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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흥행하는 영화는 관객의 결핍을 읽어낸다”

『천만 관객의 비밀』 영화 속 각자도생의 지옥도, 한국 사회의 공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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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획자가 있고, 마케터와 배급사가 있죠. 이런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가 모여 하나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는 거거든요. 쉽게 생각하면 일반적인 직장에서 하는 일들이 대부분 그런 거죠. 기획, 생산, 유통 각 단계 어느 부분에는 모두 소속되어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영화 이야기가 그렇게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봤어요.

거침없음. 영화평론가 최광희를 만난 느낌이다. 특정 영화나 감독을 콕 집어 비판하는 거침없음, 영화 산업의 기형적 구조와 이해관계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거침없음을 보며 이래도 괜찮을까, 싶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 거침없음이 영화평론가로서 갖는 어떤 역할의식에서 비롯했는지. 답은 당연히 예스.


“평론가가 여러 명 있잖아요. 서로 목소리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 평론 지형의 문제점이 주례사 평론이 많다는 것, 평론가 자신과 창작가 간의 친밀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평론가 중에 영화감독과 친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중략)차라리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영화가 나쁘면 나쁘다고 얘기를 해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방송기자, 영화주간지 취재팀장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사회생활을 한지 20년. 그 자신이 오랜 직장 생활의 경험을 가진 사람답게 최광희는 영화 산업과 제작 구조를 들여다보면 모든 직장인들이 가져갈 공통의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천만 관객의 비밀』을 만들었고, 흥행하는 영화의 공통된 키워드 세 가지를 얻어냈다. ‘열정, 협업, 공감’은 흔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열정이냐, 어떤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조금만 더 깊이 얘기해보면 이것이 말하기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지 금방 알게 된다. 이준익, 윤제균, 최동훈, 진모영 등 이제는 브랜드가 된 감독들이 말하는 이러한 공통된 단어에는 분명 어떤 비밀이 있을 터. 최광희는 바로 이것이 천만 영화를 만든,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과창출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내로라 하는 영화 감독들의 영화 제작 뒷이야기도 엿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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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보는 성과 창출의 비밀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흥행의 법칙’이야기,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어요. 기획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원래 이러닝(e-Learning) 회사에서 제안을 받은 거예요.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영화감독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강의해달라고요. 흥행 얘기하는 평론가가 별로 없잖아요. 보통 영화평론가들은 개별 영화 평론을 주로 하지 어떻게 흥행했는지, 그 흥행의 의미가 뭔지, 이런 것은 잘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게 계기가 됐죠. 처음에는 키워드를 ‘천만’이 아니라 ‘흥행’으로 잡았는데요.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잊혀지는 영화도 있고, 제가 보기에는 평론가로서 동의할 수 없는 영화도 있기 때문이었어요. 수준 이하의 영화인데 천만을 넘은 영화도 있거든요. 그래서 ‘천만’에 구속받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가령 이병헌 감독의 <스물>도 참신한 시도로 3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고요.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있죠. 의미 있는 흥행이니까 함께 포함시켜서 가자고 했었고요. 포장을 천만이라는 키워드로 맞춘 거죠.

 

직장인과 영화의 흥행, 선뜻 연결이 안 되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으로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인들에게는 영화라고 하는 매체가 친숙하니까 흥미롭기도 하고요. 매해 한두 편 이상은 천만 영화가 나오니까 이야기를 풀면 직장 생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감독 분들을 인터뷰 한 결과, 부드러운 접근이 성과에는 효율적이다, 라는 결론이 난 거고요.

 

그것이 바로 ‘열정, 협업, 공감’이군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긴 한데요. 어떤 열정이나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영화라는 콘텐츠를 빌어 푼 거예요. 기획할 때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성과창출이라고 하는 상위 범주 내에 해당하는 하위 카테고리가 뭐가 있을까 상의해서 열정, 협업, 공감이라는 세 키워드가 나온 거죠. 인터뷰를 할 때 이 포인트를 갖고 했고요. 실제로 범주화를 한 후 진행한 인터뷰가 효과적이었어요. 감독 분들도 여기에 많이 동의를 했고요.

