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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각성한 유희, 각성한 욕망이 필요하다”

신용목 시인의 첫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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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박자가 다 맞아야 좋은 게 아니고 좀 흔들려야 제맛이지’라는 게 있어요. 템포에 맞으면서도 조금 다른데 맛을 낸다고 하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어요. 어느 파트로 들어가도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여름의 끝자락, 지난 8월 31일 이대 앞 카페파스텔에서 신용목 시인의 저서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낭독회가 열렸다. 신용목 시인과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이 함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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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시인

 

 

선을 아는 사람

 

신용목 시인은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는 그의 첫 산문집으로, 낭독회는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를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눈 뒤, 독자들에게 받은 무게감 있는 질문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신용목 : 문학동네 카페에서 연재했던 걸 낸 것이 이 책입니다. 제목부터가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라서요. 유쾌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고 다른 생각들도 나는 제목인데요.(웃음)

 

신용목 시인은 짧은 책 소개를 마치고 행사를 같이 진행할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을 소개하며 몇 년 전부터 아는 사이였음을 밝혔다.

 

윤덕원 : 이 책이 나왔다 해서 읽는데. ‘아, 정말 신용목 시인은 저랑 좀 반대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사람도 위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바닥이랄까, 선이랄까. 이런 선을 너무나 잘 알고, 그 선 주변의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수학 시간에 되게 이해가 안 갔던 것 중 하나가 0.999...있죠. 그게 1이랑 같다고 증명되잖아요. 근데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는 ‘끝이 날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계속 더하는 쪽이라면, 신용목 시인은 ‘그건 1이야’ 이런 느낌으로 얘기한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신용목 : 저는 저희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윤덕원 : 아니, 같은 점을 향해 가는데(웃음) 우리는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짧은 대화를 끝낸 뒤 첫 낭독을 시작했다. 4부의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였다. 고등학교 때 같이 냈던 형이 창원에서 노동운동을 하는데, 그때 전화를 하면서 메모를 했던 것을 정리한 내용이 담긴 부분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신용목 : 정말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가 있잖아요. 어떤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아,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싶은 순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실패를 감당하면서 버틴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마치 실패가 우리의 어떤 전쟁 이후처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좀 억울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윤덕원 : 확실히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질문을 좀 바꿔볼게요.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 질문에 답을 한순간 ‘공범이 되느냐, 아니냐’라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라고 하면 그건 좀 슬픈 게 아닐까요. 답을 몰라도 그 사람과 조금 더 얘기할 수 있는 건데.

 

 

섣부르게 희망을 말하지 않겠다는 계획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를 무심하게 바닥에 내려놓듯이 그렇게 내 사랑도 끝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54쪽)

 

윤덕원 : 이 첫 문장이 어떤 단절의 선언 같단 생각을 했어요. 제가 집에서 커피를 끓여 마셔요. 물을 끓인 다음 그 물로 커피를 우리고, 약간 남은 물로 컵들을 헹구고. 털어서 얹어놓고 놔두면 온기가 있어요. 그 온기 때문에 남은 물이 말라서 물때가 안 껴요(웃음). 단호하게 털어낼수록 나중에 더 쓰기도 좋아요. 이 단호함이 또 어떤 생각들을 낳지 않을까.

 

신용목 : 이 책을 처음 쓸 때부터 계획한 건데, ‘섣부르게 희망을 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다. 인생을 열심히 살라고 하지 말자. 사실 그런 어떤 구호나 선전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를 우리답지 못하게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너무 자꾸 희망에 대해 말해서가 아닐까. 오히려 절망할 시간을 주는 않는 게 아닐까. 이 길이 아니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고, 마치 인생의 낙오자처럼 만드는 분위기랄까요. 그것이 사실 우리를 궁지로 내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오히려 정말 바닥을 경험해보는 게 나쁘지 않다 생각했어요. 그 바닥이 가지고 있는 묘한 심연이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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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

 

1부 <내 몸속 어떤 성분이 당신을 기다릴까>에 대한 대화를 마친 후, 질문지 중 하나를 무작위로 뽑았다.

 

‘가을’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요?

 

신용목 : 저는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초등학교 4~5학년이었어요. 학교에서 코스모스 씨를 따게 했어요. 제가 뭐 꽃씨를 열심히 땄겠어요? 선생님이 앉아 계시는데, 계속 가을 햇살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시면서 그 선생님이 제 손을 턱 잡으시더니, ‘용목아 항상 약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 때문에 제가 이렇게 사는 것 같아요(웃음). 근데 그 선생님을 6년 전에 또 한 번 뵈었습니다. 지금 수원에서 교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같이 밥을 먹는데,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용목아 고맙다, 나는 네가 조폭이 될 줄 알았다’(웃음). 코스모스 꽃만 보면 그 선생님 생각이 나요.


잊은 것처럼 살 수 있을까요?

 

윤덕원 : 잊은 것처럼 살 수는 있죠. 다 잊고 살 수는 없겠죠. 잊은 것‘처럼’은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신용목 : 우리 다 잊은 것처럼 살고 있지 않나요? 다들 그렇게 갈고 있는 거죠. 이게 기억의 문제인데요.

이것과 관련해서 한 대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신용목 시인이 1부 <그리움은 신을 가두는 감옥이다>를 낭독했다.

