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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는 법

에세이와 소설의 우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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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다. 글을 통해 나를 멋지게 치장하고 포장하거나 가면을 쓰는 것은 오래 못 가고 어느덧 스스로도 괴리를 느껴 글쓰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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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한 때 에세이와 소설의 우열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몇 개씩 써본 경험으로 느끼기엔 현재로썬 이 정도 결론에 와있다.

 

1. 에세이와 소설 중에는 소설이 일반적으로 더 쓰기 어렵다.
2. 소설이 에세이보다 쓰기 어렵다고 해서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에세이를 반드시 잘 쓰는 것은 아니다.
3. 잘 쓴 에세이와 보통인 소설을 비교하면 잘 쓴 에세이가 훨씬 더 가치 있다.
4. 에세이 잘 쓰는 일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 님은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재밌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것을 조금 더 단순하게 도식화해서 정리하자면,

 

잘 쓴 소설 > 잘 쓴 에세이
별로인 소설 < 잘 쓴 에세이
별로인 소설 = 별로인 에세이


라고 할 수 있겠다.

 

내 감각으로는 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 같고 에세이는 ‘마음’으로 쓰는 것 같다.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유연하고 말랑말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일부러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하거나 엉덩이 힘으로 버티기보다, 에세이는 쓰고 싶은 주제가 자연 발생적으로 떠올랐을 때 바로 써야지 가장 글에 생기가 돌고 재미있어진다. 종이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면서 글을 풀어내고, 손글씨로 써놓은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서 타이핑할 때쯤이면 한 번 더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된다. 에세이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좋아하는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어가면서 어떤 생각의 자극을 받거나 자유연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고 일어났을 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도 뇌가 밤새 쉬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쓸 거리가 저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서 머리맡에는 늘 애용하는 몰스킨 노트북을 두고 자게 된다.

 

에세이에서 내가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솔직함, 둘째는 문체다. 에세이는 애초에 저자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비 없는 글 장르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자기 포장인지,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는지는 글의 행간에서 모두 전달된다. 에세이는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장식하기보다 솔직한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에세이를 쓸 때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간절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기검열이나 자의식을 떨쳐내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으로 써내려간다. ‘나답게’ 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것이다. 


그러려면 글을 쓸 때 내가 혹시 어떤 내용을 얼버무리고 있는지, 혹시 어떤 내용을 일부러 모호하게 흐리고 있는지, 혹시 어떤 내용을 말하기 두려워하는 게 있는지 스스로 정직해야 한다. 솔직한 글이 지루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솔직하지 못한 글에 감정 이입할 독자들은 별로 없다. 글을 통해 나를 멋지게 치장하고 포장하거나 가면을 쓰는 것은 오래 못 가고 어느덧 스스로도 괴리를 느껴 글 쓰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된다. 솔직함은 글쓰기를 장기적으로 오래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얼마전에 읽은 이석원의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다시 한 번 이석원 작가의 ‘솔직함’이 가진 힘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안에서 자신을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첫 소설 『실내인간』을 사년에 걸쳐 쓰면서 겪었던 내밀한 고통을 담담하게 말한다. 실은 자신이 소설 쓰는 일을 전혀 즐기지 않았다는 깨달음, 그래서 글쓰기가 어쩌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을 가감없이 토로해서 읽는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저자가 독자들 앞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일텐데도 그는 허세나 연민없이 그저 담백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었다. 폼나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것이 최고다.

 

두 번째로 내가 에세이에서 중시하는 것은 작가 고유의 문체다. 문체는 그 작가의 개성이자 매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글만 읽고서도 ‘아, 이 작가의 글이구나’하고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 문체가 기왕이면 남들과는 다르면서도 읽기엔 쉽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물론 가독성이 좋은 에세이가 무조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입에 자꾸 돌이 걸리는 느낌을 받으면서까지 에세이를 힘들게 읽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 같다. 에세이는 본질적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런 마음가짐과 지향점을 가지고 에세이를 작업 중에 있다. 말은 참 쉽게 하지만, 에세이를 ‘잘’ 쓰는 일은 서두에 썼듯이 보기보다 꽤 어려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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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저 | 그책
작가로서 생계를 잇는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 이 길이 과연 자신의 길이 맞는지에 대한 두려움…… 『보통의 존재』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삶을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 그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명제에 대해 작가 자신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백 섞인 글을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위안을 얻고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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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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