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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최종욱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인격을 말해준다”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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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일종의 유행이나 장식품으로 보는 풍조가 문제예요. 가족으로서 끝까지 책임진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해요. 일생 반려동물로 살아온 동물이 갑자기 인간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기는 힘들거든요. ‘버리면 누가 알아서 키우겠지’ 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은 지극히 위험해요. 저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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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는 수의사 최종욱의 시간과 시각이 담겨있다. ‘야생 동물 수의사’, ‘코끼리 주치의’로 유명한 저자는 대관령 목장, 보건환경연구원, 동물원, 부검실, 도축장 등에서 근무하며 동물들과 교감해왔다. 책 속에는 그가 관찰해 온 동물들의 삶이 잔잔한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 감춰져 있다. 인간에게 반려동물이란 어떤 존재인가, 동물들에게 도시란 어떤 공간인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수의사로서 최종욱 저자가 품었던 질문들이 독자들의 것이 되어 되돌아온다.

 


수의사는 다중인격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동물원 수의사의 사계절”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셨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환절기라 그런지 혹독한 올 여름을 잘 보낸 동물들도 갑자기 아픈 경우가 생겨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빠요. 사슴이나 양 수컷들은 암컷들을 차지하려고 엄청난 투쟁에 들어가는 시기라서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죠. 이럴 때 사슴이나 양은 목소리와 성격까지 변해서 주의해야 하고요. 작은 변화도 자세히 살피고 잘 컨트롤해 주어야 모두가 이 계절을 편안히 넘길 수 있죠. 

 

“동물들을 치료하다 보면 입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 많다. 바로 그 맛에 수의사라는 직업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최근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동물원에 ‘우리’라는 이름의 코끼리가 있는데요, 이 녀석이 나뭇잎을 따 먹으려다가 그만 모트(함정)에 빠진 거예요. 코를 길게 뻗었다가 안 닿으니까 아예 울타리에 발을 걸치고 올라섰다가 그만 미끄러진 거죠. 이런 일은 정말 드문데, 코끼리가 너무 호기심이 왕성해서 일어난 일이에요. 다행히 모트가 얕아서인지 떨어진 뒤에도 어디 다친 데 없이 말짱하더라고요. 문제는 얘를 어떻게 다시 끌어 올리느냐는 거예요. 전에 호랑이가 한 번 모트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마취약을 쏜 뒤 힘으로 끌어올렸어요. 하지만 코끼리를 마취할 수 있는 마취약은 없어요. 다행히 모트 한쪽에 경사로가 있으니 그쪽으로 유인해 보자 했는데 아무리 해도 몰아지지가 않는 거예요. 엄마 코끼리는 위에서 우왕좌왕할 뿐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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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가 타셨겠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누가 코끼리를 영리하다 했던가!” 하는 원망까지 생기더라고요. 삼사 일 동안 고공 크레인도 동원하고, 60도였던 경사로를 30도로 만드는 공사도 하는 등등 갖은 수를 냈어요. 사이사이 코끼리가 목마를까 봐 수도 호스를 연결해 물도 뿌려 주고요. 그런데 호스를 중간에 녀석이 끊어 놓아서 그걸 다시 잇고 있는데, 그 사이 녀석이 그냥 경사로를 걸어서 슥 올라와 버린 거 있죠. 전 일하느라 못 봤는데 호스를 잇고 나서 돌아서니 코끼리가 제 눈앞에 딱 서 있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코끼리 이병 구하기’ 소동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죠.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힘들 때, 다시 떠올리면서 힘을 내시는 기억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아시아코끼리 두 마리가 동물원에서 국내 최초로 성공적으로 태어난 일을 늘 자부심으로 삼고 있어요. 어미에게서 버려진 아기 사자 세 마리를 거두어 첫 포유에 성공해서 잘 키웠을 때도 정말 뿌듯했고요. 언제나 첫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런 순간들이 많아야 해요.