 

확실히 여러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미 모범답안을 뽑아 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죠. 다만 저는 그분들에게 사례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감독으로서, 창작자로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가다듬어 왔는가, 현장의 통솔자로서, 리더로서 어떻게 협업을 이끌어 왔는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해왔는가,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영화 매체의 특성상 감독이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타이밍이 잘 안 맞는다든가 포장이 잘 안 되면 폭넓은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거든요. 결국 감독만 인터뷰 하면 안 되겠다 해서 제작자나 마케터 같은 분들도 인터뷰를 한 거죠. 영화는 협업의 예술이니까요. 영화는 기획자가 있고, 마케터와 배급사가 있죠. 이런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가 모여 하나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는 거거든요. 쉽게 생각하면 일반적인 직장에서 하는 일들이 대부분 그런 거죠. 기획, 생산, 유통 각 단계 어느 부분에는 모두 소속되어 있잖아요. 또 최근 HR, 인적자원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 이야기가 그렇게 다방면에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봤어요.

 

그렇다면 이 책은 경제경영서 혹은 자기계발서로 봐도 좋겠네요.


저도 처음부터 이 책을 통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흥행이라는 현상을 통해 직장인들이 흥미롭게 챙겨볼 수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자는 차원에서 접근했던 거예요. 전에 『무비스토커』라는 영화 에세이를 한 번 냈었는데요. 영화책을 내고 느낀 게 있었어요. 영화는 보는 거지 읽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영화를 본 후 리뷰를 읽고 생각하고자 하는 독자들도 있고, 그들을 존중하지만요. 이 책은 그냥 실용서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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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


YTN에서 방송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고, <FILM2.0>에도 취재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시죠. 이런 직장 생활 경험과 영화가 절묘하게 맞았던 거군요.


제 사회생활 중 절반 넘는 시간을 직장에서 생활했으니까요. 이 책을 쓰면서 저도 느낀 점이 많았어요.(웃음) 나도 이렇게 했으면 후배들의 신망을 얻으며 원활하게 조직 운영을 했을 텐데 지나치게 딱딱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성한 부분이 많이 있었죠. 특히 리더십 부분에서 ‘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했는데요. 권위적인 리더십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제가 바로 산증인이에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특히 이준익 감독의 경우는 그 반대예요. 이분은 현장에서 절대 부정적인 용어를 쓰지 않아요.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 이런 말을 안 하고 화도 안 내요. 영화 현장은 돌발변수가 많은 곳이니까 그럴 법도 한데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걸 어떻게 할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니까 일단 동료의식, 연대의식이 생기는 거죠. 저 사람은 우리를 통솔하고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 되고 자발적인 협조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팀워크가 만들어지고요. 그걸 통해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거죠.

 

이런 내용, 궁금했거든요. 책을 쓰면서 저자가 새롭게 깨달은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인터뷰 과정에서 들은 말 중에 오래도록 남는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면 더 들려주세요.


윤제균 감독과 인터뷰할 때였는데요. ‘감독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했어요. 이병헌 감독도 마찬가지였고요. 감독은 자기의 톤을 유지해나가는 조율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스태프와 배우로부터 도움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부리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죠. 이병헌 감독은 현장에서 수평적인 연대의식을 갖게 했다고 해요. 어린 스태프들이 까불면 까부는 대로 뒀다고 하잖아요. 윤제균 감독은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다 외워서 실명을 불렀고요. “막내야!”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불러주면 감독이 나를 존중해준다는 의식을 갖게 되죠. 그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최동훈 감독은 감독 자리에서 마이크로 지시를 해도 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고 배우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서 배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기를 계속 했어요. 본인이 실수를 했으면 바로 인정을 하고요.

 

실수를 곧장 인정하는 것, 많이 못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기도 해요.


조직 내에서 하급자만 실수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급자도 실수한단 말이에요. 괜히 창피하니까 인정하지 않고, 대충 덮으려고 하고, 누가 지적하면 면피하려고만 하는데요.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얘기하면 좀 다르겠죠. 최동훈 감독은 그런 얘기를 해요. 어떤 직군의, 그가 촬영감독이든 조명감독이든 어떤 전문가든 그 사람들이 갖는 전문성을 뽑아내기 전에 일단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고요. 혹시 그 사람이 가지는 장단점에 대해 미진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확인을 한다고 해요. <암살> 촬영 때 김우형 촬영감독과의 첫 작업이었는데요. 최동훈 감독이 김우형 감독에게 촬영이 좀 늦는 편이라고 하는데 맞느냐고 직접 물어봤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빨라서 놀랐다고도 하고요. 최동훈 감독의 소통은 솔직함의 소통이고요. 윤제균 감독은 역지사지의 소통이에요. 이준익 감독은 만사가 인사라는 거고요. 스태프고 배우고 캐스팅하는 순간 디렉션은 끝났다는 거죠. 그들이 감독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믿고 맡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은 지휘자처럼 조율하는 역할만 해야지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거든요.

