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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난 그의 인생길

나는 빈센트의 전기에 맞추어 이 책을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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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만 배운 휴머니즘을 넘어 진정한 인간애를 맛보고 실천하기를 바라며 눈과 마음이 비옥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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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화실에서 작업하던 어느 날 정오 무렵, 영국인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점심 같이할까?”
“미안, 작업 중이야.”
“알겠어. 근데 네 귀는 아직 멀쩡한 거지? 귀는 그대로 둬라.”
“내가 빈센트냐. 확인은 해볼게.”

 

그날의 통화 내용처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는 화가인 나의 삶 가운데 살아 있다. 빈센트의 생애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가들의 삶의 표본처럼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부터 이미 돈 걱정은 없었고 30대에는 부자였으며 40대에는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같은 화가가 나온 뒤에도 빈센트가 남긴 비극적 예술가의 전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탓에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유럽인들에게도 화가는 가난하고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과거, 영광과 부를 거머쥐었던 왕궁은 오늘날 명화의 거처가 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자란 프랑스인들이라면 화가라는 직업에 높은 호기심과 환상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을 텐데도 자식이 화가가 된다고 하면 무슨 조화인지 질색하고 말린다. 말이 나온 김에 화가들이 전시장에서 나누는 대화를 한 번 들어보자.

 

“내 작품이 알려지기는 이미 틀렸어.”
“아직 모르는 일이야. 천재 화가는 동시대인들의 몰이해로 저주받은 사람이아닌가!”

 

이런 나의 관점은 과장된 것일까?
그러한 예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1987년 3월, 빈센트의 작품 「해바라기」는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당시 세계 최고가인 3,900만 달러에 팔리며 미술시장에 새로운 전설을 낳았으니까. 그뿐인가. 같은 해 11월 11일에는 그의 「붓꽃」이 소더비 경매장에서 5,390만 달러에 팔렸다. 이렇듯 미술시장 최고액을 잇달아 경신하면서 빈센트 반 고흐와 천문학적 액수의 그림은 동의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빈센트는 생전에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희극으로 바꾸지 못했다. 영광의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전기에는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듯이.


빈센트 연구자들 중에는 그 삶의 파편들을 판독해야 할 블랙박스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다. 가끔 그 파편 중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면 빈센트라는 블랙박스 판독은 대체 언제쯤에나 끝이 날까?


불과 서른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이지만,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21세기 문턱까지 살았고, 값진 증언을 남겼다. 그들 중 오래 산 이들을 몇 명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빈센트와 함께 자란 여동생 빌레미나 반 고흐(Willeminavan Gogh)는 1941년까지 살았고, 빈센트가 죽은 해 태어난 조카, 즉 테오(Theodor van Gogh, 1857~91)의 아들인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는 1978년까지 살았다. 빈센트의 지인들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잔 루이즈 칼망(Jeanne Louise Calment, 1875~1997)으로, 그녀는 공식 기록상 최장수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를에서 미술 재료상을 운영했다. 빈센트는 재료 구입을 위해 그곳을 드나들었고, 그녀는 그때 그를 만났다고 했다.


블랙박스 판독, 증언, 화가에 대한 편견, 경매가 최고액 경신 등 막강한 이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유럽인들의 빈센트에 대한 관심과 호응도는 내게는 어쨌든 과장이며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불편했다. 최근에도 빈센트가 잘라낸 게 귀 전체냐, 귓불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대두되었다. 증거 자료가 제시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걸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 태양이 눈부신 어느 여름날의 오후였다. 빈센트의 그 다채로운 노란색과 초록색이 만든 황금빛 찬란한 들판 풍경을 직접 감상했다.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유럽인들이 빈센트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스탕달 신드롬이 무엇인지. 그 전율은 단숨에 읽어 내려간 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했고 쉽게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마치 그가 가까운 미술인 선배라도 되는 것처럼 측은함을 느끼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미술관 방문이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내 온 열정을 다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미술 세계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도 그를 통해 바뀐 지금,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슬픈 영혼을 가진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평범한 시골 마을인 흐롯쥔더르트에서 태어나 1890년 7월 29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짤막한 시간 속에 성직자에 대한 갈망과 예술에 대한 탐구와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몽땅 고갈시킨 인간이 숨어 있다. 나는 그의 작품과 생애에 관하여 섣불리 정의 내리기보다는, 암시하고 분석하고 제안해보기 위해 그가 거쳐간 인생과 예술의 무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한 인물이 살았던 장소는 그의 운명이 펼쳐지고 형성되는 데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소인 탓이다.


