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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참으면 폭발한다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 『죽음의 스펙터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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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질서 있게 비폭력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참여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운 기분이 만연해 있는 거리의 풍경에 감동을 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권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 사회의 집단행동이 도리어 얼마나 기이하며, 이상주의가 실현되는 영화 속 장면 같은 사건인지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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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폭력이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원래 흉포하고 성격이 괴팍한 요주의 인물이거나 조울증이나 조현병과 같은 심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을까? 사건이 나면 뉴스는 범인의 정신질환 치료이력을 들추거나, 기이한 행동에 대한 주변인 인터뷰를 싣는다. 그래서 지금껏 당연히 그런 줄 알아왔다. 진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기보다는 그런 행위는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보는 게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1986년 8월 20일 오크라호마주 에드먼드 우체국 지소에서 18개월간 근무하던 패트릭 셰릴은 평소 들고 다니는 우체부 가방에 45구경 반자동 권총 두 개, 2백발의 총알을 들고 가서 평소와 같이 7시에 출근을 했다. 건물로 들어가 처음 쏜 사람의 그의 감독관이었고, 이후 여러 명의 동료들을 쫓아가 쏴 죽였다. 생존한 목격자에 따르면 셰릴은 일부는 표적으로 삼았고, 일부는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는 무려 15명을 살해했고,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 사건은 미국사에서 3번째로 큰 대형 살인 사건이었다.

 

그는 미치광이 사이코패스였을까? 사건 이후 벌어진 취재에 따르면 그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이었고, 혼자 오랜 시간 지내는 가난한 중하층이었다. 그 외에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건 9개월 전. 정직 처분을 받았고, 하루 전날에는 감독관에게 불려가 호되게 혼이 났고, 그는 해고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것이 아마도 방아쇠를 당기게 한 사안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우체국에서는 직원에 의해 여러 건의 총기를 이용한 사건이 있었는데, 내부로는 직장 내 따돌림, 가혹한 근무 환경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후 미국인들에게는 “우체국 직원처럼 격분하다”는 관용구가 생겼다고 한다. 몇 년 후 나온 근무환경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직원은 아버지 생일파티에 가려고 하루 휴가를 신청했으나 두 시간의 늦은 출근만 허락을 받았고, 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시고 갔다는 이유로 정직처분을 받았다. 그 이후 미국에서는 수십 건의 직장 내 총기 사건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 온순하고 조용하던 사람들의 손에 총을 들게 만들었을까? 우리 사회에서도 ‘내 손에 총만 있었으면’하는 상상을 한 번쯤 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상사의 말도 안 되는 꼬투리 잡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업무량의 파도에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 비인간적인 경쟁과 성과우선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등장했던 수많은 직장과 학교에서의 다중살인 사건을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크 에임스는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라는 책에서 자세하게 소개하며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는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의 직장과 학교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에 대해 목격자, 피해자, 가족 등을 만나고 다양한 자료를 취합해 깊이 취재했다. 사건 당시에는 매번 미국의 해묵은 ‘총기 소지 문제’나 범인의 ‘정신질환 여부’가 주요한 이슈였기에 다른 문제들은 대부분 뒤로 묻혔었다. 그가 우체국, 인쇄공장, 콜롬바인 고등학교 등에서 취재한 것에 따르면 사실 범인들은 오랫동안 평범한 사람들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았었고, 남들을 괴롭히던 깡패 같은 성향이 아니라, 도리어 학교나 직장 내에서 약자로 일상적 학대의 피해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니던 학교나 직장을 찾아가 그를 괴롭혀온 상사와 동료, 급우, 교사를 쐈던 것이다.

 

