로라도, 헤드윅도 기대됩니다.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1980~90년대 히트 가요를 촘촘히 엮어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관객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뮤지컬 <젊음의 행진>. 10주년의 흥겨운 행진에 여러분도 동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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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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