 

아무래도 감독들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관리자나 결정권자에 훨씬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부분에 다룬 ‘열정’이라는 부분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열정이 모든 것의 열쇠라고 많이들 얘기를 하지만요. 그렇다면 도대체 그 열정이라는 게 뭔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세상에 열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앞에 다룬 열정 파트는 그런 분들이 보면 좋은 내용이에요. 내가 열정이 없는 건가, 싶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자기가 정말 즐겁게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 뿐이에요. 그렇다면 과감하게 그만두어야 한다고 보고요. 저도 그랬거든요. ‘하기 싫은 걸 피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은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제게는 열정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란 말을 넣은 건데요. 사회 초년생은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고 잘한들 기회가 잘 안 오죠. 그러니까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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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하는 영화들의 비밀


앞서 흥행 얘기를 하는 영화평론가가 별로 없다고 하셨잖아요. 영화 산업 전반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YTN 기자 시절, 시간이 지날수록 신나지가 않았어요. 불행하더라고요. 그러던 때 <FILM2.0>이 창간되면서 옮기게 됐어요. 전문성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화 평론을 대단히 유려한 어휘를 동원해 잘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죠. 방송 기자 하다가 갑자가 영화 평론을 어떻게 하겠어요. 차원이 다른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영화 산업, 흥행, 박스오피스 쪽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죠. 아무리 그래도 영화 주간지에 있으니까 영화 리뷰를 안 쓸 수는 없어서 리뷰는 리뷰대로 쓰고요. 특집 기사는 주로 산업 기사를 많이 썼어요. 그게 다른 평론가에 비해 산업 흐름이라든가 흥행이라는 현상에 대해 조금 더 천착해서 바라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영화 시장, 관객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요구도 달라지잖아요. 그 요구에 대응하지 못해 실패하는 영화도 종종 보게 되는데요. 최근에 보고 있는 흥미로운 변화나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근의 변화는 아닌데요. 사극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2003년 즈음 이준익 감독이 <황산벌><왕의 남자>를 히트시킨 이후의 일이거든요. 그 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을 넘기면서 불을 지폈죠. 그전에는 사극이 거의 없었어요. 80년대에는 거의 에로 사극이었고요. 90년대, 한국 영화가 어느 정도 산업화되면서는 로맨틱코미디라든가 액션물 같은 현대물 쪽으로 많이 왔죠. 사극은 망하는 길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몇 편의 흥행작이 나오니까 시대극이 붐을 탄 거죠. 요즘 영화를 보면 40% 정도가 시대극이잖아요.


또 한 가지는 사회고발 드라마가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점인데요. <내부자들>, 최근에 <아수라>도 있고요. 예전에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에서 악이 주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고 거기에 맞서는 주인공의 싸움을 보여줬죠. 반면 최근에는 악당이 상류층으로 올라갔어요. <내부자들>은 아예 정, 재계, 언론계의 결탁을 보여주고 있고요. <아수라>는 경찰과 시장, 검사가 모두 거기서 거기잖아요. 누가 더 착하고 악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지옥도 같은 모습들을 한국 영화가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이것은 최근 감독들이 느끼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기기도 할 거예요.

 

사회의 공기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라는 영화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범죄 액션 영화에서 형사가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경찰도 비리에 연루되어 있고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 자체가 썩었다,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계속 나오게 되는 거고요. 또 관객들도 그런 작품들도 호응을 해줌으로써 어느 정도 접점이 만들어진 거죠. 관객이 공감하지 않으면 흥행하지도 못하잖아요.


또 한 가지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가 많이 나온다는 점인데요. 이것도 그전에는 터부시 되었던 거예요. 잊고 싶은 기억, 상처, 역사의 트라우마기 때문에 그것을 들춰내는 것을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했었어요. 아예 기획도 하지 않았고, 만들어도 흥행이 잘 안 됐죠. <모던보이>라든가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처럼요. 그 시대를 어두운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인데요. 발상의 전환을 한 사람이 최동훈 감독이죠. <암살>, 통쾌하잖아요. 하나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내주니까 일제 강점기를 산 사람들의 부채의식, 트라우마가 극복이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후에 나온 <귀향>, <동주>, <덕혜옹주> 같은 영화들이 다 잘 됐고요. 누군가 한 명의 선지자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이준익 감독이 시대극은 안 된다는 통념을 깬 쇄빙선이었다면 최동훈 감독은 일제강점기는 안 된다는 통념을 깬 쇄빙선인 거죠.

