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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ca의 미스터리 탐구] 죽어 마땅한 배우자들

제12강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죽어 마땅한 배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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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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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남편이라니까!

 

‘스릴러’만큼 이름 짓기 좋은 장르도 또 없다. 테크노 스릴러, 메디컬 스릴러, 법정 스릴러, 심리 스릴러, 사이코 스릴러, 밀리터리 스릴러, 정치 스릴러, 에로틱 스릴러, SF 스릴러 등. 스릴러는 어떤 수식어와도 무난하게 잘 어울리며, 그 수식어만으로 독자가 이야기에서 기대할 지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유연함은 장르소설에서 ‘스릴’이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스릴러 분야에 새로운 수식어 하나가 떠오르더니, 그 인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식어는 바로 ‘marriage’, ‘결혼’이다. ‘매리지 스릴러’라는 말은 꽤 낯설지만, 이미 10여 년 전부터 비슷한 유의 작품들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정 구성원의 사건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매리지 스릴러는 도메스틱 스릴러(Domestic Thriller)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이야기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고 독자층 또한 여성이 많아서, 칙 누아르(Chick Noir)라고도 불린다. 이들 작품들이 스릴러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이유는, 물론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때문이다.  『나를 찾아줘』의 어마어마한 성공 이후 비슷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놀랍게도 엇비슷한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걸 온 더 트레인, The Silent Wife, How To Be A Good Wife, 허즈번드 시크릿 등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하는 매리지 스릴러’ 같은 리스트의 단골손님들이다.

 

사실, ‘의심스러운 배우자’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소재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17세기 말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은 그렇다 치고, 미스터리 소설의 원형이라 할만한 빅토리아 시대 말 선정소설만 해도 대부분 가정 범죄나 이중 결혼, 치정 등을 소재로 삼았다. 그렇다면, 결혼을 파멸의 시작점으로 설정한 스릴러가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이들은 결혼 제도를 받아들이는 여성의 관점 자체가 변화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결혼은 가장 밀착된 인간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여성에게 큰 공포가 될 수 있다. 이제 여성들은 이 문제를 보다 주도적으로 타개하려 한다. 또 소셜 미디어의 범람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사생활에 익숙해졌고, 소셜 미디어는 때때로 관계나 인간의 양면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굳이 애거서 크리스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여성 범죄소설 작가들은 관계에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여왔다. 그 빛나는 유산을 이어받은 심리 스릴러 작가들에게 결혼은 언제나 거부하기 어려운 최고의 소재였다. (엄청난) 성공 사례가 나온 이상 그들이 창작을 망설일 까닭은 더는 없었을 것이다.


7월 출간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올해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스릴러 작품 중 한 권으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프레드릭 브라운의 『교환 살인』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같이 고전적인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비교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신예 작가의 두 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판매 수치를 보이고 있다.

 

전형적인 매리지 스릴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죽여 마땅한 사람들』 역시 배우자들이 골칫거리인 작품이다. 공항 라운지에서 우연히 만난 테드와 릴리. 결혼한 지 3년이 된 테드는 처음 본 여자에게 아내의 부도덕함을 털어놓고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얘기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고백에 릴리는 진지하게 공감한다.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그 살인 계획을 돕겠다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릴리와 테드, 테드의 아내 미란다, 담당 형사 킴볼의 시선은 작품 내내 교차하는데, 그 교차 서술은 독자의 시선을 제한하고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잘 읽히는 작품이다. 매끄럽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툭 튀어 오르는 반전 또한 독자의 발목을 비틀거리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보다 먼저 도려내는’ 릴리라는 인물에게 꽤 많은 공을 들였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가면 사건의 무게중심은 자연스레 릴리에게로 옮겨지는데, 독자는 그 부분에서 다시 새로운 긴장감을 얻는다. 고전적인 플롯을 참신하게 재구성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범죄소설은 그 작품이 생산되는 시대를 반영한다. 매스미디어와 결합해 끈질기게 상업성을 찾는 스릴러는 아마 그중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장르일 것이다. 때때로, 스릴러를 들여다보는 건 그 시대의 풍속을 들여다보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범죄는 예전보다 더 일상적이고 더 개인화됐다.

 

내가 잠들기 전에
S. J. 왓슨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눈을 뜨자마자 느낀 낯선 공간 그리고 내 옆에 누운 낯선 남자. 그리고 거울 속 알 수 없는 나. 남자는 안타깝게 나에게 말한다. 내가 당신의 남편이고 우린 결혼한 지 무려 22년이나 됐다고. 1인칭 시점과 일기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이 가져다 주는 서스펜스를 최대한 이끌어낸 작품. 2011년 최고의 심리 스릴러 중 한 권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저 | 푸른숲

겉으로는 더없이 완벽한 부부 닉과 에이미. 외출에서 돌아온 닉은 결혼 5주년을 맞이한 아침, 난장판이 된 거실 그리고 아내의 실종 사건과 마주한다. 사건은 대중매체를 통해 점점 널리 알려지고 아이러니하게도 닉은 점점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어두운 비밀들. 2012년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한 권이며 데이비드 핀처가 영화로 만들었다.

 

 


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저 | 북폴리오

알코올 중독자 레이첼은 매일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척하며 전남편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는 1년째 기차 안에서 멋진 남녀를 관찰하며 그들에게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준다. 그러던 중 '제스'가 실종되는 일이 일어나고 레이첼은 자연스럽게 사건에 휘말린다. 우울하고 답답한 등장인물들, 불완전한 기억으로 차오르는 서스펜스. 역시 영화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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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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