어쩌면 삶은 행동반경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살았고 그림을 그렸던 확고부동한 장소는 빈센트의 삶을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장소는 주변 풍경을 반영해서 세상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화가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 그래서 빈센트를 사랑하는 이들의 끈질긴 열정이 찾아낸 그의 삶과 그림의 현장으로 나 또한 떠났다.


그 결과로 얻어낸 이 책 속의 사진들은 빈센트 반 고흐 연구를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리라고 믿는다. 몇몇 장소는 사회 발전, 도시화, 전쟁 등을 겪으면서 변형되거나 훼손되었다. 부실한 행정 관리로 말미암아 구할 수 있었을 곳도 여럿 사라지고 말았다. 행정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빈센트의 전기에 맞추어 이 책을 써내려갔다. 네덜란드ㆍ영국ㆍ벨기에ㆍ프랑스, 이렇게 유럽 4개국의 21개 도시를 걸었다. 그러기에 이 책은 그가 태어난 곳에서부터 생의 고통을 마감한 오베르쉬르우아즈 골짜기까지 책 속으로 난 그의 인생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길을 내기 위해 나는 빈센트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가 살았던 집과 그림을 그린 장소를, 존재하는 한 모두 방문했다. 다 알려진 내용일지라도 직접 확인해보려고 노력했다. 오지랖이 넓은 나의 열정 탓으로 해두자. 손에는 나의 친구 프랑수아즈가 준 프랑스어로 된 문고판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가 항상 들려 있었다. 빈센트가 편지를 쓴 현장에서 직접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감격했고, 때로는 핑 도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추슬러 화가인 내가 썼으니 무명 화가의 기행으로 쏠릴 뻔도 했지만, 빈센트의 인생이 워낙 소설 같아서 자연스럽게 그런 경향은 배제되었다. 한국에도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다고 들었다. 빈센트가 그런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길을 헤맸고 신세를 졌다. 길을 안내해준 숱한 외국인들, 고문서를 함께 열람해준 아를의 도서관 사서들, 에턴의 구석구석을 안내해준 코르 씨,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그리고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을 믿어준 아트북스의 정민영 대표를 비롯하여,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던 아트북스 편집부에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을 갈무리할 즈음, 세상을 떠난 니노미아 다이도쿠 씨에게 “그림을 사랑했던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끝으로 빈센트 전시를 관람하며 캔버스와 물감이 아닌 따사로운 미풍과 그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면 그 비밀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 책 속을 거닐면서 마술처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종잇길이겠지만 부디 좋은 길이기를 바란다. 행과 행 사이에서 가끔은 반짝 비치는 햇빛과, 뭉클한 구름과, 쏟아지는 소낙비를 만나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만 배운 휴머니즘을 넘어 진정한 인간애를 맛보고 실천하기를 바라며 눈과 마음이 비옥해지기를 기대해본다.


2016년 파리에서
류승희


 

 

빈센트와 함께 걷다류승희 저 | 아트북스
여기, 어느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거쳐간 숱한 장소를 돌아보며 반 고흐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해 엮은 한 권의 책이 있다. 반 고흐가 머물렀고, 지은이가 걸은 이 종잇길을 따라 우리는 한 예술가의 생과 사가 교차하는 가슴 뜨거운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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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와 함께 걷다

<류승희> 저17,100원(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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