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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해이수 “우둔해질 필요가 있어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만난 작가들 ② 소설가 해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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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 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한 번에 두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밖에 못 내딛는다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천천히 꾸준히 가는 사람이 끝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오는 9월 마지막 주, 대학로에는 국내외 유명작가 28인이 한 자리에 모인다. 한국문학번역원 주관하는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참가 작가들의 릴레이 인터뷰, 그 두 번째 주자는 최근 중편 『탑의 시간』  연재를 마친 소설가 해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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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중편 『탑의 시간』 연재를 마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을 ‘미얀마 바간’으로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불교 3대 유적지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그리고 미얀마 바간’ 중에서 바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아는 분께서 보여준 바간 풍경 사진을 보고 ‘아, 이곳이다!’ 라는 직감이 왔어요. 약 3천개의 탑이 솟은 도시이죠.


연말에 시작될 연재를 앞두고 『탑의 시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펼쳐낼 적합한 무대를 찾던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여름이 끝날 무렵 바로 ‘바간’으로 떠났죠. 소설의 아우트라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떠올랐습니다. 미얀마는 5개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예요. 다섯 나라와 살갗을 맞대고 있는 곳. 네 명의 남녀가 서로 겹치거나 스치는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딱 알맞은 무대였어요.


미얀마 바간 여행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도시에서 살기 남기 위해서는 생존의 문제들에 자주 덜미를 잡히잖아요. ‘전셋값’, ‘교육비’, ‘병원비’, ‘각종세금’…… 바로 해결되지 않는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미얀마 바간은 영성으로 충만한 곳이었어요. 하루 종일 불경소리가 들리는 곳. 우리를 억누르는 물질적 환경에서 벗어난 공간이라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교도시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종교적인 스토리텔링이 흘러 넘쳐서 영적으로 고양되는 곳이죠. 레스토랑에 가면 중국, 타이, 인도 등 인접국가의 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웃음) 소설 『탑의 시간』은 원고지 100매씩 네 번에 걸쳐 연재를 했는데, 지금까지 쓴 작품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이에요. 글을 쓰면서 몰입도가 높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재미있던 작업이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을 보강하여 500매 경장편 소설로 낼 예정이에요.


『탑의 시간』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탑(塔)’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예전부터 탑을 좋아했어요. 탑은 ‘기억의 타임캡슐’이잖아요. 소중한 것을 담고 뚜껑을 덮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는 저마다 기억과 비밀을 담는 탑이 있어요. 누구에게 쉽게 꺼내놓을 수 없는, 혼자서 간직하는 기억을 봉인하는 장소이죠. 그렇게 꽁꽁 숨겨둔 비밀을 봉인 해제하고 사연을 펼쳐내는 무대로 바간을 택한 것이죠.


장편 『눈의 경전』을 보면 고쿄 피크(5,360m)를 오르는 히말라야 트레킹이 주요 소재인데요, 에베레스트에서 항상 유념해야 하는 고산병과 같이 우리가 ‘인생’이라는 험준한 산을 넘을 때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한 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돈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해서 한 번에 두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밖에 못 내딛는다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천천히 꾸준히 가는 사람이 끝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을 피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에베레스트였어요. 에베레스트에서의 경험이 각별한 이유는 제가 제 안으로 가장 깊게 들어갔던 시간이고, 그 안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에요. 집과 학교, 직장과 모임 내에서 우리는 역할극을 하며 살잖아요. 대개 그 장소의 기대와 책임에 맞춰서 행동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순간이 상당히 드물어요. 장편소설 『눈의 경전』은 높은 곳을 오르며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어요.