 

국내 인구를 생각하면 천만이란 숫자가 정말 엄청나기도 하고요. 워낙 트렌드에 민감하니까 흥행을 예측하거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큰 숙제기도 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흥행이 잘 되는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잘 읽어내는 것 같아요. 결핍이란 보고 싶어 한다는 의미죠. 열망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로 볼 수 있어요. 그건 시대에 대한 관심 없이는 읽어낼 수 없어요. 촉수를 항상 시대, 사회 현실에 대고 있어야 해요. 그런 영화가 흥행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가령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면요. 민족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접근하되 유치하지 않아야 하거든요. 이 영화는 유치하게 하고 있죠. 배타적 민족주의 같은 건데요. 타자를 설정해두고, 우리 민족은 억울했다는 식의,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하는 그런 민족주의였거든요. 이것을 저는 ‘초딩적 민족주의’라고 해요. 민족주의라고 왜 안 되겠어요? 사람들 독도 문제 같은 데 관심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걸 억지로 갖다 붙인다는 거예요. 영화를 보면 고산자가 독도를 그리기 위해 독도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의도는 너무 뻔하죠. 설득력이 없는 거예요. 관객들을 계몽하려는 영화는 안 되는데요. 계몽하려는 감독 자체가 계몽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계몽된 감독이라면 그런 식으로 계몽하려고 하지 않죠. 당대 관객과의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예요. 낡아버린 거죠.

 

다시 책의 콘셉트로 이야기해본다면 리더도 꾸준히 시장을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이야기겠네요.


최동훈 감독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체감하지 않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못해 낡아버린 감독이나 영화도 많이 보셨죠?


<귀신이 산다>의 김상진 감독도 후속작이 없죠. <가비> 장윤현 감독도 그렇고요. 장윤현 감독은 <접속>으로 한 때 굉장히 트렌디한 영화를 만들었었는데 말이에요. 감독들은 늘 촉수를 사회 현실과 사람들의 빛과 열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해요. 한 번 흥행 감독이 됐다고 어깨에 힘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관객 좀 들었다고 달라지는 감독들도 있어요. 이 책의 인터뷰 섭외하면서 거절당한 사례도 있어요. 한편 제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겸손한 분들이에요.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요. 자신감과는 다른 차원이죠. 겸손을 토대로 한 자신감이 성공 확률이 더 높아요. 자만을 토대로 한 자신감은 유효 기간이 짧습니다.

 

‘흥행은 신도 모른다’고 했는데 의외의 결과를 낸 영화를 몇 편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의외로 흥행한 작품들 많아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를 제외하고 국내 연간 개봉작이 100여 편 되거든요. 한 주에 두 편 씩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흥행하는 영화는 열 편 안팎이거든요. 타율이 10%예요. 나머지 90%는 다 망하는 거예요. 손해를 덜 봤느냐, 더 봤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영화를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라고 하거든요. 위험도가 높다는 건 실패확률도 높다는 얘기죠. 그런 상황에서 흥행 여부를 어떻게 짐작하겠어요? 대충 짐작은 하죠. 이를테면 <내부자들>을 보고 나서는 되겠다,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이 영화는 되겠다고 했는데 안 된 영화는 거의 없고요. 반대로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된 영화는 많아요. 그것은 제가 트렌드를 못 읽는 것일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7번방의 선물>처럼 말이에요.(웃음)

 

콕 집어 <7번방의 선물>을 언급하셨는데, 그 작품에서 저자가 놓친 트렌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7번방의 선물>이 왜 그렇게 흥행했을까요. 눈물을 서비스했기 때문이죠. 2012년 말에는 울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거예요. 대선이 있었잖아요. 1280만 명은 울고 싶었겠죠.(웃음) 결과론적이지만 저는 그렇게 보고요. 반대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선 직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거예요. 서민적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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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에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독과점’ 문제인데요. 이 문제에 대해 발언도 많이 해왔잖아요.