 

이 책의 독자들 중에는 수의사를 꿈꾸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수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엇보다 동물을 보면 마냥 행복한 사람이 수의사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죠. 수의사, 사육사는 꿈을 좇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은 적게, 열정을 많이 가지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국제적으로 나갈 준비도 늘 하셔야 하고요.

 

수의사가 감내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드실 때는 언제인가요?


수의사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부와 명예가 어느 정도 따르는 직업은 아니에요. 때론 근무 환경이나 보수가 아주 열악하고 박할 때도 있죠. 막연하게 ‘전문직이니까 좋겠지’ 기대하고 수의대를 간다면 실망할 수 있어요. 또 수의사는 동물을 살릴 때도 많지만 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해요. 때론 안락사도 시켜야 하고요. 애써 치료하던 동물이 죽으면 한동안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동물 치료의 핵심은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책을 읽어보니, 수의사에게는 측은지심만큼이나 냉철한 판단력이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최대한 측은지심으로, 아플 때는 냉철한 이성으로 동물을 대하는 사람이 바로 수의사예요. 동물이 죽었을 때는 남은 동물들을 위해서 냉정한 마음으로 부검을 해야 하고요. 또 가축이나 반려 동물을 대할 때는 동물의 소유주인 인간까지 고려해야 해요. 카멜레온처럼 다중인격이 되어야 하는 직업이 수의사가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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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줘요


도축장에서의 도축 검사관으로 일했던 경험도 들려주셨는데요.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시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떠셨어요?


사실 처음 도축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곳에도 제가 돌봐야 할, 죽음을 목전에 둔 소 돼지들이 있고 또 그들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비록 어쩔 수 없이 죽이기는 하지만 도축장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그들을 아꼈어요. 그분들에게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도축장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셨다고요.


버텨 봐야겠다고 결심하자 다른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가축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자는 생각에 가축의 복지를 고민하고, 잊고 있던 해부학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소의 태아가 어떻게 배 안에서 성장하는지 쭉 들여다보며 기록하기도 했어요. ‘도축장 블루스’라는 제목을 지어 놓고 도축장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했는데요. 그 기록의 일부가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 실려 있어요.

 

“인간이 육식을 하는 한 동물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신 데 공감합니다. 가축들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자유롭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요. 대관령 목장과 도축장에서 일하시면서 이에 대한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대관령 목장은 가축들에게 이상적인 공간이에요. 하지만 다른 곳의 가축 중에는 ‘가축 공장’이라는 표현처럼 처지가 매우 열악한 곳에 사는 동물들도 있어요. 인간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그들을 존중하고, 고마워하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곳에 방목시키고 무분별한 육류 소비도 줄여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도축장에 동물의 명복을 비는 사당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저도 때때로 죽어간 축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부검실에서 경험하신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더라고요. 동물들을 진찰하신 후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두시나요?


대관령 목장에선 수첩에 기록하는 정도였는데, 동물원에 와서부터 무엇이든 길게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였죠. 부검실은 수의사의 업무상 무조건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곳이고요. 동물 마취나 진료 기록은 꼭 간략하게 잘 정리해서 남겨 두어야 해요.

 

도시에서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소외 계층에게 유기 동물을 무료로 분양해주는 사업도 제안ㆍ진행하신 바 있는데요. 실현되길 바라시는 또 다른 정책이나 사업도 있나요?


유기동물 보호소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저는 보호소 안에서도 유기동물 요양소나 입양소 같은 좀 더 세분화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아픈 동물들과 건강한 동물들을 가능한 분리해 주는 게 좋고, 또 분양을 갈 녀석들은 건강이나 외모 관리도 따로 시켜야 하니까요. 깔끔하게 분양 준비를 마쳐 두면 사람들도 동물을 사는 대신 이런 곳에 와서 기꺼이 분양을 받을 거예요.  