『십번기』 에는 16세 소년 소녀가 바둑을 열 번 두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문학과 인생, 바둑의 교집합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바둑은 집을 많이 차지하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내가 집을 많이 차지하려 할수록 상대방은 이를 저지하거나 훼방을 놓습니다. 바둑이 흥미로운 게임인 이유는 상대의 훼방과 태클을 컨트롤하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태클에 걸린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끊임없는 태클에 저항하는 과정이잖아요. 상대의 훼방과 공격이 없으면 바둑은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둑과 문학과 인생의 공통분모가 아닐까요? (웃음)


작가님께서는 어릴 적 기원에서 바둑을 배우기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바둑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바둑은 일부분에서 손해를 봤다고 지는 게 결코 아닙니다. 전체를 봐야 해요. 바둑이 저에게 준 가르침은 소소한 실패에 걸려 넘어진다 해도 인생 전체가 실패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한 부분이 상대에게 잡아 먹혀도 역으로 그 점을 이용할 수 있어요. 인생도 그렇잖아요. 입시와 사랑, 취업, 진급에 실패하더라도 돌고 돌아 더 좋은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작은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면 결과적으로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어요. 인생은 즐겁게 사는 게 더 잘 사는 거잖아요. ‘유희’라는 개념이 바둑과 인생에서 서로 통용되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대만 금문도(金門島) 행 페리 안에서.jpg

 

여행 외에 작가님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독서를 꼽아야겠지요. 걷기나 요가 같은 운동도 내적 영감을 많이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굉장히 중요해요.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요. 저는 특히 ‘Listener’라는 말을 좋아해요.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죠. 내면의 목소리가 가진 에너지는 어마어마하거든요.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씀은 그의 제자 중 가장 잘 들은 사람에 의해 남았습니다. 가장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중을 알아야 하죠. 소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들어야 하는 것이죠. 잘 들을 때 상대에 대한 이해가 일어납니다. 때로는 자기 앞의 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이 세계에 대한 이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예 창작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이 있으신가요?


학생들에게 약간 우둔해지라는 말을 하곤 해요. 어떤 일을 이루기까지 걸리는 ‘절대 시간’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보면 애초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항상 많이 걸리기 마련이잖아요. 수많은 태클이 걸려 들어와요. 꿈이 클수록 강도가 센 태클이 들어와요. 그럴 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천천히 계속 가야 하는 거죠. 무언가를 빨리 성취하려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돼요. 물이 끓으려면 100도 이상은 넘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 절대시간을 인정하지 않아요. 자신의 상황을 모른 채 앞서 나가려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출발 신호에 먼저 뛰어나간다고 먼저 결승점에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문학이 무슨 스피드 게임이 아니잖아요.

 

일반 여행자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작품 구상을 위해 떠나는 작가들의 여행 준비 마음가짐은 상당히 다를 것 같아요. 작품을 위한 여행을 가실 때 챙기는 특별한 준비물이랄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요?
 
꼭 준비해가는 건 수첩과 펜입니다. 펜은 네 개정도 챙겨갑니다. (펜을 달라고 하는 분들이 꼭 있어요) 카메라와 녹음기를 준비하지 않은 지는 오래 됐어요. 낯선 곳에서 카메라를 챙기느라 노심초사하고,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거나 동행한 사람들에게 전송하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찍기만 하고 풀지 않은 필름 롤도 많아요. 그래서 차라리 여행 중간 중간 쉬면서 펜과 문장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택하게 됐어요.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포기하는 것, 그것도 굉장한 결단일 텐데요.

 

맞아요,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히 생기지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은 절대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다고 위안해요. 어떤 순간의 느낌이나 감정들은 온전히 나만이 느끼는 것이지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진을 잘 찍게 된다면 어쩌면 이런 생각에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르겠어요. 운이 좋은 경우 여행지에서 만난 분들이 사진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어요.

 

<2014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이어 두 번째로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게 되셨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획위원으로 참여하시고 계신데요, 국내외 작가들이 어울려서 문학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서울국제작가축제’는 밸런스가 잘 잡힌 페스티벌이에요. 국내외 작가들의 문학적 교류뿐만 아니라 작가적인 유대를 나눌 수 있도록 상당한 정성과 공을 들입니다. 기획위원들과 한국문학번역원 직원들이 한번 모이면 다섯 시간 이상씩 여러 사안에 대해 고민합니다. 회의 참석인원 전원이 이 축제가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축제의 ‘성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봐요. 요즘 일반인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반면, 서울작가축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작가 28명이 한꺼번에 모여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가을이 참 아름답잖아요. 9월이라는 계절도 좋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제 말의 진위를 직접 확인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미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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