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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도 늑대가 있지 않나요? - 뮤지컬 <더맨인더홀>

프로이트의 억압이론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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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자, 그의 앞에 늑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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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빼앗긴 후, 늑대를 만났다


무대는 길게 찢겨있다. 바닥을 가르며 생겨난 균열은 한껏 벌어진 상처를 연상시킨다. 틈을 비집고 나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라도 터져 나올 것처럼 가득 차있지만 비밀스럽게 갇혀버렸던 ‘어떤 것’이 아닐까. 어쩌면 <더맨인더홀>은 그 ‘무엇’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 ‘어떤 것’이 분출되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나를 극한 상황까지 밀어 넣으면 어떻게 될까” 이현규 연출은 자문한 끝에 <더맨인더홀>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절망의 한복판에 버려지는 인물 ‘하루’를 만들어냈다. 하루는 착한 남자다. 착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하고 싶은 말은 안으로 삭여내고 이리저리 치여도 묵묵히 감내한다. 평범하던 그의 일상은 악몽 같은 사건과 맞닥뜨리며 산산조각이 난다. 여자친구 ‘연아’를 찾아간 밤 그녀의 집 앞에서 강도를 만났고, 목숨을 구걸했고, 무력함을 조롱 당했다. 자신을 만나러 온 연아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하루가 눈을 뜬 곳은 맨홀 속.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공간에 버려졌던 그는 ‘늑대’와 만난다. 보름달이 뜬 밤 모습을 드러낸 늑대는 “네 안의 또 다른 숨겨놨던 나의 모습”이라 자신을 소개한다. 둘의 대화는 보름달과 호수, 호수에 비친 또 하나의 달을 배경으로 계속 이어진다. 하루는 말한다. “누가 널 볼까봐” 두려웠다고. 늑대는 답한다. “여기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웠다고.

 

늑대는 누구이고, 하루는 그와 어떤 관계인 걸까. 관객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단서는 충분치 않다. 자신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시간을 함께했는지, 늑대와 하루는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빈틈을 메워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마치 꿈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가고 전후 맥락을 짐작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상징과 비유가 담겨있다. 우리의 꿈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작품은 늑대로 하여금 하루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무엇’을 끄집어낸다.

 

늑대는 하루를 향해 “나를 위협하는 자, 나를 공격하는 자, 나를 멸시하는 자”를 공격하라고 말한다. “사냥감이 되겠는가, 사냥꾼이 되겠는가” 묻기도 한다. 그의 앞에서 하루는 흔들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퍼즐의 조각을 획득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조각들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하나의 그림을 형상화한다. 비로소 관객은 사건의 진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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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재미가 있다


하루에게 있어 늑대는 자신이 억누르고 감춰왔던 폭력성, 악한 본성일지 모른다. 늑대가 하루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면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한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름달, 호수, 호수에 비친 두 번째 달이 상징하는 바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더맨인더홀>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고, 이현규 연출은 “하늘에 비친 달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이고, 호수에 비친 달을 자기 속에 있는 이드라고 생각할 때,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방황하고 고민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에고”라고 밝힌 바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굳이 심리학의 이론을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하루의 갈등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충동에 휩싸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고 내면의 잔혹함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강렬한 욕구. 어쩌면 우리 일상은 그 감정 위에서 흔들리며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다 하루처럼 ‘존재가 위협당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유폐되었던 늑대가 나타난다 한들, 그것을 저열한 본성이라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뮤지컬 <더맨인더홀>은 가벼운 마음으로 관망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강렬한 사건, 폭발하는 감정,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이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친다. 그러나 그 자체로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휘발성 강한 즐거움에 식상해졌다면 <더맨인더홀>을 선택하시길. 공연은 10월 30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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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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