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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의 미스터리 탐구] 의사 출신 작가들

유능한 의사는 유능한 탐정이다 『아리아드네의 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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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1610 chY 11월호 아리아드네의 탄환 표지 이미지.jpg

 

장르의 초창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의사들은 미스터리 소설과 줄곧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물론 죽음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이유 때문이긴 하다. 미스터리 소설의 주된 사건이라면 역시 살인인데, 그 죽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할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미스터리 소설 속 의사들의 활약은 실로 눈부실 정도이다. 그들은 대저택 하녀 못지않은 출연 빈도를 자랑하는 등장인물이자, 오랜 전통이 쌓인 작가 집단이며, 엄청난 상업적 가능성을 지닌 의학 스릴러의 잠재적 소유주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셜록 홈스’의 창조주인 코난 도일의 병원이 불황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970년대 후반쯤 되면, 의사 출신 작가들은 아예 전 세계 스릴러 시장을 장악해버린다. 로빈 쿡의 『코마』를 시작으로 메디컬 스릴러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 흐름은 마이클 크라이튼, 마이클 파머, 테스 게리첸 등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스릴러 분야로 뛰어들었고, 모두 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의학 미스터리’는 전문적으로 의학을 공부한 이들만이 집필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루기에 그만큼 익숙한 영역이기도 하다. 테스 게리챈의 말처럼 누구나 한두 번 이상 병실 침대에 몸을 뉘기 마련이고, 이후 인생 최악 또는 최고의 순간과 직면하게 된다. 환자의 삶과 타인의 생사를 책임지는 의료진의 사연이 서로 얽히면서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방식만 있는 건 아니다. 명석한 두뇌와 고매한 인품을 가진 초창기 미스터리 속 의사들이 ‘한니발’ 같은 탁월한(?) 변태 살인마로 거듭났듯, 의학 미스터리도 다양한 범죄의 양상과 사회적 문제 등과 결합하며 그 폭을 넓혀 왔다. 미스터리의 갈래가 지나치게 세분화된 일본에서는 정형화된 틀 안에 둘 수 없는 작품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데, 2005년 의학 미스터리 분야에서도 그러한 작품이 쑥 불거져 나왔다.

 

1961년생, 전前 외과의사, 현現 병리전문의이자 중입자의과학센터병원 AI(Autopsy Imaging, 사망 시 화상 진단) 정보연구추진실 실장. 가이도 다케루는 2005년 제4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 수상작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으로 데뷔했다. 작품은 최고 난이도 수술을 연속해서 성공시킨 대학병원 수술 팀이 알 수 없는 실패를 거듭하자 만년 신경내과 강사인 다구치와 후생노동성의 공무원 시라토리가 함께 사건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전문 지식에 기반한 섬세한 상황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 의료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과감함 등으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두 콤비가 등장하는 후속 작품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고, 업계 최고의 속필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가이도 다케루답게, 연이어 세 권이 신속하게 발표됐다.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는 현재 단편과 외전 등을 포함해 아홉 권에 달하며, 시즌제 드라마와 영화, 만화와 게임으로까지 이어져 거대한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다구치는 피가 싫어서 신경내과를 선택한 인물로 별다른 증상 없이 불평하는 환자들의 불만을 전문적으로 들어주는 ‘부정수호외래’ 일명 ‘하소연 외래’의 책임자이다. 별명은 구찌. 후생노동성 공무원 시라토리는 어떤 상황에서 주눅들지 않는 뻔뻔함 그리고 응용 심리학을 기반으로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캐릭터이다. 별명은 로지컬 몬스터 또는 화식조. 이 둘 외에도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휘황한 별명을 가진 다양한 등장인물이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의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다.

 

『아리아드네의 탄환』은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으로, 도조대학병원의 AI 센터 신설을 둘러싸고 발생한 의문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러 정치적인 이유와 어처구니없는 상황 전개로 AI 센터 센터장에 덜컥 임명된 다구치. 하지만 그 이면에 부검 제도의 칼자루를 놓지 않으려는 사법 기관의 치밀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의문의 총소리와 함께 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서 기절한 채 발견된 병원장이 체포돼 실려나간다. 남은 시간은 단 72시간, 다구치와 시라토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 교묘한 트릭을 깨뜨려야 한다.

 

가이도 다케루는 작가가 아니라 메디컬 엔터테이너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는 읽기를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독자가 내일 시험임을 깨닫고 좌절케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최대 목표라고 장난스럽게 밝힌 바 있는데, 그만큼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작가이다. 전문성에 기반한 현실적인 세계관 아래 이리저리 치고 받는 만화 같은 캐릭터들은 확실히 전통 미스터리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한 즐거움이다.

 

작품보다 더 흥미로운 건 가이도 다케루의 선명한 목적 의식이다.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의료계의 이슈를 재미있게 풀어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AI 제도 도입을 앞당기기 위함이다. 제도 도입에 거치적거리는 사회 구조를 작품 속에 몰아넣고 시리즈 내내 씹고(?) 있는 상황인데, 속이 뻔히 보이는 작가의 바람이 언제 현실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A케어
구사카베 요 저 | 민음사

'쓸모 없는 사지를 절단한다.' 노인병원 원장 우루시하라는 'A케어'라는 획기적인 시술을 개발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 환자들을 설득해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그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실제 외과와 마취과에서 근무한 의사 출신인 구사카베 요는 충격적인 설정을 통해 초 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노인 의료 문제를 고발한다.

위험한 저녁 식사
조너선 에드로 저 | 모요사

이 작품은 소설은 아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저자 조너선 에드로는 다양한 질병 사례를 소개하고 그 원인을 추리 기법을 적용해 분석한다. 세균과 박테리아, 기타 여러 환경 요인이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다. 사례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증상을 분석해 원인을 찾아야 하는 의사는 결국 가장 탐정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과의사
테스 게리첸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혼자 사는 여인을 폭행하고 배를 갈라 자궁을 꺼내가는 살인마. 캐서린 코델을 희생양으로 선택한 범인은 코델의 총에 맞아 죽고 사건은 마침내 종결된다. 하지만 3년 뒤 과거와 똑같은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강력반의 토머스 무어와 리졸리는 생존자 코델 박사를 중심으로 '외과의사'라 불리는 살인마를 쫓기 시작한다. 섬세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테스 게리챈의 묘사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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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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