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조앤이 부르는 레이디 가가

레이디 가가 〈Joanne〉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혁신은 없지만 〈Joanne〉은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언젠가는 등장했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2.jpg

 

전작 <ARTPOP>은 마돈나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이 아닐까 싶다. 차트 성적은 물론, <Born This Way>까지 올해의 앨범에 꾸준히 노미네이트 되며 가가표 일렉트로 팝은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그의 음악과 컨셉에 래퍼런스가 존재한다는 논란이 항상 따라붙었고 마돈나와의 전면전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레이디 가가는 훅을 향한 집착을 버리고 보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일렉트로니카의 세부적인 영역을 파고들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탐색한다. 시뮬라크르가 되어버린 자신, 그리고 연이은 성공에 따른 중압감은 앨범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렇게 정체성을 찾아 떠난 여정의 답은 “조앤”이었다. “조앤”은 그의 본명이자 고모의 이름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가가가 음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영감의 원천이었던 여성. 둘의 교집합하에 레이디 가가가 아닌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저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라는 자아를 음반에 투영했기 때문인지 앨범에선 기존의 색을 쉽게 감지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주특기인 일렉트로 팝의 비중은 확연히 줄고 선명한 멜로디의 록, 포크에 기반을 둔 곡들이 다수 출현한다는 것. 엘튼 존의 말마따나 「You and I」와 비슷한 질감의 트랙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헤이터들에게 바치는 「A-yo」와 컨트리 뮤지션 힐러리 린제이(Hillary Lindsay)와 함께한 「Million reasons」를 비롯해 「Sinner's prayer」, 「Come to mama」까지 이어지는 힐빌리의 흥취는 “진짜 남자” 존 웨인의 카우보이 이미지('John Wayne」)와 맞물려 앨범의 핵심적인 사운드를 형성한다. 후반부에 집중된 가장 미국적인 것들은 사실 첫 번째 트랙인 「Diamond heart」에서 예견되었다.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조앤”과 그 이름을 이어가는 또 다른 “조앤”의 삶의 경험은 그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껍질을 두른 심장을 갖게 만들었다. 고고댄서로서 활동한 그녀를 조롱했던 미국은 동시에 다이아몬드와 명예를 쥐어준 자신의 조국이기도 하다.

 

언제나 메인스트림 사운드의 최전방에 서 있던 그가 기성세대의 음악으로 음반을 채울 줄 누가 알았을까. 리드 싱글인 「Perfect illusion」만 해도 「Judas」를 떠올리게 할 만큼 록킹했다. 물론 「John Wayne」도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런트맨 조쉬 옴므(Josh Homme)가 곡을 이끄는 완연한 댄스 록이긴 하다. 그러나 앨범에서 차지하는 의미도, 무게감도 크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나의 상처를 담아낼 곳을 난 찾았다.” 가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싶어 했고, 이러한 의도는 앞서 언급한 트랙에 포진해있다.

 

“조앤”을 향한 애도와 사랑, 그리고 모두를 향한 현재의 목소리(「Hey girl」) “조앤”은 레이디 가가의 정제되지 않은 보컬로 진정성을 얻는다. 물론 믹싱에 따라 느껴지는 아티스트의 진심이란 가변적이지만 레이디 가가가 마크 론슨과 함께 총괄 프로듀서로 임하면서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의도했다는 뜻이다. 가창력을 뽐내기보다는 마치 라이브를 듣는 듯한 녹음은 분명히 거슬리는 점이 존재한다. 「Perfect illusion」만 해도 마땅히 터져야 할 부분에서 벽에 막힌 마냥 답답한 사운드를 연출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만큼 진실한 목소리는 없다. 가가의 의도가 그것이라면 이는 앨범의 컨셉적인 측면을 지지하는 호재로 작용한다.

 

이 음반이 기성세대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변절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레드원과 마크 론슨의 프로듀싱은 가가의 음악이 너무 고리타분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었고, 그 바탕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혁신은 없지만 <Joanne>은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 언젠가는 등장했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정연경(digikid84@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