 

최근 도시에서는 길고양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잖아요.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이나, TNR 사업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길고양이들이 도시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길고양이는 제 나름대로 도시 생활에 잘 적응했어요. 텃세도 강하고 영역 내 마리 수 조절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재의 무분별한 TNR(포획해서고, 중성화시켜서, 내보내는)이 마리 수 조절에 정말 큰 도움이 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관리가 보장되는 최소한의 급식소는 인간과 길고양이가 도시에서 공생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기 동물들이 처한 현실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반려동물을 일종의 유행이나 장식품으로 보는 풍조가 문제예요. 가족으로서 끝까지 책임진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해요. 일생 반려동물로 살아온 동물이 갑자기 인간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기는 힘들거든요. ‘버리면 누가 알아서 키우겠지’ 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은 지극히 위험해요. 저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려는 사람, 혹은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반려동물들은 사람보다 오래 살지 못해요. 사람보다 병도 많아요. 혼자 독립하기도 힘들어요.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시작하셔야 해요. 부지런해져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하셔야 해요. 이른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도 배우셔야 하고요.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생활해 오셨잖아요. 인간과 달리 동물들만이 가르쳐주는 감정이나 세상의 이치 같은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동물 곁에 있으면 정말 편안해져요. 인간을 대할 때보다 훨씬 감정이 단순해서 좋아요. 동물들은 순수하고, 편견이 없고, 내가 돌봐 주는 만큼 나를 알아봐 주어서일 거예요. 어제 비록 못 해 주었더라도 오늘 잘해 주면 다시 친해질 수 있어요. 그들은 멀리 봐요. 모성애나 관용 같은 건 사람보다 훨씬 앞서는 것 같아요.  

 

책에서 ‘동물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바로잡아 주셨는데요. 그 중 하나가 자연 상태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이 언제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유튜브 같은 데서 새끼 양을 돌보는 사자, 고양이 새끼를 키우는 원숭이 같은 영상들을 흔히 보실 거예요. 동물들은 이렇게 훨씬 선한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새끼들은 종을 불문하고 모든 동물들이 서로 보살펴 주려고 하지요

 

호랑이들의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폐렴에 걸려 고통 받는 약한 호랑이 동생의 투정을 오랫동안 형들이 받아줬었어요. 그러다 동생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되자 한 번에 목을 물어 죽였고요. 제가 보기엔 일종의 안락사로 보였어요. 동생의 고통을 보다 못해서 그렇게 했다고 짐작이 돼요. 물론 호랑이의 마음을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저는 그저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그렇게 느낄 뿐이고요.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타조를 보면서, 무심코 ‘타조는 날고 싶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잖아요. 난다는 것이 인간에겐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서 타조가 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죠. 그런 상상을 계속 펼치다 보면, 문득 ‘타조는 그냥 생긴 대로 살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들만 안타깝다며 감정 이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늘 동물의 시각에서 동물을 보려고 노력하죠.

 

또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드세요?


동물에게는 ‘동물적인 욕구’만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역시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해요. 동물들은 우리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동물원에 새끼를 잃은 다람쥐원숭이가 있었어요. 상심이 어찌나 컸던지 곡기를 끓고 그대로 죽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동물에게도 밥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동물들도 생각을 하고, 느끼고, 아파해요.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이에 대해 다루셨는데, 이러한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연에서 더 이상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나 멸종이 없어진다면 차츰 단계적으로 동물원이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야생의 마지막 보루로써 동물원들이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환경이 좋은 동물원, 수족관만 남길 바랍니다. 지금도 무분별하게 생겨나고 있는데 그런 동물원, 수족관 드라이브를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숨 고르기가 필요해요.

 

한 일간지에 ‘유럽 동물원 탐방기’를 연재하기도 하셨는데요. 유럽의 사례에 비춰보면 국내 동물원은 어떤 상황인가요?


