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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벨벳이 잦은 활동을 하는 이유

레드 벨벳 〈Russian Rou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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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이 여태 진행해왔던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의 고민들이 점점 완성형에 다다르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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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드 벨벳의 행보는 내심 걱정될 정도다. 언제부터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Ice Cream Cake> 혹은 <The Red> 이후로 후속작을 내놓는 텀이 점점 짧아졌고 급기야는 바로 이전의 <The Velvet> 활동을 마무리한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Russian Roulette>이 등장했다. 소속사 입장에서 멤버들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것에는 여러 의도가 있을 수 있겠으나 지금 당장은 의문점이 든다. 전작들이 기대와 성원으로 가득한 팬덤의 마음까지 실망시키는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Ice Cream Cake>을 넘는 성과는 없었고 타 아이돌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점한 것도 아니었다. 특별히 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노만 열심히 젓는 이유가 그저 여태까지 고수해오던 기획사의 방침 때문인 걸까.

 

적어도 <Russian Roulette>은 그 의문에 성실히 답을 하고 있다. 이목을 가장 잡아끄는 것은 당연히 타이틀곡인 「러시안 룰렛」이다. 복고풍 신스 사운드를 차용했다거나 살짝 '뽕끼'를 집어넣어 비튼 후렴구 등 어디선가 쓰였던 것들을 가져다가 적당히 조합했는데도 중독성은 상당하다. 특히 후반부 신스 독주는 곡을 마무리 하는 용도 이상으로 매력적이며 도트나 밝은 색채를 차용하여 소위 옛날 오락 이미지와 '레드' 콘셉트의 발랄한 분위기를 잘 섞어낸 뮤직 비디오에서도 시너지를 노린 티가 난다. 레드 벨벳의 강점이 어디 있는지 알고 정확히 찌른 영리한 트랙이다. 비록 이전 SM의 좋은 선례들을 레퍼런스 삼아 그 중간지점에 안착한 것뿐이라는 혐의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다른 수록곡에서도 충분히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보도 자료에서는 뉴질스윙 트로피컬 하우스 등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고 말하지만 생각보다 곡들의 성향은 균일하다. <Russian Roulette> 자체가 밝은 성향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음반인 이유도 있겠지만 레드 벨벳 특유의 곡 구성이 주는 영향도 크다. 서로 이질적인 파트들을 짜깁기하듯 곡마다 분위기 전환을 자주하는데 「Lucky girl」나 「Sunny afternoon」같은 곡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보통 전주와 후렴의 간극이 크면 주제를 잃고 난삽해지기 쉬운데 신보에서는 능숙함이 보인다. SM이 여태 진행해왔던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의 고민들이 점점 완성형에 다다르고 있는 모습이다.

 

미니 앨범이라는 점도 그다지 한계로 작용하지 않는다. 일곱 곡이라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곡수를 요긴하게 활용한다. 「러시안 룰렛」의 아우라가 자칫하면 중후반부의 수록곡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데도 「Bad dracula」에서 한껏 끌어올린 박진감을 「Sunny afternoon」에서 산뜻하게 풀어내는 식의 완급 조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뮤트 트럼펫 사운드로 포인트를 주는 간주가 인상적인 「My dear」는 많은 전조에도 침착하게 템포를 유지해나가며 완벽한 앨범의 마무리로서 수행을 해낸다. 미니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는 분명 <Russian Roulette>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레드 벨벳에게 가지고 있던 우려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멤버들 개개인의 몰개성도, 레드 벨벳이라는 그룹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향점의 애매함도 그대로다. 이번에도 멤버들을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최상의 역할 분담은 나오지 않았고 이러한 어중간함은 레드 벨벳을 소녀시대와 f(x)의 유전자 조합 정도로 격하시키는 요인이다. 가장 적절한 대안은 '벨벳' 노선의 성공일텐데 나름대로 안정권에 정착한 이번 앨범마저 발랄한 콘셉트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 듯하다. 그저 제2의 「Automatic」을 기다려 볼 뿐이다.

 

좌우지간 서두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 듯하다. 레드 벨벳이 잦은 활동 재개로 얻고자 하는 것은 비단 인지도나 반짝 흥행 뿐이 아니다. SM은 추진하는 기획이 당장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주춤하지 않는다. SM은 그러한 뚝심을 3년차 레드 벨벳에게 배양하고 있고 그 덕에 이번 <Russian Roulette>은 성공적이다. 이는 어쩌면 사내의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의 결과이며 우리 대중이 인식하지 못했던 숨겨진 취향의 발견이자 이를 이용하여 발명해낸 소속 가수들에 대한 자신감이다. 소녀시대와 f(x)로 대표되는 SM의 대중성과 실험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 레드 벨벳은 태어났고 선배들의 성공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세밀하게 설계된 거대 기획의 아래에는 단단한 신뢰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레드 벨벳은 점차 음악적 신용을 얻어가고 있다. 새삼 <Russian Roulette>에서 은근한 <Pinocchio>향취가 난다. 이제 <Pink Tape>이 탄생하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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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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