만일 미치광이나 사이코패스라면 무차별적인 장소에서 모르는 대중을 향해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지만, 거의 모든 사건이 범인의 생활과 연관된 장소와 연관된 상대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무엇이 이 조용한 사람들이 손에 총을 쥐게 한 것일까? 마크 에임스는 미국 사회가 괴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원인으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사회 저변에 퍼진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지목한다. 노조의 와해, 자유로워진 해고와 강력해진 성과위주의 경쟁문화는 중산층이나 일반 근로자가 더 열심히 일을 하게 했지만, 이를 반영해서 풍요로워지지 못하면서 언제든지 사회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만들었다. 과거의 동료들이 서로 적이자 경쟁자가 되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 안에서 벼랑 끝에 몰린 일부 사람들은 벼랑에서 뛰어내리기보다, 차라리 총을 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 변화를 마크 에임스의 책이 저널리스트의 관점으로 르포 형식으로 풀었다면, 같은 맥락을 미디어 사회학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브레라 국립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사회사 교수로 있는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의 『죽음의 스펙터클』이다. 그는 조금 더 스케일을 키워서 직장과 사회의 묻지마 폭력 범죄, 다중살인 이외에도 증가하는 테러의 사회적 근원이 무엇인지 분석하였다. 그는 콜롬바인 고등학교 학살 사건, 조승희 사건 등을 관찰하며 사회학적 사유를 통해 그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그는 현대사회를 뉴미디어 사회라고 칭하면서 언어학습이 신체적 애착경험과 분리되었고, 타인에 대한 경험이 가상화 되었다고 분석했다. 즉, 언어를 배우는 것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세상과 만나면서 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판을 통해서만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의 비중이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 경험의 변형이 이루어져서, 공감영역이 변형돼 자폐성이 커졌고, 감각영역의 병리현상이 발생해서 타인의 존재에 대한 탈감작이 생겼다. 직접적 공감능력이 줄어들고, 타인에 대한 예민함이 심각하게 줄어든 채 어른이 된 사람이 사회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 구조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경쟁이라는 하나의 명령에 모두가 복종하게 되었고, 집단이 아닌, 개인이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된 세상이 도래했다. 이때 스펙터클한 사연을 갖고 세상을 향해 강력한 표현을 하려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살의 의도로 다중 살인을 실행한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독특한 현상이라 분석했다.

 

이들이 이것이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행하게 되는 이유는 근대 시대와 범죄의 표현양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도덕이 우세하던 19세기부터 근대까지의 시기에는 억압과 근면이 중요했고, 범죄는 은밀한 행위여야 했다. 마피아는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어둠의 세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21세기 중반 이후 범죄는 권력화되고 제도화되면서 어둠과 밝음은 서로 어울리고 은밀함의 망토를 벗어버린다. 범죄의 가시성은 권력이 가진 효율성과 설득력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복, 속임수, 약탈은 범죄가 아니라 당연한 요소로 인정되는 시기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를 뒤흔든 세칭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딱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사람을 허탈하고 힘들게 만들고 분노할 힘조차 잃어버리게 하기 쉽다. 마치 정복하고 속이고 약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도리어 유죄라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정유라가 고등학생 때 SNS에 “돈도 실력,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을 올린 것은 이런 분위기를 체화하며 자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에 약한 개인은 속수무책이고, 능력주의란 환상은 ‘나의 못남과 능력 없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비루한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고독, 동료노동자에 대한 관심의 결여는 집단적 행동화로 조직되지 않은 원인이자 결과인데, 이때 개인과 이업이익 간의 내시균형을 해소할 합리적 방법은 오직 자살이다. 자신이 독립된 존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삶이 과거에 비해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문명화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살이 도리어 증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중 일부는 자살이 아닌 자살의 의미를 지닌 다중살인을 하게 된다는 것이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의 분석이다.

 

두 저자 모두 이런 기이한 폭력적 사건들이 개인의 충동적 일탈이나, 결함이 있는 사람의 광기의 표현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이 한 방향으로 진행, 발전하면서 발생한 불가피한 결과물로, 평범한 개인의 이해할 수 있는 특수한 반응적 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한다. 최근 매주 광화문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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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질서 있게 비폭력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참여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운 기분이 만연해 있는 거리의 풍경에 감동을 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 두 권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 사회의 집단행동이 도리어 얼마나 기이하며, 이상주의가 실현되는 영화 속 장면 같은 사건인지 실감하게 된다. 현대사회 디스토피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출구 없는 폭력으로 나아간 개인들의 행동이 지금의 평화시위보다 실제로는 훨씬 쉽게 이해되고 예측 가능한 일반적 반응양식이라는 증거들이 책 안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세계가 우리의 촛불집회를 굉장하면서도 기이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가수 전인권 씨가 노래를 했다. 그가 평소 즐겨 부르는 곡 중 하나가 존 레논의 ‘이매진’이다. 어디에 살고 있던 간에 우리가 살만하다고 여기는 나라는 오직 노래 속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마크 에임스 저/박광호 역 | 후마니타스
살인자 개인의 머릿속이나 정신 상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삶의 무대에 주목한 저자는 직장 내 분노 살인과 학내 총격 사건이 실은 하나로 연결된 현상이며, 잔혹한 경쟁 문화와 무차별적인 해고가 일상화된 레이거노믹스 이후에 하나의 '현상'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죽음의 스펙터클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저/송섬별 역 | 반비
《죽음의 스펙터클》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삶과 일상을 둘러싼 모든 측면에서 일어난 총체적인 변화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우리를 불안정한 조건에 몰아넣었는지, 그럼으로써 살인, 범죄, 자살과 같은 끔찍한 풍경을 낳고 말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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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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