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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포스트 펑크의 자랑, 프리오큐페이션스

프리오큐페이션스(Preoccupations) <Preoccup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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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멋진 포스트 펑크 앨범이고 멋진 노이즈 록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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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의 형태가 약간은 명료해졌다. 「Anxiety」에서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신시사이저와 「Monotony」의 기타에서의 선율, 「Fever」 전체의 멜로디 등이 꽤 잘 들린다. 그러나 무채색으로 뒤덮인 앨범 속에서 이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결국 프리오큐페이션스로 밴드의 명칭을 바꾸고 내놓은 새 음반 전반의 형상은 베트 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내놓았던 <Viet Cong>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침하고 무거운 공기를 깔아놓는 신디사이저 라인과 로 파이 톤의 사운드 마감을 거쳐 나온 까칠한 질감,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기타 리프, 러닝 타임 곳곳에 서린 노이즈, 어두운 선율과 비선형적인 곡 전개와 같은 요소들이 다시금 튀어나와 이들의 새로운 음반을 장식한다. 조이 디비전과 바우하우스를 닮고 에코 앤 더 버니멘과 소닉 유스를 연상시키는 밴드의 포스트 펑크, 노이즈 록, 노 웨이브 사운드가 여전하다.

 

그럼에도 프리오큐페이션스는 재차 신선한 음반을 내놓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포스트 펑크의 통사를 잘 이어가면서도 작품이 결코 진부한 결론에 다다르지 않게 하고 전작에서 내건 특유의 컬러와 작법을 계속 가져가면서도 행로가 전과 동일한 지점에 도달하지 않게 한다. 통상의 기준에서 비문(非文)에 해당하는 언어(parole)를 쉼 없이 쏟아냄과 동시에 이들끼리 치열하게 충돌시키며 또 다른 새로운 결과물을 기어이 획득해낸다. 트랙들 기저에 차갑게 내리 앉은 신스 라인과 선율을 단조롭게 뱉어내는 포스트 펑크 기타 리프, 미니멀한 리듬 파트, 신경질적으로 단어를 토해내는 보컬,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피드백 사운드가 예측불허의 진행 구조 속에서 뒤섞여 <Viet Cong>에서와는 다른, 그리고 여타 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불안과 혼란, 자극을 끊임없이 생성한다. <Preoccupations>는 그렇게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 훌륭한 두 번째 장을 제공한다.

 

긴장감을 일으키는 긴 호흡의 신스 음향으로 시작해 신경질적인 보컬을 집어삼키는 전자음으로 막을 내리는 38분의 러닝 타임 내엔 무섭게 울려대는 펑크 트랙들이 갖은 모양새로 자리해있다. 큰 동요 없이 읊조리는 보컬 주위로 차가운 톤의 신스 라인과 노이즈에 가까운 리프들이 횡행하는 「Anxiety」가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 위에서 꿈틀대고, 가쁜 템포의 전개 도식 위로 긴장 상태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기타와 소란스럽게 울리는 전자음이 번갈아 등장하는 「Zodiac」이 불편으로의 노출을 강요하며, 고전적인 포스트 펑크 스타일을 앞세우고서 로킹하게 나아가는 「Degraded」와 「Stimulation」이 종잡을 수 없이 휘청거리는 걸음을 급하게 옮겨댄다. 밴드가 충실히 따르는 비정형의 어법은 11분의 대곡 「Memory」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전작의 「Death」처럼 두세 곡을 이어 붙인 듯한 아트 펑크 식 구조 속에서 비관의 텍스트와 사이키델릭한 이미지, 침잠하는 드론 사운드가 부딪히고 또 부딪혀댄다. 불규칙성을 동원해 역설적으로 유기적인 구조를 이끌어내려는 독특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긴 의미 있는 흔적들이다.

 

창작의 힘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좋은 앨범이다. 2010년대의 포스트 펑크 신이 자랑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작이 나왔다. 내면의 어두운 단면들을 꺼내 주제로 삼고 변칙이 연속하는 통로를 지나가면서 다양한 포스트 펑크와 노이즈 록의 단편들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는 데에 작품의 큰 의미가 모인다. 장르적 차원에서 시야를 좁혀 프리오큐페이션스라는 한 밴드의 차원에서 앨범을 보았을 때도 남다른 의의가 잡힌다. 수작으로 기록된 데뷔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두 번째 정규 음반을 만드는 데에 이들은 성공했다. 단연 멋진 포스트 펑크 앨범이고 멋진 노이즈 록 앨범이다.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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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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