스크린 독과점은 거의 십 년 동안 말해왔는데요.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문화 시장이다보니 규제라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도 하고요. 여러 이유로 규제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큰데요. 사실은 천만 영화 중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천만 영화가 된 것도 없잖아 있어요. 이 책에서는 그 변수를 의도적으로 뺐지만요. 저는 계속 소 귀에 경 읽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하시는 분들 사이에도 각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또 있거든요. ‘CJ’에 관계된 감독들은 언젠가 자기 영화도 천만 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크린 독과점에 반대하면 안 되죠. 저예산, 독립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고요. 영화인들끼리도 첨예한 거죠. 그러니까 한 목소리를 못 내는 거예요. 이해당사자인 영화인들이 한 목소리를 못 내니까 국회에서도 미진한 반응인 거고요.

 

관객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큰 손해를 불러온다는 생각이에요. 선택권의 문제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쪽으로 접근한 게 이것은 영화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의 문화 향유권 문제다, 라는 거거든요. 관객들의 관람 선택권의 문제예요. 이건 소비자의 권한을 박탈하는 거라고요. 그런 방식으로 논리를 폈죠. 다행히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입법청원을 했어요. 이번 국회에 이것이 어떻게 해결될지 두고 봐야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 ‘워너브라더스’가 한국 영화 배급하고 있고, ‘폭스’도 들어왔잖아요. 만약 여기서 스크린 독과점 견제한다고 하면 그것 가지고 할리우드에서 딴지를 걸 수도 있어요. 더 늦게 전에 견제장치를 만들어야죠. 배급사 ‘NEW’가 이번에 <부산행>으로 천만 넘기긴 했지만 다른 배급사들 다 고전하고 있거든요.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온 거예요. 독과점 시장을 만든 바람에 ‘텐트폴 시즌’이라고 하는 여름과 겨울 시즌으로 양극화되었고, 그 외의 시즌에는 관객이 기대를 안 해버리거든요. 볼 영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스크린 독과점 시장이 관객들을 훈련시킨 거죠. 그러니까 다른 기대작들을 비시즌에 내놓으면 흥행이 안 돼요. <아수라>도 ‘CJ’영화인데요. 그간 ‘CJ’영화 중 제가 보기에는 제일 괜찮았거든요. 그랬는데 안 되더라고요. 결국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은 셈이 된 거죠. 자본은 스스로 규제 못 해요.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자본의 전횡이나 독과점을 견제해서 시장을 맑게 해줘야 하잖아요. 지금은 완전히 영화시장이 혼탁한 상황이죠.

 

문화적인 후퇴로 볼 수도 있죠.


당연하죠. 좀 더 질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준 거예요. 거기서 거기, 뻔한 영화들만 나오고요. 천만 영화 보니까 이런 요소가 있더라, 그것 넣어봐라, 해서 답습하는 영화만 쏟아지고요. 그러다가 어떤 영화가 조금 잘 된다고 하면 관객은 몰려가는 거죠. 솔직히 <부산행>이 천만 넘을 만한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영화에 뭐가 있습니까. 드라마가 있습니까, 메시지가 있습니까. 오히려 <서울역>이라는 작품이 훨씬 더 주제 의식이 뚜렷하거든요. 그런데 30만도 안 들었을 거예요.

 

영화 평론가로서 이런 혹평을 가감 없이 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평론가가 저 혼자뿐이라면 다르겠죠. 그렇지만 평론가가 여러 명 있잖아요. 서로 목소리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 평론 지형의 문제점이 주례사 평론이 많다는 것, 평론가 자신과 창작가 간의 친밀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평론가 중에 영화감독과 친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는 술 한 잔 같이 마시는 영화감독이 없어요. 워낙 시작이 방송국 기자였기 때문에 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원칙이 있어요.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거예요. 감독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그렇게 친해졌는데 그 감독의 다음 영화가 나쁘면 뭐라고 하겠어요? 그럴 때 친한 평론가들은 말을 안 해요. 좋을 땐 막 칭찬하고요. 너무 비겁하잖아요. 차라리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영화가 나쁘면 나쁘다고 얘기를 해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천만 관객의 비밀’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비밀도 아닌 비밀인데요. 열정, 협업, 공감이 변증법적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잘 다듬어진 창의적 열정이 원활하고 유기적인 협업의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열정과 결핍을 읽어낸 공감을 확보해낸 것’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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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의 비밀최광희 저 | 책비
저자는 ‘왜 어떤 영화는 성공하고 어떤 영화는 실패하는지’, ‘흥행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는 무엇인지’,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우리가 속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만한 교훈점을 찾아 이 책 『천만 관객의 비밀』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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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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