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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살인>과 엘러리 퀸의 후예

decca의 미스터리 탐구 10. 차근차근 용의자를 제거하는 화려한 추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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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 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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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용의자를 제거하는 화려한 추리 쇼

 

1920년대 후반, 한 예술평론가가 그 동안 출간된 미스터리를 열심히 분석한 후에 연달아 세 권의 미스터리를 내놓았다. 한없이 잘난 탐정과 영국 황금기 미스터리의 전통이 적절하게 섞인 그 작품들은 멋지게 성공해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작가의 이름은 S. S. 밴 다인. 그가 쓴 작품들은 장르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였고,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범인의 심리적인 동기에 주목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두 사촌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전업 작가를 꿈꿨고, 롤모델은 당연히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인 S. S. 밴 다인이었다. 그들은 공모전 수상을 목표로 3개월에 걸쳐 작품 하나를 힘겹게 완성했다. 비록 공모전을 주최한 잡지사가 망해 내정된 수상을 놓치는 불운을 겪었지만, 운 좋게도 작품은 출간될 수 있었다. 미국 미스터리 역사 대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엘러리 퀸과 그의 데뷔작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대략 3기로 나뉜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시작된 1기는 ‘국명 시리즈’라 불리며 S. S. 밴 다인의 작품과 닮았다. 잘난 탐정 엘러리 퀸(작가 이름과 같다)이 나오고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심지어 한번 겨뤄보자며 ‘독자에의 도전’도 감행한다. 이후 엘러리 퀸의 작풍은 할리우드의 영향 아래 있었던 2기, 추리에서 범죄소설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3기로 이어진다. 평론가들은 작가로서 한 걸음 진보한 3기를 높이 평가하지만, 대부분의 엘러리 퀸의 팬들은 1기를, 그것도 ‘유난스럽게’ 좋아한다.

 

‘지루할 정도로 치밀한 사건 수사가 이어지고 고뇌에 찬 탐정은 뭔가 결심한 듯 용의자를 한곳에 모은다. 철저한 논리에 의해 용의자는 하나씩 소거되고 마침내 단 한 명만이 남는다. 절정의 순간, 탐정이 힘차게 범인을 지목하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도무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건만, 이러한 구성은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한없는 낭만을 느끼게 해주었다. 엘러리 퀸은 초기 작품들을 통해 규칙과 이성만으로 범인이 한정되는 명쾌한 시공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앨러리 퀸은 고향인 미국에서도 이제 거의 잊힌 작가이다. 1941년부터 직접 발행한 미스터리 잡지 <EQMM>은 여전하지만, 작품은 이제 중고 서점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의 열성적인 팬들은 셜록 홈스의 인기가 계속되는 마당에, 미국 탐정의 희망은 오로지 엘러리 퀸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규칙과 이성으로 통제되는 가상의 시공간은 사실적인 범죄에 밀려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묘하게도 초기 엘러리 퀸의 스타일이 여전히 통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최근 새로운 번역과 해설로 ‘국명 시리즈’가 다시 출간되는가 하면, 빛바랜 그 스타일을 집요하게 흉내내는 작가들도 있다. 새로운 국명 시리즈의 해설을 맡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스타일은 물론 탐정과 작가 이름을 똑같이 설정하는 전략마저 그대로 따르는 노리즈키 린타로, 엘러리 퀸 1기 특유의 집요한 소거법을 고집하는 아오사키 유고 등은 모두 엘러리 퀸 유파의 신봉자들이다.

 

아오사키 유고는 21살의 나이에, 『체육관의 살인』으로 역대 최연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원래 라이트노벨을 꿈꿨다가 미스터리로 선회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로, 자신의 작품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의 오마주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으며, 작품 속 탐정은 라이트노벨의 세계관에 맞춰 만화광으로 설정돼 있다. 라틴어로 고전을 인용하던 하버드 출신 엘러리 퀸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읊조리는 오타쿠 우라조마 덴마로 재 탄생한 것이다.

 

아오사키 유고의 작품은 국내에 2014년부터 매년 한 권씩, 총 세 권 소개돼 있다. 체육관에서 시작된 우라조마 덴마의 활약은 ‘수족관’을 거쳐 올해 ‘도서관’ 에 이르렀다. 경쾌한 학원물에 만화적 색채가 듬뿍 덧칠된 이 시리즈는 사소한 단서가 범인을 한정하는 꼼꼼한 논리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처치곤란, 구제불능의 오타쿠 탐정 우라조마 덴마는 모자 하나 구두 한 켤레로 범인을 압박했던 엘러리 퀸처럼, 우산(『체육관의 살인』), 대걸레와 양동이(『수족관의 살인』), 다잉메시지와 금이 간 화장실 거울(『도서관의 살인』)로 용의자를 하나하나 소거하고 화려한 추리쇼를 벌인다.


이런 유의 작품들은 범죄자의 우중충한 정서나 사회의 어두움을 응시하는 작품들에 비해 짜릿한 미스터리적 쾌감을 준다. 하지만 지나친 논리에의 추구는 작품의 세부를 훼손하기 마련이다. 이 시리즈만 해도 진상에 이르는 과정은 통쾌하지만, 범인이 밝혀진 이후에는 별 감흥이 없다. 논리를 위해 등장인물의 양감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논리냐, 그럴듯함이냐, ‘미스터리 장르의 개연성’은 시대를 계속해서 거듭 되풀이됐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본격 미스터리는 오래된 그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물론, 어떤 즐거움을 택할 것인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Q. E. D. 증명종료
가토 모토히로 글, 그림 | 학산문화사

1997년 시작돼 현재까지 연재 중인 대표적인 추리 만화. 만화 속 사건은 범죄 외에도 불가해한 현상, 심리적인 동인, 수학적 개념, 프로그래밍, 가벼운 해프닝까지 다양한 분야에 맞닿아 있다. 일종의 안락의자 탐정인 주인공 토마 소는 사건에 대한 선입견 없이 오로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진실에 다다른다. 'Q.E.D.'는 'Quad Erat Demonstrandum'의 약자로 '증명 종료'라는 뜻.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노리즈키 린타로 저 ㅣ 엘릭시르

일본의 대표적인 본격 미스터리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본명은 야마다 준야로, 그는 엘러리 퀸에 심취한 나머지 그 형식을 오마주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를 집필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은 시리즈 초기 단편집으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지닌 작품을 비롯해 기묘한 맛, 가벼운 미스터리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다.

 

 

 

 

말레이 철도의 비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저 ㅣ 북홀릭

일본 본격 미스터리의 중견인 아리스가와 아리스 역시, 엘러리 퀸에 대한 오마주로 제목에 국명이 들어간 작품을 계속 발표해왔다. 『말레이 철도의 비밀』은 이국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를 배경으로, 밀봉된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발견된 시체를 다룬 밀실 미스터리이다.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제5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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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영천(예스24 e연재 팀장)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추리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Howmystery.com 사이트를 만든 게 1999년이다. 2,000명이라고도 하고 2,500명이라고도 하는 한국 추리소설 팬 숫자가 크게 늘길 바란 건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 일용할 읽을거리가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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