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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영화와 문학

여행의 준비물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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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영화보다 그 영향력이 강한 듯도 싶다. 우리는 대부분 해당 소설에 등장한 옛 경관과 풍취가 사라졌거나 바뀌었을 것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소설 속의 그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여행은 기대와 계획, 목적지로의 여행, 여행지에서의 행동, 돌아오는 여행, 회상하기 등으로 구성되는 복잡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먼저 여행에 나서기 전 우리는 여러 여행지나 각종 여행 상품이 제공하는 여행 요소들(음식, 기후, 숙소, 액티비티, 역사 유적 등)에 관한 정보를 습득한다. 여행 정보를 모으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재미있는 활동이자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활동이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의외로 진실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여행지의 문화나 역사 유적 등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려면 관련된 정보를 많이 모을 필요가 있다. 다양한 정보는 실제로 우리의 여행을 더욱 만족스러운 여행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를 여행으로 강하게 끌어들이는, 그래서 막연히 “여행이나 좀 생각해볼까……”라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먼저 참고하면 좋을 정보의 근원은 영화와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다양한 정보 중에서 내러티브를 선호하는 편이다. 내러티브란 실제 또는 허구의 ‘이야기’를 진술하는 것을 뜻하는데, 진술되는 내용이 이야기이니만큼 주인공이 명확하고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사건이 인과관계에 따라 정연하게 펼쳐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내러티브는 읽거나 듣고 있을 때 재미가 있고, 접하고 난 뒤 체계적으로 기억에 잘 저장되며, 필요할 때마다 기억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꺼내어 음미하기 좋다. 그래서 내러티브는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정보 종류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 마음에 가장 강한 인상과 영향력을 남기는 정보 형태가 된다.
 
영화나 소설은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내러티브 형식으로 전달함으로써 우리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다. 영화는 내러티브에 강렬한 시각 정보를 더해 우리의 역마살에 불을 붙이고, 소설은 내러티브에 풍부한 묘사와 상상력을 더해 나만의 행복한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기가 막힌 내러티브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과 대화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여행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되는 것 또한 내러티브가 갖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과 우리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게 되면 마치 이 영화나 소설의 배경이 나와 밀접하게 관련된 친숙한 장소인 것처럼 느껴져서 우리 마음속의 여행 장벽이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
 
영화와 소설(그리고 훌륭한 여행 이야기꾼)의 내러티브는 우리가 이야기 주인공의 생각, 행동, 감정에 이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가 특정 여행지에 대한 나름의 테마를 찾아내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발견한 이 테마에 이끌려 영화 촬영지와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불나방처럼 날아든다. 


 흐르는강물처럼_스틸컷2.jpg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소리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들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영화의 배경이 된 미국 몬태나 주의 공무원들은 미국 전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오고 싶다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전달한 테마는 (내 생각에) “대자연 속에 녹아든 삶은 낚시만 하고 있어도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된다. 브래드 피트를 보라!”인데, 이에 이끌려 많은 사람이 블랙풋 강에 낚싯줄 한번 날리며 브래드 피트 노릇을 해보기 위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델마와루이스_스틸컷.jpeg
“너무 아름다워. 이렇게 여행해볼 기회가 없었어.” “우리들은 조금 탈선은 했지만 진정한 자신을 되찾았어.”

영화 <델마와 루이스>

 

마찬가지로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나면 너도나도 망망한 그랜드캐니언을 차로 달리며 그곳에서 자유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싶어지고, <늑대와 춤을>을 보고 나면 미국 중서부 대평원을 달리며 버팔로를 쫓고 싶어진다.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면 아라곤과 레골라스(그리고 김리)가 되어 뉴질랜드의 산악 능선을 뛰어다니고 싶어지고, <러브레터>를 보고 나면 홋카이도의 눈밭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며 첫사랑의 아픈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진다. 남이섬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 그 많은 일본인도 이와 똑같은 이유에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리라.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영화보다 그 영향력이 강한 듯도 싶다. 우리는 대부분 해당 소설에 등장한 옛 경관과 풍취가 사라졌거나 바뀌었을 것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소설 속의 그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경리가 『토지』에서 묘사한 경관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하동의 ‘토지마을’을 찾아가고, 『삼국지』의 적벽과 『영웅문』의 아미산이 그때 그 분위기를 풍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 곳들을 찾는다. 그토록 많은 유럽인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는 것 또한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이 이 도시를 그토록 다양하게 묘사하고 이 도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강렬한 인물들을 창조했기 때문이지, 그때 그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여행을 떠날 마음을 먹고 자기 여행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여행의 가장 첫 단계에는 정보량이 방대하고 산만한 가이드북이나 여행 블로그, 여행 정보 프로그램, 동호회 카페보다는 영화와 소설과 누군가의 내러티브가 가장 좋은 정보 습득 수단이라 하겠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소설이 시각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본질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상상하고, 여행지에서도 그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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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심리학 김명철 저 | 어크로스
심리학과 여행학을 결합하고 여기에 자신의 여행 경험을 더한 이 독특하고도 기발한 여행안내서. 역마살의 정체에서부터 자신이 어떤 여행자 스타일인지, 여행에서 경험한 부정적인 정서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행복감을 오래 지속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자로서 여행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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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명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심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칭 ‘웃기는 심리학자’로 통하며, 도합 1년 5개월 12개국을 여행한 베테랑 여행가이기도 한 그는 스스로를 ‘경험추구 여행자’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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