 

신용목 : 세월호, 거기서 얘기하는 게 기억의 문제잖아요. 이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저는 정말로 이 우주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렇잖아요. 우리가 우리 몸을 이루는 것도 빅뱅의 순간부터 생겨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이 우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움이 없다면 저는 정말 좀비처럼, 인형처럼 별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이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데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존재 자체로 이 세계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자 근본적인 무기가 그리움인 거죠. 내 속에 항상 간직한다는 거예요. ‘잊은 것처럼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본질적인 망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포 어딘가에 있겠죠

 

‘잊기 위해서 어떤 일을 가장 많이 하시나요?’, 저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자꾸 먹었어요. 우리가 계속 시간과 싸우면서, 존재를 영위해나가면서, 우리가 유일무이하게 우리의 칼날로서 내세울 수 있는 것, 저는 그리움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윤덕원 : 나이와 함께 술도. 정말 그리워한다는 것, 기억하려고 한다는 것은 가끔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같단 생각을 많이 해요. 싸우는 동안에, 버티는 동안에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그냥 잊어버리지 뭐’라고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게 아마도 그리움을 일으키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냐 묻는 말에는

 

2부 <끝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것들> 낭독이 이어졌다.

 

“나 사랑하냐구?” 드디어 남자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나의 자지러짐이 엿듣기를 자수하는 꼴이 될까봐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남자의 대답은 그가 쓰는 지독한 사투리와 함께 내가 상상했던 모든 대답의 가능성을 허물어버렸다. “가스나! 참말로 와이리 귀찮게 까불어쌓노? 내가 옛날에 너 사랑한다 캤제? 그라나 사랑 안 한다 칼 때까지는 사랑하는 기다. 알겠나?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120쪽)

 

신용목 :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는 것보다는, 아끼면서 한다는. 쉽게 말하면 너덜너덜해질 것 같고, 싸 보일 것 같고.

 

윤덕원 : 말로 하지 않고 행동한 것들은 사랑을 증명하기가 부족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말로 하는 순간, 그것이 참 교활해지고 편협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최대한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요.

 

신용목 : 말을 안 하고 아껴둔다고 해서, 그 감정 자체가 계속 싱싱하게 남아있을까요?

 

윤덕원 : 그건 아니죠. ‘오빠 나 사랑해?’ 라고 했을 때, 이때 말을 쉽게 하기 어려워요. 저는 이제야 좀 알 것 같아요. 만나기 전에 미리 해와야 해요. ‘오빠 나 사랑해?’ 하면 딱, 나와야.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말을 미리 생각을 해왔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나 사랑해?’라고 물을 때, ‘으음...’ 버벅거리면 이미 늦은 거죠.

 

 

전제되어야 하는 각성한 유희, 욕망

 

5부 <욕망을 외면하는 방식으로는>을 낭독한 뒤 이에 대한 신용목 시인과 윤덕원의 대화가 이어졌다.

 

신용목 : 우리가 위인, 좋은 사람이라고 정하는 기준은 트렌드에 의해 계속 변하잖아요. 제가 전에 베를린을 갔는데, 하루키의 『1Q84』가 1위를 하고 있더라고요. 호주도, 한국도 1위. 세계 모든 곳에서 하루키의 소설이 1위고, 세계 모든 사람이 한 남자를 사랑하고. 문제는 그런 사람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이번에 바둑, 알파고, 기억하시죠. 저는 알파고가 시를 쓰는 시기가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문제는 그런 빅데이터를 소수가 독점한다는 거죠.

 

저는 낭만주의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단 한 가지가 전제되어야 해요. 그 뒤를 바라볼 줄 아는,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해요. 각성한 유희, 각성한 욕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어떤 한 방향으로만 가서 똑같아지는 그런 삶보다는, 예를 들면 브로콜리 너마저처럼 또 다른 어떤 세계들을 만날 수 있도록(웃음)

 

윤덕원 : 디지털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는데요. 수많은 글과 이야기가 데이터화돼서 너무나 넓고 빠르게 전달이 되고, 왔다 가게 하게 되잖아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때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욕망과 삶, 사랑더러 ‘원래 다 그래’라는 식으로 뭉쳐서 말하는 게 참 많죠. 그런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 말을 섬세하게 더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시력검사를 할 때, 1.5 이상은 다 비슷해 보이잖아요. 근데 사실은 다 비슷한 점이 아니거든요.

 

 

시인이 쓴 산문집에 대해

 

윤덕원 - 산문집으로 만들어서 좋았던 것은, 시의 운율 속에 넣어 둥글게 넘어갔던 부분을 약간 각주처럼, 돋보기처럼 비춰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글자와 글자 사이에 틈새를 메꿔주면서 더 나타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리고 좋은 점은, 빈틈 속에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음악도 ‘박자가 다 맞아야 좋은 게 아니고 좀 흔들려야 제맛이지’라는 게 있어요. 템포에 맞으면서도 조금 다른데 맛을 낸다고 하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어요. 어느 파트로 들어가도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순서대로 쭉 읽으면 ‘아, 책 한 권을 다 읽었구나’ 싶겠지만, 아무 페이지를 펴서 봐도 일관적인 감을 주는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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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신용목 저 | 난다
2015년 11월 30일부터 2016년 1월 29일까지 문학동네 카페에 매일 연재했던 에세이를 엮은 책으로 산문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와 넓이, 그 외연과 내연의 유연성을 함축하여 6부로 나누었다. 삶에 대한 물음을 물론이고 나아가 생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고찰하는 시인의 의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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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서영(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책이 좋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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