유럽이나 가까운 동남아의 동물원만 가도, 우리처럼 동물들이 좁은 유리나 철창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꾸며 놓았어요. 물이 경계를 가르고 주변은 온통 숲 속 같죠. 최소한 그렇게 꾸며 주는 것이 희생당하는 동물들을 대하는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향해야 할 모델을 발견하기도 하셨나요?


꼭 한두 가지 모델을 꼽기보다 동물원이 제2의 자연(second nature)라는 기본 개념이 있는 동물원이라면 모두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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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의 공존, 지혜가 필요해요


강연, 방송 출연, 칼럼 기고, 책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수의사로서의 본업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들을 지속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할 수 있을 때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평범한 저에게 동물들이 이름을 알릴 기회를 주었으니, 잠시 동안이나마 동물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짧은 인생 동안 가능한 많은 것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은 창비청소년문고로 출간이 됐고, 이전에도 다수의 어린이책을 집필하신 바 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집필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편견 없이 그냥 동물들을 좋아합니다. 저도 동물원에서는 아이의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어른의 세계가 저에겐 왠지 낯선 세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고 쓰는 것도 아닌데 쓰다 보면 아이들 눈높이에서 써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알고 보면 어른 중에도 아이들 못지않게 순수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어른들이 제 책을 함께 읽어 주시더라고요. 

 

특정 동물에 대한 호불호나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반응을 보고 학습하는 경우 많은 것 같아요. 동물들과 처음 만나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나 바람직한 태도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이에게 신기한 구경이나 체험을 시켜 주고 싶다고 해서 동물을 때리거나, 동물이 먹지 못할 것을 던지거나, 억지로 만지려고 하지 마세요. 약한 동물들 앞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는 태도는 결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동물을 존중하는 부모가 되세요.

 

책을 읽어 보니, 동물원의 동물들이 관람객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더라고요. 관람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식 동물들에게 비닐이나 장갑 같은 걸 주지 마세요. 비닐은 그들의 소화기를 막아 버려요. 타조는 뭐든 일단 삼키고 보니 더욱 위험하고요. 원숭이에게 과자를 주지 마세요. 과자는 비만과 충치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파충류들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마세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파충류들은 누구보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거든요.

 

작가님을 소개할 때 “국내에 드문 야생 동물 수의사”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책에서도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셨는데요. 이런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국내에서 야생 동물 수의사로서 성장할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이 워낙 험해서 지원자가 적기도 하고요.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국제기구나 해외에서 자원 봉사할 기회는 많아요. 그런 활동을 통해 실력을 쌓는다면 우리나라 야생 동물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제인 구달이나 다이앤 포시 같은 분들이 그랬듯 꿈을 가진 청소년들, 미래의 수의사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합니다.

 

가축 전염병 발생 시 이루어지는 살처분 조치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셨는데요. 이 과정에 참여했던 수의사들이 후유증을 겪는 일도 많다고요.


네, 수의직 공무원 중에 공직을 그만두는 분들이 많이 생겼었죠.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인간의 편의만 생각해서 살처분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 생매장 논란 등 여러 논란이 빚어졌고요. 그런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하는 수의사들은 심적 고통이 정말 큽니다. 가축들은 물건이 아니에요. 인간처럼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가진 귀중한 생명이에요. 위기의 순간에도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가축 전염병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죠. 그리고 차분히 대처해야 해요. 그러려면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움이 앞선다고 해서 서두르거나 혹은 동물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면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까요?


인간이 지금처럼 파괴적으로 사는 대신 아프리카에서처럼 동물이 사는 영역과 사람이 사는 영역을 그저 구분해서 지내면 어떨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동물들을 굳이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에요. 자연은 인간이 억지로 개입하지 않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호모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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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최종욱 저 | 창비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서 저자는 현재 일하고 있는 우치 동물원을 비롯해 유기 동물 보호소, 동물 부검실 등을 종횡무진 누비며 만난 동물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의사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럽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며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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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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